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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76화 (76/223)

※ 076화

바다의 경배 스킬이 SS급이 되었다.

“어떻게 이래……?”

―예전에 말했잖아. 난 특별하다고.

그러고 보니 아주 예전, 바다의 경배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자, 그렇다면 우선.

“비키세요.”

데아가 권도언을 툭 놓으며 말했다. 전신에 폭력적으로 맴도는 마력이 느껴졌다. 허망하고, 힘들었던 조금 전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마력이었다.

권도언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지켜보았지만 데아는 무시했다.

파직―!

물이 거세게 튀었다.

구렁텅이를 바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힘이라니.

“바다의 경배.”

거대한 바다의 창이 화려하게 생성되었다. 입을 막고 저 멀리 물러나 있던 이위로도, 하영주도, 바로 앞에서 데아를 잡아끌던 권도언도 일순 말을 잃고 멍하니 거대한 창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건 거대한 풍랑이 일으킨 기적이었고, 모든 암흑의 점멸이었다.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문득 거칠게 범람하던 물줄기가 멈추자 시공간이 멈춘 듯한 환상이 드리워졌다. 포효하던 파도가 허공에서 우뚝 굳고, 두 갈래로 갈라진 바다의 물결이 지하를 메웠다.

콰아아아아아―!!

그 모든 것의 중앙에서 데아는 사뿐히 마른 땅에 착지했다. 한 번 휘익, 창을 내리꽂자 밀려 올라갔던 물이 다시 자기들끼리 움직이며 마른 길을 내어 줬다.

‘뭐, 뭐야? 이 엄청난 마력은?’

46% 정도밖에 구현 안 됐으면서 이 정도라고? 그러면 100%가 구현되었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소름이 전신에 돋았다. 힘에 대한 갈망이 솟아났다. 그건 기대였다.

“올라갈 사람은 이 길로 올라가세요.”

“어……? 어어…….”

하영주가 뒷걸음질 치며 마른 계단을 밟고 밖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권도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휘익―!

“……!!”

46%가 구현된 바다의 경배는 삼지창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 갈래로 나누어진 매서운 해류. 그 해류의 끝이 권도언의 목으로 향했다.

“말 들으세요.”

“…….”

권도언은 아무 말 없이 데아를 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참 이상하죠. 날 걱정해 주는 건지, 아닌 건지.”

“…….”

권도언이 마른 한숨을 쉬었다.

“늦지 않게 올라오세요.”

도망치지도 말고.

마지막 말은 거의 애원처럼 들렸기에 데아는 제가 잘못 들었다고 넘겨짚었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 이위로.

데아는 말을 아꼈다. 이위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언니도 알고 있지.”

“너도 나가.”

“알고 있잖아.”

“몰라. 아무것도 몰라.”

“거짓말!”

이위로의 눈동자에 고집이 실렸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데아가 지친 낯으로 고개를 까딱이자 이위로가 한동안 침묵하더니 이내 주먹을 쥐었다.

“언니는 결국 날 찾게 될 거야.”

“아까 보니까 순간 이동 같은 걸 하던데, 숨겨진 능력이 있는 거지? 그걸로 나가.”

“트리야가 당신의 시체를 가져갔어.”

뚝, 데아의 창끝이 멈췄다.

“트리야가 누구야?”

“이번만큼은…….”

이위로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난 포기 못 해.”

“…….”

“당신을 괴롭혔던 길드들은 내가 박살 내줄 거고, 당신은 안전한 우리들의 바다 아래로 데려갈 거야. 두고 봐.”

그리고 이위로는 사라졌다.

모든 것이 사라진 텅 빈 실험실. 다시금 물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난장판 속에서 데아는 생각할 틈도 없이 창을 다시 치켜들었다.

“…이제 나도 나가야지.”

데아는 지쳐 갈라진 목소리로 경배를 불렀다. 창이 빛났고, 작게 뚫려 있던 천장을 향해 물을 응고시켰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당기기 직전의 방아쇠처럼.

말도 안 되는 가정이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제가 아주 오래전, 인어들이 잃어버린 누군가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었다.

제가 선인이었는지, 악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하지 마.

경배가 가늘게 웃었다. 46%나 구현이 되어서 그런가, 목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어차피 모든 죄인은 앞에 나타날 테니까.

