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9화
사람은 돈의 아래 서있을 때 가장 비참해진다.
그건 소년이 가장 먼저 깨달은 진리였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잔혹한 일은 돈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이고, 가장 죽고 싶어지는 때는 돈을 위해 실험당하는 때이다. 남에게 자신의 품질을 평가당할 때 인격의 말살이 찾아왔으며, 그 끝에 처분을 결정당하는 때야말로 완벽한 자아의 죽음이 찾아왔다.
그리고 소년은 그 죽음 속에서 걸어 나간 유일한 사람이었다.
“도언아, 그래.”
돈에 팔려 간 소년은 그 어느 가축보다 훌륭하게 키워졌다. 제 고용주와 눈높이를 맞추고 번들거리는 시선을 숨기며 살아갔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죽였니?”
그의 고용주는 사설 보육원에 뒷돈을 대고 어린아이들을 사들이는 자였다. 그렇게 섞여 들어간 아이들 사이에 소년도 있었다.
고용주는 강한 개체를 원했다. 아이는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빠르게 알아챘다. 그래서 소년은 같은 방 안으로 내몰린 다른 형제들을 죽였다.
예상대로 고용주는 화를 내지 않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고작 열 몇 명. 작은 손을 쥐었다 펴던 소년은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될 때까지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지 계산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보호받을 수 없다면, 없어지면 안 되는 개체가 되면 된다.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되면 된다.
그의 고용주는 돈이 많았고, 소년은 그 돈에 목이 매달린 피식자였다. 아이는 고용주의 단 하나뿐인 자식이 되어 기어코 살아남았다.
성인이 된 소년은 유일했고, 정당했다. 모두의 신임을 받았고, 세계 경제에 또렷한 시야를 가졌으며, 게걸스럽게 물을 빨아들이는 고래처럼 지식을 습득했다.
그리하여 권도언은 그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고 고용주를 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다음 대의 수장이 되었다. 모두가 그에게 고개를 숙였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리고 그 끝의 끝에서 권도언은 지루해졌다.
수년이 지나고서야 권도언은 쓸쓸하게 인정했다. 이건 제 적성이 아니라는 걸.
그래. 이런 건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게이트가 나왔다.
게이트가 나온 첫날, 권도언은 파티에 참가해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호화로운 유람선 위에서 그는 길고 지루한 인사를 마쳤다. 짝짝짝, 물결 같은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1주일 동안 벌어지는 그의 연례행사는 언제나 그렇듯이 그의 취향대로 꾸며져 있었다.
“자, 그럼…….”
아무도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게 겉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 누구라도 혼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답게,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찬란하게. 권도언이 샴페인 잔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금빛에 가까운 액체가 출렁 흔들렸다.
누군가 칼을 빼어 들고 달려들었다.
시선이 뒤집힌 건 한순간이었다. 권도언은 밀쳐졌고, 난간은 성인 남성을 완벽하게 지지해 주기엔 터무니없이 낮았으며, 태양이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 밤바다의 파도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정도로 흉포했다.
그리고 권도언은 자신의 머리 위로 가까워지는 바다를, 그 바다를 비추는 하늘을 내려다보았다. 폭풍우가 몰려들고 있었다. 거대한 바람이 요동치는 힘이 되어 손아귀에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상태 창을 열람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그는 각성했다.
[상태 창]
[등급 : S]
권도언―헌터명 : 미정
기적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모른 척했던 기적이 뒤늦게 그의 등을 밀었다.
“웃기지 않아?”
기적은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가뿐히 난간을 밟고 우뚝 선 그를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파티의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도 그대로였다. 좌중을 쭉 둘러본 권도언이 헛웃음을 뱉었다.
“조직의 수장이 추락했는데 파티가 멈추질 않네…….”
모두가 짜고 친 게임. 그제야 권도언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권태의 정체를 깨달았다. 자신은 그 무엇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허망하게 빼앗길 뭔가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기 때문에.
“허어…….”
권도언은 키득거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권도언의 스킬은 ‘바람’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아니었다. 각성한 권도언은 갓 태어난 짐승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습득했다.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음에도 알 수 있었다.
폭풍우.
권도언의 눈이 침잠하며 빛났다. 모든 것을 끝내고 다시 시작할 시간이다.
그의 스킬은 폭풍우였다. 거친 어둠의 비가 내리쳤다. 광풍이 배를 후려치자 파도가 치솟았다. 유람선이 침몰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권도언은 망망대해 위에서 바람을 밟고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상태 창.’
[상태 창]
[등급 : S]
권도언―헌터명 : 미정/
이 놀랍고도 경이로운 힘의 근원은 어디일까? 흥미가 솟았다. 권도언의 얼굴에 활기가 차올랐다. 그 어떤 재앙도 막지 못하는 호기심의 시작이었다.
