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7화
“주군?”
여파 길드의 헌터 한 명이 의문스럽게 중얼거렸지만 피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또 이상한 말을…….’
1세대 인어는 의뭉스럽다. 언제나 속 모를 말을 하며 사람을 현혹시킨다.
데아는 자신의 키보다 몇 배는 긴 창을 들어 올리며 피파를 겨냥했다. 모두의 이목이 바다의 삼지창으로 향했다.
해류를 고스란히 담은 아름다운 폭풍의 창. 거칠게 회전하는 물결이 위협을 담고 으르렁거렸다.
“겨우 인어 하나 못 해치워서야…….”
저 멀리, 권도언과 하영주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데아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어디 여파 길드 명성 남아나겠어?”
그 말은 기폭제였다.
피파글랜과 데아가 사냥 직전의 포식자처럼 서로를 응시하자 팽팽해진 긴장이 깨졌다.
“어떻게 공중에 서있는 거야?”
“저, 저것도 특수 스킬인가 보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데아는 발밑의 물방울을 밟고 쏜살같이 나아갔다. 단 하나의 사냥감을 향해.
“이런…….”
처음 공격은 불발이었다. 그 무엇보다 빠르게 지상으로 내려온 데아는 창을 휘둘렀고, 피파글랜은 가볍게 그 삼지창을 피했다. 그러나 삼지창은 바다의 일부였고, 휘두른 궤적을 따라 물줄기가 고스란히 튀었으며.
“……!”
그 물줄기는 주인의 의지를 담은 칼날이 되어 사냥감을 찢었다.
퍼어억!!
“……!!”
피파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러나 팔을 스친 물줄기로 인해 푸른 피가 푸학 튀었다. 팔이 너덜너덜해졌다. 피파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쳐졌다.
“이러기는 싫었는데…….”
그가 작게 중얼거리며 손을 펼쳤다.
타닥, 탁!
스파크가 튀었다. 전류였다.
피파가 두른 베일이 휘익, 허공을 스쳤다. 그대로 몸을 돌린 피파가 데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목표는 데아가 아닌, 데아가 방패처럼 지니고 다니는 근처의 물줄기였다.
파지지지지직―!!!
“으아아악!!”
“조심해!”
“모두 모래 위로 올라와!”
전류가 물을 타고 사방으로 튀었다. 근처에 있던 헌터들이 픽픽 쓰러지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들을 건져냈다.
“릴림 헌터!”
“어서!”
백리서가 소환해 낸 얇고 넓은 모래섬이 공중에 생성되었다. 그 위로 헌터들이 끙차 올라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홀린 듯이 데아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걸로는 안 되지!”
데아는 피파의 전류가 다가온 즉시, 모든 스킬을 해제하고 허공에 몸을 날렸다. 그리고 전류가 사라지자마자 다시 피파에게 달려와 창을 손에 쥐었다.
바다의 경배 46% 구현.
그건 단순히 삼지창으로 변한 게 아니었다. 바다의 경배는 말 그대로 바다의 일부임을 증명했고, 그것을 다룰 줄 알았다.
많은 물이 있는 곳에 다가갈수록 힘이 강해졌으며, 그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그로 인해 파생된 물줄기 또한 데아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아직 예전만큼도 아니고 큰 힘은 아니지만, 전투 시에는 이 정도도 쓸 만할 거야.
경배가 속삭였다. 데아는 곧바로 창을 휘둘러 피파의 목을 겨눴다. 연속적으로 전류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때마다 데아는 유동적으로 무기의 존재를 변화시켰다. 손에 직접적으로 창을 쥐지 않아도 공격이 가능하게끔.
[타고난 몰이꾼(A)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기존에 늘어난 속도는 -21(+12), 총 33. 거기서 60이 늘어난 데아의 속도는 90을 돌파했다. 주변 헌터들이 데아의 속도에 충격을 받고 소리를 질렀다.
“안, 안 보여!”
근처에 무사히 대피한 행인들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으며, 방송 헬기의 리포터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신비주의 헌터 샤샤의 전투 장면이다!
그건 모두의 희망이었고, 열띤 기대감이었다.
“이 미꾸라지 같은!!”
데아의 머리가 뜨거워졌다. 피가 정신없이 돌았으며, 맥박이 주인의 흥분을 알아채고 거칠게 뛰었다.
덩달아 창의 형체도 요란하게 변화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런 여유도 길게 가지 않았다. 그건 약점 파훼, 심해의 눈으로 꿰뚫어 본 상대의 약점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인어, 여유를 잃지 않고 있어.
“이 전기 장어 같은 게!”
“장어라니.”
피파가 어깨를 으쓱였다.
“비슷하긴 하지.”
“뭐?”
“내 주군이 먹은 대상에는 장어와 비슷하게 생긴 괴물도 있었으니까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들어줄 가치가 없는 잡담이었다.
데아는 다시금 자신을 향해 전류를 날리는 피파의 손에 맞춰 창을 투척했다. 조금도 젖지 않은 손에서 창이 떨어졌다. 전류를 정통으로 맞은 창이 빛과 같은 파열음을 내며 빛났다. 그리고 그 창은.
채앵―!!
피파의 시선을 가리며 그대로 날아가 그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긴 머리카락 일부가 썩둑 잘려 나갔다. 피파는 겨우 이것뿐이냐는 듯 비웃었다.
그러나 데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다의 경배!”
데아는 창을 연속해서 생성해 냈다. 하나, 둘, 그리고 셋. 허공에서 회오리치는 창이 연달아 한 사냥감을 조준했다.