데아는 창을 휘둘렀다. 모든 상념과 지친 한숨을 담아 힘을 쏘아 올렸다. 눈을 감자 눈꺼풀 아래로 거대한 흰빛 인어의 환상이 보였다.

‘말도 안 되는…….’

콰과과과과과광―!!

선릉 부근에 위치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들을 법한 굉음이 서울 시내에 퍼져 나갔다.

◈          ◈          ◈

선릉을 중심으로 서울 시내가 물에 잠겼다. 비상령이 울렸고, 사람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 헬기를 기다렸으며, 자동차가 거침없이 미끄러져 건물과 충돌했다.

더러운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고, 지상에 남아 있는 자영업자들은 생계를 지키기 위해 물건을 건져 냈다.

“그만 나오세요, 사장님! 물이 더 차오를지 어떻게 알고!”

“아, 안 돼. 다 침수됐잖아!”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

오피스 상권의 거리. 그 하늘에는 구조 헬기와 방송 헬기, 그리고 드론이 날파리 떼처럼 떠다녔다. 하수구에선 물이 역류했고, 무릎까지 차오른 구정물에 기물들이 파손되었다.

“사람이 다쳤어!”

“구급차! 구급차!”

“못 와! 구급 헬기라면 모를까!!”

“지상에 어떻게 헬기가 와?”

그때였다. 대피하는 행인들에게로 거대한 트럭 하나가 돌진했다.

“으아아악!!”

그 순간, 모든 행인들은 하늘을 가르며 펼쳐지는 천사의 날개를 보았다.

터억!

콰과과과과!!

“괜찮으세요?”

A급 힐러 가윗이 재빠르게 시민들의 팔을 잡고 공중에 붕 뜸과 동시에 가비가 몸으로 트럭의 돌진을 막아 냈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한, 아니 두 명씩 오세요! 부상자와 어린아이부터!”

백리서가 모래 댐을 만들어 게이트를 차단한 끝에 물은 더 차오르지 않았다. 옥상으로 대피하려면 지금뿐이었다.

“걱정인데…….”

가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번 일로 인해 여파는 명성의 추락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최선의 대처였지만 어찌 되었거나 도시가 물에 잠겼으니까. 더군다나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도 없지 않은가.

“헉, 허억, 감사합니다.”

그때 누군가가 가비의 팔을 잡았다. 아까 트럭으로부터 구해진 행인들이었다.

“여파 헌터죠? 덕분에 살았어요.”

“맞아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가비는 말을 잃었다. 사람들이 가비를 스쳐 지나갔다.

“SS급 던전을 빠르게 해치워 주세요!”

“부탁드려요!”

그리고 뉴스 속보가 전해져 왔다.

―SS급 던전이 또다시 나타났습니다! 위치는 영등포구! 여례아 길드의 앞입니다!! 똑같이 물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네? 뭐라고요? 또요? 시, 시청자 여러분, 속보입니다. SS급 던전이 하나 더 나타나 총 세 개가 되었습니다! 위치는 종로! 023 길드의 바로 앞입니다!

―현재 인어로 알려진 A급 고등학생 헌터 이위로가 잠깐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목격담이 공통적으로 들려왔는데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위로는, 인어는 게이트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일까요?

―국가 소속 인어 연구소 MBL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세 던전의 등급과 난이도, 그리고 현상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많은 시민들이 공포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3대 길드라 일컬어지는 여파, 023, 그리고 여례아를 향한 테러에 현재 서울은 아비규환이 되었습니다.

“다른 길드 상황도 이곳과 똑같아.”

가윗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쪽은 모래 댐을 쌓을 수조차 없나 봐. 그대로 물난리가 나서 아예 사람들은 걸어 다닐 수가 없다는데?”

우려했던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가비는 느리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단 한 사람을 원했다. 모두가 간절하게 구원자를 기다렸다.

똑같은 SS급 던전, 이게 과연 우연일까?

쨍그랑―!

여파 1층의 유리문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1층 로비에 나타난 게이트는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컸다.

“어?”

“릴림 공격대장님……!”

그때 모래 댐을 유지하던 백리서가 흠칫 손을 떨더니 이내 모래를 회수했다. 막혔던 물줄기가 폭력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피해!!”

“뭐 하는 거야!”

백리서의 손끝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상황을 지켜보는 많은 카메라와 행인들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을 향했다.

