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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21화 (121/223)

※ 121화

“이곳은 아무도 몰라.”

―정…말?

“아마도.”

트리야 한 명 빼고. 데아와 자잔 그리고 유리는 무사히 비밀 통로 안으로 안착했다. 통로는 자동으로 닫혔고, 곧장 외부의 소음이 끊겼다.

―이런 곳이 있었다고?

―이, 이게 뭐야?

“…….”

비밀 통로는 밑으로 향했다. 이끼가 잔뜩 낀 발광석이 규칙적으로 벽에 박혀 있었다. 깜빡깜빡 간헐적으로 어두워지는 발광석 사이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유리가 감탄했다.

―그래도 잘 살아 나와서 다행이야. 칸나니아가 달려올 때, 진짜 숨이 멎는 줄 알았어. 정말 무서웠거든……. 그래도 데아 너 정말 대단하다. 그 칸나니아를 대적하다니. 그거 분명 치명상일걸!

“…….”

―그나저나 이 통로 진짜 특이하다. 직접 발광석을 벽에 박아 고정시키다니. 이런 식의 고정은 오래전부터 하지 않는데…….

“왜?”

―당연히 번거롭고 발광석 자체의 수명도 짧아지니까. 이 통로를 만든 건축가는 고생 좀 했을걸. 이 통로를 어떻게 알았어, 데아야? 진짜 길다……. 굉장히 옛날 통로 같아.

“…….”

―샤샤. 계속 길이 나있어.

자잔과 유리는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 데아는 치료석을 꺼내 샥샥 문질러 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밖에 건물… 다 무너진 거 맞겠지?

“그럴걸.”

―두 사람은… 잘 있을까.

알레와 링. 두 사람을 확인하지 못했었다. 데아의 표정이 굳자 유리가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에이, 괜찮을 거야. 끌려가기 전에 간수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북쪽의 철창으로 옮겼댔어. 두 사람이 갇히고서도 저항을 많이 했거든. 아마 더 삼엄한 감시가 있는 곳이 아닐까 싶은데, 동쪽의 감옥에 있진 않았을 테니까 건물에 깔려 죽진 않았을 거야.

“북쪽의 철창이라…….”

가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늘었다.

◈          ◈          ◈

그렇게 무수한 시간 동안 데아와 일행들은 비밀 통로를 나아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끝의 끝에, 달라진 물의 흐름이 느껴졌다.

“밖이 뚫려 있나 봐.”

해류가 달라진 곳을 향해 나아가니, 예상대로 비밀 통로의 끝이었다.

과거의 트리야가 말했던 대로 비밀 통로의 끝은 아무도 없는 제국 밖이었다. 고요한 적막감만 맴도는 가라앉은 제국의 외각. 수백 년간, 주인이 찾지 않은 정원이 있는 광활한 폐허였다. 그러나 이상하게 황폐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곳은 쓸쓸했지만 풍요로웠고, 다채로웠으므로.

―와… 예쁘다.

폐허를 본 유리가 처음 뱉은 말이었다. 구석구석 발광석이 놓여 있는 드넓은 공간에는 부드럽게 다듬은 암석과 깎아지른 바다 속의 협곡이 있었다. 부채꼴의 분홍색 본초와 넓게 협곡 전체에 퍼져 있는 다홍색 환초, 그밖에도 푸른빛의 무수한 산호가 해파리와 함께 너울거리고 있었다.

―꽤나 고상한 취미를 가진 누군가 정원을 만들었던 곳인 거 같은데. 지금은 손을 놨는지 관리가 안 되어 있지만…….

자잔도 한마디 보탰다.

무성하게 이끼가 뒤덮은 바위를 지나 정원을 지나갔다. 아주 작아 공격 능력이 없는 하급 인어 몇 마리만 구석에서 튀어나와 데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다님? 바다님?

―바다님이다!

“잠깐 이리로 와봐.”

데아는 유리가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 후다닥 달려가 귓속말을 했다.

“이 주변에 인어 둘을 태울 수 있는 몸집을 가진 인어가 있어? 불러 줄래?”

손가락보다 더 작은 하급 인어는 분홍색 지느러미를 파닥이다가 휭 가버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보통 인어보다 몸집이 세 배는 클 하급 인어가 느릿느릿 다가왔다.

그 하급 인어는 귀찮은 기색이 다분한 얼굴로 왔다가 데아의 얼굴을 보고는 우뚝 눈을 커다랗게 뜨며 굳어버렸다.

―바, 바…….

그러곤 귀에 물이 들어간 강아지마냥 몸을 퍼드득 퍼득 돌려 이끼를 다 털어내고는 번듯하게 차렷하는 게 아닌가.

