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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12화 (112/223)

※ 112화

어둠 속에서 드러난 인영, 그건 칸나니아였다.

“제왕의 권속과, 아홉 번째 1세대 인어 샤샤와 변절자 피파글랜까지. 세 명 모두 다 나와 함께 간다. 그 어떤 죄도 묻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따라오도록.”

데아는 무심코 칸나니아의 손목에 시선을 주었다. 그의 손목은 벌써 다 재생된 건지, 다른 손보다 크기가 조금 작았지만 이제 거의 상처가 다 아문 듯 했다.

“이게 누구야. 비천한 상어잖아?”

피파글랜은 칸나니아를 향해 비아냥이 섞인 욕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 말과는 반대로 피파글랜은 데아의 귀에 ‘하지만 주군은 저 자를 따라가세요. 죽이진 않을 것 같으니까.’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그 순간, 데아는 모든 상황 파악을 마쳤다.

피파글랜을 내보내는 게 옳다. 피파글랜은 언제나 그랬듯이 뭔가를 숨기고 있었고, 그 숨김은 아마…….

나를 위해서.

“바다의 경배.”

강한 해류가 소용돌이 쳤다. 데아의 반격을 예상한 칸나니아가 서둘러 반격했지만 강한 검날은 이빨을 드러내며 칸나니아에게로 달려들었고, 작은 틈을 냈다.

터엉―!

칸나니아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가!”

피파글랜은 그 틈을 타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자잔은 같이 빠져나가지 못했다.

“피파글랜!!”

“닥쳐.”

데아는 해류를 움직였다. 순식간에 칸나니아의 목을 틀어쥔 해류는 여전히 사납게 일렁였다. 칸나니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언제 이렇게 강해졌지?

“자아… 죄를 묻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자잔이 가도 안전할 테지.”

그건 경고였다. 이 말이 거짓이라면 당장 너의 목을 틀어버릴 거라는 음습한 예고.

“몸소 불러 주셨으니 가야지. 칸나니아, 트리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데아는 검을 갈무리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          ◈          ◈

다시 도착한 왕궁, 데아는 자신이 떠났을 적과 별 차이 없는 모습과 분위기에 기이함을 느꼈다.

“도라…안?”

“참나.”

왕궁의 입구까지 나와 있던 도라안은 슬슬 데아의 시선을 피하며 자잔을 콕 짚었다.

“너는 날 따라와.”

“잠깐, 자잔을 왜?”

“제왕 트리야의 명령이야.”

“…….”

자잔이 괜찮다는 듯, 데아에게 눈짓했다. 그러나 데아는 도라안에게 살벌하게 경고했다.

“어디 헛짓거리 해봐.”

“아, 아무것도 안 해. 그나저나 너 버려진 놈 아니었냐? 왜 커졌어?”

―…나는…….

“끌려온 변절자 인어들을 살리려면 말을 잘 따라야 할 텐데.”

칸나니아가 낮게 속삭였다. 데아는 중지를 치켜들었다.

“그 손동작은 뭐지?”

“엿이나 먹으라는 뜻이다.”

“엿?”

“됐어.”

자잔과 떨어지고 홀로 왕궁에 입성한 데아는 자신을 바라보고 반가운 표정을 짓는 수많은 귀족 인어들을 마주했다.

―엇, 샤샤 님! 어디 가셨다가 이제 오셨어요! 요즘 잘 안보이시던데…….

―그 소식 들었나요? 변절자 놈들이 일망타진 되었다는 거! 역시 제왕님이세요.

―앓던 이가 한 번에 빠진 느낌이지 뭐예요? 정말 놀라워요!

형식적이고 짠 듯한 칭찬. 치켜세움. 데아는 괴리감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뭐야, 내가 아직도 설마…….”

“넌 여전히 아홉 번째 1세대 인어다.”

칸나니아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여전히 제왕의 모든 신임을 받는 인어이기도 하지.”

“트리야가 그런 헛짓거리를 아직도 하고 있다고? 진짜 제정신 아니네.”

“말을 조심하라.”

데아가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이곳에 머물 적에 트리야가 자신을 퍼블리라 소개하고, 벽에 기대 강철 미역 문을 부수고 도망친 데아를 기다리고 있던 방이기도 했다.

단단하게 짜인 미역, 분명 벽 절반을 폭발시키고 왔음에도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방. 데아는 구역질을 참았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그건 제왕님만이 아시겠지.”

