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8화
‘미안하다고?’
데아는 입을 다물었다. 방금 들은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그게 뭐……!
그러나 눈 깜짝할 새에 모든 것은 끝나 있었다. 피파는 우욱, 뭔가를 토해 내더니 나온 작은 구슬 하나를 데아의 손에 쥐여 주었고, 재빠르게 사사삭,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파아앗―!!
“게, 게이트가 닫혔다!”
“클리어했어!”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데아는 손안에 잡힌 마석을 느리게 굴렸다. 1세대 인어의 마석치고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다.
‘마석이 하나가 아닌 걸까?’
게이트가 닫히니 도시를 침수시켰던 물도 동시에 사라졌다. 부서진 잔해는 그대로였지만 그 정도는 양반이다 싶었다.
“데아야, 고개 돌리지 마!!”
그때 백리서가 소리쳤다. 머리가 웅웅거리며 울렸다. 두통이 일었다. 데아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하늘을 부유하는 수많은 드론과 방송 카메라. 그것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 나 지금 후드가…….’
데아의 눈에 절망이 스쳤다. 그건 데아를 마주한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눈부신 영웅을 향한 환호성이 순식간에 비명이 되어 곤두박질쳤다.
모두가 영웅을 향해 욕설을 뱉었다.
“6, 6년 전 생존자잖아……!”
데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현실에 문득 괴리감이 생겼다. 저들은 자신을 평화로운 세계에 내던져진 악귀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런…….”
누군가는 탄식했으며,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다. 아마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고도 모른 척해 주었던 사람들이었겠지. 그런 고마운 사람들만 가득하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현실은 녹록하지 못했다.
―샤, 샤샤의 얼굴이……!
생각보다 어리다는 둥, 차갑게 생겼다는 둥, 말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끝에 고인 건 분명한 적대감이었다.
―인어들이 찾던 6년 전 생존자와 같은 얼굴을 가졌네요?
‘뭐?’
전국으로 데아의 얼굴이 송출되었다.
저 멀리 가윗이 보였다. 짧지만, 가윗의 표정에 적의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까 그렇게 따지면 이 모든 사단은 다 그 사람 때문에 일어난 건데, 지금 코빼기도 안 비치고 있잖아요. 한 명만 희생하면 모두가 안전해지는 건데……. 솔직히 조금… 비겁해요.”
예전에 가윗은 그렇게 말했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하영주에게서도 명백한 갈등이 보였다.
의심만 하며 고민하던 것과 확정되는 건 다르겠지.
‘시발, 시발. 어떡하지?’
누가 냅다 등줄기에 찬물을 부어버린 것 같았다. 가슴이 서늘하게 식었다. 동시에 데아는 분노했다.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했는데……!’
그건 예전부터 엉켜 있던 감정이었다. 애써 모른 척해 왔던 억울함이 빗발쳤다. 데아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 끝이다.
데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백리서가 나섰다.
“데아야, 정신 차려.”
“설마 제 사진이, 6년 전 생존자 사진이 세상에 나와 있어요?”
날 지켜 준다고 했잖아. 절대 노출되지 않게 해주겠다고 했잖아.
데아가 따지듯 백리서의 멱살을 잡았다. 데아도 알고 있었다. 이건 화풀이였다. 그럼에도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백리서가 뒤로 주춤 밀리자 주변 헌터들이 데아를 향해 무기를 들이밀었다. 그중엔 공략 1팀 동료들도 섞여 있었다.
“창 내려!”
백리서가 소리쳤지만 늦었다.
퍽!
데아는 백리서를 밀쳤다. 두 눈이 텅 비어 있었다.
아.
데아는 깨달았다.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이 이제 자신이 되었다는 것을.
“…여례아에서 손을 썼어.”
그렇게 속삭이는 백리서의 표정이 너무 아파 보였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
백리서가 데아의 손을 잡았다. 그 눈이 반짝 빛났다.
