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74화 (74/223)

※ 074화

그러나 그때.

“데…….”

눈앞에 작은 빛무리가 깜빡 생긴다 싶더니 이내 처음 보는 모습의 이위로가 나타났다. 미묘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손끝과 발목 끝에는 비늘이 돋은…….

“데아…….”

“……?”

“데아야!!”

하영주를 의식해 입을 꾹 다문 이위로였다. 그 옆에는 그와 함께 공간 이동을 한 하영주가 있었다.

“세상에, 무사했구나!”

하영주가 밝게 소리쳤다. 그러나 데아는 인사를 해줄 수 없었다.

“이위로.”

최악의 가정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뭐지? 이게 뭐야?

“너, 뭐야?”

이위로의 비늘, 손등과 목덜미 너머 돋은 물고기의 비늘. 인간의 두 다리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뿐인.

“너 인어야?”

이위로가 상처받은 얼굴을 하더니 이내 표정을 지웠다.

각오했잖아. 뭘 떨어.

“데아 언니.”

“너 뭐냐고 했어.”

“지금 언니를 구해 줄 수 있는 건.”

나뿐이에요…….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 자리에는 하영주가 있다.

여기서 자신이 이데아에게 과도하게 친한 척을 하면 인간이 뭔가를 알아채고 이데아를 과하게 심문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죽이면 그만이지. 그쵸.”

이위로가 그대로 활을 꺼내 들어 하영주를 겨냥했다. 근거리에서 활을 꺼내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키아아악!!

우뚝, 활시위를 당기던 손도, 그것을 보고 반격하려던 몸도 멈췄다. 하급 인어들의 움직임이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억…….

“그런데… 여기가 어디야?”

하영주는 실험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누가 봐도 수상하게 생긴 거대 수조와 그 안에서 유리를 두드리고 있는 하급 인어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

“바다의 경배.”

“아악!”

그때 데아가 창을 생성해 이위로의 손에 던졌다.

퍽!

이위로는 하영주의 머리를 겨냥해 활을 당기고 있었다.

“데아야!”

손가락을 스치고 지나간 창이 벽을 관통하자 하영주가 퍼뜩 다시 정신을 차렸다.

“너 미쳤어?”

데아가 소리쳤다.

“언니는 왜 날 미워해?”

이위로가 원망스럽게 데아를 쳐다보았다.

쩌적, 쩌저적…….

“지금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물었잖아. 너 인어냐고!”

이위로의 얼굴이 당장 울음을 터트릴 듯이 일그러졌다.

“보면 몰라?”

이위로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물갈퀴가 너울거렸다. 은은한 보랏빛이 나는 하얀 갈퀴, 팔꿈치에 느릿하게 흘러나오는 지느러미.

이게 과연 현실인가?

“하…….”

데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위로는 완벽한 인간의 흉내를 냈다.

“1세대 인어…….”

쩌저저적!

그때였다. 광분하며 거침없이 쾅쾅쾅 수조를 두드리던 하급 인어들의 소리가 훅 가까워졌다.

“어?”

“……?!”

“……!!”

쩌저저저적!!

아까부터 들렸던 소리가 뭔가 했더니 이거였나?

수조에 금이 갔다. 그 사이로 핏물 같은 물이 새어 나왔다.

“맙소사, 저거 설마…….”

쨍그랑!!

“으아악!!”

“이곳이 실험실이 맞았군.”

“피, 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데아야! 왜 가만히 있어!”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영주 언니, 이리로 와!”

수조가 깨졌다.

◈          ◈          ◈

“방금 그 굉음은 뭐였지?”

“바닥이 흔들렸어!!”

“우선 진정해!”

헌터들은 철퍽이는 바닥에서 힘겹게 발을 움직였다.

“게이트의 형태가 이상합니다!”

“물이, 물이 멈추질 않아요!”

백리서가 손을 들어 올렸다. 모래바람이 훅, 일시에 불어닥치더니 허공에서 건조한 모래가 한가득 생겨 단단히 굳었다.

“올라타!”

사람들이 허겁지겁 모래에 올라가 허공을 날았다. 그대로 그들을 높은 건물로 데려다 놓은 백리서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인명 구조가 우선이다.

“공략 팀 전원 집합해!”

그러자 비상 연락을 받은 공략 팀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핸드폰에 재난 문자가 울리고, 누군가가 튼 뉴스 속보에서는 한국의 새로운 게이트 발발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위치는 강남 선릉에 위치한 여파 길드 내부 건물로…….

“공격대장님!”

거대한 모래바람이 들이닥쳤다.

“으아악!!”

사람의 뼛가루가 섞인 사막의 향취. 모래가 향한 곳은 게이트였다. 굳건하게 쌓인 모래가 끊임없이 폭력적인 파도를 토해 내는 하얀 입을 거뜬하게 막아 냈다.

