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링.”
―오, 멋지네요.
머리 위로 화려한 장신구를 자꾸 씌우려는 시종들의 손짓을 가까스로 떨쳐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검은 비늘과 잘 어울리는 금색 장신구와 투명한 결정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쭉 이어졌다. 데아는 움직이기 거추장스러운 과도한 베일은 몰래 박박 뜯어냈다.
“왜 어제 안 왔어?”
―저도 의심받고 있어서요. 지금 이 순간도 위험해요. 오래 있을 수 없어요.
“잠깐만, 이리로 와!”
링과 나는 몰래 뒤로 통하는 복도에 몸을 숨겼다. 건너에서 우르르 간부들이 지나갔다.
“감옥에 갔다며. 다들 어때? 살아 있어?”
링은 지친 웃음을 지었다.
―네. 다행히 아직까지는 살아 있는데……. 빼낼 방법이 없어요. 동쪽 감옥의 끝에 갇혔거든요. 지하 끝 방이요.
지하 끝 방. 그곳은 가장 죄질이 나쁜 죄수들만 모아 놓는다는 감옥이었다. 손목과 목을 감싼 구속구로 죄수들을 연달아 잇고, 그 아래에는 독을 바른 가시를 설치해 죄수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는 최악의 감옥.
―경계도 삼엄하고, 당장 빼낼 뒷문도 막혀 있어요.
“열쇠는.”
―지하 전체의 열쇠가 필요해요. 아마 열쇠 뭉치로 묶여 있을 텐데…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럼 필요한 건 그 두 열쇠지? 지하 전체 열쇠랑 뒷문 열쇠?”
그 두 개의 열쇠를 어떤 수로 찾지? 데아는 주먹을 쥐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래 그것들을 손에 넣어야 했다.
―네. 맞아요. 저도 찾을게요. 하지만 혹시라도 먼저 찾으신다면 저를 부르세요. 통신 소라로 이자를 갚으라며 닦달하면 알아서 찾아오겠습니다. 혹시나 그 반대라면 제가 이자를 갚겠다고 말씀드리며 찾아올게요.
“알았어. 더 의심받기 전에 이만 가봐.”
―네.
방을 나서려던 링이 멈칫 굳었다.
―샤샤 님.
“어?”
그의 표정이 울 듯 말 듯 가라앉았다.
―유리한테 소식을 들었어요. 광장에서 태초를 직접 본 사람이 샤샤 님이시라면서요?
데아는 막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땠어요?
“어떻긴…….”
―정말로 구원에 가까운 모습이었나요?
데아는 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링의 푸른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가 힘겹게 미소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죠? 우리 주변에 있으시겠죠? 우리를… 알고 있으시겠죠?
“…….”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모두 그분을 위해서니까. 샤샤 님, 우리 조금만 더 힘내 봐요. 이제 정말 둘뿐이에요.
“그래…….”
―태초를 위하여.
그 말만을 남기며 링은 떠나갔다.
데아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 ◈
연회가 시작됐다. 우아하게 치장한 인어들이 연회장으로 속속들이 도착했다.
그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는 2층에서 데아는 멍하니 아래를 응시했다.
―이번에 혁명군, 그 멍청한 놈들이 완전히 전멸되었다는데…….
―역시 하찮은 것들이 감히 제왕님에게 대적하려고 드니까―
―마지막 처형 시간이 언제였죠? 꼭 보러 가야 하는데…….
―그나저나 제왕님은 언제 오시는 거지?
강렬한 빛을 뿜는 발광석으로 만든 샹들리에가 반짝였다. 세로로 높은 광활한 연회장, 데아는 자신의 옆에 온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이걸 복수라고 하는 거야?”
트리야가 가만히 웃었다.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나를 아찔할 정도로 위에 앉혀 놓고 천천히 망가져 가는 제국을 보여 주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네.”
“어린애 같아…….”
트리아는 유아적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보호자를 충격에 빠뜨리기 위해 보호자가 아꼈던 장식물을 망가뜨리는 철없는 유아다.
문제는 그 유아가 군주의 자리에 있다는 거다. 세상의 모든 비극은 거기에서 출발했다.
“이 정도면 므아나를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지.”
이왕이면 확실하게 이겨 주지 그랬어. 전쟁에서 지지 말고. 두 번째 1세대 인어야.
“므아나를 만났나?”
“아니.”
“아니. 만났을걸.”
트리야가 데아의 손에 작은 잔을 쥐여 주었다.
“단지 눈치를 채지 못했을 뿐이지.”
“뭐어… 그랬을 수도 있지. 얼굴을 모르니까.”
“이번 연회에서 너를 소개할 생각이야.”
트리야가 데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작은 움직임에서조차 위압감이 느껴졌다.
연회라서 그런가, 트리야는 이전보다 더 고풍스러운 장식을 달고 있었다. 전신을 감싼 검은 천, 그 위를 물결치듯 흘러넘치는 머리카락, 차가운 은장식과 산호…….
머리에 꽂은 하얀 산호.
“어?”
데아는 눈을 깜빡였다. 저거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러지?”
“아냐. 아무것도 그냥…….”
―가지 마세요.
데아는 걸음을 멈췄다.