“그래도 아직 끝난 건 아니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유출된 사진이 거짓이고, 너를 시기한 사람들의 조작이라고 언급하면 돼. 아직 사회적인 인지도나 평판은 여파 길드가 굳건하니까.”
그럴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데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이미 늦었잖아요.”
“아니야. 안 늦었어. 뒤집을 수 있어.”
“언제까지요?”
데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안전은 물론 좋은 것이다. 후드를 찢겨 나가게 한 피파, 그 빌어먹을 인어의 처분은 일단 뒤로하더라도, 데아는 자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경악하며 욕을 내지른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언니가 나선다면 지금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겠죠. 알아요.”
데아는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오해로 넘어갈 거고, 어쩌면 저한테 따로 사과를 해올 거예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가 평소대로 살 수 있겠죠.”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가 6년 전 생존자인 건 맞잖아요.”
“데아야!”
“리서 언니, 뒤를 돌아서 사람들 표정을 좀 봐요!”
백리서가 뚝 말을 멈췄다. 돌아본 세상에는 데아를 향해 의심과 적대를 뿜어내는 사람들이 수없이 서있었다. 구조된 행인마저 데아를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다정했던 세상이 추락했다. 데아는 구역질이 났다.
내가 누굴 믿을 수 있지?
“…….”
“지금을 넘어가면요?”
“데아야.”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어요.”
권도언은 제가 인어와 조금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실험실에 가뒀다. 가윗은 저를 소름 돋는다는 듯 노려본다.
말을 놓았던 이위로는 둔갑한 인어였으며, 사람들은 이미 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언제가 되었든, 사람들은 6년 전 생존자와 연관이 있을 저를 게이트 안의 제물로 바치려 들 것이다.
데아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 피해 규모를 봐요.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해요.”
대중은 게이트 사태를 그 누구보다 종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감수하겠지. 설사 그게 애꿎은 사람의 희생이더라도.
“제가 틀렸나요?”
“…그러면, 우리를 못 믿으면 인어를 믿게?”
데아의 말이 멈췄다.
“권도언에게 들었어. S급 던전 안에서 벌어졌던 일. 놀랐을 거야. 이해해.”
백리서가 다정하게 데아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데아는 다른 생각을 했다.
‘나는 인어를 믿으려는 걸까? 내가? 그럴 리가.’
“나는 네 편이야. 온 세상을 적으로 돌려도, 나는 믿어도 돼. 그리고…….”
백리서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사실 조금 무서워졌어.”
“…….”
“네가 나한테 실망했을까 봐. 네가 나에게 더 실망할까 봐. 인어를 믿으려면 믿어도 돼. 그렇게 해서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인어를……!”
데아는 발끈해 소리쳤다.
“믿을 수 있을 리가……!”
인간들의 불신이 결과라면 인어의 농간은 원인이었다. 둘 다 신임할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요. 특히 불씨를 넣은 여례아 길드는 확실히 조지고 갈 테니까.”
감히 납치해 가둬 두고 정보까지 퍼뜨린 놈들은 언제가 되어서라도 무너뜨릴 것이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다. 데아는 미끼에 걸려 아스팔트 위로 내동댕이쳐진 물고기처럼 호흡했다.
“하지만 사실 제가 제일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저죠.”
난 도대체 뭐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바라는 거 없어요. 그냥 나는 안전하고만 싶어요...”
그러나 이미 지쳤다. 그만하고 싶었다.
데아는 단지 오빠를 죽인 붉은 인어만 죽이고,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했다. 그뿐이었다. 부귀와 명예, 권력도 상관없었다. 그냥 고요하게 살아가고만 싶었다.
“그럴 수 있어.”
백리서가 조용하게 이끌었다.
“지금 당장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래요. 그런데 제가 안전할 수 있을 곳이 여기는 아닌 것 같아요.”
“데아야, 그럼 어디에 가려고?”
“…저도 몰라요. 하지만 이번 기회로 확실히 알았어요. 여긴 좋지 않아.”
