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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33화 (133/223)

※ 133화

“왜, 왜 내가 여기 없다고 했어?”

전쟁이 끝났다.

아무 소득 없이 헤타는 돌아갔고, 피파글랜은 태초의 마지막 흔적마저 보지 못한 유일한 인어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서야 피파글랜은 허겁지겁 달려왔다. 상황을 파악한 이리나는 차게 질렸다. 왜 내가 여기 없다고 거짓말했어?

“미안해요, 미안해요……. 저, 저는 정말 몰랐어요. 항상 그랬듯이, 장난을 치는 줄 알았어요. 태초, 태초 님이 돌아가신 줄, 전 정말 몰랐는데…….”

피파글랜은 덜덜 떠는 이리나에게 더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저 홀로 우두커니 선 이리나를 두고 떠나버렸다. 뒤를 돌지도, 돌아오지도 않고 영영 떠나버렸다. 그리고 찾아오지 않았다.

그 모든 광경을, 태초는 보고 있었다. 밝은 하얀 빛무리로 존재하며 상황을 관망했다.

태초는 트리야와 므아나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보았고, 찬란했던 해변이 황무지로 변하는 것을 보았으며, 결국 패배한 므아나가 제국을 깊은 심해로 무너뜨리는 광경까지 보았다.

해룡이 태초의 고목에 들어가 똬리를 틀고 잠들어 버리고, 결국 모든 이가 떠나고, 홀로 남은 트리야가 웅크려 오열하는 것까지, 전부 다.

◈          ◈          ◈

태초는 깊은 심연에서 눈을 떴다. 뺨을 스치는 머리카락이 하얬다. 어둡고 고요한 수면 아래, 뚫렸던 복부가 천천히 원상 복귀 되고 있는 걸 느꼈다. 모든 것이 변했고, 이제 돌아갈 수 없으리라.

마석과 흰 빛무리를 집어삼킨 몸은 찬란하게 변화했다. 검었던 비늘이 하얗게 빛났다. 지느러미 또한 흘러내리는 베일처럼 근처를 너울거렸다.

―태초!

저 멀리 주인을 찾은 해룡이 곡선을 그으며 오고 있었다. 태초, 이데아는 빙글, 몸을 돌려 동굴을 마주했다. 주변에 몰려든 하급 인어들이 데아를 호위하듯 일정 거리를 두고 빙글빙글 돌았다.

“경배야. 네 잘못이 아니야.”

어스름한 바다의 우울이 데아를 덮쳤다. 사람을 태우는 빛, 낯선 곳을 향한 고요한 일탈. 그 일탈에 전부를 바친 옛날의 꿈은 떠오르는 해처럼 데아의 눈을 범람했다. 뚝뚝 떨어지는 과거의 꿈을 손으로 받아 내며 데아는 길게도 침묵했다.

―아냐, 내 잘못이야. 내가 그때 제때 사해의 활을 주었다면, 내가, 조금 더 협조적이었다면…….

경배는 울먹이며 속삭였다. 데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의 내 몸은 이미 한계였는걸.”

해룡이 다가왔다. 근처를 맴돌며 파도에 녹아들어 갔다.

그때 또렷한 상태 창이 앞을 매웠다.

[축하합니다!]

[마석의 섭취량이 증가했습니다.]

[당신의 기억은 충분합니다.]

[당신의 바다는 온전합니다.]

[바다의 경배(SS)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바다의 경배가 그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63% 구현 완료]

[74% 구현 완료]

[87% 구현 완료]

.

.

.

[98% 구현 완료]

[100% 구현 완료]

[바다의 경배(N)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100%의 등급 N. 이 정도면 충분하지.

뒤이어 전체 스킬 창이 다시 반짝 켜졌다.

[상태 창]

[등급 : N]

이데아―헌터명 : 사샤

마력 : 21(+53)(+50)

체력 : 20(+12)(+50)

생명력 : 30(+12)(+50)

속도 : 21(+12)(+50)

전체적인 능력치도 덩달아 성장했다. 아마 이게 처음이겠지. 힘이 더 빨리 되돌아올수록, 능력치도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데아가 놀란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획득한 스킬―

[물속의 발자취(N)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심해의 눈(N)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타고난 몰이꾼(N)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바다의 경배(N):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N): 이건 유폐된 자들의 목소리이다.]

