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도라안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손가락을 따닥따닥 두드렸다. 평소의 까칠하기만 한 눈이 아니었다.
“므아나가 이곳에 들어왔다는 게, 설마… 할멈이 관여한 건가? 아냐. 둘이 그렇게 친하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혹시 모르지. 이리나 할멈은 피파글랜의 말이면 무조건 굽히고 보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변절자를 숨겨 준다니, 걸린다면 처형감이었다. 도라안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가서 확인한다!”
―네, 알겠습니다! 준비시킬까요?!
“그래. 혹시 모르니까 가능한 인원 전부 무장시키고 따라오도록 해. 단숨에 섬을 장악하고 내부를 뒤진다! 알겠어?”
―알겠습니다!
―태초를 위하여!
권속을 만들 수 없어 세간에는 세력이 약한 인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도라안 또한 1세대 인어였다. 도라안의 능력은 침투계. 그는 직접 접촉함으로써 상대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직접 공격을 가함으로써 손쉽게 상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심문과 자백에 탁월한 능력은 분명, 이번에도 빛을 발할 터.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무장하고 나가려다 돌아온 도라안은 자신의 집무실 구석에 놓인 귀중품들을 서랍 안에 모조리 쓸어 넣고는 열쇠로 잠갔다.
“뭘 봐? 고개 안 돌려?”
―네, 네!
그건 육지에서 발견한 물건들이었다. 수집욕이 강한 도라안이 평소에 종종 모으곤 했던 ‘귀한 것’들은 그의 금고에도 한가득 쌓여 있었다.
예전에 칸나니아가 이런 것들을 모을 시간에 훈련이나 더 하라며 일갈했던 게 꽤나 분했는지, 그 다음부터 보석을 꽁꽁 숨겨 두곤 했다.
흠흠, 헛기침을 하던 도라안은 다시 단숨에 무장하고 밖으로 나섰다. 섬으로 향하는 포탈을 앞에 두고 도라안이 소리쳤다.
“이리나 할멈이 보인다면 사살하지 말고 즉시 생포할 것. 티끌하나 다쳐선 안 된다. 제왕님의 명이야!”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생명체를 발견했을 시, 반항이 심하다면 사살하고, 혹시라도 다른 1세대 인어가 있다면…….”
혹여나 정말 므아나가 이 안에 있다면, 도라안의 낯이 조금 어두워졌다.
“최대한 조용히 철수한다.”
―네?
“사는 게 우선이야. 정말로 그가 안에 있다면 우리는 전멸이니까. 서둘러 왕궁으로 복귀한 후, 제왕님께 이 사실을 보고한다.”
그리고 도라안을 선두로 포탈로 수많은 무장 인어들이 넘어갔다.
동 시간,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과 한 영물이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저 방향은… 섬이군.
“그걸 누가 몰라?”
―섬을 공격하러 가고 있군.
“뭐? 미쳤어? 거기엔 영주 언니랑 가윗이 있는데?”
―그렇다면 곧 사망하겠군.
“아니, 물론 그렇게 쉽게 죽을 위인들은 아니거든.”
데아는 해룡을 두고 훌쩍 뛰어내렸다.
―잠깐.
해룡은 혼자 가려는 데아를 가까스로 잡고는 헤엄에 박차를 가했다.
―같이 가지.
거대한 해룡의 등장에 제국의 외각에 있던 인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해룡은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데아를 숨기고서 포탈로 돌진했고, 곧이어 포탈은 거대한 해룡을 집어삼켰다.
◈ ◈ ◈
“이것들은 또 뭐야?”
권도언은 네 번째 인어의 목을 부러뜨렸다. 작정이라도 한 듯이 물밀 듯 밀려들어오는 인어들의 향연에 가윗과 하영주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인어들이 습격해요!”
“할머니 피하세요!”
“노인 공경, 노인 공경!”
그러나 그들도 헌터. 외로운 타향살이로 인해 마력이 동난 불쌍한 신세였지만 그들은 곧바로 공격 태세를 갖췄다.
무작정 돌진하는 인어들을 막아 세운지 몇 분, 권도언은 인어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바로 간파했다.
