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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07화 (107/223)

※ 107화

찰나의 순간은 아주 고요했다. 그러나 고작 응축된 마력 하나가 빠르게 날아간 정도로 끝났어야 했던 활의 여파는 어마어마한 재앙으로 돌아왔다.

―으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악!

활은 광장의 지척에 다다라서야 그물망처럼 넓게 펴졌고, 자가 증식을 하듯 불어났으며, 그대로 광장을 감싸 바닥을 부쉈다. 자연히 그 위의 해류에도 영향을 미쳤다.

퐈콰콰콰콰―!

거친 회오리가 생성되었다. 폭력적인 물살에 수많은 간부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머리를 박았고, 그대로 혼절했다.

제국의 드넓은 광장이 통째로 날아갔다. 자잔은 소리 없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짧은 90년의 생애, 이런 광경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으아악! 살, 살려 줘―!!

땅이 꺼지며 광장 위에 지어진 모든 건물들이 붕괴되었고, 대기 중이던 저격수들 또한 무너져 내렸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모든 이가 신음하며 사냥감들을 놓친 그 순간.

턱!

“이제 돌아가야지.”

―!!

“나는 길을 모르니 네가 안내하도록 해.”

뻔뻔하고 다정한 얼굴로 돌아온 태초는 자잔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          ◈          ◈

“뭐?”

도라안은 기필코 트리야의 저런 표정은 처음 보았다. 수천 년 인생을 다 걸어도 좋았다.

아냐, 본 적이 있었나? 있던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사해의 화살?”

“뭐?”

하지만 머지않아 도라안도 트리야와 함께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사해의 화살이라면, 이미 죽은 제 주군의 애착 무기였다. 그게 왜?

그러나 간부들과 통신 소라로 말을 주고받는 트리야의 모든 말을 엿들을 수는 없었다. 도라안은 괜히 따라왔다고 탄식하며 주변에 턱, 몸을 기댔다.

이곳은 움의 서식지인 서쪽이었다.

움을 치겠다는 제왕님의 명에 따라, 갑작스럽게 토벌대를 꾸리고 나온 참이었다. 그러나 서쪽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어는커녕 흘러들어온 하급 인어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지루한 광경에 도라안이 질릴 때쯤 마침 트리야가 통신 소라를 끊고 밖에 나왔다.

―태초를 위하여!

―태초를 위하여!

옆을 지나던 충실한 무장 간부들이 제왕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제국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

트리야는 드물게 오래 침묵했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제왕이 당황을 하다니! 도라안은 조금의 흥미를 품고 더 물어볼까 고민했다.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던 트리야의 입꼬리가 싸악, 밀려올라가는 걸 보기 전까지만.

“꽤나 의외의 상황이 찾아온 모양이야.”

“…….”

그렇게 말하는 트리야가 지나치게 들떠 보여서, 도라안은 할 말을 잃었다.

“제국에 무슨 일이 생긴 거면 서쪽의 토벌은 포기하고 돌아가시는 게…….”

“아니, 서쪽의 토벌은 완료되었어.”

“네?”

“움의 능력을 잊었나? 움은 미래를 읽고, 앞날을 예언해. 이미 내가 침략할 거라는 것쯤은 자면서도 깨달았을 거야.”

그래서 여기 이렇게 인어들이 없었나? 도라안은 기겁했다.

“그러면 이미, 대상은 사라졌으니까.”

“아니, 우리는 전진한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이 땅을 망가뜨린다. 그 누구도 다시 이곳에서 살 수 없도록 맹독 생물과 상어를 풀고, 땅을 갈라서 그 무엇도 살지 못하게 해.”

“…….”

도라안은 눈치 빠르게 해당 전달 사항을 간부들에게 알렸다. ‘네, 알겠습니다!’ 소리친 간부가 빠르게 사라져갔다.

“움은 분명 이런 것까지 예언했겠지. 땅을 버리고 권속들을 피신시키다니. 움답게 현명한 선택을 했어.”

움은 트리야의 토벌을 예측했고, 권속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움의 권속들의 행방은 내 알 게 아냐.”

“네? 그렇다면 왜 이곳까지…….”

“내 행동을 예측한 움이 친절하게도 이 땅을 비워 두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목적은 다 한 셈이지.”

마음껏 이 땅을 망가뜨리도록 해. 그래야 이데아가 갈 곳을 잃어버리지. 태초의 귀환을 살갑게 반길 무리는 하나하나 없어져야 옳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이데아가 저가 살고 있는 왕궁으로 마지못해 찾아올 때까지.

“해룡을 찾았다고 했나?”

트리야는 작게 웃었다. 지금의 이데아라면 자신의 유치한 목적 따위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뭘 해야 할까.

“기다려야지.”

언제나 그랬듯이. 손으로는 숨을 조이지만 얼굴로는 웃을 것이다.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이 다음이… 있습니까?”

눈치 빠른 도라안은 트리야의 다음 생각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기나긴 변절자들을 처벌하러 가야지.”

트리야는 1공대 무장 간부들을 서쪽에 풀어놓곤 등을 돌렸다.

“제국으로 돌아가자. 혁명군의 뿌리를 뽑는다.”

