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기리안의 허리춤에는 보란 듯이 나가는 문의 열쇠가 걸려 있었다.
“어…….”
데아는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숨기는 게 없는 사람인 양 어깨는 피고, 고개는 들었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반갑게 웃었다.
“아… 그때 도라안이랑 같이 있었던…….”
―네, 네! 맞습니다.
“이름이 뭐였지?”
―기리안입니다, 샤샤 님. 그런데 여기에는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죄수를 보러 오셨나요?
기리안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그러나 데아는 곧바로 간파했다. 지금 기리안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일전에 내가 난리를 부렸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겠지. 이번에는 또 무슨 일로 왔나 긴장했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면회는 금지되어있습니다.
기리안은 멈추지 않고 다가왔다. 숨어 있는 유리와 기리안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데아의 얼굴이 살풋 굳었다.
―저와 함께 돌아가시겠습니까?
“뭐, 돌아갈 참이었어.”
―그렇다면 이리로 오십시오. 아니, 제가 가겠습니다.
“갈게. 그만 다가와.”
―하지만…….
기리안은 유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문제일 것이다. 기리안은 이미 무언가를 눈치챘으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데아는 그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열쇠 뭉치를 흘끗 바라보았다. 저것만 어떻게 한다면.
―지금 누구의 명을 거역하는 거지?
그때 나선 건 싸늘한 표정의 자잔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광합성을 하는 딸기마냥 자라는 자잔은 이제 꽤나 장신인 기리안마저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자잔은 트리야를 닮은 특유의 서늘한 인상으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샤샤 님은 오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명을 거역한 적이 없다.
―그래?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감히 계속해서 멈추지 않은 건 누구지?
기리안의 표정이 구겨졌다. ‘건방진 새끼…….’ 그가 작게 욕을 읊조렸지만 자잔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기리안은 데아와 자잔을 번갈이 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기리안은 가만히 자잔을 노려보고는 데아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가 괜한 참견을 했나 봅니다. 어서 올라가시지요. 저는 먼저 가있겠습니다.
기리안이 등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데아는 기리안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한 줌의 감정을 보았다.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눅진한 우울. 찰나의 순간 그를 스쳐 지나간 음울한 파편. 그건 미련이었다.
‘미련?’
“잠깐.”
―네! 무슨 일이신가요?
기리안이 명령을 듣는 개처럼 반색하며 응답했다. 데아는 온화하게 미소하며 닫혀 있는 문을 똑똑 두드렸다.
“사실 이상한 소리가 나서 왔어.”
―이상한 소리요……?
“이 안은 복도지? 여기에 아무래도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그에게 못 할 짓이었지만, 데아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 이용할 수 있었다.
“하나밖에 없던 호위라는 게 영 못 미더워서 걱정했는데 마침 네가 와줘서 다행이지 뭐야?”
데아는 자잔을 탁 밀치고는 기리안에게 다가갔다. 자잔이 당황하며 팔을 잡았지만 곧바로 쳐냈다. 기리안의 표정이 변했다. 당황과 묘한 환희로.
“이 문 좀 열어 줄래?”
―샤샤…….
“조용히 해.”
데아의 손이 기리안의 등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며 친분을 과시했다. 데아는 일부러 환하게 미소하며 그를 맞이했다.
샤샤가 자잔을 버리고, 나에게 왔다. 기리안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데아는 개의치 않고 단단하게 허리를 안아 문 쪽으로 이끌었다. 기리안의 시선은 데아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무, 문에서 소리가 나신다고요. 확실한가요?
“응. 이 문.”
데아는 거칠게 뛰는 기리안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잔은 잠시 충격을 먹고 멍하니 서있었지만 이내 데아의 생각을 깨닫고 몸으로 유리를 가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얼굴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아무튼.
“정말 곤란했거든. 네가 마침 와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제가 도움이 되었… 제,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혹시나 괴한이라면 바로 제압할 수 있으니까.
“제압? 네가?”
열쇠를 집어 드는 기리안의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저들끼리 마찰하는 쇠가 끊임없이 찰캉거렸다.
―혹시 안… 되나요?