퍽!
그때 백리서가 팔을 들어 올려 뭔가를 막아 냈다. 주르륵 흐르는 그건 깨진 달걀이었다. 근처까지 온 행인이 벌벌 떨며 소리를 질렀다. 백리서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너, 너 때문에 이 인어들이 온 거잖아! 아니야?! 당장 썩 꺼져!”
“그래! 네가 여기에만 없었다면 애초에 인어가 올 이유도 없었는데! 당장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버려! 너만 없으면 여긴 안전해!”
데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백리서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 이상 한다면 제압하겠습니다.”
“인어들은 쟤를 찾는 거잖아! 쟤, 쟤만 없으면 게이트도 없어지고 얼마나 좋은데!”
“영웅이니, 신비주의 헌터니 그 지랄을 해도 결국 원인이잖아!”
이 모든 재앙의 원인.
저 행인들은 빙산의 일각일 거다. 모든 네티즌들과 온 국민의 반응을 데아는 보지도 않고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당연했다. 너무나도 익숙했으므로.
“봐요. 이런데 어떻게 돌아가요?”
데아는 이미 호되게 당해 알고 있었다. 한 번 생겨난 대중의 의심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데아는 인정했다.
나는 지쳤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정도로, 이 세계는 나에게 가치 있지 않다.
“지금 네가 너무 놀라서 그래. 일단 위기만 모면하고 대책을 강구해 보자. 할 수 있을…….”
“뭘 할 수 있는데?”
이위로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리서도, 데아도, 주변의 모든 헌터들도 놀라 고개를 퍼뜩 들었다.
이위로는 가까운 곳에 서있었다. 드론이 몸을 돌리고, 카메라 셔터도 찰칵찰칵, 무수하게 터졌다. 이위로는 울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런 대우를 받고도 여기 있고 싶어?”
그리고 무작정 다가왔다.
“인어다! 이위로야!!”
“공, 공격 태세!”
“위로야.”
“인어들이 왜 그래야 했는지는 가서 설명해 줄게. 제발, 언니.”
이위로가 가로로 손을 쭉 그었다. 그와 동시에 생겨난 건 익숙한 게이트였다. 가까이 왔던 행인과 헌터들이 기겁하며 도로 뒤로 물러섰다.
“흐아아악! 게, 게이트가!”
“나랑 같이 가자.”
하얀 빛무리를 뒤에 둔 이위로가 다정하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들의 바다 아래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어서.”
데아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자 이위로가 손등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물에 빠진 이위로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든 동굴을 찾아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인어라면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었을 텐데 잘도 속였지.
“그런데 그때에는 왜 그랬어?”
데아가 조용하게 물었다.
“뭘……?”
“예전에 모래섬 보스 인어를 잡을 때, 바다로 떨어지는 나를 잡아 줬잖아.”
화살촉이 부러지는데도 놓지 않았다. 그건 인어라는 정체에서 나오는 여유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한 절박함이었다.
“나는…….”
말 잘해. 나는 네 말 여하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 지금 나는 절벽에 몰린 조난자야. 나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있지. 나에게 총을 겨눈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연명하느냐, 아니면.
“그냥 당신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어.”
괴물의 손을 잡고 절벽 밑으로 추락하느냐.
“너는 나에 대해서 아는구나.”
내가 몰랐던 내 정체마저 모조리.
“응…….”
그 말에 모든 시위를 얹고 싶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속으로 생각하자 보란 듯이 답변이 들려왔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
경배의 음성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모든 것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들어가. 자기는 그래도 돼.
이제 때가 된 것 같아.
때.
데아는 이위로의 손을 잡았다. 이위로의 손은 차가웠다. 마치 여름의 바다 같았다. 데아는 기묘한 확신에 눈을 감았다.
괴물의 손을 잡고 바다로 향하자. 바다로 몸을 추락시키자.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아보자. 확실한 방법은 그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