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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91화 (91/223)

※ 091화

―제법이구나!

―샤샤!

위력적인 곤봉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베르헴의 목표는 이미 한 번 가격했던 데아의 뺨이었다. 하지만 데아는 이미 한 차례 공격당해 퉁퉁 부은 뺨을 향해 날아오는 곤봉의 끝을 미끄러지듯 툭, 밀치고는 밑으로 슬라이딩했다.

그리고.

―트헉!

―아악! 베르헴 님!

―아니, 아니 어떻게 저곳을!

창 손잡이 끝으로 툭! 사타구니를 으깼다. 그러자 베르헴의 눈이 시뻘게졌다.

군중들이 안타까운 비명을 질렀다.

―우와, 대박!!

진짜 퍼블리의 옆에서 과자를 까먹던 인어도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 상도덕도 없는 인어 같으니!

―용서하지 않겠다!

―샤샤.

자잔이 데아의 손을 확 잡았다.

―이미 네가 이겼어. 여기서 소란을 더 피웠다간 재판까지 회부될 가능성이 있어. 네가 ‘퍼블리’라고 알고 있던 그분이 너를 비호해 줄 수도 있지만, 그분은 변덕도 강하신 분이니까…….

“…이미 늦은 것 같은데,”

―?

데아와 베르헴의 대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퍼블리는 재빨리 군부 통신 소라를 꺼내들어 상부에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이내 진지한 얼굴로 그 옆의 동료, 링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링도 우뚝 표정을 굳히더니 과자를 품에 집어넣고 벌떡 일어서는 게 아닌가.

―비키십시오. 1공대 간부입니다.

퍼블리가 소형 뿔피리를 꺼내 우우우― 불자 구경하던 백성들이 창백하게 질려 혼비백산 도망쳤다. 그때, 툭! 달아나던 인어 한 명이 링의 어깨를 실수로 쳤다.

―히이익! 죄, 죄송합니다 간부 님! 용서해 주세요!

그러곤 바닥에 머리를 박고 덜덜 떨었다. 아까 신나게 싸움을 구경했던 장면과는 딴판이었다.

링의 눈이 순간 차가워졌다. 그러나 그 서늘함은 머지않아 사라졌다.

―…괜찮습니다. 일어나세요.

장난기 넘치는 방금 전과는 딴판이었다. 데아는 어느덧 아무도 없이 텅텅 빈 도서관 입구에 장승처럼 선 두 명의 인어를 마주했다.

―방금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공용 시설에서 큰 소란을 야기한 죄, 기물을 파손한 죄, 그로 인해 1공대의 명예를 실추하고, 제왕의 위신을 떨어뜨린 죄.

―아니 퍼블리, 링! 이러기야? 우리 같은 동료잖아 어? 쉽게, 쉽게 넘어가자고~

―군사 재판에 가담자 전부를 회부하겠습니다. 이는 칸나니아 님의 의지이십니다.

우뚝, 사람 좋게 웃던 베르헴의 미소가 뚝 굳었다. 자잔도 창백하게 질렸다.

―뭐?! 말도 안 돼!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왜 갑자기 칸나니아 님이?

―맞아요! 이런 단순한 소란에 재판이라뇨! 왜!

상황을 이해 못한 건 데아뿐이었다.

“뭔데? 그게.”

―그건 말이죠, 여러부운~

링이 건들거리며 가볍게 웃었다.

―여러분들이 감히 건들지 않아야 할 분에게 손을 댔기 때문이랍니다. 제왕님이 뿔이 나셨어요.

―뭐… 뭐?

―자아, 자, 가담자는― 1공대 소속 간부 ‘베르헴’, ‘자잔’. 그리고 2공대 소속 간부 ‘다니’, ‘첸’, ‘의하’, ‘올라이니’, 그리고…….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쭉 명단을 읊던 링이 데아에게 고개를 휙 돌렸다. 샐쭉, 얄팍하게 눈꼬리가 올라갔다.

―성함이?

“…샤샤.”

―네네. 샤샤 님까지. 샤샤 님은 재판에 들어가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명백한 특별 대우에 베르헴과 다른 간부들의 표정이 파랗게 질렸다.

“잠깐, 자잔은 아무것도 안 했어!”

