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자잔, 네가 말했지. 트리야는 뭔가 이상하다고. 트리야는 스스로의 손으로 이상한 정치를 펼쳐, 제국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인어는 마력에 의존하는 집단이지. 그런 우리가 약해지고 있다는 건 마력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증거야. 더군다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트리야는 그 마력을 한껏 소비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더군.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전에 피파글랜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데아는 눈을 감았다.
“트리야는… 나에게 복수하려는 거야.”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자신을 배신하고 죽은 태초에게 무너져 가는 제국을 보여 주며, 괴롭히려는 거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태초가 뼈저린 무력감에서 허우적대도록.
이 제국을 피로 물드는 폭군의 이유에 내가 있다니. 그것도 중앙에 있다니.
‘하지만 정말 그게 의도였다면, 넌 실패했어. 트리야.’
―샤샤, 뭘 하려고?
자잔의 손은 끝내 데아를 잡지 못했다.
“자신이 없다면 보고만 있어. 제이제이!”
데아는 자잔을 훅 밀치고는 제이제이를 불렀다. 모두가 고개를 숙인 광장 속에서, 데아의 고개만 홀로 우뚝 섰다. 유리와 제이제이가 놀라 뒤돌아봤다.
“나랑 멀리 떨어져 있어. 먼저 가면 더 좋고.”
―잠깐, 데아야……? 도대체 어디를 가려고……?
―잠깐!
그러나 늦었다. 데아는 이제 얼굴을 감싸고 서럽게 흐느끼는 인어를 향해 몸을 내밀었다.
데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간부들이 고함을 지르며 곤봉을 빼어들었다. 광장에 소란이 퍼져 나갔다.
“바다의 경배.”
손에 강력한 해류가 일었다. 순간, 광장에 있던 모든 인어가 데아를 바라보았다.
무차별적인 폭행을 저지르던 간부들은 이제 단도를 꺼내들고 있었다. 단도의 끝이 웅크려 떠는 인어의 목덜미를 향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결국 그 자리일 뿐이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떨고만 있으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제국은 동굴 아래 있기에는 너무도 아깝다.
그리고 트리야의 뜻대로 움직여 주는 건 이제 질색이니까.
―저, 저거 뭐야!
데아는 그 순간 결심했다. 나는 트리야를 막을 것이다. 드넓고 아득한 동굴을 부수고, 이 제국 위로 태양을 선사하리라.
―감히 이 시간에 고개를 들어?! 손에 든 건 뭐냐!!
―후드를 걷고 얼굴을 보여라!
데아는 창을 휘둘렀다. 후드 아래 드러난 입꼬리가 호선을 그었다. 간부들이 당황하며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흐아악!
쏴아아아아―!!
거대한 파장이 일었다.
데아는 멈추지 않고 간부들에게 또다시 창을 겨냥했다. 그들은 이제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고 있었다.
―샤, 샤샤!
저 멀리 자잔이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무시했다. 데아의 창이 더욱 실체화되며 두드러졌다.
[당신의 마력이 충분합니다!]
[당신의 기억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당신의 바다는 아직 OOOOO!]
?
?
?
[의지가 충만해집니다. 당신은 바다와 가까워졌습니다.]
상태 창에 업데이트를 알리는 알림이 울리고,
[마석의 섭취량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의지가 중간 이상에 도달했습니다.]
[바다의 경배(SS)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잠시 스스로에게 벌을 주었던 스킬, 바다의 경배가 기나긴 잠에서 깨어납니다.]
[46% 구현 완료]
[54% 구현 완료]
?
?
?
[63% 구현 완료]
강력한 소용돌이가 광장을 뒤흔들었다. 인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모두는 보았다. 견고하게 쌓아 왔던 제국의 초석, 그 어딘가를 분명히 무너뜨리는 고결한 붕괴를.
“고마워 경배야.”
―뭐를.
삼지창은 더 추상적인 형체로 빛나며 모든 인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끝이 변했다. 유려한 붓처럼, 강렬한 점을 찍는 화백의 마지막 마침표처럼 바다의 경배가 휘둘러졌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확신을 담고,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그 찰나의 허를 찌르러.
63%의 바다의 경배. 무기의 형태가 변했다.
그건 ‘도’였다.
◈ ◈ ◈
그곳의 백성들이 가장 먼저 들은 건 무언가가 썰리는 굉음이었다. 그다음으로 들은 건 누군가의 침음이었으며,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뭐… 잡―!
거칠게 비명을 지르는 간부들의 소음과 바르작거리는 인어들의 꼬리가 그 뒤를 이었다.
―어……?
광장에 드넓은 그림자를 지게 했던 거대한 비석, 그곳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떨고 있던 어떤 인어가 벌떡 일어섰다.
―이봐, 미쳤어? 어서 다시 고개를 숙여! 제왕께서 노하실 거…….