―바다님 나를 불렀어? 나를 불렀어?

“응.”

저 둘을 태워 달라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급 인어의 어깨 너머, 얼빠진 유리의 얼굴이 보였다. 아차, 한 순간.

―데아야, 너 하급 인어랑 말해?

하급 인어와 대화가 통하는 인어는 오로지 태초, 하나뿐이다.

“아니? 이 인어 얼굴을 봐. 딱 봐도 호의적인 얼굴이잖아? 꼭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손으로 불렀어.”

데아가 뒤에서 퍽, 하급 인어의 옆구리를 치자 하급 인어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유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이상한데…….

“내가 통신 소라를 줄게. 이걸로 피파글랜에게 움인지 운인지 하는 인어의 거처의 위치를 물어봐. 그리고 이 하급 인어한테 손으로 설명해서 길을 찾아가. 웬만한 건 다 알아들을 거야. 거기에 혁명군 인어들이 다 탈출해 있잖아.”

―직접 헤엄쳐 가도 돼.

“그 몸으로 어딜 가겠다고. 가다가 잡히거나, 아니면 탈진할 수도 있잖아. 얼른 타!”

결국 유리는 하급 인어에게 고갯짓을 하고는 끙차 등 뒤로 올라탔다. 하급 인어는 퍽 불만스럽지만 바다님의 명이라서 참는다는 불만이 얼굴에 그득했다. 그 얼굴을 읽은 자잔은 타지 않고 팔짱을 꼈다.

―별론데. 예로부터 하급 인어들은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었어. 아무리 상황이 궁해도 이런 것들의 꼬리를 빌릴 정도로 상황이 다급한 건…….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서로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외에 가도 외국인이 욕을 하는 건 기가 막히게 알아들을 수 있다고. 단번에 자잔이 자신의 험담을 하고 있음을 알아챈 하급 인어가 분노에 차 포효했다. 그리고 찰싹! 거대한 지느러미로 자잔의 뺨을 갈겼다. 휘청이며 넘어진 자잔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버벅였다.

―샤샤, 저것 봐!

“시비는 네가 먼저 걸었잖아?”

데아는 하급 인어의 꼬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금세 화를 감춘 하급 인어가 초롱초롱한 눈을 되찾고 데아에게 앙탈을 부렸다. 그 광경에 자잔은 거의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너는 왜 안 가?

자잔이 내키지 않아하며 하급 인어 위로 오른 순간이었다.

―같이 가자. 어차피 건물이 무너졌으니 다 죽은 줄로만 알걸. 잠적하기에는 최적의 때야.

“아냐. 나는 링이랑 알레를 빼내 와야지”

―그렇다면 나도 안 갈 거야.

자잔이 훌쩍 내렸다. 물론 그 전에, 데아는 자잔의 팔을 잡아 위로 휙 던져 하급 인어 위로 올려놓았다.

―샤샤!

“너는 발견되면 진짜 죽어.”

―…….

“하지만 나는 죽지 않지. 봤지? 나 칸나니아 치명상 입힌 거. 나는 강하고, 죽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나머지 애들 데려갈게.”

―샤샤…….

“걱정하지 마. 트리야가 나 대하는 거 봤잖아. 나 안 죽어.”

나 안 죽어. 그건 많은 뜻을 함축한 문장이었다.

유리는 뭔가를 더 물어보고 싶다는 듯이 데아를 돌아보았지만 데아는 끝까지 모른 척했다. 궁금한 점이 많을 것이다. 붉은 피, 트리야의 관대한 태도…….

“잘 가.”

데아는 유리가 품고 있을 궁금증을 외면한 채 인사했다.

그렇게 결국 데아를 태우지 않은 하급 인어가 출발했다.

모두가 떠난 폐허, 데아는 정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잔뜩 뭐가 묻은 바위를 툭툭 쳐서 털어내고는 쓰러지듯 앉았다. 그렇게 과거에는 분명 예뻤을 정원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침묵했다.

“이제 나와도 돼.”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낸 건 해룡이었다.

―기억은 찾았나?

“아니.”

―왜?

“가끔가끔 떠오르긴 하는데, 아직 부족해.”

―저런.

해룡은 거대한 몸을 굴려 똬리를 틀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낡은 정원 주변에 몸을 뉘인 고룡의 모습이 기이하게 잘 어울렸다.

―태초의 고목 아래서, 떨어져 나갔던 또 다른 기억은 찾았나?

“아니. 나는 흰 빛무리는 그 이후로 발견도 못 했어.”

