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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81화 (81/223)

※ 081화

더럽게 적네. 나 사기꾼으로 몰려가려나. 그냥 인간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인어로 변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고 털어놓을까?

그게 제일 안전할 것 같은데, 과연 믿어 줄까? 여기에도 혹시 실험실을 취미로 운영하는 사이코패스가 있으려나?

정적을 깬 건 기리안이었다.

―범상치 않은 가문의 소속 같기는 했는데… 설마.

아냐. 네가 뭘 상상했든 그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러나 표정이 굳어진 기리안은 간수들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간수들은 데아를 흘끔흘끔 보며 후다닥 뒤를 따랐다. 누군가는 데아를 향해 정중한 인사까지 했다.

잠깐, 이거 무슨 상황이야?

‘설마 나…….’

신분 상승했냐? 여기서?

데아는 잠시 바다의 경배로 남아 있는 간수를 기절시키고 이 철창을 뚫고 나갈까 고민하다가 관두었다. 저들은 금방 돌아올 것 같았으므로.

하지만…….

“늦어.”

한 시간 뒤 폭음이 들려왔다. 성질이 급한 데아가 철창을 부수고 나오는 소리였다.

“죄송.”

데아는 재빠르게 기절한 간수 한 명의 옷을 벗겨 입고는 모자까지 야무지게 쓰고 허리에 곤봉까지 찬 뒤 밖으로 나섰다.

‘지금이 몇 시지?’

깊은 밤인 것 같았다. 데아는 꿈틀꿈틀 헤엄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 이 물고기 꼬리 진짜 적응 안 되네!’

사실 징그럽기도 했다.

이런 어류의 하반신이 나에게 달려 있다니…….

데아는 최대한 아래쪽에 시선을 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봐! 너 걷는 게 왜 그래?

그때 누군가 데아의 등을 탁 치며 물었다.

―꼭 처음 걸음마 배우는 인어 같잖아? 어기적어기적, 뭐 마려워?

이 새끼가…….

―아니면… 혹시 아파?

데아는 입을 꽉 다물었다.

여기서 말하면 들킨다. 나는 인어들의 텔레파시 같은 말을 할 줄 모른다…….

―엥, 왜 말을 안 해. 너 그러고 보니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이야?

데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 간수가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아… 혹시 기리안 님 산하로 들어갔냐? 거긴 허구한 날 신입들 꼬리를 걸고 넘어뜨리고 지느러미를 당기면서 신고식을 한다는데……. 그래서 그렇구나. 불쌍하기도 하지.

기리안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생큐.

데아는 슬퍼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며 훌쩍였다.

―역시 그렇구나. 너 그런데… 꼬리가 무지하게 예쁘다?

그, 그래?

―그래서 더 심하게 괴롭혔나? 하여튼 썩을 놈들이야. 아, 내가 욕했다는 건 비밀이야, 신입. 알지?

그러면서 간수가 눈을 찡긋거렸다.

―의무실은 저쪽이야, 신입. 어서 가. 잘 가.

데아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후다닥 달려 나갔다. 여전히 꼬리가 어색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꿈틀거리니까 조금 적응되는 것도 같았다.

의무실은 무슨, 데아는 이 길로 밖으로 나가버릴 작정이었다.

‘길, 길, 출구가 어디지?’

위이이이이이잉―!!

“……?!”

그때 갑자기 모든 전등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아니, 저게 전등이 맞나? 발광하는 돌멩이에 더 가깝지 않나?

아무튼 발광석들이 붉은색으로 변해 요란하게 색을 뿌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클럽은 아니니까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간수를 기절시킨 걸 발견한 거야.’

이건 비상을 알리는 레드였다. 데아는 모자를 깊숙이 쓰고 최대한 침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서둘러! 죄수가 탈출했다!!

―죄수가 탈출했어!!

젠장, 일부러 내 옷까지 입혀서 감옥 안에 넣어 놨는데 그걸 또 알아챈 모양이네.

수많은 간수들이 데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데아는 그때까지 침착하게 나아가다가 간수들이 코너를 돌아 사라지자마자 미친 듯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문을 열고 왔으니까 분명히 출구는……!’

예상은 적중했다. 데아는 빠른 헤엄으로 출구를 향해 나아갔다.

좋아, 생각보다 쉬웠어. 이대로 밖으로 나가서 애들을 찾자. 분명 지상에 있다고 했으니까 최대한 위로 올라가면…….

턱!

―아니, 너는?

아뿔싸.

