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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30화 (130/223)

※ 130화

난데없는 돌발 사고에 푸하하! 태초가 웃고, 해룡 또한 배를 뒤집고 크하학 웃었다. 저 멀리서 씩씩거리며 트리야와 므아나가 나타났다.

“난 이럴 줄 알았어요.”

“도를 넘어도 대차게 넘었는데…….”

“그나저나 주군, 제가 귀여웠어요?”

므아나는 태양을 머리 위에 두른 것처럼 웃고는 필립을 질질 끌었다. 정신을 절반만 차린 필립이 신음했다.

“우리의 마력이 계속 필요하지? 그러면 욕심 부리지 말고 주군이 원하는 것만 바쳐. 허튼짓 말고.”

“히, 히익!”

“주군, 왜 저런 두꺼비 같은 행태를 보고만 있었어요?”

그러나 태초는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환하게 미소했다. 필립의 얼굴이 일순 환해졌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한 나라의 황태자라는 자가 스스로 가슴을 내비치며 눈썹을 우스꽝스럽게 누그러뜨리는데, 어딜 가서 그런 구경을 할 수 있겠니?”

◈          ◈          ◈

그러나 먼 훗날, 태초는 반성했다. 그래. 나는 너무 안일했고, 그들은 너무 멍청했다. 인간들의 멍청함. 그건 태초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7일 만에 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온 움을 보고서도 인어에 대한 두려움을 실감하지 못한 인간들은 도리어 강력한 인어들이 자기들의 손아귀에 있다며 득의양양했다. 그리고 그런 인어들에게 모욕당하고 돌아온 필립은, 겁을 집어먹음과 동시에 분노했다.

“감히 인어 주제에 나를 농락해?”

그러나 그다음 날, 필립은 태초에게 사근사근하게 다가가 사과했다.

“이전의 일은 죄송했습니다.”

“뭘.”

모든 건 좋게 끝나가는 듯했다.

태초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태양을 지켜보았다. 또 때가 되었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솨아아아아…….

태초는 해룡과 함께 수면에 절반만 몸을 담구고 서서, 자신을 배웅 나온 권속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므아나가 사뿐히 다가와 태초의 어깨에 천을 둘러 주었다.

“고마워, 릴림.”

“뭘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해룡, 너도.”

―그만 가지.

태초의 고목.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태초가 자신의 조각을 일부 나누어 두고 오는 행위는 연례행사에 가까웠다.

그렇게 떠나려는 찰나, 피파글랜이 얕은 수면을 찰랑찰랑 흔들며 뛰며 빠르게 다가왔다.

“주군, 이걸 가지고 가시겠어요?”

그건 작게 뭉친 치료석이었다.

“이걸 언제 다 만들었니?”

“이리나에게 배웠어요.”

치료석을 건네는 피파글랜은 쑥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피파글랜의 뒤, 눈을 반쯤 감은 이리나가 서있었다.

의원을 하는 부모 아래서 태어난 이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의원으로 곧잘 활동하고는 했다. 결국 종교에 빠진 부모가 딸도 못 알아보고 눈에 상처를 입혀 하루하루 시력을 잃어 가고 있었지만…….

이 대륙에 남은 유일한 인간 이리나. 피파글랜의 권속들을 도우려 했기에 태초가 죽이지 않은 유일한 인간. 그럼에도 태초를 원망하지 않은 인간. 이리나를 바라보던 태초는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오늘도 의술을 배울 예정이니?”

“네.”

“그래.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들은 이리나는 기쁘게 웃었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따돌림당하고 있던 그에게 유일한 친구란 피파글랜과 가끔 인간들의 물건의 쓰임새를 물어보기 위해 찾아오는 도라안뿐이었다.

인간을 보는 눈이 그닥 좋지 않은 인어들 사이에서 겨우 연을 이어 가고 있는 그 친구 둘마저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고 있는 게 눈에 훤했지만……. 태초는 별말 없이 등을 돌렸다.

