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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17화 (117/223)

※ 117화

목과 손목을 연결한 녹슨 쇠사슬이 절그럭거렸다. 바닷속에 오래 있어 녹슨 사슬이 인어들의 목을 파고들었다.

“저 위에 저건…….”

감옥의 천장에는 거대한 도르래가 있었다. 모든 사슬이 하나의 도르래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한쪽에서 팔을 당기면 반대편의 인어는 목이 졸리는 구조라 인어들은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했다.

―알레 님을 먼저 찾아요. 그리고 그분에게 열쇠를 맡기세요.

“알았어.”

데아는 연신 주변을 살피며 곤봉으로 철창을 두드렸다.

“일어나. 일어나. 눈 감지 마!”

다들 상태가 좋지 않았다. 대부분이 고요하게 눈을 감고 축 처져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인어도 심한 고문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 어… 너 데아야?

―무, 뭐?

그때 누군가 데아를 알아봤다.

데아는 발광석으로 앞을 밝히며 자신을 알아본 인어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 이름은 모르지만 오다가다 얼굴을 마주쳤던 적이 있는 인어 두 명이 데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지, 진짜네?

―…어떻게 여기를 왔어?

“지금 시간이 없어. 유리나 알레는 어디 있어?”

인어들이 바삐 눈을 굴렸다. 그리고 빠르게 턱짓했다.

―저, 저기! 저 깊숙이 알레 님이 있어!

“고마워!”

―아니야. 우리가 더, 우리가 더 고맙지.

인어들의 눈에 서러움과 희망이 차올랐다.

데아는 빠르게 달려갔다. 끝 방의 구석, 가장 두꺼운 쇠사슬로 묶인 형체가 어른거렸다. 처참한 모습의 알레였다. 그와 헤어지고 고작 며칠 지났을 뿐이었는데, 알레의 모습은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흐, 흐으으, 흐흑…….

알레가 한 번 퍼득일 때마다 푸른 피가 뿌옇게 비어져 나왔다. 피가 멈추질 않았다. 알레의 탁해진 눈과 난도질당한 상처가 데아의 눈동자에 달라붙었다.

“…….”

알레와 데아의 눈이 마주친 건 그 순간이었다.

눈부시게 밝은 발광석을 들고 있는 데아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마주한 알레의 눈은 제정신을 가진 이의 눈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네가 태초라면…….

심장이 거침없이 뛰었다. 데아는 일레의 모습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현실과 무의식을 떠도는 알레의 눈동자가 허공을 보고 울었다.

―제발, 제발… 우리에게 책임을 다해 줘…….

데아는 석상처럼 우두커니 굳었다. 알레의 목소리 점차 작아졌다.

―트, 흐으… 트리야는 인어를 몰살시키려고 하고 있어. 통속에 넣어, 천천히 끓여 죽이는 실험체마냥…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 그 미친 폭군의 목적이 뭔지 모르겠지만, 아마, 아마도, 그건…….

“…제국의 멸망?”

―맞아……!

알레가 뒤통수를 벽에 쾅쾅 박았다. 피가 몰린 것처럼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눈동자가 희번덕 돌아갔다.

―정말 태초가 있다면, 이 나라의 진정한 군주가 살아 있다면… 너는, 너는 책임을 져야 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를 위해서……! 저 잔혹한 트리야를 죽이고 다시 이 제국을 되살려 인어들을 구제해 줘야 해!

알레는 혼자 발작하듯 웃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알레의 말을 들으며 못 박힌 듯 가만히 서있던 데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모든 게 멈춘 듯했던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데아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때, 다시 알레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우리를 버리셨나이까?

지독하게 음울한 음성이었다.

―왜 목숨을 잃으셨습니까?

“…….”

―우리는 모두 당신으로부터 태어난 생명체들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인간들의 손에 참살당했고, 이 놀라운 제국은 흔적조차 없어졌죠. 하지만…….

데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꺼냈다. 몇 번이나 손에서 빗나간 열쇠는 이내 찰깍, 철창을 열었다. 철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는 주변 인어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기적은 일어났기에, 기적이라 불리는 거겠죠?

데아와 알레의 시선이 가장 가까이 마주한 순간이었다. 알레의 시선이 원래의 총기를 되찾았다.

―죄송해요. 저는 믿어요.

그렇게 말한 알레의 눈이 아프게 일그러졌다. 데아는 가시밭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후, 알레의 목과 팔을 감싸던 쇠사슬을 풀었다. 그가 추락하듯 데아의 품에 안겼다. 데아의 품은 따스했다.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제가 최소한의 인격마저 잃지 않게 도와주세요…….

알레의 목소리를 꺼져 가는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심장 소리가 과도하게 크게 느껴졌다.

