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2화
실험실의 벽은 차가웠고, 눅눅했다. 기둥 아래에는 가로 50센티미터에 달하는 직사각형의 거대한 레버가 있었는데, 데아는 저걸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왜냐하면 그 레버와 이어진 발전기에는 요란한 경고 마크가 보란 듯이 붙어 있었으므로.
“권도언의 기척은 지금 안 느껴지는데.”
고개를 돌렸다. 훤하게 뚫린 유리 벽 너머, 수조에 갇힌 수십 마리의 하급 인어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들려야 말이지.”
―바… 기어요?
―여… 설마… 와… 요?
하급 인어가 재차 데아를 향해 소리쳤다. 절박하고도 난처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저들은 수조 안에 있는 인어들 아닌가,
그래도 데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저 빌어먹을 유리창을 깨버리든가 해야 하는데…….”
인어들과 우선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권도언이 나가고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유일한 동아줄은 인어들이었다.
내 말을 듣는다면, 내 의사에 따른다면 이 실험실에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너희들은 내 말이 들려?!”
확 소리치자 인어들의 움직임이 더 격렬해졌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S) : 이건 유폐된 자들의 목소리이다.]
유폐된 자들의 목소리라니. 그 무엇보다 이 스킬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경배야.”
―어어. 왜, 자기야?
“지금 내가 다 젖지 않아서 창은 못 꺼내지?”
―당연하지. 왜, 자기야. 심심해? 나랑 끝말잇기 할까?
“내가 지금 심심해 보여?”
데아는 필사적으로 상태 창을 뒤졌다.
[물속의 발자취(A)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타고난 사냥꾼(A) : 이미 인어에게서 살아남은 적이 있군요? 인어의 독성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심해의 눈(A)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타고난 몰이꾼(A)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S) : 이건 유폐된 자들의 목소리이다.]
쓸 만한 게 없냐.
데아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퉁 굴렀다.
그때 이후로 권도언은 꽤나 자주 실험실에 들어왔다. 하급 인어와 어떻게든 소통하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권도언이 와서 뚝 중단하고, 그가 가져온 호화로운 식사를 먹고, 후식까지 싹싹 긁어먹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가 나가면 다시 족쇄를 풀기 위해 애쓰는 꼴이었다.
“안녕.”
그때 권도언이 왔다. 데아는 행동을 멈췄다. 하급 인어들이 한순간에 분노에 찬 고성을 내뱉었다.
“오늘도 건강하시네. 그쵸?”
“밖에는요.”
“다들 그대로죠.”
끼익, 권도언이 유리문을 열자 그 틈으로 한 인어의 고함이 들려왔다.
―저, 저 인간 먹을 거야. 먹을 거야. 머리부터 잡아먹을 거야!
권도언? 어어. 먹어. 많이 먹어.
“이 수조 실험실 너무 열약한 거 아니에요? 안전장치도 없어요?”
“있어요.”
데아가 레버 쪽을 향해 고개를 흘끗 돌렸다.
역시 저건가?
그러자 권도언이 낮게 웃었다.
“그거 맞아요.”
나이스. 어쩌면 저걸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 하는 게 좋을걸요.”
권도언이 터벅터벅 레버 쪽으로 다가갔다. 노란색과 검은색이 얼기설기 엮여 있는 경고 스티커 위로 그가 손을 올렸다.
“하급 인어가 통제 불능일 때를 대비한 예방책이거든요.”
“예방책이라면…….”
“전기죠.”
데아의 눈이 커졌다. 권도언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모든 인어의 머리에는 칩이 심어져 있어요. 그리고 저 레버는.”
그가 빙글 웃었다.
“인어들의 뇌를 한순간에 지져버리는 요술 막대기죠.”
◈ ◈ ◈
하영주는 가윗과 함께 우울하게 복도를 걸었다.
“누나.”
“조용히 해.”
“아니, 그래도…….”
“조용히 하랬지.”
한 명의 자리가 비었다. 이데아가 실종된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난 시간. 데아를 찾기 위해 파견되었던 많은 헌터들은 돌아왔는데 그 당사자만 돌아오지 않았다. 위치를 물어도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실패한 건가? 설마 죽어버린 걸까?’