피파글랜이 잘 대우해 주고 있는 것 같으니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          ◈          ◈

“그곳에 특히 많은 마력들이 산재해 있더라고.”

필립은 시종의 시중을 받으며 으쓱 웃었다.

“7일 만에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던 인어 움마저 신체 능력은 사용하지 않았지. 인어들은 이 인간계에 오면 약해지는 게 분명해.”

◈          ◈          ◈

“안녕하세요? 오늘도 나오셨네요.”

도란도란 저들끼리 이야기를 하던 하급 인어의 위로 그림자가 졌다. 이국의 황태자 필립. 그가 하급 인어들을 향해 이빨을 보이며 미소했다.

“제 말 알아들으시죠? 저는 당신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사실 전해 드리고 싶은 게 있거든요.”

항상 사탕을 나눠 주는 착한 인간 필립. 그가 오자마자 저 멀리 흩어져 있던 하급 인어와 3세대 인어들이 너울너울 헤엄쳐 왔다.

“사실 이다음부터, 제가 이곳에 넘어오질 못해서요.”

―뭐어? 필립이 못 온대!

―말도 안 돼! 그러면 간식은?

―안 돼, 안 돼. 바다님께 내가 졸라 볼게! 왜!

―바다님은 우리 말 잘 들어주니까 부탁도 들어줄 거야!

말은 통하지 않아도 당황한 기색은 읽을 수 있다. 필립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대신.”

필립은 여전히 사람 좋은 표정으로 환하게 빛나는 창을 향해 손짓했다.

“저와 함께 이 안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고, 단 간식들이 아주 많은데…….”

◈          ◈          ◈

―뭐야. 여기 있던 인어들 어디 갔어?

움의 심부름을 받고 근처를 지나던 칼리안이 우뚝 굳었다. 분명 아까 전까지 바글바글 모여 있던 하급 인어의 숫자가 퍽 줄었다.

―야, 너네 친구들 다 어디 갔냐?

―쟤네들 좀 이상하다니까, 칼리안, 괜히 말 걸지 말고 이리 와.

다샤가 옆에서 입술을 비죽 내밀었지만 칼리안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했다.

―어, 그게, 그게에…….

―뭐야, 언제부터 없던 거야?

―모, 몰라아…….

―뭐?

―저 창 속으로 갔는데. 그 인간이 먹을 거 준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안 돌아와……. 찾으러 가겠다고 한 애들도 안 돌아와아…….

쨍! 움이 흠 하나 없이 가져오라고 했던 향 좋은 술이 쨍그랑 바위에 부딪쳐 깨졌다. 독한 술이 줄줄줄 흘러 발바닥을 적셨지만 칼리안과 다샤는 입을 원형으로 벌린 채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1, 1세대 인어님들은, 아, 아무도 이 사실을, 몰라?

―모, 몰라아아…….

―아, 미치겠네.

태초 님은 현재 밖에 나가셨다. 하급 인어와 3세대 인어들이 한번에 다수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3세대와 2세대 인어들이 주변에 모였다.

―어떡해? 당장 알려?

―당연히 알려야지!

그러나 다른 인어들의 생각은 달랐다.

2세대 인어들은 대다수 성체였지만, 3세대 인어들은 아직 너무 어렸고, 미숙했다.

―이 사실이 퍼지면 태초 님이 창을 없애버릴지도 몰라!

―뭐! 그건 안 돼! 우, 우리끼리 해결하면 안 돼? 할 수 있어!

―야, 장난하냐? 그게 문제야?

―너무 걱정하지 마아……. 아마 저 너머에서 맛있는 것들을 먹고 있을 테니까. 우리가 빨리 데려오자고. 알겠지?

인어들은 서로 뜻을 모았다. 칼리안과 다샤의 등 뒤에만 땀이 주륵주륵 났다.

