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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73화 (73/223)

※ 073화

“첫째가 알을 부수려고 했던 이유는 단순했어요. 자기가 사랑을 다 받고 싶은데, 자꾸 새로운 개체가 태어나니까 질투도 나고 짜증도 났겠지.”

“첫째가 둘째를 질투하는 그런 건가? 뭐, 흔하니까.”

“그런데도 첫째는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그 모양으로 큰 것 같아. 하긴, 우리도 그렇게 많이 혼난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러다가…….”

“…….”

“문득 궁금해진 거예요.”

하영주는 빠르게 눈을 굴려 가윗의 팔을 툭 건드렸다.

‘내가 신호하면 반대로 뛰어. 길드장님 불러와.’

“‘태초’는 내가 일으킨 사고를 어디까지 눈감아 줄 수 있을까?”

이위로에겐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로비를 지나던 사람, 커피를 마시던 사람, 서류를 보던 사람, 로비 데스크의 직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위로를 쳐다보았다.

이위로가 벽에 손을 쫙 펴서 갖다 대었다. 그리고 하영주는 보았다. 손가락 사이에 그물처럼 엉켜 있는 희미한 물갈퀴를.

“뭐가 되었든, 트리야 그 재수 없는 새끼의 과오에 비하면 보잘것없을 텐데?”

“길드장님 모셔 와!”

고함은 벼락과도 같았다. 가윗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어감과 동시에 흰색 섬광이 모두의 시야를 앗아갔다.

번쩍!

“으아악!!”

“크윽!”

“이게 뭐야!”

로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강렬한 빛줄기에 얼굴을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점멸하는 각막 속, 하영주는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는 여름 바다의 목소리를 들었다.

“언니, 그거 알아요? 게이트 말이에요. 원래 인어가 만드는 거.”

“흐, 크윽. 그게 무슨 헛소리……!”

“힘을 물려받은 극소수의 인어만이 가능해요.”

그 목소리는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나 진짜 신기한 거 알고 있죠.”

그리고 이위로는 크게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어의 힘이죠. 이 힘의 본질인 그분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의 최초, 생명, 가장 처음의 힘…….”

위로야, 너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하연주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웅웅거리며 두통이 일었다. 도저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백리서였다. 그와 이위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백리서의 미간이 꿈틀, 일그러졌다. 이마에 핏줄이 돋은 무서운 표정의 백리서가 손을 들어 올려 능력을 쓸 때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감히 가두다니.”

잔잔한 파도의 미풍이 불었다. 모든 것이 생성되고 사그라드는 힘. 하영주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목격하고 주르륵 주저앉았다.

“제가 어떻게 참아요. 그렇죠?”

마지막 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저게… 뭐야?”

빛이 사그라들었다. 고개를 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이위로를 보더니 이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으아악!!”

로비의 구석구석부터 정문까지.

이위로가 손가락으로 쭉 훑은 곳을 기점으로 하얀색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실선에서 거품처럼 하얀 빛 덩어리가 솟아오르더니 이내 거대한 아가리가 벌어지듯 쩌억 열렸다.

“게이트!!”

그건 무엇보다 거대하고 강력한 재앙의 표식이었다.

게이트를 생성한 이위로는 보았다. 제 주군을 짐짝처럼 들어 올려 감금하고 험하게 대우한 그 인간의 얼굴을.

권도언.

“이렇게 친히 행차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

그의 한마디로 건물의 셔터가 우르르 내려갔다.

철컹, 철컹, 철컹!

모든 창문이 닫혔고, 전등이 모조리 켜졌다. 이위로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때, 그는 닫힌 정문 앞에 등을 지고 서있는 자신을 둘러싼 수백 명의 무장 상태 헌터들을 볼 수 있었다.

권도언, 백리서, 가윗, 가비, 하영주.

그래도 이데아는 없군.

위로의 표정이 불만스러워졌다.

“쟤, 쟤 왜 저래……?”

길드장을 불러오는 데 성공한 가윗이 덜덜 떨었다.

“인간의 말을 하는 인어라니. 좋은 개체네.”

권도언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그의 머리끝이 조금 젖어 있었다.

‘어디에 다녀 온 걸까. 또 빌어먹을 실험실일까?’

‘실험실’의 존재는 피파글랜에게 질리도록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 무도한 작자를 더 이상 봐줄 수 없었다.

지금 그곳에 끌려간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움 언니는 계획의 일부라 말을 하고 6년 전 생존자를 언급해 모두의 주목을 이끌어 냈지만, 결국 이데아는 불행해졌잖아. 그게 어떻게 그를 위한 계획이 될 수 있어? 그는 오로지 행복하기만 해야 하는데,

‘그러니까 나는…….’

이위로의 미간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할 수만 있다면 이데아의 발치에 엎드려 엉엉 울고 싶었다.

후드를 벗기자마자 예민하게 손을 내치던 이데아의 환상이 보였다.

힘들어했지. 당신은 버거웠을 것이다. 미안해요. 그렇게까지 아파할 줄 몰랐어.

아니, 예상은 했지만 직접 보는 건 느낌이 너무나도 달라서…….

당신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가 않아. 미안해요. 나도 그 ‘6년 전 생존자’의 소문에 일조했어요. 하지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인기몰이를 하던 고등학생 A급 헌터 이위로가 사실 둔갑한 인어였다는 소문은 어찌 되었든 당신의 소문을 덮는 데 일조할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인어로 변한 내가 나서서 말해야지. 6년 전 생존자는 이제 그만 찾아도 된다고.

“므아나하고 상의는 할 거니?”

여파 길드로 떠나기 전, 움이 물었다. 이위로, 윌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므아나 언니가 알았다면 날 죽이려고 할걸. 까다롭게 계획을 계속 바꾼다 하면서.