그러던 와중에 6년 전 생존자의 사진이랍시고 데아의 사진이 기사에 뜬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헛소문이라 치부하고 넘어갔다.
“그거 헛소문 맞잖아요. 영주 누나. 기운 좀 차리세요.”
적어도 가윗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영주는 침묵을 지켰다. 데아가 유난히 언론을 피하던 이유, 하필 데아가 참여한 뉴욕 던전에서 인어가 불쑥 튀어나와 6년 전 생존자를 언급한 이유, 데아가 신비주의를 고수한…….
고수할 수밖에 없던 이유.
그러고 보니 나는 데아의 과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구나.
떠올린 단서가 하나로 맞춰지고 있었다. 그 끝에서 하영주가 느낀 건 배신감이나 경악이 아닌 죄책감이었다.
‘너는 아무도 못 믿고 지냈겠구나.’
우우웅―
하영주는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진동이 오고 있었다. 발신자는 최근 한국에 도착해 여파로 그대로 와서 요 며칠간 빠르게 친분을 쌓은 고등학생 A급 헌터였다.
“어, 위로야.”
이위로에게선 청량한 여름바다 향기가 났다.
향수일까? 왠지 모르게 데아가 좋아할 것 같은 향이었다. 데아가 돌아오면 안전한 귀환을 축하하는 선물로 그 향수를 주면 어떨까.
그런 잡생각을 하며 하영주가 통화를 이어 가던 순간이었다.
“어, 데아?”
여기 없는데.
하지만 하영주에게도 짚이지 않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통화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고…….”
“누나, 누구예요? 설마 이위로? 전부터 엄청 여기 드나들더니 언제 친해졌어요?”
“여기에 온다고? 어, 그래! 언제? 지금?”
“누나!”
“앞이라고?”
1층 로비로 뛰쳐나온 하영주의 시선에 누군가의 인영이 잡혔다. 크고 하얀 정문 옆에 곧게 서있는 가느다란 그림자.
“어, 언니. 안뇽!”
머리를 하나로 높게 올려 묶은 이위로가 통화를 끊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큰 보폭으로 성큼 성큼 다가온 이위로에게 주변 인파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위로다. 이위로네?
유난히 활달한 성격과 쇼맨십, 그리고 높은 등급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위로의 등장은 언제나 많은 시선과 함께였다.
“어쩐 일이야?”
“에이, 제가 여기 한두 번 와요? 그냥 왔죠. 심심해서.”
가윗이 이위로의 모습을 쭉 훑어보며 새초롬하게 눈을 떴다.
“통화 내용 들어보니까 데아 누나 찾으러 들어온 거 같은데, 아니야?”
이위로가 귀찮은 것을 보듯이 가윗을 응시했다.
“어, 맞아.”
“왜?”
“친한 언니 얼굴 보러 오는 게 뭐 잘못됐어?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뉴욕 던전 공략 동기거든? 좀 비켜 줄래?”
철없는 고등학생 헌터들의 신경전이었다. 하영주는 이위로의 팔을 끌고 구석진 장소로 갔다.
“위로야, 데아는……. 그게, 너도 봤잖아. 이거 사진.”
“아, 그렇죠.”
문득 하영주는 위화감을 느꼈다. 이위로에게는 평소와 같은 청량한 여름 냄새가 나고 있었다. 기분 좋은 향수 냄새. 그런데 뭔가 조금 달랐다.
잔잔하게 풍겨지던 여름 바다의 향기 위로 태양이 지고 있었다. 바다에게 먹힌 태양에 이어 밤하늘이 드리워지고, 한순간에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위험한 바다의 향기. 폭풍전야. 태풍의 위장.
하영주는 무심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이거… 향수 맞나?’
“…그래서 길드가, 길드장님이 보호 차원에서 격리한 게 아닐까 싶어. 나도 오래 못 봤어. 물론 아닐 수도 있고. 내 예측일 뿐이니까. 적어도 이 사진이 다 내려가고 좀 잠잠해질 때까지는 계속 이러지 않을까? 너도 알잖아. 지금 사람들이 얼마나…….”
“이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일일이 다 길 가는 행인하고 비교해 보고 있죠.”
