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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102화 (102/223)

※ 102화

“그나저나 므아나도 미련하기 짝이 없지. 샤샤라니.”

“해룡이 서쪽으로 향했다는 전보가 들어왔습니다. 쫓을까요?”

“아니. 움의 거처로 향한 걸 보니 속임수야. 해룡을 잡는 건 포기한다. 이미 주인을 찾은 개는 쓸모가 없지.”

“그렇다면…….”

“해룡이 지나가면 잠복했다가 서쪽에 군사를 보내.”

“네?”

칸나니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트리야의 얼굴에 드리우는 건 살육자의 미소였다. 가장 고요한 분노를 품은 학살자였다.

트리야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이다.

“그리고 너는 이곳에서 왕궁을 지켜라.”

“…….”

“내가 직접 참전해 움을 친다.”

내 주군이 갈 곳을 하나라도 더 막아야지.

◈          ◈          ◈

데아는 저 멀리 혁명군 본부로 빠르게 헤엄쳐 오는 자잔을 보았다.

“자……!”

데아는 반가움에 소리치려 했지만 자잔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뭐야? 간부?

―간부가 왜 여기에?

―피파글랜 님께서 들고 오셨어! 뭐지? 내부 고발자인가?

혁명군 인어들은 간부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자잔을 향해 눈총을 보냈고, 자잔을 알아본 누군가는 고함을 질렀지만 데아에게는 중요치 않아 들리지 않았다.

“자―”

―샤샤!!

데아는 그대로 뒤를 돌아 도망쳤다.

불가항력이었다. 저렇게 사람을 뼈까지 씹어 먹을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데 누가 평온하게 서있는단 말인가?

“비켜, 비켜!”

순간의 생존 본능으로 모여 있는 인어들을 헤치고 밖으로 달려갔다. 이쯤 되면 잡힐 법도 한데, 자잔보다 데아가 더 빨 빠른 덕택에 둘의 격차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결국 쫓고 쫓기다 지쳐버린 자잔이 작은 주먹을 쥐고 서럽게 입을 다물었다. 아차, 당황한 데아는 결국 다시 자잔의 곁으로 돌아왔다.

“고의가 아니었어.”

―고의가 아니긴 뭐가?! 너, 너, 너… 변절자야? 왜 여기 있어? 어떻게 혁명군에 들어가? 미쳤어? 인어도 아닌……!

한참 열이 올라 소리치던 자잔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후 한숨을 쉬었다. 곤 데아에게 작게 속삭였다.

―인간이 인어들의 제국 일에 끼어드는 게 아냐! 태초를 섬기느라 현 제왕을 배반하는 무리와 합을 맞추다니! 그리고 피파글랜은 또 어떻게 안 거야?

“원래 알던 사이였어. 나 헌터 생활할 때 피파글랜이 먼저 접근해 왔거든.”

―경고하는데, 저런 속 모를 인어하고는 친하게 지내는 거 아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자잔이 데아의 손목을 움켜잡고 앞장서 걸어갔다. 물론 자잔은 연약한 열다섯 살 소년의 모습이었고, 데아는 헌터 생활로 다져진 몸을 가진 성인이었기에 그 작은 힘으로 쉽게 당겨지지 않았다.

“…….”

―…….

결국 포기하고 손을 놓은 자잔이 울상을 짓고 데아를 바라봤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침묵했다.

―왜 그러는 거야?

“너야말로 왜 고집을 부리는 거야? 그대로 있었으면 넌 사형당해 죽었어!”

그때 주변에서 눈치를 보던 혁명군 인어 몇 명이 다가왔다.

―데아야, 일단 정기 모임을 앞당겨서 대부분의 인어들을 소집했어. 해룡이 모습을 드러낸 소식은 들었지? 보니까 태초님의 등장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야. 어서 이 사실을 우리의 동료들에게 알려야 해.

―저 간부는 뭐야? 계속 그 옷을 입고 있으면 시비 걸릴 텐데? 아직 우리가 다 온 게 아니거든.

―꺼져! 변절자의 더러운 손을 내 몸에 대지 마라!

퍽!

데아가 빠르게 자잔의 옆구리를 쳤지만 이미 늦었다.

―잠깐, 너 버려진 권속 아냐? 결국 완전히 버려졌구만? 꼴좋다!

―뚫린 입이라고…….

“잠깐, 잠깐!”

데아는 자잔의 뒤통수를 억지로 눌러 인사시켰다. 자잔이 희번덕한 눈으로 데아를 노려봤다.

“내부 고발자야.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래. 모두가 알다시피 왕궁 안에서는 세뇌가 심하니까 모두 이해 좀 해줘. 곧 달라질 거야.”

