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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16화 (116/223)

※ 116화

―샤샤?

자잔의 몸부림이 뚝 멈췄다. 가만히 침입자를 응시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샤샤를 왜?

“네가 알 것 없어. 모르나?”

눈앞의 인어에게는 피비린내가 났다. 오랫동안 많은 생명을 학살해 온 살인귀의 남새. 허울 좋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언제든지 거짓 표정을 지어 보일 위선자의 채취. 자잔은 저 멀리 들리는 경고음을 들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머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는 직접, 성대로 말하고 있었다. 그말은 즉… 1세대 인어라는 소리였다. 단 여덟뿐인 1세대 인어 중 하나.

여덟 명의 1세대 인어 중에서, 자잔이 얼굴을 모르는 인어는 단 둘뿐이다.

―서, 설마…….

기이한 예감이 들었다.

들은 바에 따르면, 움은 사자의 갈기처럼 타오르는 붉은 머리를 가지고 있고…….

자잔은 서둘러 눈동자를 돌렸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줄기에 반짝, 침입자의 비늘이 비춰졌다. 찰나였지만 자잔은 알아봤다.

‘금색…….’

두 번째 1세대 인어, 므아나.

그의 특징은 황홀하고 아름다운 금빛 머리색과 비늘이었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손바닥이 뻗어나갔다.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므아나는 유명했다. 눈부신 외양에 반하는 인격, 태초에 반하는 인어들의 목을 손수 잘랐다는 미치광이 인어, 규율도 예고도 없이 무례한 인어의 아가미를 맨손으로 쥐어뜯는다는 바다 속의 사신. 그 트리야조차 대면을 꺼려 한다는 둘째.

그가 자신의 앞에 있었다.

자잔은 므아나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재빨리 공격했다.

―추, 충격파.

우드드득!

터엉―!

하지만 자잔은 곧바로 자신의 복부에 와닿는 충격에 쿨럭, 피를 토해 냈다.

―허, 크헉! 흐으.……!

“꾀를 쓰네…….”

자잔의 손이 꺾여 있었다. 침입자가, 아니… 므아나가 자잔의 공격 동시에 그의 손목을 잡아 자잔의 복부로 향하게 꺾었기 때문이었다.

기이한 각도로 돌아간 제 손목을 잡은 자잔의 눈에서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팠다. 말도 안 되게 아팠다. 장기가 뒤틀어진 것 같은 복부와 뼈가 으스러진 손목이 그랬다. 그럼에도 눈앞의 므아나는 말도 안 되게 고요해서 더 섬뜩했다.

―아, 아아, 흐으…….

“다시 묻지.”

짧은 금발의 한 인어가 고압적으로 물었다.

“샤샤는 어디 갔어?”

번쩍! 그때 발광석 하나가 수명을 다한 듯 번쩍거리다 이내 퓨우우― 꺼졌다.

그 찰나의 순간, 자잔은 므아나의 얼굴을 정확히 보았다. 그리고 그를 어디서 보았는지도 깨달았다.

―뭐, 뭐야. 너…….

“…….”

―샤샤를, 속였어?

자잔은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샤샤는… 네 정체를 모르지?

“모른다는 거군.”

―잘도 속였군……. 꺼져!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자잔은 둔탁하게 내려치는 통증을 느끼고 정신을 잃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 죽을 줄로만 알았다. 므아나가 자신을 살려 줄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러나 마지막의 마지막, 느리게 껌뻑이는 시야 사이로 므아나의 미소가 보였다.

“끝까지 말 안 하네. 충성심 하나는 쓸 만한데.”

그는 묘하게 만족스러워 보였다.

◈          ◈          ◈

“링!”

데아는 저 멀리 퍼블리와 순찰을 돌던 링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퍼블리가 데아를 보고 기겁하며 미친 듯이 링을 떠밀었다.

―너, 너, 아직도 돈 다 안 갚았냐! 어서 갚아!

그 말과 함께 퍼블리는 데아를 향해 ‘태초를 위하여!’ 소리치고는 쌩 달려 나갔다.

“좋은 친구 뒀네.”

―친구 아닙니다…….

그때 주변을 지나던 연회장의 인어들이 웅성웅성 몰려들었다. 그에 링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은 의심받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눈앞의 샤샤까지 의심받게 두어선 안 됐다. 링은 빠르게 속삭였다.

―한 번만 봐주시길.

“뭐?”

―죄송합니다, 샤샤 님!

데아가 의문을 표함과 동시에 링은 곧바로 꼬리를 웅크리고 데아의 발목… 아니, 꼬리 끝을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이번만 봐주세요!

“뭐, 뭐야! 뭐야!”