“약한 네가 어떻게 제압하게. 너는 이 문을 열고, 올라가서 다른 간부들을 이끌고 와.”
―하지만…….
“만약 괴한이 므아나라면?”
기리안은 입을 황급히 다물었다.
“네가 어떻게 제압할 건데?”
―하지만 샤샤 님은…….
“나는 1세대 인어야, 기리안.”
데아는 느릿느릿 기리안의 얼굴을 잡아 내렸다. 두 시선이 마주쳤다. 데아의 양 손에 가득 담긴 기리안의 얼굴이 붉었다.
“나는 널 걱정해서 그래.”
권도언이 들었다면 토를 했을 거다. 그런 억지를 누가 믿느냐며 옆에서 보란 듯이 팽 비웃을 수도. 그러나 그거에 홀랑 넘어간 머저리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나는 상대가 도망가지 않게 망을 볼게. 너는 빨리 누구나 데려와. 그래도 최소한… 칸나니아 정도가 좋겠어.”
―카, 칸나니아 님이요?
“지금은 중앙에 있을 거야. 얼른 다녀올 수 있지?”
물론 거짓말. 칸나니아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다만 중앙이 가장 머니까 말한 것뿐이었다.
“이건 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제발 부탁해.”
제발 부탁해. 이건 제법 타격이 셌다. 데아는 그의 얼굴을 감싼 손가락으로 뺨을 다닥다닥 두드렸다. 철컥, 동시에 문이 열렸다.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궤변이 정말 먹히다니. 데아는 기리안이 시야에서 거의 사라지자마자 벌떡, 유리를 일으켜 문을 꼬리로 찼다.
“빨리 가자!”
그렇게 나가, 복도를 달려 피파글랜이 있을 밖으로 나가면 모든 게 끝이었다.
그러나 기리안은 데아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기리안이 달려간 복도의 끝, 끝이 보이는 복도에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와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데아의 심장이 추락했다.
“저 자를 잡아라!”
칸나니아였다.
◈ ◈ ◈
운이 억세게 좋은 하루가 있다면 오늘일 것이다. 일부러 이미 한 번 썼던 루트가 아닌 다른 길, 조금은 공개적인 장소에 있는 다른 샛길을 이용했는데도 들키다니. 그럼에도 말도 안 되는 놀라온 경험을 또 하다니.
―샤샤!
칸나니아와 함께 달려온 간부의 수는 어림잡아 백여 명. 아예 작정하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심지어 저 멀리 보이는 칸나니아의 얼굴은 꽤나 살벌했는데, 누구든 잡혔다간 정말로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아작을 내놓을 판이었다.
트리야에게 걸려 이번엔 꼬리가 썰린다고 해도, 나만은 저지하겠다는 걸까. 아니면 황궁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하급 인어를 보고 무언가 실마리를 잡은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때 자잔이 데아의 앞을 막아섰다.
―유리를 데리고 나가!
자잔은 곧장 충격파를 쐈다. 데아는 강도 낮은 충격파에 밀려 열린 문 안으로 내팽개쳐졌고, 신음하는 유리 옆에서 어이없이 소리쳤다.
“누가 누굴 지켜!”
가끔 자잔은 이상한 행동을 했다. 데아가 자신보다 더 강한 걸 분명 알 텐데, 도리어 데아를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자잔 혼자만 하는 게 아니었다. 가끔 보는 꿈속의 트리야도, 다른 인어들도 종종 그랬다. 데아가 태초라는 걸 앎에도 어쩔 수 없이 나서는 보호 본능. 그건 주군을 지키려는 본능이었다.
―가! 샤샤!
“웃기시네…….”
우선, 이 모든 일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음을 먼저 시인하겠다.
자잔이 데아를 안으로 내몰고, 스스로 돌진하는 모든 간부들을 대적했을 때, 데아는 곧바로 자잔의 목으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시퍼런 칼날을 목격했다.
“자잔, 조심해!”
칼날의 출처는 칸나니아였다. 그럼 그렇지. 네가 몇 초나 버틴다고. 나서긴 뭘 나서.
그 후로 무슨 생각이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정확한 건 이상하게 머리가 뜨거웠다는 것이다.