―뭐? 내부 고발자?!

그때 한 인어가 튀어나와 소리쳤다.

―내 친구는 저 어린 간부의 손에 잡혀갔어! 단지 서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이제 와서 내부 고발자라고? 내 친구 돌려내!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래서 피파글랜에게 비밀리로 데려와 달라고 한 건데…….

―저 인어를 쫓아내! 우리가 너 같은 걸 동료로 인정할 줄 알았습니까?

―누구는 좋아서 있는 줄……!

퍼억!

자잔의 꼬리를 퍽 치며 데아는 짧게 고민했다.

‘자 이제,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간담.’

◈          ◈          ◈

저 멀리 피파글랜이 보였다. 많은 혁명군 인어의 안내와 호위를 받으며 다가오는 피파글랜이 데아를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꽤나 반항이 심한 인어라서요.”

피파글랜이 데아에게 다가와 존댓말로 말했다.

“직계 주군을 닮아 눈에 뵈는 게 없는 건지.”

―뭐? 지금 감히 내 주군을 모욕……!

데아는 서둘러 자잔의 입을 막았다.

피파글랜은 방금 친구를 잃었다고 한 인어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대부분의 반응이 좋지 않다.

‘이건 내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

이 모든 건 자잔이 쌓은 결과물이고, 결국 그가 직접 해결해야 할 갈등이었다.

―안 그래도 이 더러운 변절자들의 소굴에서는 내 꼬리로 직접 나갈 거니까 다들 입을 다무……!

턱!

‘문제는 당사자가 이 일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거겠지만!’

데아는 입을 막고 뒤로 질질 끌고 갔다.

“좋아. 좋아 알았어. 풀어 줄게.”

―지금 당장 풀어!

“지금은 말고.”

데아는 자잔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벽에 턱, 밀었다. 그 박력에 자잔의 입이 합 닫혔다. 데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자잔. 상황파악 못 해?”

―…….

“죽는 게 꿈이야? 그렇다면 그냥 여기서 죽어. 내가 죽여 줄게. 적어도 여기서 죽으면 곱게 묻힐 수 있으니까.”

―…….

“너 간부잖아. 인어 처형 장면 많이 봤을 거 아니야. 참고로 나는 한 번도 못 봤거든. 그런데도 저 멀리 보란 듯이 걸려 있는 너덜너덜한 시체는 보이더라. 너 그 꼴이 되고 싶어? 정말로? 상어들한테 살점을 주는 게 장래 희망이야?”

점점 데아의 말이 빨라졌다. 돌려받지 못할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대가가 사형이라니. 그걸 또 좋다고 받아들이고 있다니. 제정신이야?

“네가 주군 트리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건 나도 알겠어.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알겠어. 그런데…….”

데아는 자잔의 얼굴을 잡아 올렸다. 두 시선이 부딪쳤다.

“그것도 살아 있을 때지. 너에게나 트리야가 태양 같아 보이겠지만, 내 눈에 비친 트리야는 길바닥에 개를 버리는 주인이야.”

토사구팽. 그건 버리는 것만 못하다.

“물론 좋다고 따라다닌 건 너고, 트리야는 무관심할 뿐 악의가 있던 건 아니야. 하지만 어떤 무관심은 생명을 죽이지. 정말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 왜 이렇게 멍청해?”

트리야와 닮은 눈이 자신을 힐책한다. 자잔의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내, 내가 잘못한 거야……? 또?

“멍청함이 죄라면 넌 죄인이 맞지. 그러니까, 더 이상 트리야에게 기대하지 마. 그 폭군은 네 이름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냥 주군을 따를 뿐이야. 네가 뭘 알아. 나는 주군이 다야. 나에겐 주군뿐이라고……!

심장이 가쁜 숨을 안고 뛰었다.

너, 너는 나한테 안 그랬잖아. 샤샤, 너는 나를 지지해 주기만 했잖아. 왜 갑자기 나를 싫어해? 왜 나한테 뭐라고 해?

“싫어하는 게 아냐. 네가 몸만 어릴 뿐, 살아온 세월은 나보다 더 길다는 거 알아. 그러니 제발 정신 차리고 상황을 봐! 왜 사형 선고를 받고도 돌아가려 해?”

―…….

“네가 그렇게 죽으면, 트리야가 널 인정해 줄 거라 생각했어? 조금의 죄책감을 가지며 간혹 그런 권속이 있었지, 기억이라도 해줄 거라 생각했어?”

―…그래서 이제는 날 이해하기 싫어?

자잔의 손은 이제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데아의 얼굴이 구겨졌다.

―너도 내가 싫어? 날 버릴 거야?