누군가의 가슴팍에 데아의 코가 팍 부딪쳤다. 상대는 아까 전에 봤던 그 잘생긴 인어였다.

―너, 너는……!

기리안이 번쩍 눈을 빛냈다.

망했다. 데아는 기겁했다. 저 인어는 내가 죄수라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러나 다른 인어들을 불러올 것이라 생각했던 데아의 예상과 달리 대령이라고 불렸던 그 인어는 조용했다.

―이, 이것이 사랑의 시험인가…….

‘뭐, 뭐라는 거야?’

그는 무언가 각오한 듯이 눈을 번쩍 떴다.

실제로 기리안은 현재 매우 난처했다. 100년이 넘도록 찾아다닌 운명의 상대가 죄수라니, 죄수라니! 그것도 수상쩍기 그지없는 죄수라니!

오랫동안 찾아온 운명의 상대가 험악하기 짝이 없는 감옥으로 다시 끌려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순 없었다. 하지만 기리안은 자신이 명예로운 1공대의 간부임 또한 잊으면 안 됐다.

잠시간 운명의 상대라는 낭만과 자신의 짊어진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던 기리안은 끝내 결정을 마쳤다.

기리안은 새벽 감성에 눈시울을 적실 줄 아는 남자였고, 운명을 믿는 낭만주의자였다.

그는 결국 사랑에 고개를 숙였다.

―그대, 지금 이곳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그분’이 오셨기 때문에,

기리안은 빠르게 속삭였다.

‘그분?’

―당장 뒤로 돌아가! 뒤에 후문이 있으니까, 바로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서…….

“응? 뭐가아―?”

그때 낮은 미성이 들려왔다. 멈칫, 대령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느물거리며 상대방을 쥐락펴락 휘두르는 목소리, 낮고도 변덕스러운 어투. 데아는 곧바로 깨달았다.

‘그분’이다.

대령이 말한 ‘그분’이 제 앞에 나타났음을 깨달은 데아는 본능처럼 재빨리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데아는 순식간에 꼬리 밟혀 휙! 앞으로 넘어졌다.

바다가 한 바퀴 돌았다. 대처도 못할 속도였다.

“으악!”

―이곳이다!

―죄수를 잡았다!

서늘한 곤봉이 넘어진 데아의 머리를 겨누었다. 데아가 허튼짓이라도 하면 곧장 머리를 정성스럽게 으깨 줄 듯 살벌한 기운이 맴돌았다. 저 멀리 자신의 탈출을 유도했던 대령이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저 인어… 도와주려고 한 건 고맙지만 하나도 쓸모가 없었군그래…….’

그래도 내가 여길 나가게 되면 너만은 살려 두고 나가도록 할게…….

데아가 사나운 얼굴로 인어들을 절구에 넣어 달달 으깨고 있는 상상을 하고 있던 때였다. 데아의 시야 안으로 누군가의 푸른 비늘이 들어왔다. 아름다운 남성체 인어였다.

“너야―? 죄인?”

―도, 도라안 님! 여기는 저희가,

“닥쳐. 너한테 안 물어봤어.”

깨끗한 하늘을 닮은 푸른 머리카락, 화려하게 빛나는 귀걸이와 머리장식.

‘무슨…….’

도라안이라고 불린 인어는 꼬리까지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매단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남성체 인어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점은, 푸른 속눈썹이 깜빡거리자 그 안에 박혀 있는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였다.

‘예… 예뻐……!’

환하게 광채가 나는 피부, 혈색이 넘치는 입술과 뺨. 아름답다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피조물이 눈앞에 서있었다.

“인간의 말을 할 줄 안다는 인어가 너냐고―”

그러나 그에게서 뻗어 나오는 기는 아름답지 않았다.

엄청난 마력이 그에게 잠들어 있었다. 그의 흉포한 기를 고스란히 맞은 데아는 물속이 아니었다면 제 등을 타고 비 오듯 주룩주룩 땀이 흘러내렸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인어… 엄청나게 강하다. 하긴 그러겠지, 인간의 말을 하고 있으니까.’

“얼굴 좀 들어 볼래? 혼자 감옥에서 빠져나온 걸 보니 솜씨는 좋다만.”

“…….”

“얼굴 들어 보래도?”

“…….”

“뭐어… 그래. 그런데 친구야, 뭐 하나 알려 주자면―”

늘어지는 말투로 느릿하게 말을 잇던 푸른 비늘의 인어가 싸늘하게 표정을 굳혔다. 데아는 서늘해진 주변 온도를 느꼈다. 꿀꺽, 침이 넘어갔다.

