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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06화 (106/223)

※ 106화

동 시간, 데아는 조금 후회 중이었다.

‘생각보다 인원이 너무 많아!’

아예 예전처럼 인어들을 몬스터라고 생각하고 썩둑썩둑 베어 넘겨 숨통을 끊으면 편할 텐데, 어떻게든 살상을 줄이기 위해 급소를 피해 공격을 하다 보니까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1공대에서 지원이 왔다!

―저 인어를 죽여!

1공대! 저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의미심장한 표정의 링과 묘하게 긴장된 기색의 퍼블리였다.

그 외에도 재판소에서, 그리고 트리야의 뒤에서 종종 보기만 했던 인어들이 딱딱한 곤봉을 들고 위협적으로 날아왔다.

링은 어차피 첩자니까 위기의 순간에는 데아를 도울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인어가 있었다. 하지만 데아는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진짜 성가시게…….”

할 일이 더 늘어서 짜증이 날 뿐,

“경배야, 아까 분명 말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은 말이 없어?”

―…….

경배 새끼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데아는 경배를 고쳐 잡고는 몸을 낮췄다. 인어의 몸에는 익숙해졌다. 이제 남은 건, 모두의 시선을 가릴 법한 한 방이었다.

데아는 경배에 모든 마력을 쏟아 부었다. 검의 길이가 더 길어지고, 파동이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모두 준비해!

―네!

1공대 소속 간부들이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데아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화력으로 바른다!

‘잠깐, 그런데 머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마력을 너무 많이 쓴 탓인가? 아까부터 머리가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데아는 감겨 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고작 이걸로 몸이 이렇게 피로해진다고?

―이제야 흡수가 되고 있어서 그래. 자기야.

‘뭐……?’

―놀라지 않아도 돼. 태초의 고목에서 흡수한 자아가 드디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거니까. 물론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경배의 말은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데아는 머리를 울리는 육중한 충격과 함께 고꾸라졌다.

―샤샤!

그때, 자잔이 뛰어들었다. 인어들의 꼬리를 향해 온 마력을 휘두르다 쓰러진 데아의 상체를 감싸고, 그대로 빙글 돌아 뒤를 보호했다.

―왜 그래?! 정신 차려!

자잔은 저들이 품에서 꺼내든 것을 한번에 알아보았다. 1공대 간부에게만 주어지는 수중 폭발물. 생포가 어렵다고 판단되어지는 변절자나, 하급 인어를 그대로 즉사시키는 맹독이 든 폭탄이었다.

―하필 이럴 때……!

위험했다. 샤샤를 지켜야 한다.

빙글, 자잔은 데아의 어깨를 껴안고 손을 뻗었다. 갑작스러운 인어의 난입에 1공대 간부들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일순, 거대한 압력이 들이닥치고 데아와 자잔의 후드가 뒤로 넘어갔다.

턱!

자잔이 데아의 후드를 붙잡아 준 덕분에 데아의 후드는 끝까지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자잔의 얼굴은 그 모든 이의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권태로움을 품은 창백한 얼굴과 깊은 녹안, 구불거리며 이마까지 내려오는 젖은 머리카락.

―뭐……!

링과 퍼블리 그리고 수많은 1공대 간부들의 눈이 커졌다.

저들이 훌쩍 커진 나를 알아봤을까? 자잔은 고민하다 관두었다. 알 수 없다. 자잔의 손바닥이 그대로 앞으로 향했다.

맹독을 몰아내야했다.

―충격파.

터엉―!

―으아악!

―뭐, 뭐야! 저놈은 설마―!

―자잔인가? 하지만 분명 그 버려진 권속 놈은……!

강한 충격에 얻어맞은 인어들이 일순 뒤로 퍽! 밀려났다. 데아와 또 다른 백성들로부터 맹독을 몰아냈지만 그 과정 속에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던 자잔은 재빠르게 헤엄쳐 자리에서 벗어났다.

머리가 아프다.

‘제기랄, 잘못 행동했어. 충격파를 더 일찍 썼어야 했는데……!’

제이제이와 유리는 지원을 요청하라는 명목 아래, 혁명군으로 먼저 보냈다. 자잔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달렸지만 추격대는 더 빠르게 거리를 좁혀 왔다.

―안 돼. 안…….

정체절명의 순간, 차가운 손이 자잔의 코와 입을 덥석! 잡아 막았다.

―어……?

그건 데아의 손이었다.

―샤……!

“마셔.”

자신의 입을 막은 데아의 손, 그 사이로 깨끗한 마력이 흘러들어오더니 이내 독이 스며들었던 자잔의 정신이 말끔해졌다.

―…샤샤! 정신이 들어?

그런데 데아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데아는 가만히 멍을 때리더니, 자잔의 팔을 툭, 밀어 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인어들을 한 번, 그리고 자신의 손을 한 번 그리고 자잔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작게 키득거렸다.

짧게 흔들리는 머리카락 아래, 몽환적인 미소가 걸쳐졌다.

“네가 날 구한거니?”

데아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부드럽게 웃었다.

자잔은 표정을 굳혔다. 데아의 검던 눈동자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건 직감이었다. 자잔은 당장 도주를 멈추고 데아와 멀찍이 떨어졌다. 멈춰선 사냥감들을 향해 달려오는 추격대가 있었지만 자잔은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아니, 그건 두렵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저기 달려오는 1공대 간부들이 마치 활활 타오르는 횃불에 뛰어드는 초파리처럼 느껴졌다.

“기특하네.”

데아에게서 압도적인 존재감이 피어올랐다. 당장이라도 압사당할 것 같았다. 자잔은 버겁게 호흡했다. 그건 고요하지만 폭력적인 힘이었고, 동시에 인어를 끌어당기는 죽을듯한 매력이었다.