데아는 빠르게 뒤를 돌았다. 문 사이로 칸나니아의 얼굴이 사라졌다. 문이 완전히 닫혔다.

“쉬어라.”

물론 데아는 말을 듣지 않았다. 데아는 그대로 슬슬슬 움직여 창문을 찾았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돌로 막아져 있었다.

“아, 이럴 줄 알았어.”

데아는 방을 서성이며 목표를 세웠다. 이제 뭐부터 해야 하지?

일단 혁명군 인어들을 살려야 한다. 감옥을 기습해야 했고, 인어들을 빼돌려야 했으며… 그러려면 열쇠가 필요한데.

무작정 돌진해 다 부셔버리는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았다. 그 많던 혁명군 인어들이 맥없이 끌려갈 정도면 트리야는 상상 이상의 실력자임이 당연했고, 다 탈출시키는데 성공한다고 해서 또 끌려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트리야한테, 내가 여기 계속 있겠다고 말해 볼까. 대신 풀어 달라고…….”

통하지 않을 방법이다. 추론이 맞는다면, 트리야는 태초가 절망하길 원했으니까. 눈앞에 인어들의 죽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 보여 줬지, 절대로 풀어 주지 않으리라.

부스럭―

그때 누군가 문을 열었다.

“?”

―아… 안녕하세요. 샤샤 님! 태초를 위하여!

익숙한 인어였다.

퍼블리. 둥글둥글한 눈매의 인어가 데아에게 인사를 했다.

―연회의 초대장을 전달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건 초대장이고요. 이 조개껍데기가 있으시다면 언제든 출입이 가능하십니다.

“연회의 초대장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아직 못 들으셨나요?

퍼블리는 인상 좋게 웃었다. 이전에 보았던 미소와 다를 것 없는데, 그의 미소가 이렇게 불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이번 혁명군 일당들을 한 번에 잡아들인 건 아시죠?

“…….”

―그것을 기념하는 연회입니다. 하하, 역시 제왕님이 마음을 먹으니까 바로 싹―! 쓸어진다니까요. 이제까지 봐주고 있던 걸 모르는 배은망덕한 변절자 같으니. 그 변절자들을 이번 기회에 다 처형시킨다는데, 당연히 구경 오실 거죠? 1세대 인어님들을 위한 상석도 마련되어 있답니다.

“처형이라니…….”

―아, 날짜가 궁금하신가요? 연회는 3일 동안 지속되는데, 마지막 밤에 아마 공개 처형식이 이루어질 것 같아요.

데아의 표정이 점점 굳는 것도 모르고 퍼블리는 계속 떠들었다.

―모두가 샤샤 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왕님께서 연회를 아주 크게 여실 계획이시거든요. 사실 이 연회의 진짜 주인공은 샤샤 님이라는 소문이 파다해요. 여러 사교계의 귀족들이 다 모일 예정입니다. 벌써 샤샤 님에게 온 선물이 있는데, 보시겠어요?

“거길, 참석하라고?”

―아… 물론 습격으로 힘든 것은 이해하지만, 꼭 오시는 게 좋지 않으시겠어요? 제왕님께서 그 연회에서 샤샤 님을 꼭 모셔 오라고 언질을 주셔서…….

트리야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습격이라니……. 나 습격당한 적 없어.”

―네? 저번에 큰 폭발이 있었는데……. 혁명군들이 샤샤 님을 해하기 위해 침입한 게 아니었나요?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 지금 밖에 경호원들이 쫙 서있는 이유가 다 샤샤 님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경호라니. 그건 감시병일터다.

“저번 폭발은 내가 낸 거야. 저번에 도서관이 폭발하는 거 봤지? 똑같은 힘이라고.”

분명 이전에, 해룡을 찾았다고 감시병에게 말하며 뛰어내렸었다.

―정말요? 그건 몰랐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화가 나셔서 그러신 거죠……? 화 푸세요, 샤샤 님. 그래도 제왕님이 샤샤 님을 아주 아끼시나 봐요. 제왕님이 어떤 죄도 묻지 않고 오히려 감싸 주다니! 정말 멋진 분이지요?

데아는 간절하게 퍼블리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

―그러면, 샤샤 님.

퍼블리는 데아 손에 조개껍데기를 올려놓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빛에 따라 오색으로 반짝거리는 예쁜 조개였다. 그 안에는 작게 ‘샤샤’라고 적혀 있었다.

―연회장에서 뵈어요! 내일 샤샤 님의 치장을 도울 시종들이 올 예정입니다. 그럼 편안한 휴식 되시길. 그럼 이만.

