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0화
“전 데아 씨 많이 아껴요. 알죠?”
“네, 네. 알아요. 그러니까 이것 좀 풀어 주실래요?”
권도언이 싱긋 웃으며 드르륵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왼쪽 어깨에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다.
‘아하, 저건 내가 낸 상처로군.’
“데아 씨, 저 많이 봐줬던데요. 별로 깊게 파이지도 않았어.”
“아, 아쉽다…….”
저 빤질빤질한 상판을 보아하니 풀어 줄 의지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데아는 속으로 욕을 뱉었다.
“그래서…….”
철컹철컹, 데아는 묶인 손과 발을 거칠게 흔들었다. 심호흡을 하자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일이 어떻게 된 거였더라.’
분명 그때 그 던전을 클리어하고… 길드장님이 바깥에 여파 길드원이 포진되어 있다고 했고, 바로 정신을 잃었…….
“잘 해결됐어요?”
데아가 묻자 권도언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던전이요? 던전은 무사히 잘 클리어됐죠. 여례아가 더 반박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한 미튜버가 결정적인 증거 영상을 풀었더라고요. 그 스트리머 말이에요. 지금은 여파가 보호 중이죠. 덕분에 여례아 길드장을 포함한 길드원들은 현재 구금 상태고…….”
“그거 말고요.”
그건 무심코 나간 말이었다. 데아는 스스로가 뭐라 하는지도 모르고 말을 뱉었다.
“길드장님 횡령 건 때문에 쫓겼잖아요.”
그거 괜찮냐고요.
데아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우뚝 굳었다. 권도언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건 그런 말을 들을지 전혀 예상을 못 해 당황스러운 표정 같기도, 놀라 굳어버린 표정 같기도 했다.
“…그럼요. 동영상 찍었잖아요.”
던전에 들어가기 전, 여례아 길드장과 길드원들의 모습을 뒤에서 찍은 영상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언론에 풀었어요. 상연 SY 측에서 어떻게든 막으려는 것 같았지만 뭐, 이미 퍼질 대로 퍼져서.”
“그럼 공격 안 당해요……?”
데아가 말한 건 여파 길드원들을 향한 인신공격이었지만 권도언은 다르게 받아들인 듯싶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권도언이 고개를 숙였다.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제가 그렇게도 걱정돼요?”
권도언은 깊게 미소하고 있었다. 데아가 눈썹을 꿈틀, 일그러뜨렸다. 이 사람 오해했다.
“아뇨.”
그의 태도가 묘하게 부드러워진 건 착각일까? 지금이 기회인 듯싶어 데아는 철컹철컹, 결박된 팔을 흔들었다.
“길드장님. 팔이 너무 아픈데 이것만 풀어 주면 안 돼요?”
“아, 그건 안 돼요.”
“…….”
철컹!!
데아가 크게 흔들었지만 끄떡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뒤로 푹 젖혀 짜증스러운 신음을 냈다.
“에이 씨…….”
그가 이 거지 같은 실험실에 두 번씩이나 잡혀 온 이유.
사실 걸리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였지.
그 빌어먹을 S급 던전 안에서 인어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은 것, 오히려 도와준 것, 그리고 단 한 번도 가능할 거라 여기지 않았던 보스 인어의 클리어까지.
이쯤 되면 데아 본인이 자신을 더 궁금해할 판이었다.
난 뭐지?
“스킬이에요.”
스킬이지, 뭐야. 그거 말고 답이 또 있나?
“스킬?”
“인어가 절 공격 안 하는 거요. 스킬이라고요. 죄송해요. 그동안 말 안 했어요.”
“오… 그건 신기하네요.”
“알아요. 제가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요. 사실 뉴욕 던전도 그 스킬로 클리어했어요. 계속 그 안에 있었죠. 괜찮아요. 절 오해하는 것도 이해해요.”
“오해요?”
“네. 지금 제가 둔갑한 인어라고 오해하는 거 아니에요?”
“음…….”
