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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87화 (87/223)

※ 087화

데아는 ‘퍼블리’와 내내 대화하며 꽤나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째, 제왕에 준할 정도로 신분이 높은 인어가 있는데, 그들이 바로 1세대 인어라는 것.

둘째, ‘퍼블리’에겐 어렸을 때 헤어진 가족이 실제로 있다는 것. 아마 동생이 아닐까?

그리고 그 가족은 어쩌면… 나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것.

데아는 맨 팔을 박박 긁었다. 설마 이 모든 일련의 다정한 행위가… 나를 속이려고, 꿍꿍이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나를 그 동생으로 오해하고 있어서 그런 거면 어떡하지?

데아는 고개를 벅벅 저었다. 아니었다. 그렇기에는 ‘퍼블리’는 데아가 인간이라는 걸 알았다. 기각.

‘잠깐 혹시, 그렇다면…….’

“혹시 그… 인간들 손에 헤어졌다는 가족 있잖아. 그 가족은 그럼 인간들 틈에서 자랐던 거네?”

“살아 있다면 그랬겠지.”

“얼굴… 몰라?”

“왜 묻지?”

데아는 입맛을 다셨다. 왜 묻냐고? 그야, 그 여부에 따라 내 앞으로의 계획이 달라지니까!

“알지 못해. 아주 오래전에 헤어져서,”

‘퍼블리’가 데아를 향해 살풋 웃었다.

“기억나는 게 머리카락 색밖에 없군.”

유레카! 데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동생의 머리카락이 검은색인가 봐! 한국에 가면 동생만 오천만이라고 착각할 인어네 이거!’

이 바보 같은 인어는 나를 철석같이 어렸을 때 헤어진 동생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어 꼬리를 한 내가 ‘나 인간인데?’소리를 해도 남들보다 태연하게 수긍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들 틈에서 자라났던 동생이, 스스로가 인간이라 착각하고 있는 줄 알고!

바보 같은 인어, 나는 인간이 맞아! 하지만 그 오해는 내가 톡톡히 써먹을게. 마지막 한 톨까지 단물을 빨아 주마.

데아는 사악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속으로만.

그 위에서, 동글동글한 데아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던 트리야 또한 비죽,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          ◈          ◈

‘퍼블리’가 나가고, 문 밖에는 자잔이 고요하게 서있는 새로운 방 안. 데아는 가만히 물속에 둥둥 떠 생각했다.

“강해져서 우리들의 제국으로 와. 왕궁에 누구보다 인간을 싫어하면서 우호적인 척 구는 재수 없는 폭군이 하나 있는데, 네가 와준다면 좀 재밌어질 것 같기도 하니까.”

피파글랜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

만약 그 왕을 만난다면 미친 듯이 튀어야겠지. 제왕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퍼블리’가 제왕이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충실한 동생 연기를 해서 인간이라는 걸 절대 들키지 말아야겠지.

안 그래도 방금 데아는 ‘퍼블리’ 앞에서 자신도 어렸을 때 헤어진 언니가 있었다는 둥 어릴 적의 기억이 안 난다는 둥, 떡밥 뿌리기 쇼를 하고 온 참이었다.

‘자… 그나저나 아홉 번째 1세대 인어인 척을 어떻게 하지?’

◈          ◈          ◈

“밤이 되면 뿔피리 소리가 울릴 거야. 그때는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이곳의 밤은 위험하니까.”

‘퍼블리’가 가고, 왠지 모르게 풀이 죽은 자잔이 말해 줬었다. ‘왜 위험해?’라는 데아의 물음에 자잔은 ‘간부들이 돌아다니니까.’ 하고 답했다.

“너도 간부 아니야?”

“맞아.”

“그런데 왜 위험해?”

순수한 궁금증이었는데 자잔이 받아들인 바는 다른 것 같았다. 자잔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더니 벌컥 화를 내고 돌아갔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밤이 내렸다. 모든 발광석들이 빛을 줄이고, 저 멀리 울리던 뿔피리의 고요한 소리가 꺼져 갔다. 그리고 데아는 어두운 천으로 몸과 얼굴을 칭칭 감아 감췄다.