그리고 허공을 메운 건 비명이었다.

“저, 저게…….”

“뭐야!!”

게이트 밖으로 한 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둥근 안경을 쓴 온화한 인상의 인어. 연갈색 머리카락과 비늘을 지닌…….

“역시 물난리가 났군.”

피파글랜.

“인어, 인어가 나왔어!!”

“공격해!”

모든 헌터들이 공격 태세를 취하자 인어가 그들을 저지시켰다.

“인간계에 직접 나오는 건 참 오랜만인데.”

피파가 커다란 베일을 꺼내 들어 꼬리를 가렸다.

찰팍!

이윽고 피파의 물고기 다리가 매끄러운 사람의 다리로 변해 로비 바닥을 딛고 섰다. 사람들의 입이 벌어졌다.

방, 방금 인어가 인간이 됐어. 내가 본 게 정말 맞나?

“아냐, 여전히 흰자가 검잖아!”

“귀도 뾰족해! 여전히 비늘도 있는 저건 인간이 아니야!”

“비열한 인어 같으니라고. 지금 도시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웃음이 나오나?!”

“당연히 전체 인간화는 하지 않았지. 인어인 상태가 더 강하니까.”

피파는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자기소개부터 하지. 내 이름은 피파글랜. 이 던전의 보스 인어다.”

피파가 고혹적으로 웃었다. 사람들이 흠칫 뒤로 물러섰다.

보스… 인어?

속보를 전하는 리포터의 말소리가 빨라졌다. 많은 사람들의 심박 수 또한 널뛰었다.

헌터들에게 SS급 던전이란 어떤 헌터의 출입도 허용하지 않은 자연재해였다.

그 SS급 던전의 보스 인어다. 얼마나 강할까?

“오, 이런.”

피파는 여전히 피를 뚝뚝 흘리는 백리서를 보고 미안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미안. 인간 헌터.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난 영영 못 나올 판이었는걸.”

“원래 있던 곳으로 가라.”

“음, 미안.”

소용없었다.

“으아아아아―!”

그때 모든 무장 헌터들이 단 한 명의 보스 인어에게로 달려들었다. 피파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모든 게 끝났다.

파지지지직―!!

“커헉!!”

피파를 향해 달려들었던 수많은 헌터들이 감전된 듯이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첨벙, 물속으로 쓰러졌다. 그건 사정거리 안에 있던 그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크, 흐으, 이게……!”

등급이 높은 A급 헌터나 S급 헌터만이 무사했다. 하지만 무사한 자들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A급 헌터들과 백리서는 숨을 몰아쉬며 기절한 헌터들을 서둘러 물 밖, 계단 위로 옮겼다.

“이런 치사한 수를 쓰다니!”

“죽이진 않았어. 이래봬도 나는 인간을 제일 아끼는 인어라서.”

“헛소리 마!”

“사방이 물이라……. 이런 곳은 참 감전되기 좋은 환경이야. 그렇지?”

피파가 허공에 타닥, 탁, 전류를 띄우며 미소했다.

‘불리하다.’

어느새 물은 허리까지 차올라 있었다.

여기에서 정신을 잃으면 익사다. 여지를 주지 않고 해치워야 해.

백리서가 검을 뽑아 들며 상황을 살핀 순간이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

“……!!”

선릉 전체를 휘몰아친 굉음이 들려왔다.

◈          ◈          ◈

차오르는 물줄기, 여파 길드 건물의 절반을 날려버린 파괴력, 모든 것의 중심.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깊숙이 후드를 눌러쓴 작은 인영이 거대한 창을 들고 SS급 던전 게이트를 마주했다. 도시에 정적이 찾아왔다.

창에서 파생된 물줄기를 밟고 창공에 날아오른 검은 사람의 실루엣. 도시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약점 파훼.”

그 인영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전율을 느꼈다. 드디어 기다리던 구원자가 강림했다. 모두가 바라던 반격의 시간이었다.

[심해의 눈(A):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물기 섞인 바람이 뺨을 쳤다.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가리는 후드 아래, 데아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피파글랜의 얼굴을 마주했다. 붉은 점이 피파글랜의 특정 비늘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가둬진 사이에 짜증 나게 높은 등급의 던전이 나왔다 이 말이지?”

너는 그 던전의 보스고?

데아를 올려다본 피파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랜만이야, 내 작은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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