―누구야.

자잔은 당장 데아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누구냐고!

“너는 트리야와 닮은 듯 다르지.”

뚝, 그 말은 자잔을 한 번에 입 다물게 만들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네가 그 애보다는 더 행복해질 거라는 거야.”

톡, 얇은 검지손가락이 자잔의 코를 치고는 떨어졌다. 그건 예언과도 같았다. 그리고 자잔은 그 한마디로 눈앞 존재가 누구인지 완벽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깨달았다. 왜 그토록 도망가고 싶었는지, 눈앞 존재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는지, 동시에 왜 지독한 이끌림을 느꼈는지.

―태초.

하얀 눈동자의 데아가 자잔을 돌아보았다. ‘왜 불러?’ 데아의 입모양이 움직였다. 살풋 따라오는 미소는 덤이었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고성, 푸른 피비린내, 여전히 수중에 남아 있는 맹독의 냄새, 붕괴된 비석, 아수라장이 된 광장.

그리고 그 중앙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추격대를 감상하는 한 인어.

자잔은 이대로 쓰러져 기절하고 싶었다.

◈          ◈          ◈

비석의 붕괴는 상징적이었다.

몸은 컸지만 여전히 어렸던 자잔의 머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그리고 눈앞에서 샤샤의 몸에 들이닥친 거대한 존재감을 확인 한 순간, 자잔은 인정하기로 했다.

어쩌면 트리야, 내 주군은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샤샤’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내 자아만 이렇게 살아나는 일은 별로 없는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샤, 샤샤는 언제 돌아오는 거…….

자잔은 말을 더듬었다.

―…건가요?

“나도 몰라, 아가야, 두고 보면 알겠지?”

‘아, 아가?’

태초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고는 검을 소환했다. 데아가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쥐고 있던 그 검이었다.

“이것도 참 이상하고 신기해. 벌써 이렇게나 성장하다니. 예상보다 나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 자기야?”

―자, 자기……?

자잔이 화들짝 놀라던 말던, 데아의 몸을 가진 태초는 초연했다. 그제야 자잔은 저 말이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

“왜 화가 났을까, 대답도 안 하고. 우리 경배가, 아직도 그렇게 쳐져 있으면 어떡해.”

경배라면 샤샤가 종종 말하던 이름이었다. ‘재수 없는 놈’,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먹는 나쁜 놈’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뒤에 달리곤 하던 무기의 이름이었는데…….

“나 화살이 필요해. 줄래?”

태초는 그렇게 홀로 허공에 혼잣말을 했다. 간혹 웃기도 했다.

―잡아라! 저 인어를 잡아 죽여!

―버려진 권속 놈이 변절자가 됐다! 쌍으로 잡아 가둬!

―탈옥범을 찾았다!!

“응 자기야. 그런데 이거 하나만 알아 둬.”

한참 다급해지기 시작하던 그때, 길고 유려한, 끊어질 듯 얇으면서도 강인한 활대가 데아의 손 안에 생성되었다. 바람이 불 리가 없는데 바람이 부는 착각이 들었다.

자잔은 멍하니 그 활의 끝에 화살이 얹어지는 걸, 그리고 팽팽하게 당겨지는 걸 지켜보았다.

마치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바다의 일부를 퍼 올려 조각한 활 같았다. 찬란하게 빛을 담은 활이 강력한 해류를 품고 회전했다. 아름다움에도 치사량이 있다면, 저것은 도를 넘었다.

“내가 죽은 건 네 탓이 아니야. 경배야, 울지 말렴.”

그건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태초는 위를 향했다. 무너진 비석보다 더 위로, 가장 높은 건물을 박차고 날아올라 발광석을 등지고 세상을 조준했다. 익살스럽게 감은 한쪽 눈이 싱긋 웃었다.

평소 데아와 전혀 다른 표정, 다른 행동, 다른 분위기.

자잔과 데아를 쫒던 1공대 간부들도 일순 목적을 잃고 홀린 듯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때쯤이면 모두가 느꼈으리라. 자신이 거대한 산불을 눈앞에 둔 곤충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샤샤가 아니야…….

그 사실을 깨닫자, 또다시 자잔은 외로워졌다.

‘샤샤는 언제 돌아오는 거지? 이대로 완전히 돌아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버려진 강아지처럼 끙끙 울 것 같았다.

―잠, 잠, 잠깐, 저 화살,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몇 인어들이 토하듯 비명 질렀다.

―사해의 화살……?

‘어?’

자잔은 고개를 들었다.

사해의 화살이라니? 그건 태초의 전용 무기 아닌가. 전설 속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바다의 마력, 그 자체. 자아가 있는 완벽한 살상 무기. 태초가 아닌 자에게는 절대로 스스로를 허락하지 않는다던…….

“그런 이름으로도 불리곤 했지.”

―저건 설마, 태…….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있나! 정신 차려!

―네, 넵!

그 모습을 바라본 건 1공대 인어뿐만이 아니었다.

도망치듯 집으로 향하던 수많은 백성 인어들도 멍하니 위를 바라보았다. 발광석에 등을 맡긴 채, 활을 당긴 인어의 작은 인영, 역광으로 인해 그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텐데도 백성들은 소원을 비는 별똥별을 바라보듯 정신없이 데아를 응시했다.

“많구나.”

태초는 아주 작게 속삭였다.

“그 애가 나에게 뭘 원했는지 알 것 같아. 이것 참, 보러 가야겠는걸.”

정신없이 움직이는 큰 후드, 그 안에서 입꼬리가 죽 올라갔다.

“그나저나 그 애도 이건 예상 못 했을 텐데…….”

그대로 태초는 활에서 손을 놓았다. 지독할 정도로 가벼운 폭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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