―일주일만 더 기다려 주세요, 샤샤 님! 이자까지 합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벌러덩 누워버리는 꼴이 제법 추했다. 링은 다른 인어들의 시선 속에서도 창피하지도 않은지 꼬리와 팔을 방방 흔들며 앙탈을 부렸다. 데아는 그제야 링의 윙크를 보았다.

‘아하, 그런 거라고……?’

깨달음과 동시에 데아는 그 연극에 합세했다.

“벌써 한 달이나 기다려 주었잖아! 당장 내놓지 못 해!”

―흐, 흐흑, 죄송합니다. 저에겐 책임져야 할 귀여운 반려 식물이 있다고요!

“네 사정 따위 내가 알 바 아니야! 못난 놈. 당장 따라와!”

데아는 경악한 모두의 시선 속에서 링의 뒷덜미를 잡아 번쩍 일으켰다. 무게가 제법 나가는 쌀 포대 마냥 끌려간 링은 마지막까지 소리쳐 울었다.

―살려 주세요! 샤샤 님! 살려 주세요!

“됐어. 여기는 아무도 없어.”

그제야 링은 연극을 멈췄다.

데아는 곧바로 링의 손에 열쇠를 쥐어 주었다.

“뒷문 열쇠야. 아마 확실할 거야.”

―이, 이게 정말로……!

“시간 없어, 빨리 가!”

―샤샤 님, 오늘 저녁에 바로 오실 겁니까?

링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너 혼자 어떻게 하려고?”

―아, 다행이다…….

“뿔피리 소리가 들리면 만나. 그때 보니까 간부들 다 밖으로 순찰 도느라 동쪽 감옥 주변은 휑하더라. 가서 잠입할 방법은 있어?”

―제가 생각해 둔 수가 있습니다.

근처까지 갈 수 있어도 끝까지 숨어 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데아에게는 무기가 있었다. 바로 트리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아홉 번째 1세대 인어라는 감투가 그것이었다.

“그래 좋아. 정면 돌파하자.”

두 번째 날의 연회가 저물었다. 내일 저녁이 바로 처형 날이다. 그때까지 모든 혁명군 인어를 빼돌려야 했다.

‘그 전에 인벤토리 안을 오랜만에 샅샅이 찾아볼까.’

분명히 유용한 게 있을 텐데…….

◈          ◈          ◈

―태초를 위하여!

―태초를 위하여!

―샤샤 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일반적으로 감옥을 지키는 간수는 간부보다 계급이 낮았다. 특히나 상대가 1공대의 간부라면 더더욱 그랬고, 그런 1공대의 간부를 호위 기사처럼 등 뒤에 매달고 있는 1세대 인어라면 더더욱 그랬다.

“버러지 같은 변절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서 왔지.”

데아는 손톱을 보는 척,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니까 당장 문 열어.”

그건 데아의 콘셉트였다. 트리야의 지지를 등에 이고 무서운 게 없는 건방진 1세대 인어!

‘괜찮을까요?’

‘무슨 일 터지면 트리야가 수습하겠지. 뭣하면 도망가고.’

이건 그들의 대화였다. 데아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간수들을 쭉 둘러보았다.

“안 열어?”

데아의 등 뒤에는 무뚝뚝한 표정의 링이 기립을 하고 서 있었다. 간수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혀, 혁명군 출신 인어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그 죄수들은 면회가 불가능…….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건가?”

데아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간수들이 앞다투어 고개를 숙였다. 데아와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나 바쁜 거 안 보여? 당장 안 비켜!”

간수들은 눈동자를 도륵도륵 굴렸다. 혁명군이 가둬져 있는 감옥에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말을 한 건, 다름 아닌 칸나니아였다. 그런 상황에 샤샤가 와서 패악을 부리고 있었다.

비키자니 칸나니아의 후환이 두려웠고, 비키지 않으면 당장 눈앞의 왕족에게 죽임을 당할 판이었다.

―어쩌지?

―어떡해?

간수들을 저들끼리 바삐 속삭였다.

―어떡하긴! 당장 비켜 드려! 너 소문 못 들었냐!

―무, 무슨 소문?

―전에 샤샤 님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칸나니아 님의 손목이 날아갔잖아! 제왕님이 직접 손목을 자르도록 명령했다고!

―뭐, 뭣? 어떻게 그런 일이……!

―실세가 바뀌었어! 지금 저 샤샤 님이 이대로 제왕님께 가서 뭐라고 하신다면…….

―흐아악!

간수들은 곧바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혼자만 가능하십니다. 그… 뒤에 있는 링 님은 잠시 밖에 나가 계시는 게…….

―자네 지금, 나에게 꺼지라고 하는 건가?

―예, 예? 그럴 리가요!