“아냐. 영영 헌터랑 가윗 헌터는 나오지 마세요. 들어가서 할머니를 지켜야지.”
“네, 네!”
“집 안에 들어가 있으세요.”
하영주가 마지막으로 한 인어의 꼬리를 부러뜨림과 동시에, 가윗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영주와 이리나 할머니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곤 전용 스킬, 실드를 쳤다.
실드는 내부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굉장히 튼튼했고, 그 무엇보다 가윗이 실드를 풀기 전까지 그 누구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니까… 저들끼리 살겠다고 정말로 철통 보안의 방어막을 세운 것이다. 수백의 인어들과 단 한 명의 권도언을 밖에 두고.
“너무 신임해 주네…….”
집에 호다닥 들어가던 하영주의 마지막 표정이 어땠던가, 분명 ‘길드장님 믿어요! 지면 길드장 아님! 일 다 끝나면 불러요!’처럼 보였단 말이지. 기이하게 익숙하더니 출처가 이데아였다. 이데아에게 이상한 것만 배워왔다.
휘이익!
“뭐야?”
그때 푸른 주먹이 자신의 뺨을 스쳤다. 가공할 만한 속도였다. 수백의 인어들을 등에 인 선봉장이 권도언에게 다시 공격을 가했다. 익숙한 얼굴. 권도언은 그대로 한 바퀴 허공에 몸을 띄어 다리를 돌려 퍼억! 상대의 얼굴을 가격했다. 새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인간 주제에!”
권도언은 손을 들어 올린 다음, 확, 내려저었다. 돌풍이 밀려들어 왔다. 해안가의 거친 모래가 휘몰아쳤다.
―뭐, 뭐야!
―괴물이다!!
“뭐야… 저번에 본 그 인어잖아. 여전히 화려하고 못생겼네?”
권도언은 손을 까딱이며 인사를 했다. 천연덕스러운 권도언의 행태에 도라안은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닥쳐라 인간! 방금 저 집 안으로 누가 들어갔지?!”
“내 불쌍한 식솔들이지.”
“거짓말하지 말고!”
도라안은 뒤를 향해 눈짓했다. 인간의 다리를 가진 인어들이 빠르게 우르르 튀어나와 섬을 포위했다. 그들이 손에 든 건 활이었다.
“조준!”
“쏠 수는 있겠어?”
기세 좋게 바람이 일었다. 바람으로 인해 파도 또한 위협적으로 넘실거리고, 칼을 품은 공기가 인어들을 베었다.
―크학!! 흐아악!
―무슨 인간이 저렇게 힘이……!
―도라안 님!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도라안 님!
“저번에는 분명 화기애애하게 헤어진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이럴까… 데아 씨는 어디 갔어?”
“질문은 내 쪽에서 먼저 한다. 본론부터 꺼내지.”
도라안은 손을 위협하듯 들어올렸다. 손톱이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수틀리면 곧바로 권도언의 몸에 손을 대고 침투 능력을 쓸 의지가 다분해 보였다.
“므아나가 이곳에 있나?”
“므아… 뭐?”
그러나 도라안은 그가 숨긴다고 생각했는지 더 발발 뛰며 이빨을 보였다.
“므아나! 더러운 제국의 배신자! 인간계로 몸을 숨겼으니 너도 알 텐데! 금색 머리카락과 금색 비늘을 가진 여성체 인어가 이곳에 있냐 물었어! 네가 그를 숨겼지? 사실대로 불어!”
도라안은 변덕스럽고 화가 많다. 그의 손등에 핏줄이 두득 돋았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권도언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
‘저게 날 무시하고 있어! 인간까지 나를 무시해? 감히!’
“어… 금…….”
그러나 권도언은 잠시 허공을 더듬으며 생각에 빠지더니.
“발……?”
이내 웃지도, 화내지도 않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권도언은 눈치가 빠르다. 권도언은 모든 인과 관계의 조각을 이어 붙여 합리적인 추론을 할 줄 알았고, 수많은 미심쩍었던 구석을 쉽게 상기해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권도언은 가설을 즐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기이한 명제가 방금 머릿속에서 완성되었다. 증거 없이 심증만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만들어진 끔찍한 가설. 권도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에이…….”
