※ 134화
―뭐,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물론, 반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실종이라니!
칸나니아는 실종되었다. 증인은 바로 헤타였다.
“어디로 가셨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마지막 모습을 봤습니다. 제가 암석으로 주군을 쫓아가는 걸 막았더니, 그대로 창을 열고 빠져나가셨죠.”
“아, 골 때리네. 분명 또 올 텐데…….”
“그때 일은 그때 가서 또 정비하면 될 거야. 창을 열고 도망친 이상, 현 시점에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어.”
“도라안은?”
“도라안은…….”
도라안은 추방이 확정되었다.
마지막, 그들을 인어의 지느러미 끝에 매달린 비늘마냥 도왔기 때문에 나온 그나마 가벼운 처벌이었다. 트리야에 비하면 꽤나 처우를 봐준 결과였다.
“지금은 걔 뭐해?”
“일단 울면서 자기 방에 잠들어 있어. 내일 추방이야.”
“제국 밖이라고 해도 이 근처잖아? 물론 저 높은 산 위긴 하지. 그래도 집 하나 얻어 주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살 텐데 뭐가 그렇게 억울하대? 나 같으면 이제까지 한 짓이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처벌을 받아들이고 죽은 듯이 살 텐데.”
근처 대륙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산맥, 물이라곤 얕은 냇물만 졸졸 흐르는 곳에서 도라안을 위한 통나무집이 마련됐다.
소박하고 약한 집. 어쩌다 비가 오면 쓸려 나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집. 단 한 명의 시종만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집.
그러나 다른 인어들의 눈에 띈다면 곧장 절단 날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미래를 읽은 건지, 도라안은 처음에만 반발했을 뿐, 곧 조용해졌다. 그리고 도라안은 그나마 제일 말이 잘 통했던 인어라며 시종으로 기리안을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트리야는…….”
사형이었다.
유구한 폭군의 횡포와 살해, 살육과 마을 학살, 죄 없는 자를 처형대에 매달고, 그 시체를 식인을 즐기는 몇 인어와 어류들에게 먹이로 준 잔인한 성정을 고려하여 내려진 엄벌이었다.
그러나 이 판결이 시행되려면 우선 큰 문제를 극복해야했다.
“맞아, 므아나 언니. 그, 마지막에 어떻게 됐어? 그때 갑자기 큰 물살이 밀려들어 와서 못 봤어.”
“어, 그러네. 나도 못 봤어. 주군은 잠깐 보이는 듯하더니 사라지셨고, 움도 연락이 안 되고……. 므아나, 넌 알아?”
“알 리가.”
백리서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트리야가 실종됐다. 그것도, 주군과 함께.
“원하지도 않는 자리에서 내려오렴, 트리야.”
아득한 동굴이 파괴되었을 때, 저의 하나뿐인 주군은 사해의 화살을 트리야가 아닌 자신을 향해 쏘았다.
“어째서!”
정확히는, 트리야의 목을 베려는 자신의 검을 향해 쏘았다. 때문에 백리서의 검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고, 트리야는 목숨을 건져 제국으로 내려오는 주군을 맞이했다.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물살이 제국을 강타했고, 주군은 빠르게 창을 열었다.
창을 넘기 전, 주군은 백리서에게 속삭였다. 미안해.
그리고 한순간, 눈을 감았다 뜬 백리서는 난장판 위에 홀로 서있었다.
트리야도, 이데아도 없었다. 새로운 제국의 전환기에 태초가 빠진 것이다.
“미치겠네…….”
곧 돌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겁이 나진 않았다. 이제까지 기다리는 건 잘해 왔으니까. 하지만 트리야는…….
“우선 밖에 전달해. 트리야는 보이는 즉시 사형이라고. 과연 발견될지는 모르겠지만.”
“어? 저게 뭐지?”
그때 누군가 창문 밖을 똑똑 두드렸다. 윌로가 벌떡 일어나자 작은 하급 인어가 툭, 돌돌말린 천으로 된 편지를 놓고는 사라져 버렸다.
“움의 편지야!”
“그렇게 연락이 안 되더니, 갑자기 편지?”
“줘봐.”
백리서는 편지를 펼쳤다.
움은 아직도 예언자 연옥으로서 여파 길드 안에 있었다.
[모든 것은 태초의 뜻대로 할 것. 므아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파로 돌아올 것.]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내가 왜? 이제 목적은 달성했는데,”
그러나 편지를 뒤집자 한 줄이 더 쓰여 있었다.