“링은 내 호위야. 그런 위험한 변절자들이 있는 곳에 어떻게 호위를 두고 가지? 너희들이 내 호위를 대신해 줄 건가? 그런데 어쩌나…….”

데아는 링의 곤봉을 들고는 간수들의 꼬리 밑쪽을 탁탁 내리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였다. 간수들이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너희처럼 약한 인어를 내가 뭘 믿고?”

―하윽, 흐, 알겠습니다.

간수들은 결국 어두컴컴한 얼굴로 데아와 링의 앞을 비켜 주었다.

―같이 내려가시죠. 길은 여기입니다.

“같이?”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이러나, 간수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나와 링. 둘만 내려갈 거야. 나머지는 위에 있도록 해.”

―하,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꼭 동행을 하셔야 하는데……!

“아 진짜 말 많네.”

‘이왕 하기로 한 갑질, 끝을 보자.’

데아는 불쾌한 기색을 풀풀 풍기며 벽을 콰앙! 내리쳤다.

“지금 내가 우스워? 한 번 한 말로는 못 알아듣나? 내가 조용히 혁명군 놈들의 면상을 보고 오겠다잖아. 직접 가서 심문도 할 계획인데, 방해받기 싫은 심정을 몰라?”

―그래. 자네들… 설마 샤샤 님을 의심하는 것인가?

데아와 링이 쌍으로 험악하게 눈을 치켜뜨자 결국 간수들은 꼬리를 말았다.

―빠, 빨리 돌아오셔야 합니다!

“아, 열쇠는 필요 없어. 어차피 철창 밖에서 위협만 좀 할 거니까. 대신, 내려오면 죽는다. 나는 방해받는 걸 그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 아니. 인어거든.”

―알겠습니다!

“참, 이 아래에도 간수가 있나?”

간수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당장 다 올라오라고 해. 통신 소라 있지?”

그 말을 끝으로 데아와 링은 그대로 지하로 내려가 버렸다. 덩그러니 남은 간수들은 조용히 눈빛교환을 했다.

―어차피 별일 안 일어날 거야. 하지만… 다들 알지?

―아, 당연하죠. 벌받고 싶은 인어 여기 아무도 없잖아요. 일단 누가 통신 소라로 밑에 있는 애들 불러내요.

―칸나니아 님께는 비밀로 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통과시켰다는 걸 말하면 안 돼.

―쉬쉬하고 넘어가자고.

◈          ◈          ◈

지하의 끝 방. 그곳은 물의 색부터 탁했다. 오염도가 높은 물에 데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왜 그래?”

링은 자신의 팔을 쓰라린 듯 감싸 쥐고 있었다.

―오염도가 높네요. 아주 아프지는 않는데 피부가 조금 따가워서요. 샤샤 님은 괜찮으세요?

“나? 나는 괜찮은데.”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너무 어두워. 의심받기 전에 올라가야 해.”

목표는 하나였다. 백이 넘는 사형수들을 뒤로 빼돌려 탈출시키는 것.

물론 데아와 링은 제때 올라와야 했다. 그렇기에 열쇠가 필요했다. 열쇠를 받은 혁명군이 서로의 쇠사슬과 철창을 풀고 뒷문으로 나오면, 뒷문에서 링과 데아가 대기하고 있다가 빠르게 밖으로 그들을 이동시켜야 했다.

거기까지만 가준다면 안전했다. 밖에는 피파글랜이 있었으니까.

피파글랜은 전날, 데아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쪽으로 데리고만 나오세요. 바로 ’움‘의 새로운 서식지로 그들을 안내할게요.”

―괜찮겠죠?

“괜찮아. 뒤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있더라고. 아, 비밀 통로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긴 한데…….”

사실 개구멍 같은 곳이었다. 자욱한 오염과 흙물로 인해 눈에 띄지 않은 개구멍. 그래도 인어 두 명이 동시에 통과할 수 있을 법한 곳이었기에 데아는 안심했다.

“거기만 지나면 바로 피파글랜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나저나 이튿날이 되었는데, 감옥의 관리인은 열쇠가 사라진 사실을 모르는 걸까요?

“아, 그건 내가 확인했는데 술에 쩔어서 직접 나한테 열쇠를 준 사실도 기억 못하더라고. 지금쯤 파랗게 질려서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혼자 찾고 다니는 중 아닐까.”

트리야의 독재 아래, 무능은 죄였다. 죽고 싶지 않다면 유능하거나, 무능을 숨겨야 했다.

그런 정치 방식이 결국 트리야를 파멸로 이끌리라.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구해 줄게. 내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때 저 멀리 빛이 보였다. 데아와 링은 숨을 죽였다.

“발광석 켜.”

―네.

이윽고 환해진 그곳은, 푸른 피가 시야를 가리는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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