[인어화(N): 나는 그대의 본질. 그대의 자유는 하얗다.]

―미획득 스킬―

[우리의 ○○○ ○○○](?)

[○○○ ○○○ ○○](??)

획득한 스킬의 모든 등급이 N으로 변화했다. 스킬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등급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그때, 맨 위에 있던 미획득 스킬 하나가 사라졌다. 그리고 새롭게 쓰여졌다.

[조건 충족]

[미습득 스킬 획득 조건 충족]

[스킬, 우리의 온화한 종착지(N) 습득 성공!]

[바다의 경배(N)가 그럴 줄 알았다며 환영합니다.]

[새롭게 돌아온 스킬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의 온화한 종착지(N) : 우리는 당신으로 인하여 서로와 대화합니다.]

평화로운 제국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가 방금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경배야. 데아의 부름에 경배는 스스로 움직여 길쭉하고 우아한 활을 만들어 냈다. 그 활은 능숙하게 데아의 손가락 위에 얹혔다.

차갑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사해의 화살이 초승달처럼 반짝였다. 깨진 빛을 게걸스럽게 삼키는 파도를 곱게 잘라 조각한 활과 화살을 잡은 데아의 팔이 뒤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목적지는 제국을 삼킨 거대한 동굴, 그 누구도 꿰뚫을 수 없던 고립의 상징.

“끝낼 시간이야.”

활이 놓는 순간은 고요했지만 위력은 그렇지 않았다.

콰과과과과―!!

화살이 동굴의 정중앙을 뚫었고, 전 대륙이 진동하며 동굴의 붕괴를 알렸다.

파괴된 동굴 사이로, 어마어마한 물살이 쏟아져 나왔다. 그 사이로 보이는 건 푸른 피가 낭자한 제국의 정경이었다. 처형대, 순백의 왕궁,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인어의 시체. 그리고 저 멀리 차례를 기다리며 강제로 끄집어 나와지는 알레와 링, 눈물범벅으로 간부들을 공격하다가 위를 멍하니 바라보는 유리.

―저, 저, 뭐야……?

목을 내려치던 트리야, 그것을 막아 내며 도로 급소를 꿰뚫으려던 백리서, 서로 죽고 죽이던 혁명군 인어와 간부들, 절망적으로 앉아 있던 무수한 백성들까지.

그러나 지금은 모두 정적뿐이었다. 제국 안의 무수한 인어들은 이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높은 창공을 향해, 100년간 깨질 것이라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기적을 향해.

데아는 무표정으로 다시 활을 겨누었다. 목표는 최초의 권속.

마지막으로 위를 바라본 건 트리야였다. 가장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던 그는 이제 데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트리야와 눈에 비친 건 예상했던 일에 대한 절망, 공포, 결국 당신은 또 위험해질 거라는 두려움. 데아는 조소했다. 결국 단순했어, 그렇지?

“원하지도 않는 자리에서 내려오렴, 트리야.”

활 끝이 번뜩였다. 처형이 중지되었다.

눈이 시리도록 맑고 밝은 비늘을 가진 인어. 그는 그토록 기다렸던 태초의 증표를 가지고 기적을 가장한 필연을 선사했다.

―내려가?

―내려가요?

―우리 내려가도 돼요?

파괴된 동굴 너머, 데아의 어깨 너머에서 무수한 하급 인어들은 눈을 빛내며 아래를 내다보았다.

―어, 뭐야. 저 위에 하급 인어 아니야?!

―으아악! 전투태세! 하급 인어가 제국 안으로 침입한다!

―자, 잠깐, 지금 하급 인어가 말하고 있잖아! 목소리가 들리잖아!

둔탁한 칼로 조각된 석상처럼 고고하게 바라보기만 하던 하급 인어들은 데아의 신호에 기다렸다는 듯이 제국 안으로 침범했다.

―나도 가겠네!

해룡 또한 그 속에 섞이자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추방당했던 모든 생명체가 제국에 머리를 디밀었다. 인어들의 목을 내려치던 망나니들이 픽픽 쓰러지고, 간부들이 허겁지겁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트리야는 움직이지 않았다.

더한 해류가 밀려들어 왔다. 거친 물살이 제국을 강타했고, 데아의 의지를 따라 바다가 일변했다.