―보고도 말리지 않은 건 큰 죄니까요.

‘천연덕스럽게 간식이나 까먹던 네가 할 말은 아닐 텐데!’

그러나 때는 지나갔다. 베르헴은 이빨까지 딱딱 두드리며 떨고 있었다. 뒤의 2공대 소속 간부들도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자잔, 말해 줘. 군사 재판이라니, 말만 들어도 무섭긴 한데, 왜 저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거야? 설마 그냥 싸운 거 가지고 죽이기야 하겠어?”

―죽여.

“뭐?”

―군사 재판에 회부된 자는 죄명에 상관없이 대부분 죽어.

칸나니아의 명라고 했지만 사실상은 트리야의 명일 것이다. 왕권과 군사가 일치된 사회, 트리야는 제국의 군주였지만 동시에 군대의 총책임자이기도 했으니까.

트리야는 며칠 전에도 목표물을 놓쳤다는 이유만으로 2공대 전원을 죽이고 다시 뽑았다. 인어의 목숨이 정어리보다 가벼운 제국에서, 재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인어가 세상에 있을까?

모든 것을 결정짓는 재판관 자리에는 언제나 트리야나, 그의 충실한 수족 칸나니아가 참여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으리라. 자잔은 물끄러미 데아를 쳐다보았다.

―샤샤. 넌 이 일에 연루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와, 저 인어들은 아닐 것이다.

데아는 질질 끌려가는 자잔을 졸졸 따라가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이해가 안 가. 고작 이게 뭐라고, 차라리 피해 보상을 해달라고 하지……!”

―그런 게 있을 것 같아? 이것이 이 제국의 법도다. 모든 것은 위대하신 군주의 뜻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는 감히 그분을 거역할 수 없어.

“…….”

데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자잔의 표정은 결연했다.

―나는 제왕의 뜻이라면 죽음이라도 각오할 수 있어.

“…….”

―그것이 주군의 뜻이라면…….

“너무 개죽음 아니야?”

데아의 말에 데아와 간부들을 끌고 가던 링이 꾹, 입을 다물었다.

“여기 제국 좀 이상한 것 같아. 너무 기형적이야. 넌 왜 그렇게 맹목적인데? 네가 죽을 수도 있다며? 나 때문에 일어난 소동인데!”

―입조심해!

재판소의 문이 활짝 열렸다. 드높은 재판관 자리에는 처음 보는 근엄한 표정의 인어가 앉아 있었다. 비늘의 색은 얼룩진 잿빛이었다. 은색도, 하얀색도 아닌 재의 색.

여섯 번째 1세대 인어 칸나니아.

―카, 칸나니아 님! 억울합니다! 저는, 저는…….

칸나니아는 베르헴의 말을 묵살했다.

“태초를 위하여!”

귀로 들리는 음성. 저 인어도 1세대 인어다.

―태초를 위하여!

―태초를 위하여!

재판소의 문이 닫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던 인어는 오직 데아 한 명뿐이었다.

◈          ◈          ◈

그곳엔 변호사도, 검사도, 피고인과 증인들도 없었다. 그곳에 있는 건 날선 칼과 펜뿐이었다.

딱 하나 있는 재판관 자리에 우뚝 앉은 인어는 무뚝뚝하게 도서관의 소란을 요약해 줄줄 읊었다. 감정 없는 AI가 국어책을 읽는 것 같았다. 거짓말 않고 X리가 북 치기 박 치기 랩을 하는 게 100배는 더 흥겨웠다.

―1공대 소속 베르헴, 자잔. 위의 일을 저지른 것을 인정합니까?

재판소의 껍데기를 두른 엄숙한 분위기는 허울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란 데아의 상식이 무너졌다. 그곳엔 열띤 논쟁도, 의견 피력도 없었다. 있는 건 일방적인 통보와 수용뿐이었다.

―인정합니다.

―아니, 저는 인정 못 합니다!

베르헴이 눈치를 연신 살피더니 펄펄 뛰었다. 지금만큼은 데아 또한 그의 뜻에 동조하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저렇게 풀이 죽은 자잔이라니. 저러다가 정말 사형 선고를 때려도 ‘네.’하고 이슬로 사라지게 생기지 않았는가.