“대, 대단해……!”

“맙소사, 이 도시 어디에 모래가 있다고 저렇게 많은 양이…….”

로비 전체를 채워버리고도 남은 모래가 응축되고, 또 응축되어 거대한 돌덩어리가 되었다. 건물은 포기한다. 권도언이 짜증 부릴 게 뻔했지만 백리서가 알 바는 아니었다.

콰과과과과과!!

“댐, 댐 같아……!”

주변 사람들이 모래를 들이켜고 쿨럭였다. 마력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모래 댐은 물을 정통으로 막아 냈다.

“지금!”

“네!!”

헌터들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헌터가 단 한 명이라도 들어가면 게이트는 뱉어 내던 걸 멈춘다.

“이야아아아!!”

가비가 거대한 방패를 앞세워 돌진했다. 거창이 댐의 중앙을 뚫고, 물길이 폭발적으로 나오기 직전, 무작정 얼굴을 들이민 공략 1팀이 던전 속으로 몸을 던졌다.

퍼억!!

“……?”

“……?!”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당황한 안색의 헌터들이 뒤로 물러섰다. 댐이 다시 솟아올랐다.

“무슨 일이야!”

“길, 길드장님, 공격대장님……!”

“저 안으로 헌터의 진입이 불가능합니다! 아예 막혀 있어요!”

타다다다다다…….

선릉 부근으로 빠져나온 물길이 도로를 마비시켰다. 방송국 헬기와 드론이 사방을 점령했다. 모든 상황이 영상 매체를 통해 전송되고 있다.

헌터들이 침을 삼켰다. 조심해야 한다.

―보이십니까? 이 광경! 여파 길드 내부에 나타난 거대한 크기의 게이트에서 엄청난 파도가 밀려 나오고 있습니다!

―와. 건물 내부에 게이트가 생긴 건 정말 예상치도 못했는데요, 그래도 헌터들이니까 잘 해내겠죠?

―하지만 의외로 고전합니다! 저 던전의 등급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 뭐, 뭐라고요? SS급?

―맙소사! 방금 속보 보셨어요?! SS급이라고 합니다! 무슨 SS급이야!!

―비상 대피령이 떨어졌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당장 해당 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저 모래 댐 보이세요? 릴림 헌터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역시 S급!

“시끄럽게…….”

건물은 이미 반쯤 침수되어 반파되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호기심 섞인 카메라 달린 나방들이 몰려들었다. 권도언이 작게 웃으며 드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권도언의 시선을 받은 드론 하나가 치직, 작게 소음을 내며 뚝 떨어졌다.

“심술은.”

“자. 백리서, 잘 처리해.”

“넌? 아…….”

권도언이 빠르게 등을 돌려 나아갔다.

“상전을 모시러 가야 해서.”

“지하는 이미 다 침수된 거 아니야?”

“그래도 괜찮을걸. 아까 영영 헌터랑 그… 누구지? 아무튼 보라색 인어가 그쪽으로 향한 것 같던데.”

“뭐?”

“데아 씨라면 인어에게 최선을 다해 저항해 주시겠지. 자, 그러면 가볼까. 여기는 네가 맡아. 던전 모양이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데아 씨가 약점 파훼해 주면 다 잘 되겠지.”

백리서가 코웃음 쳤다.

“퍽이나 도움을 주겠다, 너한테.”

“이데아 씨에겐 이중적인 면이 있지.”

백리서는 잠시 멈칫했다.

“인어를 싫어하는데, 또 의지하거든.”

“…….”

“그 이유야 뻔하지. 인어는 죽여야 하는데, 인간들도 우호적인 편이 아니고……. 결국 혼자 남아버렸는데 갈 곳이 없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차악을 선택하는 거야. 이데아의 차악은 어디일까?

“심지어 아직 이데아는 6년 전 생존자의 사진이 유출된 걸 모르지.”

“안다면…….”

“안다면 더 고립되겠지. 그렇게 되면…….”

이데아의 차악은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거야.

원인을 제공한 인어, 결과가 되어 준 인간. 둘 다 엿같겠지만.

“가장 좋은 건 이데아 씨가 이 꼴을 보기 전에 모든 걸 끝내는 거긴 해. 한순간의 실수로 정체가 까발려지면 정말 도망가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이데아가 더 노출되어서는 안 돼. 샤샤의 활약기는 여기까지야.

백리서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권도언을 지켜보았다.

“네가 더 이상해. 알아?”

“내가?”

“실험하기 위해 이용하는 거야, 지키려는 거야?”

“음…….”

“너야말로 하나만 해.”

그리고 백리서가 다 알겠다는 듯 손을 까닥까닥 휘저었다.

“빨리 꺼져. 이데아 씨를 데리고, 능력만 쓰게 하고 빨리 안전한 곳에 데리고 가고.”