“만만하게 보면 안 되겠는데. 그렇지?”
인자하게 웃은 피파의 손에서 작은 구 형상의 빛이 생성되었다. 응축된 것처럼 보이는 전류 덩어리였다.
문득 위험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쒜에에에에엑―!!
펑―! 퍼엉―!
“……!!”
데아의 눈앞에서 곧바로 터진 빛 덩어리는 시야를 하얗게 물들였다.
“으윽!”
데아는 자신의 옆구리를 찢는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여기서 질 순 없었다. 그대로 몸을 낮추고 창을 겨냥했다. 점멸된 시야 안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그건 형체가 아니었다. 데아의 숨이 가빠졌다. 그건 피파의 내재된 마력이었다. 붉은 점이 모여든 비늘의 중앙, 타오르는 심장이 보였다.
그건 전류를 닮은 거대한 힘의 원천이었다.
시력을 빼앗기고서야 모습을 드러낸 그의 약점.
[심해의 눈(A):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팡―! 퍼엉―!! 펑―!!
“으아악!”
“내, 내 눈!!”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생생했지만 데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양 눈이 붉게 타올랐다. 눈앞의 1세대 인어를 단숨에 죽일 수 있는 급소가 코앞에 있었다.
그는 온 세상의 살기를 담아 창을 고쳐 잡고 능숙하게 몸을 낮추었다.
데아는 숨을 죽였다. 모든 상황이 느리게 흘러가는 착각이 들었다. 박동하는 붉은 인어의 심장. 그건 마석이었다. 여전히 하얗게 날아가 보이지 않는 시선의 끝, 데아는 다가갔다.
챙―! 채앵―!
지금 여기!
“어?”
그리고 역습이 시작되었다. 놀라 흠칫거리는 피파가 보였다. 표정이 굳었고, 마력이 일순 빠르게 튀었다.
차아악―!
물줄기가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피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 작은 주군은 지금 자신이 나를 어디로 몰고 가는지 알기나 할까?’
피파는 뒷걸음질을 반복했다. 데아는 쉼 없이 공격했고, 피파는 계속 빛 덩어리를 터뜨리며 모두의 시선을 막았다. 데아의 눈이 붉었다.
‘저 눈으로 내 약점을 보고 있을까?’
터억!
피파의 등이 하얀 게이트에 닿았다. 게이트는 여전히 물을 콸콸 쏟아 내고 있었다.
휘익!
피파가 날카로운 손톱을 들고는 손을 뻗었다.
터억!
데아의 몸이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했다. 그리고 사뿐히 피파의 손등에 발을 대고 착지했다. 저 밑에서부터 거대한 창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격은 여기까지인가?’
피파가 웃었다.
게이트 너머는 자신의 집이었다. 인어는 물속에 있는 한 절대 지지 않는다. 피파는 익숙한 마력을 집에서부터 끌어오며 힘을 쳐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
물줄기가 우뚝 멈췄다.
그건 시간의 멈춤과도 같았다.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굳어버린 세계 속, 데아 홀로 물줄기를 다루며 낮추었던 몸을 일으켰다.
설마.
피파의 눈에 순식간에 당황이 깃들었다. 저의 작은 주군은 벌써…….
“바다의…….”
이 정도나 힘을 되찾으신 걸까?
“경배.”
파앗―!
데아의 양손에서 창이 사라졌다. 그 대신 손에 잡힌 건 모든 것의 근원이었다. 물줄기를 다룰 줄 아는 힘이었다.
콰과과과과과!!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던 물줄기가 범람했다. 둥글게 갈라져 하늘을 모르고 높게 치솟았다. 그건 수백, 수천 갈래의 칼날이었다. 모든 것을 조종하는 근원의 힘이었다.
“와아, 정말이지…….”
퐈콰콰콰콰콰콰콰!!
피파의 몸이 속절없이 휘말렸다. 게이트에서 나오던 바다, 이미 나온 바다가 의지를 담고 단 한 인어를 공격했다. 폭력적인 물살이 피파의 약점을 가격했다. 피파는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약점만을 보호하며 몸을 피했다.
“당신을 느리다고, 하아,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죠?
퍼억―!!
수백 갈래의 창에 팔과 꼬리가 꿰뚫린 피파가 서둘러 전류를 생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바다의 칼날이 그 손등을 꿰뚫어 막았다.
파악!!
푸른 피가 또다시 튀었다.
전류의 생성마저 막는 연속 공격, 그건 경이였다.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간 물이 넘실거렸다. 모두가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미 승부가 난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뇌리를 스친 건 충격이었다.
완벽한 강자를 향한 놀라움.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피파는 깨진 안경을 고쳐 쓰지도 못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승부는 났다. 이건 피파의 패배였다.
그런데 이렇게 갈 수는 없지.
바람이 불었다. 날카로운 칼을 품은 심장이 뜨겁게 데아를 달구었다.
그리고 그때.
“이거 하나만 알아 주렴.”
피파가 불쑥 데아에게 다가와 그를 껴안았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데아의 전신이 뻣뻣하게 굳었다. 귓가에 피파의 나직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우리는 너를 절대로 적대하지 않아.”
힘들 때 우리를 찾아와. 결국 넌 오게 될 거야.
데아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인어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느껴진 건 비참함이었다. 데아는 퍽, 인어를 밀었지만 소용없었다.
“무, 무슨 소리를……!”
“이 모든 것은 태초를 위해서.”
“……?!”
“그리고…….”
미안해요.
마지막 속삭임은 한숨과 닮아 있었다.
찌이이이익―!
그리고 데아의 후드가 찢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