데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스킬이랑 그 특성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불러 줄 테니까 오해 풀어 주세요. 저 물속에서 숨도 쉴 수 있어요. A급 스킬인데, 이건 몰랐죠?”
“그건 몰랐는데…….”
권도언이 다시 드르륵 의자를 끌더니 작은 상자를 집어 왔다.
“그럼 이건 필요 없겠네요.”
서늘한 알루미늄 상자를 옆으로 밀어 열자 끝에 붉은 빛을 내는 보석이 달린 은팔찌가 나타났다.
“이게 뭐예요?”
“제가 개발한 최초의 아이템이요.”
“네?”
이걸 나한테 왜 보여 줘?
데아의 의문에도 권도언은 신경 쓰지 않고 곧장 팔찌를 열어 자신의 팔목에 끼우고는 갑자기 재킷을 벗기 시작했다.
“신기한 거 보여 드릴게요.”
“잠, 잠깐만요. 지금 뭐 하는……!”
그러나 데아의 말은 더 이어질 수 없었다. 신발까지 벗은 권도언이 그대로 거침없이 걸어 철 계단을 올라 높다랗게 설치되어 있는 투명 수조에 몸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첨벙!
“……!”
인어가 없어진 깨끗한 물이 출렁 흔들렸다. 수조 밖으로 작은 물방울들이 튀고, 하얀 셔츠와 검은 바지 바람으로 수중으로 곤두박질한 권도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데아를 바라보았다.
‘붕대 안으로 물 다 들어가겠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지금 빨리 나오지 않으면……!”
사람은……. 사람은 물속에서 숨을 못 쉬니까…….
그러나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헤아릴 수도 없는 몇 분이 더 지나도 권도언은 나오지 않았다. 살풋 그어지는 입가의 호선과 휘어진 눈매, 권도언은 가만히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데아를 보고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보여 주었다. 처음에야 놀라 소리쳤던 데아 또한 침묵을 지켰다.
“아이템…….”
권도언의 팔목에 감긴 은팔찌.
“인간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 주는군요.”
“맞아요.”
푸하!
수조 밖으로 고개를 내민 권도언이 맨발로 계단을 밟고 밑으로 내려왔다.
“수중 호흡 아이템이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탈탈 터는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엿보였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 드릴까요? 인어의 아가미 쪽에 손을 집어넣어 뒤적거리면 딱딱한 게 만져지는데, 그 안에서 파생되는 마력을 가공해서 뽑아내면…….”
“그만, 그만. 네에, 네. 알겠어요.”
“그렇게 수차례를 반복해야만 하죠. 인어 한 마리로는 부족해서 두 마리를, 세 마리를, 다섯 마리, 열 마리를 통째로 죽여야만 했어요. 그랬더니 신기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죠. 뭐였을 것 같아요?”
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권도언은 데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결국 그렇게 죽여도 아이템은 완벽하지 않더라고요.”
“…….”
“인어의 마석. 그게 있어야만 수중 호흡이 완벽해지니까.”
권도언이 수건을 내려놓았다. 고요가 맴돌았다.
“그 어떤 아이템도, 스킬도 완벽하지 않아요. 제가 인어를 수십 마리 죽여 만든 이 수중 호흡 아이템도 한두 시간이 넘어가면 부서져요. 데아 씨.”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권도언이 느릿하게 등을 돌렸다. 두 시선이 마주쳤다.
“수중 호흡이 완벽하려면 스스로 마력을 뿜어내는 마석을 체내 안에 길러 내야 하는데…….”
그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그건 명백한 조소였다.
“그런데도 스킬이라고요.”
데아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었다.
“하지만 난 정말로…….”
“물론 이데아 씨의 말을 믿어요. 그렇잖아요. 몸을 갈라서 꺼내 볼 수도 없고.”
심장이 서늘하게 굳었다. 권도언의 웃음 아래, 이전에 보았던 소름 끼치는 무표정이 다시 재생되었다.
“하지만 데아 씨 안에 인어의 마석이 있어서 그 스킬을 가지게 된 건지, 그 스킬을 가지게 되어 인어의 마석이 생겨난 건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데아의 머리가 뜨거워졌다.