―그리고 분명 예쁜 것들이 많을 거야. 가서 주군을 위한 선물도 가져오면 어떨까?

―야야… 너무 위험해. 칼리안 말이 맞아. 당장 움 님이라도 불러서 알려야 해.

―에이 에이, 넌 빠져라 다샤.

―저 버릇없는 하급 인어가…….

그렇게 또 다수의 인어들이 창 밖으로 넘어갔다.

흰 빛무리가 번쩍 스치고, 인어들의 인영이 다시 사라졌다.

―어떡하지?

다샤와 칼리안은 불안하게 창을 지켜보았다.

―…오늘밤까지 아무 소식 없으면 그때 알리자.

그리고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창을 넘어간 인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샤와 칼리안의 심장이 위태롭게 뛰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결국 2세대 인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왕궁을 향해 뛰었다.

―윌로 님! 윌로 님!

―움 님! 주군!!

―피파글랜 님!! 애들이, 애들이 안 돌아와요!!

◈          ◈          ◈

결국 1세대 인어들이 한 군데에 모였다.

난데없이 열린 새벽의 소집, 그중에서 가장 강한 의견을 피력한 건 트리야였다.

“절대 이 사실을 주군에게 알리지 마. 생각도 하지 마.”

“왜?”

“주군은 곧바로 혼자 창을 넘어 인간계를 공격하겠지. 아무리 하급 인어라고 해도 보통 인간에 비해서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인어들이다. 그런 그들도 못 돌아온 인간계야. 어떤 위험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거길 또 보낸다니, 안 돼.”

“그럼 다른 인어들은…….”

“너희들은 손이 없나? 너희들이 가. 태초에게 모든 것을 바라지 마. 이미 가버린 인어들은 버리든가, 너희들이 수거해서 오던가 해.”

트리야의 일갈에 새로 맞춘 안경을 닦던 피파글랜과 머리카락을 다시 묶던 윌로가 인상을 팍 구겼다. 가만히 듣던 므아나가 환하게 빛나는 태양 같은 눈동자로 트리야를 쏘아보았다.

“맞는 말이지만…….”

“맙소사. 므아나 언니, 언니마저!”

“결국 이렇게 되어서 일이 잘못되면 태초가 더 괴로워 할 거야. 한두 번 봐? 이건 알려야 해.”

“하……. 말이 통해야 대화를 하지.”

“설마, 그를 믿지 못해 트리야?”

정적이 깔렸다. 트리야와 므아나를 제외한 다른 인어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텁, 입을 다물었다.

“주군의 힘을 의심하는 거야?”

“의심하지 않아. 그러나 그가 강하다는 사실이 그가 사지로 내몰려야 할 이유가 되는 게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주군을 위하지 말고, 오로지 주군을 위한 판단을 해, 트리야!”

“도대체 둘이 갑자기 왜 싸우는 거야?”

“매일 저러는 거 몰라?”

결국 회의는 무산되었다. 모두의 의견은 우선 태초에게 알리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태초가 돌아오려면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했으니까.

그러나 이대로 발 놓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3세대 권속, 누가 잃어버렸어? 주군들 다 나와 봐.”

므아나의 일갈에 꾸물거리며 2세대 인어들이 손을 들었다. 붉은색 비늘과 연한 갈색 비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와― 탄성을 지른 움이 앞으로 나섰다.

“난 참가!”

―죄송해요, 움 님…….

“아냐, 너희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다 그 인간 잘못이지.”

피파글랜도 한 발자국 나오던 순간이었다. 그의 뒤에서 이리나가 덥썩! 소매를 잡았다.

점차 낮아지는 시력의 대가처럼, 남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력을 느끼는 신비로운 인간 이리나. 그가 불안함을 품고 고개를 저었다.

“안 가면 안 되나요?”

“…….”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밀어내려던 순간이었다. 므아나가 선수를 쳤다.

“피파, 너는 안에 있어.”

“어?”