그러니 이건 이위로의 독단이었다.

열린 게이트 사이로 철썩, 큰 파도가 일었다. 거대한 포대 자루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새어 나오는 바닷물에 헌터들이 숨을 죽였다.

흘러나오는 파도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하나, 둘, 셋. 철썩!

끊임없이 밀려 나오는 파도는 이내 쏟아지는 폭포가 되어 콸콸 로비의 바닥을 적혔다. 권도언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휘익!

권도언이 손을 흔들자 빠르게 닫혔던 셔터와 모든 보안 장치가 해제되었다.

끼이이익.

문이 위로 올라가고, 주변 행인들이 건물 안의 상황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길드장님……?”

“이대로 가다간 익사할 것 같아서요.”

“…….”

“갑자기 난리가 났다고 해서 왔는데, 정말 난리이긴 하네요.”

“…….”

“이 정도면 몇 등급일까?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인어라니.”

그가 환하게 웃었다. 동시에 이위로는 쏟아지는 파도에 발목을 담갔다. 보랏빛이 나는 은빛 비늘이 드러난 발목을 타고 오소소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인어!

손끝을 따라 바람이 일었다. 칼날과도 같은 광풍에 이위로의 살갗이 베였다. 그래도 이위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면을 응시했다. 위로의 옆에는 게이트가 있었다. 보란 듯이 생성된 게이트가.

“우리가 어떤 심정으로 그분을 속이고 판을 짜며 원대한 계획을 세웠는데. 감히 인간이, 한낱 인간이 그분을 납치하고, 어?”

이곳으로 오기 전, 이위로는 움에게 소리쳤다. 그분은 여기 지하에 있다. 시간이 없었다.

이위로는 아직 완벽한 구형이 되지 않은 게이트에 손을 집어넣었다. 비늘이 더 자라나며 푸른 피가 튀었다.

“지금 뭐 하는!”

인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잇는 다리, ‘창’. 그 보스를 지정하고 게이트를 완벽하게 완성시키는 마지막 작업이 방금 종료되었다.

이위로는 너덜거리는 오른손을 빼내고 웃었다.

“등급 측정해!”

“던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파도에 대고 측정해.”

이위로가 힌트를 주듯 속삭였다.

“그러면 할 수 있어. 멍청이들아.”

사람들은 우물쭈물하면서도 발목에 넘치듯 차오른 파도에 등급 측정기를 꽂았다.

쏴아아아아!!

지하에 스며들어 가 차오르는 파도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대피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지하가 침수되고 있어!!”

게이트에서 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권도언이 이마를 짚었다.

“왜 인어들은 자꾸 나를 못살게 구는 걸까?”

“실험실의 원한이라고 생각해.”

이위로가 받아치자 권도언이 억울한 듯이 눈썹을 내렸다.

“실험을 나만 하는 줄 알아? MBL은 나보다 더해.”

삐, 삐, 삐.

등급 측정이 완료되었다. 사람들이 두 눈을 의심하며 다시 측정을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아, 아니, 측정 등급이 조금 이상해서.”

당연하다. 이위로는 속으로 비식 웃었다. 제 오른손의 내구도를 손상시키며 생성해 낸 게이트다. 그 무엇보다 등급이 높겠지. 바로 그 등급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세상이 적막에 젖어 들었다.

“SS……!”

S급 던전도 너희들은 이데아의 도움 없이 수월하게 클리어하지 못했지? 다 들었어. 그렇다면 SS는 어떨까.

“이동.”

공간 이동. 일곱 번째 1세대 인어 윌로의 고유 능력이었다. 이위로는 이데아가 있을 법한 아래의 위치를 가늠하며 능력을 썼다.

이위로의 모습이 언뜻 흐려졌다.

“잠깐, 설마 이동을……?”

그때 하영주의 눈이 빛났다. 그가 이위로가 있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근거리 탱커, 헌터 영영이 그를 가소롭게 보던 이위로의 손을 푸억, 몸으로 돌진해 받아 내고는 허리를 덥석 잡아 안았다.

“이게!”

“영영 헌터!”

깜빡.

“뭐, 뭐야!!”

로비에 몰려 있던 길드원들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둘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          ◈          ◈

“어?”

데아는 고개를 들었다. 아까부터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뚝뚝 떨어지던 물방울은 이내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실험 기구들이 둥실, 부력으로 떠오르고 침대의 절반이 물에 잠겼다.

“권도언 미친 새끼…….”

익사할 걱정은 없어서 상관없긴 하지만.

아, 설마 그거 믿고 날 구출하러 안 오나?

“아, 젠장. 나가야겠어.”

물론 나갈 방법을 딱히 강구해 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물이 차오르면 수조가 깨질 확률이 높았고, 그러면 하급 인어가 풀려날 터였다.

그래도 그전에 빨리 나가야 한다.

“흐앗!”

데아는 둥실 떠오른 침대가 기우뚱 기우는 틈을 타 휘익, 몸을 던졌다.

철컹!

족쇄에 걸린 팔과 다리가 철 난간에 걸렸다. 그 상태에서 무게 중심을 한쪽에 쏠리게 하자 침대가 와르르 무너지며 그대로 몸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스킬의 조건이 충족되었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지금!”

챙캉!

거대한 하얀 바다의 회오리가 솟구쳤다. 데아는 족쇄를 끊어 낸 창을 위로 향하게 잡았다. 그리고 팔을 휘익 휘둘러 창을 쏘아 올렸다.

콰창창창!

여기가 지하 몇 층인지는 모르겠지만, 끝없이 뚫으면 언젠가 지상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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