자신을 밀치고 홀로 대항하기를 택한 자잔의 뒷모습에서 뭘 봤는지 확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누군가가 곪은 상처를 뒤집어엎었다는 거다. 난파선에서 추락한 트라우마의 머리채가 누군가의 의해 끄집어 올려졌다.
“조용히 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에게 나뭇잎으로 가득 덮어씌웠던 작은 소년. 홀로 붉은 인어에게 달려가 홀로 죽은 소년의 마지막 뒷모습.
데아의 체온이 차갑게 식었다. 눈앞을 직시했다. 간부의 검은 망토가 수없이 휘날렸다. 녹색 수가 박힌 검은 해일이 홀로 선 데아를 맞이했다.
“데아야. 수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그 진영의 머리, 기둥을 이루는 핵심 인사를 단번에 죽여. 최대한 잔혹하고, 잔인하게. 목보다는 머리. 귀와 눈썹을 지나가는 가로선을 베어서 죽여버려. 그러면 목보다 더 많은 것이 튀어나오거든. 그리고 그걸 전시해. 욕을 먹어도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다녀. 그걸 본 적들이 감히 나에게 대항하지 못하게. 아예 초반부터 기를 꺾어야 해. 그래야 이겨.”
“언니, 인어들에게도 우두머리가 있어?”
“있겠지? 그리고 또, 너무나도 많은 적이 나에게 몰려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망쳐야지.”
“도망칠 수 없다면.”
“우두머리를 쳐버려?”
“맞아. 하지만 우두머리는 보통 강해. 정면 승부를 해서 이길 수 있을까?”
“그럼 어떡하라는 거야.”
“지형을 부숴.”
“뭐?”
“지형을 부수고, 모든 것을 매몰시켜. 근처에 누가 있든 상관 말고 부숴. 땅이 있다면 바닥을 엎고, 공중이라면 추락시켜. 건물 안이라면 벽을 으깨고 천장을 내려앉혀. 그렇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적들은 당황해. 그 순간을 노리는 거야. 우두머리는 진영을 살릴 의무가 있거든. 자신의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을 돌아보는 순간, 단번에 머리통을 베어버려. 적들 모두를 인질로 잡는 셈이지.”
“지금 던전 공략 얘기하고 있는 거 맞아? 언니가 말하는 건 꼭…….”
전쟁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데아가 그 말을 하기 전, 백리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넘겼다. 그때 왜 백리서가 그런 말을 했었는지, 자세하게 캐물었어야 했는데.
―데, 데아야!!
저 멀리 유리의 음성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시뻘건 열기가 시야를 물들었다.
눈이, 너무 아팠다. 데아의 두 눈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약점 파훼. 칸나니아의 오른쪽 귀 뒤가 불타오르듯 붉게 물들었다. 그밖에도 뒤에서 달려오는 수많은 붉은 점이 데아의 시선 안에 다닥다닥 찍혔다. 데아는 곧장 경배를 세로로 올려 베어 칸나니아의 공격을 먼저 처단했다.
―샤샤, 나가라고 했잖아! 왜 아직도……!
“조용히 해.”
왜 하필 이때 백리서와의 대화가 떠오른 걸까.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벽.
경배는 그대로 날아가 벽을 관통했다. 정적이 흘렀다. 칸나니아가 제정신이냐는 듯 돌아봤지만 데아는 보란 듯이 경배를 비틀어 빼냈다. 그리고 또 찧듯 베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벼, 벽을 부수고 있어!
쿠르릉―
동쪽 감옥의 끝 방은 지하다. 빛 하나 들지 않은 멈춘 도시. 강제로 가라앉혀진 제국의 건축물은 한계를 알리고 가늘게 흐느꼈다. 이곳에서 매몰되면 시체조차 찾기 어렵겠지. 데아는 다시 경배를 빼냈다.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모두 물러서!!”
칸나니아는 당황했다. 백리서의 조언은 완벽할 정도로 정확했다.
진영은 무너졌고, 간부들은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차차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여파는 엄청났고, 건물 속에 갇힌 인어들을 맞이하는 건 거대한 회오리였다. 건물이 무너지며 암석이 그들을 강타했다.