―제가 스스로를 포기하게 두지 마세요. 이 제국이 멸망하게 두지 마세요. 당신의 인어들이 살해당하도록 두지 마세요. 저는 죽어도 좋지만, 저 어린 것들이 죽게 두지 말아 주세요…….

―데아……?

저 멀리 링에 의해 정신을 차린 제이제이가 보였다. 데아는 링과 제이제이 쪽으로 열쇠를 던졌다.

“일단, 여길 나가자. 준비해.”

◈          ◈          ◈

먼저 데아는 인어들의 절반만 사슬을 풀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계속 구속당해 있는 척, 손을 올리게 하고 링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수고 많았어. 용건이 끝났으니 가보도록 할게.”

―네, 네! 알겠습니다!

감옥으로 향할 때, 데아는 일부러 눈에 띄는 화려한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갔다. 취향도 아니건만, 눈이 아프도록 치장을 한 이유는 오직 하나. 간수복을 훔쳐 다시 돌아왔을 때,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기 위해서였다.

“링, 어디야?”

―저기!

데아와 링은 간수복이 주렁주렁 보관되어 있는 창고에 들어가 복장을 훔쳐 입었다. 간수복은 검은 모자와 긴 망토로 꼬리까지 다 덮여져서 효과적으로 비늘 색을 가릴 수 있었다.

―뭐 해요?

“최대한 많이 챙겨 가야지.”

데아는 인벤토리에 되는 대로 간수복을 쑤셔 넣었다. 인간 헌터인 장점이 여기서 이렇게 드러나는 구나.

“밖에 누구 있어?”

―아뇨. 없어요.

“지금 나가자.”

2인 1팀.

데아와 링은 허리춤에 나란히 파란 띠가 둘러진 곤봉을 하나씩 차고 이동했다. 반대편 복도 끝에서 또 다른 간수들이 오고 있었다.

데아와 링은 자연스러운 척 그 간수들은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간수들은 그들에게 관심도 주지 않았다.

‘다행이다…….’

그대로 간수들과 완전히 멀어지려던 순간, 갑자기 누군가 우뚝 멈췄다.

―이봐, 너네들.

데아는 침을 삼켰다.

―왜 거기서 나와? 거긴 창고잖아?

간수의 물음에 링이 모자를 더 깊숙이 눌러쓰고는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1공대 간부님께서 여기 너어무 더럽다고 지랄하신 거 못 들었어?

―뭐? 누구?

―퍼블리 님! 제왕의 그림자라고 은근 잘난 척하던 그 간부님 있잖아.

링은 아무렇지도 않게 퍼블리를 내다 팔았다.

―아하……. 하긴 그런 인어이시긴 하지. 그런데 그 간부님이 여길 더럽다고 했다고?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분들이 깐깐하게 구시는 게 하루 이틀이냐. 그래서 청소 좀 하고 왔어. 이참에 한마디 하겠는데, 너희들 비품을 너무 더럽게 쓰는 거 아니냐?

그 뒤로도 링은 잔소리를 했다. 비품은 공용 재산인데 왜 이렇게 더럽냐는 둥, 청소하느라 손에 두드러기가 났다는 둥 말을 계속하자 그걸 듣던 간수들이 질린 표정으로 살살 도망을 갔다.

“연기 잘 하네.”

―고마워요.

간수들이 완전히 사라진 후, 데아와 링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뒷문이었다.

◈          ◈          ◈

철컥!

“뒷문 열었어.”

데아는 곧장 작은 자갈을 구해 사이에 끼워 두었다. 이로써 살짝만 밀어도 열릴 수 있겠지.

―하, 하하. 빨리 밑으로 가요. 지금은 2차 교대 시간이니까요.

상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늘 불안해하던 링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벼운 미소와 함께 뒷문을 정리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대로 데아와 링은 어물쩍 교대에 맞춰 붐비는 간수들 사이에 섞였다. 저 멀리 인원수를 외치는 간수들을 흘끗 보고 바로 죄수들이 갇힌 지하 쪽으로 추락하듯 몸을 던졌다.

―이상 없습니다!

―이상 무!

데아와 링은 곧바로 벽에 딱 붙어 숨을 죽였다. 복도 너머로 아무것도 모르는 간수들이 스쳐 지나갔다. 데아와 링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할게.”

―네.

계획을 실행하기 전, 데아는 인벤토리에서 파동 폭탄을 찾았다. 파동 폭탄은 불꽃을 이용한 폭탄과 달리, 수중에서도 응용이 가능한 권도언표 아이템이었다. 물론 시험품인 만큼 범위는 좁았지만 화력은 강했다.

데아는 그걸 왕궁의 서쪽 끝, 도라안과 칸나니아가 가끔 별장처럼 드나드는 사탑의 아래에 열 개나 설치했다.

데아는 버튼을 꾹 눌렀다. 사용자의 마력에 감응한 폭탄이 공명하며 터져 올랐다.