“아냐. 하지만 너 보면 안타깝고 화가 나서 열이 머리끝까지 올라와.”

―네가 뭔데 나를 그렇게 생각해? 네가 뭔데 판단하는데!

“내가 트리야를 대신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찾아오는 정적. 데아의 말에 자잔은 한 대 세게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데아는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뭐?

“나도 몰랐어. 나도 최근에야 알았어. 그런데 말하자면…….”

―말하지 마.

“해룡을 풀어 준 건―”

―말하지 마!!

데아는 직감했다.

자잔은 알고 있었다. 피파글랜에게 안겨 오며 무슨 대화가 오고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잔은 저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을 내렸다.

‘그리고 회피했지.’

“왜 모른 척해? 너도 짐작했잖아?”

어느 날 갑자기 자란 자잔의 몸, 인간이면서 인어이기도 한 이상한 샤샤, 트리야의 의뭉스러웠던 태도, 말도 안 되는 아홉 번째 인어라는 소문, 특별 대우.

―나는 아무것도 몰라. 모른다고!

“트리야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회피하는 거야?”

평생을 바친 애정이 정말 보답받지 못한 애정이었다는 진실을 직면하기 괴로워서?

―닥쳐, 닥쳐!

“왜, 이제 트리야를 향한 충성을 접어도 괜찮을 때가 되었다는 게 두려워?”

―닥치라고 했잖아!!

자잔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대로 도주를 시도했지만 이내 데아의 손에 붙잡혔다.

“말 끝나기 전에는 못 가. 너 분명 왕궁으로 돌아가서 잡아가 주세요, 할 거잖아!”

―그 말을 믿으라고? 지금 나 보고? 너는 인간으로 살아와서 모르겠지만 내가, 내가 주군 트리야 님만을 바라본 세월만 벌써…….

자잔의 녹색 눈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심해를 닮고, 트리야를 꼭 빼닮은 하나뿐인 권속은 오래도록 울었다.

―90년이 넘어…….

“…….”

―인어에게는 긴 세월이 아냐. 알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너무 길게만 느껴져서…….

자잔의 삶은 기나긴 기다림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트리야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썼던 세월이었다.

데아는 손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모든 이의 사각지대, 버려진 권속이라 천대받고 무시당하면서도 자잔은 인정받겠다는 열망 하나로 아등바등 싸워 왔을 것이다. 익숙하게 괴롭힘을 쳐내고, 악의 섞인 말을 들어도 익숙하게 되받아쳐 줄 만큼.

그럼에도 트리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겠지. 이건 누가 더 잘못했다 말할 부분은 아니었다. 트리야는 그저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으니까.

어쩌면 트리야는 그런 맹목적인 헌신을 싫어했을 수도 있었다. 혼자 그의 눈에 띄려고 노력하는 자잔을 볼 때마다 ‘쟤는 왜 저럴까’하며, 포기도 모르는 찰거머리라고 자잔을 질색했을 수도 있다.

데아는 오래 고민했다.

이걸 잘못이라 칭할 수 있는가? 아니었다. 정답은 빛무리처럼 손바닥에 스며들었다가 사라졌다.

이건 인어의 본능이었다. 권속이 주군을 갈급하는 건 본능이었지만, 주군은 권속을 본능처럼 갈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책임자는 더 위로 올라갔다. 이런 본능을 만든 최초의 인어. 태초.

나.

하지만 지금의 태초는 기억이 없다.

데아는 휙휙 생각을 털어냈다. 태초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을 거다. 꿈을 보아하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 권속들에게 사랑을 뿌렸더만, 하필 첫 번째 권속으로 돌연변이 트리야가 얻어걸릴 줄 누가 알았겠나.

그러나 조금의 도움은 줄 수 있겠지. 그때 그렇게 뿌린 광활한 애정을 보여 주는 건 가능할 것이다.

누가 더, 누가 덜, 그런 건 무의미하다. 태초의 애정은 바다와도 같아서 갈라서 나누지 못하니까.

단지 사랑받고자 하는 이 스스로가 뛰어들어야 할 뿐.

“나한테 와.”

자잔은 오래되고 지친 충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충심의 이름은 목을 매는 기다림이었다. 그런데 방금 그것이 무너졌다. 데아는 기다림의 조각을 안아 올렸다. 안아서 다독였다. 서늘하고, 다정한 온기가 감겨들었다.

데아는 자잔에게 바다를 보여 주었다.

“내가 너를 가장 강한 인어로 만들어 줄게.”

트리야가 가장 강한 인어이듯이.

“너의 번영을 약속해 줄게.”

감옥에 갇힌 너에게 내가 말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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