“내가 대신 간다. 너는 안에 있어. 인원은 많으면 안 좋아.”

그리고 자체 지원한 윌로까지 합해 간단한 팀이 꾸려졌다.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 다시 활동을 시작한 창 앞에서 각자의 무기를 든 인어 세 명이 숨을 내쉬었다.

“주군이 다시 돌아오기까지 3일이 걸려. 그때까지 다시 돌아올게.”

그러나 3일이 지나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헤타.”

우직한 마지막 1세대 인어, 헤타가 태초를 보며 식은땀만 주륵주륵 흘렸다. 어쩌지? 트리야 누님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 난, 어쩔 것인가…….

고민에 빠진 헤타의 낌새를 느낀 건지, 태초가 다시 물었다.

“헤타.”

“…먼저 사라진 건, 하급 인어였습니다.”

결국 꼬리를 내린 헤타가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막힘없이 줄줄 말했다.

◈          ◈          ◈

“주군은?”

태초의 귀환 소식에 접시를 가지고 들어온 트리야가 헤타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무 말 없이 헤타가 고개만 떨구자 트리야의 눈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쨍그랑! 접시가 추락하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헤타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트리야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채였다.

트리야는 곧바로 언덕 위를 올랐다. 평생을 인어의 꼬리로 지냈지만, 제국을 세운 후, 대륙과 바다를 자유롭게 오갔기에 인간의 다리에도 능숙해진 터였다.

“주군!!”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 내 모든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성, 태초가 타오르는 하얀 창 앞에 고고하게 서있었다.

“안―”

한 번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섰다.

“안 돼요, 안 됩니다!”

태초가 등을 돌렸다. 트리야는 태초의 앞을 가로막았다.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주군, 저들끼리의 일은 저들끼리 해결하게 놔둬요.”

“저들의 일은 내 일이기도 하지.”

“나는, 다 기억해요.”

트리야는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정돈하지도 못하고 말을 뱉었다. 태초는 트리야의 뺨에 달라붙은 진녹색 머리카락을 떼어 주었다.

“저를 지키겠다고 팔을 베이셨죠. 그리고 일전에 도라안의 떼를 들어주시느라 꼬리가 잘릴 뻔하셨고요. 릴리므아나의 변덕에 치명상을 입으셨을 때는 어떻고요……!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네. 잘 감추셨어요. 저도 눈치채지 못할 뻔했으니까.”

“…….”

“그리고 아주 최근, 인간들을 멸망시켰을 그때…….”

트리야의 호흡이 가빠졌다.

“제가 모를 거라 생각하셨나 봐요. 하지만…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등 뒤의 화상 자국이, 아직 재생이 덜 된 모양이더라고요. 그런데 말이에요, 태초. 궁금한 점이 있는데…….”

트리야는 말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듯이, 느리게 흐느꼈다.

“왜, 왜… 재생이 예전만큼 되지 않아요?”

자신의 입으로 뱉는 최악의 가정. 태초의 육신은 무너져 가고 있다. 어쩌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가지 마세요. 저들끼리 해결하게 두세요. 죽으면 그것도 저들의 운명이겠죠. 주군은 그런 곳에서 발을 빼라고요!”

“트리야.”

“저들이 만들어지고 저에게는 예전만큼의 신임도 주지 않으시잖아요. 그냥, 그냥, 다 버리고, 다 포기하고, 지긋지긋한 그 모든 의무들을 버리고… 우리 둘만 있던 때로 돌아가면 안 돼요?”

트리야의 시선에 비치는 태초의 얼굴이 흐려졌다.

“알아요, 불가능한 거. 그래도, 더 이상 저들을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뭐라도 내어 주지 마세요. 나한테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해. 저들은 그냥, 그냥… 다 죽어도 괜찮아. 나는 당신만 안전하면 되는데, 그거면 되는데, 정말로 다 그거면 되는데…….”

트리야는 태초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기가 만져졌다.

“난 욕심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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