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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88화 (88/223)

※ 088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은 성공했고, 절반은 실패했다. 데아는 땅을 치고 분노했다. 사유는 간단했다. 간부의 옷으로 갈아입고, 간부인 척을 해서 검문소에 수월하게 들어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의외의 복병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암호는?

‘이, 이중 보안이라니!’

데아가 오늘의 암호 같은 걸 알 턱이 없었다. 더군다나 말을 하는 순간 정체가 탄로 날 터였다. 데아가 말을 안 하고 있자 인어의 미간이 점점 더 깊어졌다.

―오늘의 암호!

‘아 젠장!’

금세 간이 쪼그라진 데아는 긴장했고, 실패를 예감했으며, 동시에 무대포가 되었다.

‘바, 바다의 경배.’

데아는 남의 자식을 밀어서 넘어뜨리고 궁지에 몰리자 부모를 찾는 아이처럼 경배를 찾았다. 효과는 탁월했다.

―쿠아아아아―!!

―뭐야!

―침입자다!

바다의 경배의 위력은 굉장했다.

데아는 검문소를 한 방에 산산조각을 내고 위로 빠르게 헤엄쳤다. ‘잡아라!’ 모두가 데아를 쫓았다.

[타고난 몰이꾼(A):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저, 저 인어, 무슨 속도가 저렇게 빨라!

―세상에! 사라졌어!

데아는 내심 성공을 예감했다.

지상을 찾기는 쉬우니까.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나 탈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던전의 바다는 험난했고, 지나치게 어두웠으며, 깊었다. 데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해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딱딱한 벽에 이마를 박았고, 더듬거리며 방향을 틀다가 심해어의 이빨을 마주했다.

“뭐, 뭐야!”

퍼억!

[심해의 눈(A):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데아의 두 눈이 붉게 불타올랐다. 사방에 어른거리는 하급 인어들의 약점이 온 세상에 잡혔다. 그랬다. 검문소 밖은 하급 인어들의 소굴이었다. 물론 데아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아파요, 바다님!

―바다님이다!

―바다님!

‘어어 그래 조금 비켜 봐!’

추격대는 끈질겼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잘 찾아 데아의 숨통을 조였다. 하급 인어가 데아의 생각을 알아채고 추격대를 몸으로 막았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간부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 시체가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니, 데아도 더 이상 그들에게 막아 달라 부탁하지 못했다.

퍼억!

다섯 번째로 돌부리에 이마를 부딪친 순간이었다. 갑자기 해류가 바뀌더니, 시리도록 차가운 물줄기가 느껴졌다.

‘뭐지?’

―너 진짜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아의 두 눈이 커졌다.

―무모하구나? 이리 와!

작은 손아귀가 데아의 팔을 탁 낚아채고 안쪽으로 끌었다. 데자뷰가 느껴졌다. 분홍색 눈동자를 가진 혁명군 인어, 바로 그 인어였다.

―혹시 몰라 주시했는데, 정말로 저 많은 간부들을 적으로 돌리다니, 배짱이 보통이 아니야!

인어가 헤엄을 재축하며 빠르게 달려갔다. 인어가 이끄는 곳은 단 한 번도 있을 거라 생각 못했던 구석진 바위틈이었다.

―간부들이 오기 전에, 빨리 이 안으로 들어가!

더러운 해초와 산호가 시야를 가리고, 부산물이 둥둥 떠다니는 외곽지대, 데아는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

―네 행동을 보니까 잘 알겠어. 넌 첩자나 그런 게 아니야. 정말로 간부들에게 죽을 뻔한 거 알아? 내일 아침 처형대에서 너를 볼 뻔했다고!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니 발광석이 보였다. 드디어 빛이다. 사방이 눈에 들어왔다.

―지상으로 올라가려 한 거 맞지? 지상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무작정 위로 올라가면 지상으로 못 올라가. 너, 건국 수업 때 뭘 들은 거야? 제국 위에는 거대한 동굴이 있다고! 아무리 올라가 봤자 점점 더 좁아지는 동굴에 갇힐 뿐이야, 탈출이 그렇게 쉬웠으면 인어들이 이미 다 탈주했게?

이런 젠장. 어쩐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장애물도 많더라니, 그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이 인어에게 지상으로 나갈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데아가 몸짓 손짓을 사용해서 물으려던 때였다. 인어가 빙글 뒤로 돌았다.

―자. 통행증 줘봐. 너, 간부한테 통행증을 훔쳤지?

데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통행증을 보여 주었다.

―확실하군.

‘위로 올라가야 해!’

데아가 손짓으로 빠르게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인어가 알 법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나도 위로 올라가는 방법은 몰라. 1세대 인어나, 간부들만 알거든.

젠장, 역시 자잔을 회유해야 하나. 낌새를 보면 절대 허락안 할 것 같은데, 사정사정하면 봐줄지도…….

―하지만… 오래된 인어님들도 알지.

‘오래된 인어들?’