“나가자.”

데아는 창틀을 박차고 어둠 속에 몸을 날렸다.

◈          ◈          ◈

―누구냐!

―누구야!!

일탈은 꽤나 오래갔다. 데아는 그림자에 몸을 가리며 한 시간이나 잘 숨어 다녔다. 그러나 한순간의 실수로 거리 순찰을 가던 간부들에게 발각되었다.

물론 데아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잡아 봤자 어쩔 건데. 데아는 이 제국의 아홉 번째 1세대 인어였다. 모든 귀족이 잘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오늘 두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였다. 데아는 ‘퍼블리’와 자잔에게 변명을 하기는 조금 싫었다. 많이 불편했다.

이래서 조용히 나갔다가 들어오려고 한 건데…….

물론 오늘 밖으로 나가 얻은 수확은 있었다. 지상에 올라가기 위해선 수직 검문소를 지나야 했고, 그 검문소를 지나기 위해선 통행증이 필요했으며, 통행증은 간부들에게만 주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잔한테 훔치는 건데.’

물론 자잔은 도끼눈을 뜨고 꿈 깨라면서 나를 노려보겠지.

그러니까 지금 나를 잡기 위해 뛰어오는 저 간부의 통행증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좋아 계획은 다 짰다.

―쫓아라!

―저기로 갔다!

“뭐야,”

달리고 달리다 보니 또 길을 잃었다. 사방이 막혀 있는 막다른 길이었다. 여기 근처는… 무슨 토끼 굴처럼 길이 이어진담?

‘어쩔 수 없어. 지금 반격하는 수밖에.’

“바다의 경배.”

달려오는 간부는 총 다섯. 데아는 손아귀에 회오리를 쥐었다.

‘다섯, 한번에 공격할 수 있지?’

데아가 물었지만 경배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상하다. 이상하게 경배는 이곳 게이트에 들어온 후부터 부쩍 말을 걸지 않았다.

‘별일 없겠지.’

―잡아라―!!

간부들이 데아에게 달려들던 때였다.

번쩍!

“?”

―!!

근처를 밝히던 발광석이 훅―! 꺼졌다. 순식간에 사위가 어두워졌다.

‘뭐, 뭐지?’

간부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데아는 느꼈다. 누군가 자신의 팔목을 끌어당겼다.

―여기로 와!

“?”

얇은 미성, 데아는 홀린 듯이 이끄는 대로 헤엄쳤다.

―어쩌자고 밤에 거리에 나온 거야? 간부들에게 끌려가서 죽고 싶어?

“…….”

―이 제국의 백성이라면 저번에 처형 장면을 봤을 텐데! 잔혹하게 죽은 인어들을 기억해? 그 인어들처럼 되고 싶어서 환장한 것도 아니고……. 아직 어린 인어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나 무모할 수가…….

‘누, 누구세요?’

데아는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무작정 달렸다. 저 뒤에서 사냥감을 놓친 간부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어디 갔어!

―이 근처를 찾아라!

―아마, 저 간부들은 우리를 못 찾을 거야.

으슥한 곳에 와서야 손목이 풀렸다. 상대는 분홍색 눈동자를 한 작은 체구의 인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데아보다 더 어린 것 같았다.

―자, 솔직하게 말해 봐. 이 ‘들짐승의 거리’에는 왜 온 거야? 심지어 이 밤에!

데아는 이곳이 ‘들짐승의 거리’인지도 몰랐다. 물론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데아는 인간의 말밖에 하지 못하니까 우선 정체를 추측할 수 있는 요소는 지우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면 어떻게 핑계를 대야…….

―혹시… 벙어리야?

데아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렇다면 내가 물어볼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돌리기만 해.

끄덕끄덕.

―넌 누군가를 찾으러 왔나?