‘왜 사람 말을 안 믿고 빙빙 돌리지?’
“난 인어가 아니라고……!”
“설사 후자라도.”
찰팍, 물에 젖은 발걸음 소리가 과도하게 컸다.
“이미 마석이 생긴 시점에서 인간은 아니에요. 알죠?”
몬스터지.
“게다가 보스 인어, 하급 인어가 그렇게 믿고 따르다니.”
뚝, 데아의 입이 다물렸다. 전신의 온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귓가가 멍멍해지고 현기증이 돌았다.
“놀랐어요.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어요.”
“…….”
“그런 경험을 그 누가 겪을 수 있을까요?”
“난…….”
“데아 씨, 잘 들어요.”
권도언이 느릿하게 의자에 앉았다. 부쩍 가까워져 오는 축축한 한기에 데아는 어깨를 움츠렸다.
“던전 안에 있었던 일들, 널리 퍼졌어요.”
“…….”
“지금 데아 씨 말 믿어 줄 사람 아무도 없어요.”
차라리 꿈이고 싶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무너질 순 없었다.
‘아니, 무너지다니. 애초에 무너질 게 있었나?’
데아는 타악, 권도언의 손을 쳐냈다. 스스로가 쳐내고도 상처를 받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건 절망이었고, 실망이었으며, 자신을 믿어 주지 않는 권도언에 대한…….
“진짜 나빴어…….”
분노였다. 데아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래서요? 다른 사람들도 제가 여기 있다는 거 알아요?”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죠.”
“퍽이나. 리서 언니만 알고 있겠죠. 애초에 여기 존재도 몇 모르던데.”
“아하, 그런 정보는 또 어디서 들으셨대.”
철컹!
데아는 손을 휘두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데 저도 하나 말해 드릴까요? 저도 던전 안에서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난 건지 몰라요. 나도 모른다고. 인어들이 그냥 나를 따르는데 어떡하라고!”
목소리가 커졌다. 데아는 눈앞의 남자에게 집중하느라 실험실 안에 있는 실험체 하급 인어들의 헤엄이 빨라졌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인어를 공격해요? 돌변해서 우리를 죽일지 어떻게 알고? 길드장님도 S급 던전 처음 가봤잖아요. 당장 S급 헌터가 모여도 A급 던전 하나 처리할까 말까면서, 밸런스 망했으면서, 저 아니었으면 갑자기 나타난 S급 던전을 수월하게 클리어할 수 있었겠냐고요. 당장 무기도 없고 이동 스크롤도 막힌 그 상황 속에서!”
데아는 누가 봐도 흥분하고 있었다. 빨라진 호흡과 열기 오른 뺨이 그것을 증명했다.
“어떻게 나를 가둬요? 어떻게 나를 묶어 실험체와 똑같은 대우를 해요?”
“…데아 씨.”
권도원의 눈이 가라앉았다.
“데아 씨는 실험체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뭔지 모르죠?”
“당연히 모르지. X새끼야.”
데아의 눈이 붉어졌다.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믿어 주지도 않고 무작정 가두면 그 누가 납득을 해!!”
콰앙!!
“……!!”
데아와 권도언이 퍼뜩 뒤를 돌았다. 냉기가 내려앉은 표정 위로 당혹스러움이 겹쳤다. 멀리 떨어진 하급 인어들이, 수많은 거대 수조에 나뉘어 담겨진 수백 마리의 하급 인어들이 동시에 수조를 쾅쾅 두드리고 있었다.
쾅! 콰앙!! 쾅!!
끼에에엑!!
끼아악!!
권도언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인어들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는 다시 데아를 돌아보았다. 눈앞의 작고 어린 얼굴의 이데아는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허… 참.”
이데아는 저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겠지. 이해한다. 나도 아직 널 모른다.
“봤죠?”
권도언이 느릿하게 손짓했다.
“이데아 씨. 데아 씨 인간 아닐 수도 있어요.”
저 인어들 눈 좀 봐요. 누가 봐도 당신을 지키려는 눈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