쿠르릉…….

동쪽 감옥과 서쪽의 사탑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음에도 진동이 느껴졌다. 예상보다 화력이 더 큰 모양이었다.

위이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

곧바로 붉은 비상 경고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미안하다, 도라안! 아니, 사실 하나도 안 미안해!

―뭐, 뭐야!

―탑에서 기습이 벌어졌다!!

―최소 인력만 남고 모두 동쪽 탑으로 간다!

“지금이야. 빨리 아래로 내려가자.”

파동 폭탄은 혼란을 야기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데아는 빠르게 끝 방으로 향했다. 그곳의 철창을 벌컥, 열자 이미 대부분 사슬을 푼 인어들이 씨익하고 웃었다.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유리도 그들 사이에 있었다.

“유리!”

―세상에, 세상에, 데아야. 나는, 나는 내가 죽는 줄 알았어.

유리는 데아를 덥석 안고 엉엉 울었다. 정말 고마워. 정말 고마워. 우리의 혁명은 아직 죽지 않았어. 그렇지?

“밖에 피파글랜이랑 이위… 아니, 윌로가 기다리고 있어.”

―피, 피파글랜 님과 윌로 님이?

“응. 두 명은 따로 있는 모양이더라고. 거기까지만 가면 안전해. 그가 곧바로 너희들을 움의 새로운 거주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암튼 그런 곳으로 안내해 주겠대. 어서 따라와!”

데아는 인벤토리 안에 넣어 두었던 망토와 모자를 뿌렸다.

“걸어가면서 대충 둘러. 눈속임만 하면 되니까. 스무 명씩 나눠서 날 따라오고!”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이었다. 데아는 감옥의 정면이 아닌 뒤쪽으로 향했다.

붉은 경고음이 윙윙 울리는 아수라장 속에서, 지하의 벽 일부가 와르르 무너졌다. 하나, 그 소리는 경고음에 쉽게 묻혔다.

“링, 네가 먼저 가.”

―네.

링은 20명이 넘는 인어들과 함께 사라졌다. 그다음은 데아였다.

“알레, 지금 나랑 같이 가요.”

―아뇨. 저는 마지막에 갈 겁니다.

알레의 뜻은 확고했다.

“유리, 너라도 지금 와.”

―아냐. 나도 나중에 갈 거야.

유리는 자기보다 체구가 작은 인어들을 먼저 앞세웠다.

―이 애들부터 먼저 데리고 가.

“…빨리 올게.”

데아는 그렇게 또 20명의 인어들과 함께 개구멍을 통과해 뒷문으로 갔다. 그쪽에는 다행히 피파글랜이 있었다.

―저는 다시 가있을게요.

“응. 수고했어. 링.”

―뭘요.

피파글랜은 데아를 향해 고개를 까닥 숙여 보았다. 저 멀리 이위로도 활짝 웃으며 데아를 반겼다.

“언니!”

“웃어? 지금 그렇게 좋은 상황 아니거든?”

“아, 아니 난 그냥…….”

“그냥, 주군이 이렇게 몸소 나서는 모습이 감격스러워서 그러는 거예요.”

피파글랜이 작게 속삭이며 웃었다. 그리고 그는 작게 손가락을 그어 하얀 게이트를 만들어 냈다.

“이거… 뭐야. 너 게이트, 만들 수 있어? 이위로만 가능했던 게 아니고? 그런 게 설마… 인간계하고 통하는 건 아니지?”

“움의 거처와 직접적으로 통하는 창이랍니다. 물론… 다른 차원도 아닌, 같은 차원으로 통하는 창은 불완전해서 안전하지 않아요. 그러니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 남은 인원을 데려오세요.”

총 40명의 인어들이 창을 넘어갔다. 희망이 보였다.

◈          ◈          ◈

뒤이어 링이 20명의 인어들을 데려오고, 데아도 20명의 인어들을 더 데려왔다. 그렇게 몇 번 더 반복하자, 이제 감옥 안에는 유리와 알레를 포함한 몇 명의 인어밖에 남지 않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어. 지금쯤이면 서쪽 사탑의 소란도 가라앉았겠지. 이번에 가면 남은 인원들을 다 데려올게.”

피파글랜의 말에 의하면, 움의 거처에 일시적으로 펼친 게이트… ‘창’은 인간계에 열린 게이트와 달리 불완전하여 유효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시간이 다 끝나면 시전자와 함께 원래 있던 곳으로 튕기듯 사라진다고 하니, 정말 시간이 없는 셈이었다.

“알레! 유리!”

마지막 남은 인원들을 개구멍으로 이끌고, 뒷문으로 안내하려던 순간이었다.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터엉―!

―어……?

링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뒷목을 매만졌다. 척척한 푸른 피가 손바닥 가득히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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