도리도리

―너는… 간부들에게 큰 유감을 가지고 있다.

저 간부들이라면 맞지. 끄덕끄덕.

―넌 야망이 큰 인어야?

질문이 조금 이상한데, 일단 도리도리. 나는 야망이 큰 편이 아니었다.

분홍색 눈동자를 한 인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어 질문했다.

―이 제국에서 소중한 자를 잃은 적이 있다.

가윗과 하영주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끄덕끄덕.

어린 인어의 표정이 울적해졌다.

―너는 혁명군에 들어가기 위해 이 ‘들짐승의 거리’에 왔다.

끄덕… 뭐?

―역시 그랬어!

아니, 뭐?

―흠흠, 역시 ‘들짐승의 거리’에 오면 혁명군 본부에 올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온 모양이지만, 아쉽게도 그건 우리가 뿌린 헛소문이야. 간부들에게 착오를 주기 위해 일부러 퍼뜨린 거짓이지.

“…….”

―간혹 이렇게 제국에 소중한 자를 잃은 불쌍한 백성들이 우리 혁명군의 소문을 듣고 들어오곤 해. 괜찮아. 네가 처음이 아니니까. 너, 혁명군에 들어오고 싶구나?

‘에… 예…….’

데아는 의지를 상실하고 침묵했다.

‘혁명군이라니, 아침에 대자보 비슷한 걸 뿌린 단체잖아?’

데아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몰라도 눈앞의 인어는 허리에 짚고 가슴을 폈다.

―하지만 혁명군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

‘혁명군… 인력 부족인가?’

―안 그래도 왕국에 트리야 제왕과 같은 새로운 1세대 인어가 나타났다고 해서 내부가 예민하단 말이지. 강하다고 해서 아무나 들일 수는 없어.

데아가 은밀하게 시선을 회피했다. 인어는 계속 말을 이었다.

―네가 첩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가져와야 해. 그래, 통행증!

‘통행증?’

―척 봐도 약해 보이는 너에게 1공대 간부의 통행증을 가져오라고 하지는 않을게. 3일 후에 2공대 간부의 인증 표식이 달려 있는 통행증을 훔쳐서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와. 그렇게 한다면 너를 믿어 주고, 혁명군의 단원으로 인정해 줄게.

‘이게 뭔…….’

데아가 우두커니 서있자 인어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아! 박수를 쳤다.

―왜 처음 본 인어를 믿어 주는지 몰라 의심하는 눈초리로군. 걱정하지 마. 1공대와 2공대의 간부들과 첩자의 얼굴은 죄다 외우고 있으니까. 너는 아니야. 특히 이렇게 맹하게 생긴 인어가 간부라니, 폭군에게 노망이 든 게 아니라면 트리야가 널 간부로 올리진 않겠지.

“…….”

뭐지? 이 고도로 발달한 돌려 까기는?

―그럼 이만.

인어는 나타날 때와 비슷하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어둠 속, 데아는 고개를 저었다.

인력 부족 혁명군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나는 혁명군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나는 아홉 번째 1세대 인어라고 오인받고 있는 처지란 말이야……!’

하지만 절묘하게도, 통행증은 필요한 것은 맞았다. 데아는 혀를 찼다. 통행증을 구하고 검문소를 넘어서 도망쳐 버려야지.

후다닥!

그리고 데아는 길을 가던 간부의 뒤를 기습해 통행증을 빼앗는데 성공했다.

―으헉!

군기는 빳빳하게 들었는데 영 실력이 어수룩한 게 신입인 것 같았다. 데아는 통행증을 들어 올렸다. 붉은 표식이 찍힌 옥색 돌멩이. 2공대의 표식이 찍힌 통행증이었다.

‘여기에 두고…….’

데아는 쓰러진 간부를 산호 사이에 박아 두었다. 그리고 간부의 옷을 뺏어 갈아입었다. 모자와 곤봉까지 야무지게 착용하고는 자리를 떴다.

‘좋아. 검문소로 곧장 올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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