그러나 깊게 고개를 숙인 또 다른 인어는 보고 말았다. 고개를 숙인 건 자신뿐이었다.
―뭐, 뭐야…….
광장에 드리운 그림자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반절의 빛을 정통으로 맞은 인어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모두의 머리를 짓누르던 비석의 절반이 사라져 있었다.
쿠르릉…….
깔끔한 단면, 잘 갈린 칼로 미역을 잘라 낸 것처럼 깔끔하게 베어진 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각선으로 정확히 잘린 비석은 그 단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다가 이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쿠르르릉… 쿠르릉!
그 누가 저것을 베어버린 것인가? 그 어떤 겁 없는 자가 만고불변 제왕의 상징을 절반으로 썰어버렸냐는 말이야! 광장에 있던 모든 인어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쳤다. 답은 없었다.
―맙소사……!
인어는 텁,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강렬한 감정에 당황했다. 경악과 패닉, 그다음으로 따라오는 건 분명한 해방감이었으므로.
―누, 누가, 도대체 누가…….
―맙소사, 무슨 일이…….
콰아앙―!!
큰 소음이 들려왔다. 굉음이 들린 그곳에는 본인의 몸보다 훨씬 큰 크기의 후드를 깊숙하게 눌러쓴 한 인어가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비늘에, 새하얀 손등. 그리고 그 손에 잡힌 강력한…….
검.
한쪽 날만 형형히 살아 있는 그것은 분명 장도의 형상을 한 해류였다.
그 무기의 주변만 바다의 흐름이 역류했다. 그 기이한 이질감에 모두가 시선이 쏠린 것도 한순간이었다.
그 순간 광장의 백성들은 거대한 빛을 보았다. 이름 모를 인어가 뛰어오르며 또 한 번 검을 휘두르자 남아 있던 비석마저 콰과과―!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 것이다.
―잡아! 저 변절자를 사살해!!
―당장 저 자를 죽여라!
이름 모를 인어는 백성들의 틈으로 방향을 바꿔 뛰어들었다.
흐아악! 광장에 빽빽하게 모여 있던 인어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길을 냈다. 간부들에게 공격을 가하는 인어의 팔이 하얗게 빛났다. 그 모든 순간이 억겁처럼 길었다.
그리고, 또 비석이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비석이었다.
그 순간, 드높은 위에 있던 거대한 발광석이 태양처럼 광장을 내리쬈다. 뭐 하나 숨김없이 백성들을 덮친 빛의 끝에는 그 인어가 있었다.
그는 섬광처럼 비산했다. 백성 인어는 눈을 감았다 떴다.
―세상에…….
일순간, 모든 인어들은 이 순간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끝에 서있는 검은 인어 또한.
모든 것의 해방감을 들이마신 순간, 인어들은 차오르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누, 누구야……?
―저, 저, 인어는 뭐지? 설마 그 혁명군인가 하는… 그런 인어인가?
―설마!
그 인어의 움직임에는 낭비가 없었고, 과도할 정도로 날렵했으며, 단정했다. 모든 인어들의 시선이 그 인어의 발도, 검, 손짓 하나하나로 옮겨 갔다.
달려오는 간부를 대적하는 동작은 물결과도 같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퍽, 퍼억!
―크아악!
이름 모를 인어는 심지어 인어의 꼬리와 인간의 다리를 자유자재로 변형하며 전투에 임했다. 유연한 인어의 꼬리로 빠르게 후방을 선점해 베어 올리다가, 뒤에서 또 다른 간부가 자신을 제압하자 곧장 인간의 다리로 변해, 인어의 가슴을 발로 차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때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인어들 모두 기함을 금치 못했다.
―저 변절자를 잡아라!
―잡아라!
백성 인어는 특히 타오르는 것처럼 거세게 움직이는 검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저보다 더 아름다운 검이 있을까? 한 번 봤으니 이제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테지…….
―저 자다!
―잡아라!
상황을 보고받은 간부들이 더 많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백성 인어는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여기 이러고 있으면 안 돼! 한패로 오인받아 다 같이 끌려간다고!
―어서 흩어지세!
―저 인어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방금 그 말은 누가 했소? 마치 변절자인 저 인어를 응원하는 말처럼 들리는…….
그러나 빠르게 말을 뱉던 인어는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주변의 모든 인어들이 그 인어를 서늘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무, 무슨 표정이오? 지금 위대하신 제왕님을 거역하겠다는 뭐, 그런……!
―닥치시게나.
―닥……! 닥치라니! 내가 당신들을 전부 신고해서 넘겨버릴 거야! 분위기가 왜 이러는 건가?
그러나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철저한 무시로 일관된 반응에, 홀로 남은 인어는 충격을 받아 우두커니 섰다가 마침 떨어진 비석 한 조각을 머리로 얻어맞고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