―내가 당신의 첫 번째 권속이잖아요. 그런데 왜 다른 권속들이 깨어나길 더 기다려요? 므아나 하나로도 난 벅차다고요. 여기서 당신의 사랑을 더 빼앗기긴 싫어요.
데아는 이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을 하는 여자아이의 표정 또한, 어렴풋이 기억난다.
머리 위에 하얀 산호가 장식된 작은 여자아이, 바다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빛과 주변을 적시는 비극의 종소리, 하늘거리는 물고기의 꼬리, 반투명한 물갈퀴.
트리야는 생각에 잠긴 데아를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를 끌고 찬찬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내 앞에 우뚝 선 거대한 휘장을 걷었다.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제왕만을 기다렸던 무수한 귀족 인어들이 박수를 쳤다. 귓가가 웅웅거렸다. 속이 울렁거렸다.
―나 하나만으로는 부족해요?
분명 아이는 울고 있었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 저기 샤샤 님이시다! 아홉 번째 1세대 인어님이셔!”
“어쩜 저렇게 아름다우실까……!”
바람잡이가 입김을 불어넣자 환호는 전염되었다.
“샤샤 님! 샤샤 님! 샤샤 님!”
“샤샤 님! 샤샤 님! 샤샤 님!”
모든 인어가 발을 구르며 환호했다. 그 광경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데아는 잠시 상념에 빠졌다.
그 아이의 머리에 꽃은 흰색 산호는, 내가 선물해 줬어. 태어난 아이의 머리색이 녹색인 것을 보고,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직접 산호를 꺾고, 다듬어서 준거야.
데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갓 태어난 아이는 기뻐하며 머리를 내밀었다. ‘직접 장식해 주세요.’ 그건 아이가 이 세상에 나와 첫 번째로 한 말이었다. 머리에 산호를 장식한 아이는 그 산호의 매듭이 헐거워져서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절대로 풀지 않았지.
예전에 비해 훨씬 낡아버린 산호를 만지작거리던 산호를 꼭 쥐고 놓지 않던 아이가 가여워서, 나는 산호를 수선해 주며 선물을 하나 더 주었다.
그건 노래였다.
―이거라면 낡지도, 잃어버리지도, 떨어지지도 않을 거야.
나의 자장가를 선물 받은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그 누구보다도.
데아는 그 노래를 어렵지 않게 상기할 수 있었다.
―거친 파도의 소리가 너의 악몽을 가려 줄 거야.
―그날만큼은 꿈 없이 휴식하길 바라. 너희들의 다정한 요람이 곁에 있으니.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익숙한 멜로디였다. 당연했다. 데아는 이미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 어디도 아닌, 바로 여파 길드의 건물 안에서. 실험실 안의 인어들이 모조리 죽을 때.
그리고 훈련실 안에서.
발신인이 없던 기묘한 선물, 검은색 함에 담겨 있던 오르골. 그것의 출처는 트리야였나?
그게 맞는다면, 트리야는 그때부터 나를 알고 있던 것이 된다. 그럼에도 찾으러 오지도, 죽이러 오지도 않았지.
자신을 기억조차 하지 않는 상대에게 과거의 오르골을 툭, 선물한 건 무슨 의미일까. 이걸 듣고 기억 좀 하라고? 음습하게 나를 놀리려고? 아니면…….
그건 일종의 약속이었나.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약속일까.
“벌써 피곤한가?”
트리야가 눈만 껌뻑이는 데아를 보며 피식 웃었다.
데아는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 아래, 자신에게로 몰려드는 귀족 인어들의 환영을 보았다. 트리야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다정해 보였다. 저것이 연기라는 걸 안다. 데아는 그런 트리야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너, 정말 복수가 목적 맞아?’
―샤샤 님! 저는 네이피트라고 합니다. 전에 한 번 뵌 적이…….
―반갑습니다. 위대하신 왕족을 뵙습니다. 저는 제프넨이라고 합니다. 기억하시나요……?
데아는 트리야의 팔을 덥석, 잡았다. 일시에 주변이 술렁였다. 오직 한 인어, 트리야만 제외하고.
그는 이 모든 것이 흥미롭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았다.
“용건이 있나?”
“여행을 가고 싶은데,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트리야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었다. 데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 제국은 인간들에게 우호적이잖아. 한 번, 가보고 싶어. 아는 길 있어?”
피파글랜의 말에 의하면, 트리야는 인간을 그 누구보다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척 연기를 하는 인어였다.
그동안 찜찜하게 가슴을 건드렸던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런 짓을 해?’
그래서 데아는 미끼를 던졌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내가 당당하게 제국을 나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때, 너의 반응은 어떨까.
“이 근방에는 인간이 없고, 창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지.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같이 나가도록 해.”
젠장. 평범하기 짝이 없군.
“나는 혼자 나가고 싶은데.”
“그건 안 돼.”
“왜 자꾸 반대하지. 인간이 위험한가……?”
트리야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데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자잔이 한 말에 의하면…….
“인간은 약하니까 보호해 줘야 한다고 하던데……. 왜 자꾸 안 된다고 하지.”
“…….”
“아하, 인어가 너무 강해서 인간이 위험에 빠진다는 그런 뜻이었나.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나보고 나가지 말라고 하는 건가?”
트리야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관찰했다.
주변의 소음이 점점 잦아들고, 곧 정적이 왔다. 트리야는 특유의 매끄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모두가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