“내가 착하게 말할 때 말을 들어야 고통 없이 갈 수 있을 거다. 두 번 말하지 않겠어.”

푸른 인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얼굴 들어.”

◈          ◈          ◈

태양조차 들지 않는 아주 오래된 바다의 궁전. 수천의 생명을 압살하고도 도도하게 세상을 굽어보는 제왕이 사는 왕궁. 뱀이 똬리를 틀고 사냥감을 기다리는 심해의 끝과 같은 곳은 창백한 무덤과도 같았다.

“해룡을 못 찾았다고.”

“죄송합니다.”

잿빛 머리카락의 무뚝뚝한 인상, 여섯 번째 1세대 인어 칸나니아가 절도 있게 인사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게 몇 번째지?”

“…….”

“칸나니아. 언제까지 네 무능함을 봐줘야 할까.”

오래된 왕궁의 고요한 군주, 트리야가 옥좌에 앉아 턱을 괴었다.

“죄송합니다.”

“해룡은 찾아내는 즉시 죽여. 태초가 없으니 힘은 약해져 있을 것이다.”

“네.”

“그나저나…….”

트리야가 휙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곳은 드넓은 알현실이었다. 고개를 조아린 수많은 시종들이 덜덜 떨며 제왕 앞에 허리를 숙였다.

“문이 열려 있더군.”

하얗고 굴곡진 유려한 손가락이 차가운 문틀을 만졌다.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제왕의 안식처의 문이 열려 있다니. 누가 다녀간 것인가, 문틈에 긁힌 흔적이 있었다.

감히. 겁도 없이.

“누구지?”

트리야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숙인 시종들이 벌벌 떨며 시선을 피했다.

긴 흑녹색 머리카락이 부유하며 흩어졌다. 차가운 표정에 시리도록 하얀 피부. 심해만큼이나 어둡고 푸른 녹색 눈동자.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고 강한 제왕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물의 흐름이 달라졌다. 모두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목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누군가 나서지 않는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시종은 죽을 것이다.

―…….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왕을 알현하는 거대한 홀의 중앙, 금빛 왕관을 머리카락에 엮어 장식한 제왕이 좌중을 훑었다. 그럼에도 귀족들과 시종들은 침묵을 지켰다. 나선다면 모두가 살지만, 나선 그 인어는 죽게 될 거다.

그들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죄, 죄, 죄송합니다……!

그때 누군가가 나섰다.

시종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쳤다. 무거운 정적을 깬 인어는 이번 기수로 처음 왕궁에 들어온 신입 시종이었다. 그가 바닥에 이마를 대고 몸을 웅크려 손바닥을 위로 펼쳤다. 완벽한 복종의 자세였다.

―제왕이시어, 제, 제가 그 곳이 금기의 방인 줄 모르고 감히 문을 열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이 미천한 자를 용서해 주세요……!

―그렇습니다 제왕이시어!

바싹 엎드린 인어 옆으로 누군가 따라 나와 그를 부둥켜안았다. 신입의 교육을 담당하는 고위 시종이었다.

―제가 교육을 충분히 시키지 못한 탓입니다.

“그랬군.”

―예, 예. 제왕이시어, 부디 자비를……!

퍼억―!

시종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순식간에 인어의 푸른 피가 사방으로 번졌다.

대기하고 있던 많은 간부들은 서둘러 마력석을 가동시켜 그 피를 밖으로 내보냈다. 어두운 물속에서 피를 감출 방법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또 물어볼 것이 있지.”

트리야가 손짓하자 간부들이 우악스럽게 시종 몇 명의 멱살을 끌고 제왕의 발밑으로 내동댕이쳤다.

―이, 이 무슨 짓들이오……!

―이, 이보게나, 이 손 놓으시오!

―흐으윽……!

시종들이 서로 부딪쳐 무너졌다. 그들의 옆에 방금 죽은 인어의 시체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당연했다. 트리야는 소음을 싫어했다.

‘비명을 지르는 순간 죽는다……!’

그렇게 끌려온 시종은 다섯이었다.

그들은 꼬리를 돌돌 말아 배 밑에 감추며 허리를 숙였다.

―제, 제왕이시어, 연유를, 연유를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어둠과 정적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차갑게 얼린 칼날로 목덜미를 긁고 있는 것 같았다. 트리야의 오만하고도 잔잔한 시선이 그들을 훑었다.

“금기의 방 안에 있던 ‘그것’의 조각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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