“야, 야, 잠깐만 퍼블리.”

데아는 나가려던 퍼블리의 팔을 잡았다. 그에 퍼블리가 황송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너랑 같이 다니던 친구는?”

―네?

“그 머리 길고, 하얗고, 파란 친구 있잖아.”

―아하, 링이요?

혁명군이 심어 둔 첩자, 링.

“지금은 변절자들을 가둔 감옥에 갔어요. 직접 심문을 진행한다나?”

역시.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거기가 어딘데?”

―감옥이요? 동쪽의 감옥입니다!

데아가 처음 잡혀 왔던 그곳이었다. 거기라면 가는 길은 아니까 다행이지.

“그래? 사실 링이 나한테 돈을 좀 빌렸거든.”

―네, 네? 링이요?

“그래. 그러니까 만약 링을 만나면 나한테 오라고 좀 전해 줘.”

데아는 퍼블리를 손수 밖으로 내보냈다.

“가능한 빨리. 내가 사실 도박을 좀 했는데, 돈을 잃었거든. 그래서 빌려준 돈을 빨리 받아야겠어.”

―도, 도박이라뇨! 물론 1세대 인어님들은 그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용히 해. 감히 나한테 법을 운운해?”

―아, 아닙니다!

“그래. 가서 링한테나 가. 나 돈 급하니까, 꼭 필요한 거 가져와야 하는 거 잊지 말라고 하고.”

―링, 링이 그랬을 리가……. 설마, 이 자식이 감히…….

“빨리! 오늘 안으로 오라고 해!”

―네, 네!

◈          ◈          ◈

“안녕.”

자잔은 두 눈을 의심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하고 들었던 게 바로 주군 트리야의 음성이었다.

“안녕, 잘 살아가도록 해.”

그 한마디를 듣고 버려진 자잔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 음성을 지푸라기처럼 잡고 살았다. 트리야가 다시 나를 봐주는 날만을 기다리며.

그런데 지금.

“몸이 컸구나.”

옥좌에 앉은 트리야가 자애롭게 웃었다.

자잔은 멍하니 트리야를 올려다보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했다. 갑작스럽게 도라안에게 이끌려 도착한 알현실.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건 평생을 바라왔던 주군의 미소였다.

―주, 주군…….

“그래.”

주군이라는 말에 누군가가 답해 준 건 처음이었다. 자잔은 창백하게 질려 벌벌 떨었다. 황홀한 감정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뭐지? 무슨 상황이지?’

―저, 저를 부르실 줄은 몰랐어요.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트리야가 느리게 제단을 내려왔다. 멍청하게 서있는 자잔의 뺨을 쓰다듬었다. 자잔은 모든 신경이 그쪽으로 집중되는 것을 느꼈다.

“명색이 내 권속인데, 그동안 너무 홀대한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저는…….

자잔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트리야의 손에 뺨을 비볐다. 두 눈이 물기를 담고 반짝였다.

―주군이 저를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걸요…….

“착하기도 하지.”

트리야가 다정하게 웃었다. 그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걸 각오가 되어 있던 자잔은 그 미소에 홀려 숨을 멈췄다. 감격으로 기도가 조였다.

“내일 시종을 붙여 줄 테니 연회에도 참석하도록 하거라.”

―제가, 어찌 감히…….

“내 하나뿐인 권속이라면 응당 그럴 가치가 있지.”

자잔은 트리야의 다정한 음성을 허겁지겁 받아먹었다.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그동안의 폭력을 철저하게 방임했던 인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아예 다른 인어 같았다. 자잔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진지하게 의심했다.

‘뭔가… 달라.’

속에서 적색 신호가 윙윙거리며 울렸다.

지금의 트리야는 위험하다고, 어둡고 캄캄한 꿍꿍이가 있을 거라며, 내면이 경고음을 울렸지만 자잔은 묵살했다. 자신이 이토록 행복한데 그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 혁명군? 그건 변절자일 뿐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자신의 주군과 동시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샤샤.’

자잔의 미소가 순식간에 굳었다.

“같이 산책을 갈까?”

트리야가 자잔을 일으켜 세워 준 건 그때였다.

―…네?

“저 뒤편에 길이 나있던데.”

트리야가 멍한 자잔을 이끌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정원이 그들을 반겼다. 자잔은 다시 뇌를 비웠다. 그토록 원했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 그 무엇도 그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그 무엇도.

◈          ◈          ◈

이튿날, 연회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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