데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인어가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나는 사실 태어난 지 87년밖에 안 된 인어라서 아직 오래된 인어가 아니야. 그런데 네가 상상도 못할 고귀한 분들도 계시거든. 많게는 수천 년, 적게는 600년 넘게 사신 인어들이지. 그분들은 알거야. 날 따라와. 네가 혁명군에 들어온다면 그분들이 길을 알려 줄 거야.

‘87년? 천 년? 600년?’

저세상 시간관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네가 검문소를 터뜨린 걸 봤어.

인어의 분홍색 눈이 더 짙게 빛났다.

―네 힘은 정말이지… 놀라워. 네가 혁명군이 되어 준다면 폭군 트리야가 공포 정치를 펼치는 제국의 미래는 마냥 절망적이지 않을 거야. 부탁이야. 우리의 힘이 되어 줘.

그럴듯한 작업 멘트였다.

솔직히 데아는 조금 혹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곧 떠날 이방인이다. 이 제국에 이렇게까지 깊이 관여할 생각은…….

그때, 나비의 날갯짓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과연 네가 이방인일까?

‘어?’

데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방금 무슨 소리지? 방금 그 음성은 분명…….

―벌써 가려고?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단다……. 그러니까 지금 나가면 아쉽지.

놀이동산 정문에서 마주한 두 번째 게이트, 그곳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똑같았다. 탈출 직전 뒤에서 끌어당기던 무형의 힘, 그 근원의 목소리.

그 순간, 데아는 기이한 확신을 했다.

‘이 주변에, 내가 찾고자 하는 비밀의 열쇠가 있어.’

툭툭,

―어? 왜 쳐?

그때, 데아는 보았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 하얀 빛 무리를.

사아아아아―

그것이 하늘하늘 손짓했다.

‘음성의 주인공은 바로 저 빛무리야.’

데아는 확신에 차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왜 그래? 뭘 봤어?

그러나 빛 무리는 곧 사라지고 없었다.

―너도 여기서 환각 같은 거 봐? 괜찮아 여긴 원래 그래. 여긴 ‘태초의 고목’이 있는 곳이거든.

‘태초의 고목?’

―태초가 제국을 세울 때, 혹시 모를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담아서 모아 둔 성스러운 고목이지. 어마어마하게 커서 수면 아래로 보이는 건 뿌리뿐이고, 신비로운 힘을 담았기 때문에 수천 년을 물속에 있어도 썩지 않아. 물론 다 옛말이야. 재난은 바로 지금인데, 고목은 잠잠하거든.

인어는 조금 씁쓸해 보였다.

―물론 우리는 기적을 기다리고 있지만…….

‘태초’라니. 초대 제왕의 이름은 왜 또 나오는 가.

음성과, 빛무리. 그리고 태초…….

‘우선 그 태초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야겠어.’

―이곳이 바로 혁명군의 본거지로 가는 길이야.

데아는 조용히 발견한 정보들을 곱씹었다.

‘태초’라고 하는 초대 왕이 있었는데, 100년 전에 죽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현 제왕 트리야가 군림했다. 그런데 트리야는 폭군이었고, 독재를 펼쳐 무고한 인어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했다. 그에 반발해서 나온 게 ‘혁명군’

‘혁명군’은 ‘태초의 고목’근처를 본거지로 삼을 만큼 태초에게 충성을 바쳤다. 그리고 그들은 ‘태초’가 돌아올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왜?’

혁명군은 태초에 대해 뭘 알고 있길래?

데아는 주먹을 쥐었다. 바로 이걸 알아내야 했다.

‘나는 태초에 대해 조사해야 해. 거기에 실마리가 있어.’

데아는 기묘하게 고양되는 기분을 느꼈다.

‘태초’를 알아내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혁명군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왕궁에서는 나를 속이고, 주목하는 사람 천지였지만, 이곳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왕궁 도서관 같은 곳을 가서 몰래 서적을 찾고, 이곳에도 와서 정보를 들으면?

내가 이위로의 손을 잡고 이곳에 넘어온 목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응? 뭐야……. 혁명군에 들어온다고?

데아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인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져 갔다.

―잘 생각했어!

인어가 기쁜 미소를 짓는 동시에 굳게 닫혀있던 동굴의 끝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참, 그 간부 옷은 갈아입는 게 좋을 거야. 이걸 대신 입어.

멈췄던 물의 흐름이 다시 유동적으로 변했다.

―자 그러면… 혁명군의 본부에 온 걸 환영해, 신입.

밝은 빛이 만개하는 실내. 그곳은 수직으로 세워진 독특한 형태의 마을이었다. 하늘과 땅이 없는 신비로운 마을, 그곳에서 군집 생활을 하는 인어들이 고개를 디밀었다.

―유리! 저 애가 너가 말한 그 애야?

―이름이 뭐니?!

―물어보지 마! 이 애는 말을 못해!

저돌적으로 말을 거는 인어들을 말리던 분홍색 눈동자를 가진 인어, 유리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춰 빠르게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을 모르네. 나는 유리야.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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