갑작스러운 재난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종된 유람선 침몰 사건은 갑작스럽게 세상에 나타난 게이트와 괴생명체로 인해 손쉽게 묻혔다. 애초에 비밀스럽게 주선된 파티이기도 했다.
“인어라…….”
그렇게 권도언은 인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인어를 연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연구소에 들어가야 하나?’
하지만 출신도 불분명한 그를 받아 줄 확률은 0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완벽한 원칙이 존재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곳은 그와 잘 맞지 않기도 했다.
‘아니라면 길드를…….’
그때 누군가 그에게 찾아왔다. 똑똑, 짧은 금발을 멋들어지게 넘긴 장신의 여자가 맞은편의 책상을 두드렸다. 오묘한 금안이 오래된 세월을 담아 권도언을 비췄다.
“각성자지?”
게이트가 나타난 지 이틀이 되던 날이었다. 격정적으로 변하기엔 아직은 이른 과도기. 그 과도기를 밟고 느릿하게 웃은 여자는 권도언의 맞은편에 무작정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안 사.”
“그런 거 아냐.”
“안 해.”
“나는 백리서야. 헌터명은 릴림이지.”
다짜고짜 이름을 밝힌 여자가 다리를 꼬고 턱을 괴었다. 두 눈이 느릿하게 감겼다 떠졌다.
“길드를 세우자. 네가 하고자 하는 걸 난 도와줄 수 있어.”
권도언은 변덕스러운 남자였다. 그는 상체를 기울였다.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얼마나?”
“뭐든.”
“내가 얻는 건 뭔데?”
“너와 같은 S급 헌터의 힘과…….”
백리서는 잠시 뜸을 들였다.
“지루하지 않을 시간들?”
권도언은 미소했다.
“너 뭐야.”
“나? 백리서.”
백리서가 비죽 웃었다.
“따분하지 않게 판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
너무나도 쉽게 넘어간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대신 서로에 대해서는 묻지 말자고. 피차 뒷조사해도 아무것도 안 나올 텐데.”
백리서는 웃었다.
그 후 순조롭게 건물을 매수해 길드를 세웠다. 지하 연구소도 창설했다.
모든 것이 나쁘지 않았다. 백리서가 인어를 잡아오면 권도언은 그것을 연구소의 수조에 가뒀다. 그리고 분해했고, 접합했고, 해부했으며, 실험했다.
자신에게 완벽에 가까운 흥미와 힘을 준 근원의 정체는 바로 이 인어 안에 있을 것이다. 권도언은 그리 확신했다. 인어들의 살갗을 얇게 잘라 보관하고, 유전자를 검사했으며, 모든 반응 검사를 진행했다.
“부족해.”
그러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정답에 근접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인어들에게도 ‘최초’가 있군.”
인어의 게이트가 열리고 인간들이 각성을 시작했으니까. 인어가 가진 마력이 전염되듯 ‘게이트’를 통해 인간에게 달라붙었다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트가 닫히면 인간의 힘은 사라지는 것일까? 그 게이트를 만드는 자는? 인어에게도 등급이 존재할까?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등급, 이 모든 인어들의 ‘최초’는 어떤 모습일까?
그 최초를 찾아야 한다. 그에게 정답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어 세포는 노화가 진행되지 않으니 영생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갈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최초’도 아직까지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권도언은 인어를 죽여 마석을 가공시켰고, 그들의 아가미를 잘라 내부를 관찰했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어떻게 하면 인간들도 물속에 들어갈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물속에 들어가서 최초를 만날 수 있지?
아니지,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나?
“인어들이 인간의 다리를 만들 수 있다고…….”
인간으로 둔갑한 인어가 실존한다. 인간형에 가까울수록 등급이 높은 인어이니, 그들의 ‘최초’ 또한 인간형의 모습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 우선은 이 연구를 계속하되…….
‘최초’로 의심되는 자를 발견할 시, 바로 사로잡아 절대로 놓치지 말 것.
◈ ◈ ◈
그건 권도언이 지정한 불변의 신념과도 같았다. 그래서 그는 내리깐 눈으로 고요하게 눈앞의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치열하게 달려왔던 목표의 종착지가 눈앞에 있었다.
“안녕.”
어쩌면 모든 것을 뒤엎을 열쇠. 가장 강력한 실마리.
권도언은 기계적인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누군가가 눈을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
“잘 잤어요?”
익숙한 천장. 빌어먹을 정도로 축축한 주변과 은은하게 퍼져 오는 악취.
“잘 못 잤어요…….”
데아는 권도언의 연구소 안, 실험대 위에서 눈을 떴다. 지끈지끈 아파오는 이마를 짚으려고 했지만, 손목이 묶여 있어서 불가능했다. 손목뿐만 아니라 발목마저 결박되어 있는 걸 본 데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젠장.
“길드장님, 나랑 장난해요?”
왜 나는 납치, 감금의 루트에서 벗어나질 못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