―아무래도 핵심은 다 그것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지. 애석하군. 그것을 찾아야 할 거야. 물론 쉽지는 않겠지. 그것은 전대 태초, 그리니까 예전의 너를 닮아 매우 어려운 존재니까. 그것은 드높은 곳에서 상황을 관전한다. 그동안 트리야는 자신이 직접 가두었다 생각한 것 같은데, 그건 크나큰 오산이었어.

“아하, 그러고 보니 트리야가 시체를 가두었다고 했지.”

―태초는 죽는 존재가 아니듯이, 가둬지는 존재 또한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온 바다와 육지를 떠돌며 그대를 찾아다니고 있었을 거야.

“나?”

―그래. 그대를.

문득 떠오른 건 두 번째 게이트를 마주했을 때, 들렸던 미지의 목소리였다. 아쉽다며 다시 게이트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던 힘과 목소리.

‘그게 태초였던가?’

“무슨 말 하는지 잘 알겠어.”

데아는 확신했다. 그건 트리야가 가뒀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가두지 못한 태초의 일부였다. 태초가 죽은 날, 트리야가 건져 낸 태초의 일부의 본질은 그동안 태초의 고목에 뿌리를 내리고 세계를 굽어봤던 것이다. 멀쩡하게 나가려던 애먼 사람을 설명 하나 없이 무작정 붙잡아서 생사를 다투게 하기도 하고 말이지.

“성격 진짜 나빴나.”

―지금은 어디로 갈 생각이지?

“나? 글쎄… 왕궁으로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면 칸나니아가 또 날 죽이려고 발발 뛸 것 같은데, 링과 알레를 찾으려면 돌아가긴 해야 하고……. 아, 몰래 들어갈까.”

―우선은 돌아가지 않는 걸 추천하지. 기미가 심상치 않으니.

“뭐? 왜?”

―므아나가 왕궁에 잠입한 건 알고 있나? 폭군은 몰라도 칸나니아나 도라안은 므아나와 네가 접촉해서 이 사달을 벌였다고 굳게 있는 모양이더군. 때문에 주변 감시가 몇 배나 더 심해졌으니 조심해.

“으음…….”

데아는 해룡의 등 뒤로 영차 올라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너는 아까 그 하급 인어보다는 승차감이 좋을 것 같아서.”

―나를 탈것 취급하는 인어는 네가 유일할 거다.

“이제 가볼래?”

―어디를?

“왕궁에.”

―아까 내가 분명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해룡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태초의 떨어져 나간 기억을 찾도록 해. 그것이 모든 것의 해답이야.

“왕궁 주변까지만 가자. 예감이 느껴지거든. 뭔가 큰일을 또 벌일 것 같은데 뭔지를 모르겠어. 가서 낌새만 볼게.”

한숨을 푹푹 내쉰 해룡은 결국 데아를 등에 올리고 출발했다. 데아는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과거의 정원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          ◈          ◈

―이상해요. 양을 너무 많이 요구해요.

―양을?

―엄청나게 많아진 건 아닌데… 그냥 미묘하게? 할멈이 먹는 양이 많아진 걸까요?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누가 봐도 이건 3~4인분이라…….

외롭고 아름다운 섬에 홀로 사는 노인 이리나. 제국의 인어들은 제왕의 명을 따라 주기적으로 그에게 식품을 보급하고는 했다. 대부분은 노인의 텃밭에서 스스로 공급했지만 향신료나 고기는 인어들이 직접 잡아 올려 보냈는데, 그 양이 최근부터 부쩍 늘어난 것이다.

공급을 담당하는 인어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최고 권임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상황을 보고하고야 말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아? 양이 늘었다니, 아, 그 탓인가? 내가 최근에 다녀왔는데 거기에 인간 남자가 있더라고? 분명 창을 통해 휩쓸린 인간 조난자겠지. 신경 쓰지 마. 그러다 가지 않을까?”

―아, 그렇습니까?

“그래. 분명 썩 꺼지라고 했는데 왜 아직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언젠가는 갈…….”

그때 도라안이 우뚝 멈췄다.

“몇 인분이라고?”

―그, 그게… 3~4인분입니다!

“인간은 분명 한 명이었는데.”

칸나니아가 치명상으로 급하게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 인간과 대화가 가능하며, 당장 행동이 가능한 강한 인어는 도라안뿐이었다. 도라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간계에 도망쳤다가 돌아온 므아나, 가라고 했는데 불구하고 계속 머물고 있는 남자 인간 헌터……. 둘의 타이밍이 절묘했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누군가 숨어들어갔을 수도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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