설마.
가만히 감탄사만 뱉는 권도언을 보며 도라안이 발을 굴렸다.
“그래서 안다는 거야, 모른다는 거야? 제국의 변절자가 제국에 침입했다. 공범이라면 네놈도 처형감이야! 다시 묻지. 므아나를 아는가? 므아나는 대지를 다룬다. 그 능력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절대로 잊지 못 할 텐데. 정확히 답해! 그리고 우선 이 바람부터 멈춰!”
그러나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권도언은 ‘대지… 대지... 아 그래서 안 보였나.’를 중얼거리며 젖은 얼굴을 두 손을 덮었다. 그리고 그대로 쓸어 올렸다. 두 눈에 낭패가 가득했다. 미약한 배신감, 흥건한 충격과 경악.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흥미와 열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음, 아마… 알거야.”
“뭐?!”
“응. 알아. 알아. 확실한가? 그건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거야. 나는 므아나를 알아. 음, 알고말고.”
오래전, 양부를 죽이기 위한 계획을 짰던 작은 소년이 히죽 웃었다.
“그런데 그게 왜?”
바람은 태풍이 되었다. 원형을 그리며 모든 것을 휩쓰는 거대한 허리케인이 정도를 모르고 치솟았다. 멍청한 인어들. 이곳이 저들의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찾아온 머저리들.
그러나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거친 폭풍우에도 불구하고 인어들이 활을 겨눈 것이다. 활촉 끝이 새파랗게 빛났다. 권도언은 단번에 활촉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력을 담은 암석을 가공해서 만든 활촉이다. 낙뢰를 맞아도 깨지지 않고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살인 무기.
흔들리는 시야와 회색빛의 폭풍우를 뚫고 수백의 화살이 권도언을 향해 겨누어졌다. 거친 비바람에도 굳게 훈련받은 인어들의 진영은 무너지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는 섬뜩한 날붙이, 권도언이 가뿐히 그 화살들을 피해 위로 몸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권도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드장님!!”
콰과과과과과―!!
동시에 거친 파도가 세차게 일었다. 파도는 거칠게 소용돌이치며 위로, 더 위로 올라갔고, 그 파동에 밀린 인어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바닥을 굴렀다.
―크아악! 뭐냐!
―해일이다! 해일이야!
―해일이 아냐! 저건……!
올라간 파도만큼 더한 비가 덩달아 쏟아져 내렸다.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맞으며 권도언이 위를 바라보았다. 도라안의 상황도 비슷했다.
“해룡……?”
자세히 보니 그건 파도가 아니라 용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도라안이 비명 질렀다. 다른 인어들도 혼비백산이 되어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권도언은 침잠하는 기분으로 맞이했다.
상상 속에나 존재한다고 믿었던 거대한 영물이 지금 코앞에 있었다. 파도로 빗어 낸 가장 우아한, 조각 같은 용이었다. 그리고 영물의 등, 가장 높은 곳에 이데아가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둘렀다. 하늘을 광야로 삼은 포식자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광경을, 권도언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전부 지켜보았다.
콰과과과―!!
권도언을 향해 달려들던 인어들이 한 번에 쓸려 나갔다. 새파란 활촉이 전부 사라졌다.
우중충한 태풍의 눈 안에 서있는, 유일한 오점 같은 이데아. 다채로운 태양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건 점멸과도 같은 눈부심이었다. 권도언은 눈을 깜빡였다. 빛무리가 흩어졌다.
“안 다쳤어요? 다행이다!”
폭풍우가 치는 세상의 유일한 빛. 권도언은 속절없이 존재를 감내했다. 그건 당황스러울 정도의 찬란함이었다.
이데아가 환하게 웃는다. 그 드높고 드넓은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검을 들고 환하게 미소한다.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고 안도하며 웃는 거였다. 그걸 깨달은 순간, 손끝이 섬뜩해졌다. 강대하고 창대한 힘의 원천지, 권도언은 웃지 못했다.
“…….”
뭣도 없는 세상의 유일한 푸름.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