“밖으로 나가라! 빨리!”
칸나니아가 떨어지는 암석으로부터 어느 간부를 지키려고 하던 때였다. 천하의 악인이 된 기분을 기꺼이 감내하며 데아는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오른쪽 귀 아래. 그리고 눈썹을 잇는 가로선. 그곳을 가르고 머리통을 베자.
소용돌이치는 인어들, 귓가를 찢는 비명들, 아플 정도로 보이는 붉은 점들, 뇌 속의 기생 생물이 비명을 질렀다. 푸억―! 손에 잡힌 검이 바르르 떨었다. 뜨거운 몸을 뚫은 경배가 소리 없이 경악했다.
―카, 칸나니아 님!
하지만 과연 칸나니아는 민첩했다.
“하, 하아, 허,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가까스로 피한 칸나니아의 얼굴이 푸른 피로 젖어들었다. 귀의 위, 그리고 관자놀이를 지나는 이마에 깊고 긴 상처가 입을 벌렸다.
데아를 바라보는 칸나니아의 표정이 낯설었다. 칸나니아의 복부에 데아의 검이 박혀 있었다.
애석하고, 애석하고, 안타깝고, 데아는 무작위로 떠오르는 문장 사이를 떠돌았다.
왜 그랬어? 그러게 왜 그랬어?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이 방법밖에 없었어. 무수한 자아가 서로 질의응답을 했다.
칸나니아의 잿빛 눈에 비치는 자신의 표정이 망막에 투영되었다. 자신의 눈이, 적안과 백안을 떠돌고 있었다. 데아는 검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비틀어 빼냈다. 놀라운 재생 능력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로는 죽지 않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주군이 직접 낸 상처는 없어지지 않아. 회복도 더디지!
뇌 속의 기생 생물이 흐느꼈다. 데아는 일부러 그 말을 머리에 담지 않았다. 그때 칸나니아가 오열하듯 소리쳤다. 그건 이성을 잡아먹은 분노였다.
“므아나의 방식을 그대로 배웠나!”
칸나니아가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그대로 등을 돌렸다.
―카, 칸나니아 님!
―칸나니아 님! 괜찮으십니까!
칸나니아는 더 이상 쫒아오지 못했다. 거대한 균열을 내보이며 무너지는 동쪽 감옥의 지하 안에서, 데아는 자잔과 유리를 잡아 무작정 뛰었다. 이미 무너지고 있는 유일한 복도의 끝, 출구를 향해.
―안 돼, 못 가! 늦었어!
오랫동안 태양을 보지 못했던 건물은 충격에 취약했다. 출구부터 무너진 건물을 보며 유리가 소리쳤다. 완벽히 고립되었다. 퇴로가 없었다. 동쪽의 감옥은 5층 암석건물이었다. 위로 여섯 개의 천장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왜 오늘 운이 좋았다는 건지 설명하겠다.
갑자기 닥쳐온 두통으로 인해 고개를 숙인 데아의 눈 안에, 뭔가 들어왔다. 그림을 아주 못 그리는 이가 그린 것 같기도 한, 얼기설기 그려진 작은 문양.
―이걸 봐요. 제가 만든 비밀 통로예요.
―세상에, 대단하구나. 그동안 모습이 뜸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외진 곳에……?
먼 과거, 하얀 산호를 머리에 장식하고, 긴 머리를 묶어 밑으로 늘어뜨린 트리야는 느리게 미소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테니까요. 이곳은 저와 주군밖에 몰라요. 가끔 숨고 싶어지면 이곳으로 와도 돼요. 이곳은 아주 길어서, 왕궁이 아닌, 밖으로 이어지거든요. 그 지긋지긋한 태초의 의무를 그만하고 싶다면, 이곳에 숨어도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그다음 말은 기억나지 않았다. 데아는 홀린 듯이 문양을 찾아 손으로 더듬었다. 결국 태초는 죽기 전까지 이 비밀 통로를 이용하지 않았다. 태초가 이용하지 않았기에 트리야 또한 이곳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단 한 사람을 위한 비밀 통로는 수백 년이 지나고서야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리로 와!’ 누군가 소리쳤다. 암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