[귀찮아도 와. 인간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아…….”
그리고 구석에 작은 글이 써있었다.
[도원은 아직도 그 섬에 있어. 참고로 그는 널 눈치챘어.]
피파글랜과 백리서의 눈이 일순 마주쳤다. 백리서는 휘익, 편지를 창밖으로 던진 후, 능력을 써 깊은 땅 속에 묻으며 어깨를 풀었다.
“…대화를 해야겠네.”
◈ ◈ ◈
“네가 준 오르골은 아직도 내 방 책상 위에 있어.”
데아는 백사장 위를 발로 툭툭 찼다.
“그런데 그걸 나한테 준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거든. 왜 준거야?”
데아의 시선 끝에는 하얀 사장의 먹물처럼 찍힌 트리야가 있었다. 트리야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한적한 무인도. 태초의 대부분의 권능과 기억을 찾은 데아가 트리야를 보자마자 가장 먼저 한 건 그를 빼돌리는 일이었다.
참으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새하얗게 탈색된 머리카락, 수천 년의 진주를 닮은 눈동자, 새롭고 익숙한 모습의 주군을 맞이한 트리야는 여유롭게 선고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자신의 사형 선고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후회하지 않았으므로.
참으로 어이없지. 단 한 가지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온 시간은 폭발적인 추진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포기가 빨랐다. 자신의 온 목표가 되어 주었던 주군이 직접 자신의 패배를 선언하자 정말 끝이 되었다.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국의 모든 귀족들과 간부들은 줄줄이 잡혀가고, 백성들은 일어나 새로운 제왕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곳에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트리야는 허탈하게 웃었다.
“만족해?”
“만족해.”
트리야는 침묵 후 다시 대답했다.
“사실 조금 아쉬워.”
날이 지고 있었다. 태양의 절반을 삼킨 바다가 눈부신 빛으로 흘러넘쳤다.
“넌…….”
‘태초’는 고심했다. 그럼에도 행동했다.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어.”
새로운 창이 열렸다. 원형의 완벽한 창. 태초의 의지로 움직이는 온전한 통로를 본 트리야의 표정이 천천히 변했다,
“그러니, 가.”
사형당하지 말고 가. 영원한 이 세계로부터의 추방. 데아는 잔잔하게 다정한 선고를 내렸다.
“나는 너를 찾아가지 않을 거야.”
트리야는 잔인하다며 웃었다.
“나 혼자 여행이나 떠나라고? 혼자 여행 못 떠나는 거 잘 알면서.”
“…배웅할게.”
“필요 없어.”
트리야는 하얗게 빛나는 창을 바라보았다. 주군이 자신에게 내리는 유일한 아량.
자신의 생각에 맞춰 태초를 위해 행동했던 트리야처럼, 자신의 생각에 맞춰 트리야를 위해 행동하는 이데아. 그 간극에 트리야는 웃었다.
트리야는 유일한 탈출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끝이 서늘해졌다.
“그거 알아?”
쏴아아 밀려오는 바다의 소리, 옅은 거품을 흩뿌리며 해변 위에 선을 긋는 크림 같은 파도, 붉게 노을 지는 하늘 아래, 트리야는 데아를 돌아보았다.
꾹꾹 눌러 담았던 진심이 한계를 알렸다. 오만한 독재자가 아닌, 자장가를 위해 오르골을 돌렸던 인어의 표정을 지은 트리야는 멈춰진 시간처럼 웃었다.
“난 안온한 시간을 내어 주고 싶었어.”
“…….”
“정성스럽게, 예쁘게 담아 선물하고 싶었어…….”
트리야는 눈을 감았다 떴다. 백사장 위에는 자신 혼자였다. 이데아는 없었다. 자신과 창, 둘만 남은 세계에 트리야는 가만히 몰려드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문득 손을 펼쳤다. 그 안에는 익숙한 산호 장식이 있었다.
“하지만 실패했네요.”
어디로 향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공간, 주군이 마지막으로 내려 준 자비, 몰락한 제왕의 도피처. 이 너머는 과연 어디일까.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일까, 아니면 처음 발을 디디는 세계일까.
트리야는 극심한 갈증을 회복하는 환자처럼 황혼을 들이마셨다.
“이대로 끝이 아니에요.”
트리야는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또 만나게 될 거야. 그때가 오면…….”
트리야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를 돌아본 그는 휘익 창을 넘어갔다.