“그치. 지금 난리 났잖아. 인터넷에 이 사진밖에 안 나와. 사람들 반응도 거의 폭발적이고. 아, 데아 걱정된다. 지금 데아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길드 차원에서 회유했다고 듣긴 했는데… 솔직히 언제까지 가겠어.”
“음…….”
“어차피 한국인은 부글부글 끓었다가 꺼지는 냄비 민족이야.”
하영주가 어떻게든 밝은 목소리를 짜내어 말했다.
“금방 또 식을 거야. 그때까지만 조심해야지. 우리한테까지 위치를 말 안 한 건 좀 서운하지만, 백리서 공격대장님이 가만있는 걸 보면 일단은 안전하다는 거니까.”
“믿어요?”
“믿어.”
가윗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둘을 훑고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다물어 버렸다.
“저도 데아 누나가 6년 전 생존자라는 거 안 믿어요.”
모두의 시선이 가윗에게 돌아갔다.
“이건 뜬소문인데, 뜬소문이긴 한데요……. 6년 전 생존자가 인어라는 설도 있어요.”
“뭐?”
“뭐어?”
진짜라고 가윗이 다급하게 고개를 올렸다.
“그래서 인어들에게 쫓기는 거라는 말이 있어요. 애초에 바위 하나 잡고 해일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요!”
“…….”
“인어들을 배신하고 인간인 척, 인간들의 사회로 숨어들어 가서 그렇게 인어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가윗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찾아다니는 거… 아니냐고.”
“우와.”
이위로가 진심 어린 감탄을 뱉었다.
“똑똑한데?”
“하지만 데아 누나는 인어가 아니잖아요. 미쳤어요, 정말? 믿을 걸 믿어야지!”
“그건 그렇지.”
“하지만 뭐 하나 정확한 건 없는 거잖아. 인어가 어떻게 두 다리로 걸어 다녀?”
“목소리라도 팔았나 보지.”
씨근거린 가윗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에이 씨, 그냥 지라시예요. 믿지 마세요. 괜한 말 해서 죄송해요.”
“그러면 인어들은 데아 언니의 적인 거네?”
낭랑한 목소리는 이위로에게서 나왔다.
“만약 이 가설이 맞는다면 그런 셈이겠지. 그것도 보통 적이 아니라 아주 증오스러운……. 잠깐, 데아 누나는 6년 전 생존자 아니라니까?”
“우와…….”
이위로가 작게 킥킥 웃었다.
“그렇게 비춰지는구나.”
여름 바다에 결국 태풍이 들이닥쳤다. 그 미세한 기류를 느낀 건 하영주뿐이었다.
“뭐?”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분위기가 일변했다. 여파 길드의 1층 로비. 이위로가 굽혔던 몸을 일으켰다. 그 미묘한 기류 속에서 홀로 어리둥절한 건 가윗뿐이었다.
“언니. 영주 언니. 옛날에 저를 태어나게 해주고, 성체가 될 때까지 키워 준 사람이 있었어요.”
‘성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뱉는다. 하영주는 불길한 예감을 꾹꾹 눌러 감추곤 말을 기다렸다. 꿀꺽, 침이 넘어갔다.
“그는 너무나도 다정하고, 강하고, 가차 없고, 잔인했죠.”
“학대…를 당한 거야?”
“제가요? 아니, 아니요. 우리한테는 다정하기만 했어요. 가끔은 혼나기도 했었지만.”
이위로의 눈이 어두워졌다. 느린 미소가 그어졌다.
“그런데 지금 그 말이 무슨 상관…….”
“우리가 무슨 사고를 치든, 누굴 잡아먹고 뭘 부수든, 그 사람은 묵인했거든요. 심지어는 어떤 일이 있었는 줄 알아요? 첫 번째로 태어난 재수탱이가 있는데, 그 재수탱이가 글쎄,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어린 알들을 다 부수려고 한 거예요.”
“알?”
이위로는 이제 벽을 한 손가락으로 죽 훑으며 길드 로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로비를 지나 커다란 해가 들어오는 정문 쪽으로.
도망쳐야 한다.
하영주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이위로에게서 도망쳐야 한다.
지금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