“…….”

“그러려고 한 거잖아?”

“그래, 알았어.”

권도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S급 헌터 간의 대화는 아주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권도언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미소를 지은 채였다.

“그런데 그거 알아? 백리서, 너도 조금 이상해.”

“뭘?”

“너 왜…….”

권도언은 가만히 팔짱을 꼈다. 긴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여유였다.

“위급해 보이지가 않지?”

“참 나, 남이사.”

권도언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주머니에서 팔찌를 하나 꺼내 들어 낀 상태였다.

“참, 이거 줄게. 혹시 모르니까.”

백리서에게 똑같은 수중 호흡 아이템을 건네준 권도언이 등을 돌렸다. 홀로 놔뒀다고 화가 났을 게 분명한 상전을 두 손으로 모실 때였다.

◈          ◈          ◈

기묘한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게이트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는 이례적인 상황을 지켜보는 전국, 전 세계의 사람들이 걱정의 말을 쏟아 냈다.

―저! 점점 더 커지는 게이트가 보이십니까? 거대한 물 폭탄을 오로지 릴림 헌터, 단 홀로 막아 내고 있습니다!

―저 모래 댐이 깨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이전의 게이트와 지금의 게이트의 크기를 비교해 볼 때, 정말 해일에 맞먹는 파도가 몰려올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어, 저 사람 뭐죠! 시민인가요! 대피령이 떨어졌는데 아직 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차가 물에 쓸리며 사람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 저거 정말 위험한데!!

―와! 다행히 여파 길드원들이 시민을 구조해 냈습니다! A급 힐러 가윗이 곧바로 치료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죠?! 다른 S급 헌터들은 뭘 하고 있는데요!

모든 사람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단 하나의 존재를 원했다.

구원자.

―차라리 인어 몬스터가 나오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고 그냥 파도만 끊임없이 밀려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공격력이 높은 헌터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게 언론의 주장입니다.

―세상에, 그렇겠네요! 괜히 멋모르고 공격을 하다간 역효과가 날지도 모르니까요!

―네. 자연계 각성자들이 그나마 릴림 헌터에게 힘을 지원하며 댐을 유지시키고 있지만, 이조차도 영원하지 않겠지요. 문제의 본질이 된, 저 SS급 던전을 없애는 게 좋은데, 길드의 공식 주장으로는 저 던전은 그 어떤 헌터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그 무슨……! 그러면 저 던전은 그동안 우리가 알던 ‘게이트’가 아니라…….

―거의 자연재해 아닙니까?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단어였다. 갑작스럽게 도심에 나타난 바다의 재앙 앞에 모두가 진땀을 흘렸다.

―자연계 S급 헌터 중에 물을 다룰 수 있는 헌터는 없는 건가요?

―아, 정말이네요! 그러고 보니 전 세계를 통틀어서 물을 주력으로 다루는 S급 헌터가 단 한 명도 없네요! 세상에, 왜 이제 깨달았지!

―저 던전의 공략 방법이 심히 까다로운 것 같습니다! 그 헌터는 언제 오는 걸까요? 심지어 여파에서 일어난 던전인데……!

―그 헌터라면…….

―그 헌터죠!

모두가 동시에 같은 사람을 상상하는 일은 비현실적이기도, 그래서 경이롭기도 했다.

―샤샤!

단 한 사람의 강림.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구원자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구원자는 현재.

“언니, 내 손을 잡아.”

“아니.”

데아는 이위로의 손을 뿌리쳤다. 이제 물은 허리와 가슴께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데아는 공포에 질린 하영주를 껴안고 뒤로 물러서 있었다.

“저, 저 인어들은, 끄읍, 뭐…야?”

“영주 언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수조에서 풀려난 하급 인어가 자유롭게 헤엄치며 빙글빙글 세 사람을 에워쌌다. 그들이 이빨을 드러내는 상대는 이위로였다. 이위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시간이 없어.

“나한테 적대심을 품으면 안 돼. 언니는 날 싫어하면 안 돼. 모든 인간들을 적으로 돌려도 나만은, 우리만은 적으로 돌려선 안 돼. 안 돼요. 우리는…….”

이위로의 낯이 흐려졌다.

“우리는 모두 당신을 위해서…….”

주군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했는데!!”

그리고 끝이었다. 파도가 첨벙, 크게 치솟았다. 동시에 데아의 적대심을 읽은 하급 인어가 야차처럼 이위로에게 달려들었고, 그에 거대한 익사의 공포심을 느낀 하영주가 레버를 발견했다.

그건 우연이었다. 그래, 우연이었다.

‘비상시에 사용하는 레버인가 봐!’

하영주는 자신과 데아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레버 쪽으로 몸을 날렸다.

“잠, 잠깐!!”

일시에 레버가 밑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곧 지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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