밝게 비산하던 창이 뚝 닫혔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백사장 위에 찍혀 있던 두 사람의 발자국이 파도에 쓸려 사라졌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데아는 가만히 파도에 몸을 담갔다. 그에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하급 인어들이 오르르 몰려들자 데아가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비밀이야?”
―알았어, 바다님.
―알았어요! 나 말 잘 들어!
그때 저 멀리서 인기척이 들렸다. 오, 오늘은 죄 청산의 날인가? 데아는 휘적휘적 인기척이 들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제 발 저린 도둑이 직접 경찰서를 찾아왔다. 붉은 머리의 남자가.
“칼리안?”
움찔,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던 칼리안이 데아를 흘끗흘끗 바라보며 시선을 슬슬 피했다.
―제, 제가…….
“됐어. 돌아가.”
―예? 하지만…….
그가 굳어서 머뭇거리고 있자, 데아는 해류를 일으켜 그를 밀어냈다.
“넌… 그래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약속은 잘 지켜줬더라. 그러니까 내가 내릴 벌은 바로 이거야.”
그리고 데아는 주먹에 후, 숨을 뱉었다.
―…예?
‘이데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데아는 잠시 고개를 들어 수면에 스며든 노을을 보다가 퍼억! 주먹을 날렸다. 흐억! 뺨을 얻어맞은 칼리안이 저기 멀리 나가떨어졌다.
“오늘부로 나에겐 칼리안이라는 권속이 없고, 너에겐 태초라는 주군이 없다.”
―예, 예?
“알겠어?”
―태, 태초 님, 주군…….
“난 네 부름에는 응답하지 않을 거고, 너에게 도움도, 그 어떤 힘도 빌려주지 않을 거야.”
―…….
해가 지고, 달이 뜨고, 파도가 밀려나가고 다시 들어오는 그 무수한 시간 동안 계속, 그의 기나긴 삶에 태초는 영원히 없으리라.
태초는 모두의 주군. 가장 최초의 주군을 잃은 권속은 결국 말라가다 힘을 잃는다. 그것이 2세대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데아는 선고를 거두지 않았다. 칼리안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주군, 주군!
“돌아가.”
하얀 머리의 이데아.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부쩍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무표정을 많이 짓는 다는 거였다.
칼리안은 주군 특유의 서늘한 무표정에서 단절을 읽었다. 100여 년 전, 그때의 태초가 죄를 지은 인어를 향해 종종 짓던 표정이었다.
칼리안의 표정이 울듯이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수긍했다. 고개를 숙이고 물러서는 칼리안을 향해 데아가 쐐기를 박았다.
“돌아가, 칼리안.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잘 가렴.”
대화가 끝나자마자 데아는 폭발적인 속도로 홀로 대양을 헤엄쳤다.
완벽한 세상이 피부에 스치며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천천히 보수 공사를 진행 중인 광활한 제국이 보였다.
―어, 저기!
그들의 위쪽에 나타난 데아를 향해 누군가 손짓했다.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일을 하던 인어들이 동시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호의와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어, 데아는 예상치 못한 선심에 당황했다.
―태초 님이시다!
눈부신 미소가 데아를 향해 쏟아졌다. 누군가의 박수를 시작으로 환호성이 제국을 가득 메웠다.
예전에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동굴의 위, 우주만큼이나 창대한 바다의 은하수 위에는 반짝거리는 모래의 별로 만들어진 길이 있었다. 그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백성들과 되찾은 백성들은 자신의 돌아온 주군을 향해 환호성을 보냈다.
“…….”
죽은 자가 어떻게 돌아왔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 모양이지만 금세 들어간 걸 봐서는 혁명군이 아직까지는 꾸준히 일을 해준 모양이고.
―태초 님.
태초 님.
데아는 새로운 이름에 반응했다.
“왜?”
연한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2세대 인어 두 명이 다가와 정중한 인사를 했다.
―저희는 태초 님을 모셔 오라는 피파글랜 님의 명을 받들기 위해 왔습니다.
◈ ◈ ◈
“으아아악! 사람이, 사람이 다쳤어! 어서 구급차!”
대한민국 서울. 하영주와 가윗의 귀환에 전국은 다시 떠들썩하게 들썩였다. 돌아온 자의 상태가 지나치게 좋지 않았던 탓이다.
“영영 헌터! 괜찮으십니까!”
“구급차! 구급차 불러!”
“다른 헌터들은, 샤샤 헌터는요?”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죽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