◈          ◈          ◈

동 시간, 자잔은 또다시 정신을 잃은 데아를 안고 끙끙거리며 혁명군의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사실 자잔은 피파글랜에게 들려와 혁명군으로 향하는 정확한 길도 알지 못했다.

주변의 분위기나, 느낌상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결국 완벽하게 길을 잃은 자잔은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심지어 뭐 하나 잘못 먹은 사람처럼 실실 웃던 태초는 ‘아 시간이 다 됐나?’라는 말과 함께 눈을 감아버렸다.

―헉, 헉… 여기가, 어디야…….

이 빌어먹을 혁명군! 이렇게 꼬아 꼬아 길을 만들고 트랩까지 설치하니까 우리가 절대 못 찾아냈지! 전직 1공대 간부 자잔이 짜증을 팍팍 냈다.

원래 길을 잘 찾는 편이 아닌 자잔은 더 거리를 헤맸다. 자잔은 이제 데아가 눈을 떠주기만을 기다렸다.

“음…….”

―어! 샤샤!

형태 없는 꼬리가 붕붕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자잔은 정신을 차려 가는 데아를 반겼다. 데아는 피곤한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눈을 떴다. 그리고 화등잔만 하게 눈을 부릅떴다.

“어!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여기 어디야!”

자잔은 환하게 웃었다. 틀림없는 샤샤다!

―기억 안 나? 갑자기 너, 인격이 변해 가지고 얼마나 무서웠는데……!

“내가……?”

데아는 감이 하나도 잡히지 않는다는 얼굴로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자잔은 그를 위해 간략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나저나, 샤샤. 지금 상황 심각해. 길 잃었어.

“…어?”

―혁명군으로 어떻게 가?

◈          ◈          ◈

다행히 데아의 인도로 자잔은 혁명군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제 몸에 태초가 빙의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데아가 태초를 잡귀 취급하며 ‘썩 물렀거라!’를 열창한 것이다.

자잔은 태초의 패기를 기억하고는 찔끔 눈치를 봤다. 그러나 데아는 멀쩡해 보였다. 속으로 안도했다.

―엄청난 소식이야, 광장이 완전히 붕괴됐대! 그런데, 그 원인이 바로……!

예상대로 혁명군의 문을 열자마자 흥분한 인어들이 데아와 자잔을 둘러쌌다.

―태초님이라는 거지……!

딸꾹, 데아가 입을 다물었다.

―태초님이라니! 그분이 돌아왔다니!

―맞아! 그가 돌아왔어! 데아, 너도 광장에 갔다며? 혹시 봤어?

―왜 혁명군에 오시지 않는 걸까? 당신의 종이 여기 있는데!

과연 열성적인 신도들이었다.

데아는 얼굴을 바짝 굳히고 고개를 연신 도리도리 저었다.

―샤, 샤샤는 폭발에 휘말려서 정신을 잃었었어.

자잔이 서둘러 실드를 쳤다.

―아하, 그래? 정말 아쉽겠다! 그런 숭고한 기회를 놓치다니!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저 위에서 거대한 사해의 화살을 들고 세상을 굽어보셨대! 위에서 뚝! 떨어졌다는 얘기도 있고, 발광석 사이에서 나타났다는 얘기도 있어!

―횡포를 부리던 간부를 한 번에 제압하고 유유히 사라지다니, 나는 오늘을 결코 잊지 못할 거야.

―아아악!!

저 멀리 유리와 제이제이가 식탁에 머리를 박았다.

―먼저 떠나는 게 아니었는데! 그 광경을 놓치다니!!

―그래도 누나, 저는 만족해요. 짧게나마 태초님과 같은 공간이 있었으니까……. 하… 저 숨을 못 쉬겠어요…….

데아와 자잔의 시선이 일순 부딪쳤다.

‘너 말하면… 죽, 아니. 안 돼. 나 저거 못 견뎌. 알지?’

자잔은 힘겹게 끄덕였다.

―큰일이야!

그때 한 소식이 날아 들어왔다. 들떠 있던 혁명군 내부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지?

―서쪽, 서쪽이 황무지가 되었어……!

―서쪽은 원래 황무지였어. 그래서 움 님이 권속들과 그곳에 자리를 잡으신 거고.

―그게 아니라! 폭군의 군사가 와서 맹독과 상어를 풀고, 땅을 아작 내고 있다니까!

데아의 표정이 설핏 굳었다.

―저건 경고야.

데아는 자잔의 말에 공감했다.

―뭐?! 그곳의 2세대 인어님이나, 다른 권속들은!

―없었어……. 이미 다 사라져 있었어.

―빌어먹을 트리야가!

콰앙!

유리가 식탁을 그대로 두동강 냈다.

―그, 그분들은 그러면 다 어디로 가신거지?

―모르지만, 혁명군 내부를 조금 더 돌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만약 이곳으로 오시면 우리는 최대한 문을 열어 그분들을 반겨 드릴 의무가 있으니까!

시끄러운 외부를 뒤로하고, 데아는 자잔을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부는 적막뿐이었다.

“안녕, 내 작은 주군.”

저 멀리 피파글랜이 씩 웃으며 데아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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