그래서 데아는 나섰다.

“아뇨, 제가 했습니다!”

나한테 사형을 선고하면 곧바로 이곳을 부순 뒤 자잔만 데리고 이동 스크롤 써서 인간계로 튄다!

―맞습니다! 이 인어가 했습니다!

높다란 재판소 안의 많은 눈이 나를 향했다. 자잔의 얼굴은 설핏 굳었지만, 베르헴은 가슴을 탕탕 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베르헴도 같이 했습니다!”

베르헴이 히죽거리려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저, 저……!

“자잔과 함께 있던 저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제 뺨이 보이십니까? 제가 먼저 맞았습니다! 저는 반격한 것뿐입니다!”

흡사 어린애들이 ‘쟤가 먼저 때렸어요!’, ‘아뇨 쟤가 먼저 시비 걸었어요!’ 서로를 삿대질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데아는 알고 있었다. 이런 무논리와 힘의 서열이 뚜렷한 언쟁에서는 무조건 강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그렇다면… 샤샤. 그대가 도서관 입구 벽을 훼손했다는 겁니까?”

“네! 하지만 저는 도서관을 훼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르헴의 얼굴을 가격했는데 베르헴이 피했습니다.”

내 이름 아는구나. 젠장.

저 멀리 파란머리의 도라안이 날 한심하게 보며 이마를 짚는 게 보였다. 그런데 쟤는 왜 여기 있어? 놀러 왔나?

“그러니 결정적인 원인은 베르헴에게 있지 않을까요? 자잔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베르헴의 입이 턱까지 떨어졌다. 저 멀리 도라안도 기막혀하는 표정으로 꼬리지느러미를 탁탁 쳤다.

“샤샤의 발언을 금한다.”

칸나니아 또한 제 이마를 꾹 누르더니 내 발언권을 금지해 버렸다. 젠장, 목소리 큰 무논리가 통하지 않는군. 생선보다는 똑똑한 모양이지.

데아의 발언권을 금한 칸나니아는 계속 기타 명령문을 줄줄 읊었다. 그리고 결국.

“베르헴과 2공대 소속 간부 다니, 첸, 의하, 올라이니에게 서쪽 구역의 토벌령을 내린다”

‘서쪽구역의 토벌령? 그게 뭐지?’

그러나 베르헴과 그 일당들은 아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즉시 오열하며 용서해 달라 빌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런 극악무도한 자들의 구역에 보내시다뇨! 저희는 위대한 제왕의 충실한 가신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에 의하면 서쪽은 추방당한 인어 ‘움’의 구역이라는 것 같았다. 그곳을 토벌하러 간다는 건 쩍 벌린 호랑이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꼴이라고.

그러나 번복은 없었다. 판결이 내려졌으면 그대로 끌려가는 거였다. 과연 무력과 통제만이 지배하는 곳다웠다. 베르헴과 그 일당이 안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그런데 자잔의 형이 아직 안 나왔잖아?’

데아는 기대에 차 재판관을 올려다보았다.

“야 역시 너는 형벌 심하게 안 받는가 봐.”

―그럴 리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잔은 긴가민가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얼핏 자잔의 얼굴 위로 얇은 희망이 차오르려던 순간.

“1공대 소속 간부 자잔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자잔이 꿈꾸던 일말의 희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뭐?”

재판소에는 번복이 없다. 판결이 내려졌으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였다.

무장한 인어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자잔을 붙들었다. 자잔에게 닿아 있던 데아의 팔이 강제로 떼어졌다. 데아의 멍한 시선이 흔들리다가 이내 드높은 재판관에게 닿았다.

“1공대 간부 자잔의 품에서 해당 물건이 나왔다. 알지 못하는 물건이라고 하진 않겠지.”

그건 작고 납작한 돌이었다. 태초에 대한 정보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돌.

태초의 고목 안에는 오직 태초만이 들어갈 수 있어.

“감히 변절자의 글을 소지한 죄, 소지하고도 은닉한 죄.”

뭔가 잘못되었다.

“제국에서 ‘태초’의 정보를 소지한 죄는 1급 범죄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위대하신 제왕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한 죄로 자잔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이상!”

“내가 발견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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