제국이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떠오르고 있었다.

“…태초.”

그 위에서, 백리서와 대치하던 트리야는 데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약점 파훼. 심해의 눈이 발동되었다. 그 즉시 모든 것이 붉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백리서의 검이 트리야의 목을 향해 들이닥쳤고, 데아는 팽팽히 당기던 활을 놓았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났다.

◈          ◈          ◈

달밤이 지고, 새로운 새벽이 밝았다. 시체를 처리하자 남은 건 살아남은 인어들이었다.

하룻밤 만에 전세가 역전되었다. 독재의 일등 공신으로 손꼽혔던 막대한 권력의 귀족들은 줄줄이 체포되어 철창에 갇혔고, 그동안 모진 고문을 견뎠던 수많은 죄수들은 자유를 찾았다.

―맙소사, 므아나 님!

―저기 윌로 님도 계셔!!

100년 전, 트리야의 독재가 시작하자마자 끌려가 상황을 아예 몰랐던 인어들은 돌아온 1세대 인어들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이 사태의 가장 큰 인기를 가져간 인어는 단연코 태초였다.

―그, 그, 그……!

그러나 데아는 모든 사건이 정리 된 후 잠깐 얼굴을 비추곤 사라졌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하고 가장 먼저 넘어간 인어는 제이제이였다. 뒷목을 잡고 입에 꼬르륵 거품을 문 그는 이내 보수 공사에 쓰이던 석판을 가져다가 스스로의 머리를 퍽퍽 깼다. 물론 깨진 건 석판이었다.

―말도 안 돼……. 잘못 본 거죠? 그렇겠죠?!

―제이제이!

―유리!

유리는 엉망이 된 모습 링과 함께 잔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제이제이와 껴안았다.

―누, 누나는 멀쩡해 보여서 다행이야!

―그래? 근데 나 지금 살아 있는 거 맞지?

나 머리 한 대만 때려 줄래? 아무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거든. 그러자 링이 팔꿈치로 유리의 머리를 팍! 쳐주었다. 아니 네가 왜 쳐? 결국 싸움이 났다. 끝엔 환하게 웃고 말았지만.

유리는 그나마 빨리 적응한 편에 속했다. 그토록 찾았던 태초가 사실 이데아였다는 어마어마한 진실로 인해 잠시 패닉에 빠졌었지만 이내 아, 어쩐지. 하며 수긍했다.

―피가 붉더라고요. 설마 인간일까? 고민했는데 태초 님이라는 게 더 그럴듯하죠……. 아 미친. 근데 앞으로 얼굴 어떻게 보지. 생각보다 더, 더… 큰 존재라서 당황스러운데…….

그러나 유리는 곧 직접 사해의 화살을 당기던 그 아름답고 멋진 모습에 대한 찬양을 시작했다. 링은 벽에 대고 그동안의 무례를 용서하소서, 외치고는 그 찬양에 동참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머리의 나사를 하나 빼둔 것처럼 행동했다. 기묘한 고양감이 맴돌고 있었다.

그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동굴이 깨지고, 제국이 다시 떠오르자 인어들은 수면에 고개를 들이밀고 떠오르는 태양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너, 너무 오랜만이야…….

―대단해…….

인어들은 조심스럽게 인간의 다리로 변화해 대륙 위에 발을 올렸다. 처음에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몇 걸음 걷지 못하고 풀썩풀썩 주저앉았지만 곧 그들은 며칠이 더 지나자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게 되었다.

―이것 봐! 나 달릴 수 있어!

―이게 모래야? 느낌이 이상해!

새로운 수면 위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찼던 인어들은 곧 분노에 차올랐다. 인어들은 자신들을 독재에 밀어 넣고 핍박했던 세 명의 인어들에 대한 처벌을 강경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폭군 트리야는 어디에 갔나!

―칸나니아와 도라안은 어디에 사라진 거야!

그들의 사건을 정리한 건 또 다른 1세대 인어였다.

므아나, 피파글랜, 윌로. 그리고 뒤늦게 서성이며 나타난 헤타가 한데 모여 회의를 열었다.

“어떡할래?”

“어떡하긴…….”

◈          ◈          ◈

이튿날, 모두를 충격에 빠뜨릴 회의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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