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8화
그러나 단 한 번의 눈 깜빡임 후, 권도언의 무표정은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인어가 목표로 삼는 게 다른가?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권도언이 평소와 같은 태도로 웃으며 손짓했다.
“데아 씨, 바다는 위험하니까 나와요.”
그러나 찰나였지만 데아는 확신했다.
‘나가면 안 돼.’
데아가 주춤하는 순간 뒤에서 거센 고성이 터졌다. 인어 떼의 공격을 받은 헌터들이 무참하게 죽어 나가는 소리였다.
“음…….”
권도언 또한 그 공격에 합세했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인어의 공격을 피하며 그들의 허를 찔렀다.
그래도 여례아의 헌터들은 끝이 없었다. 권도언과 헤타는 게이트 안으로 끊임없이 진입하는 헌터들을 보더니 일단 데아를 따라 바닷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권도언은 그 순간에도 뒤로 공격을 퍼붓는 걸 잊지 않았다.
“크악!!”
“윽!!”
인어 사냥이 아닌, 인간 살해. 권도언은 붉은 피가 얼굴에 튀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사, 사람을 죽였어!!”
여례아의 한 헌터가 충격받은 듯 소리쳤지만 게이트의 문은 완전히 닫힌 후였다. 이동 스크롤이 없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
분노로 붉게 달아오른 여기은과 그의 길드원들 수십 명이 죽은 시체를 뒤로 끌어내며 권도언과 헤타, 그리고 데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방해꾼이 너무 많이 들어왔는데…….”
그리고 그 순간, 데아는 모든 상념에서 깨어나 현실감각을 되찾았다.
‘나, 왜 그런 거지……? 연구실에 끌려가고 싶다고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권도언의 앞에서 뭘 한 거야?’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 그건 유일무이한 우리들의 특권이었단다. 네가 둔갑한 인어가 아니라는 걸 ‘도원’에게 어떻게 증명하려고?”
“넌 길드장을 믿니?”
예전, 1세대 인어 피파가 속살거렸던 음성이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아군이다. 데아는 그의 강함을 믿었고, 그의 굳건함을 믿었다.
그러나 동시에.
“비천하고, 위험하고, 돈이 되죠. 설마 인어가 불쌍해요?”
연구소 안에서 인어들에게 보인 그의 잔혹함도 믿었다.
‘어쩌지?’
분명히 아까 본 냉담한 무표정은 착각이 아니었다.
‘이대로 길드에 돌아가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였다.
인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고개를 치솟더니 알 수 없는 높은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반사적으로 인어를 공격하려던 권도언의 손이 멈칫 굳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여례아의 헌터들도 다 같이 위를 보고 있었다.
“뭐…….”
갑작스레 날카로워지는 신경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바쁘게 도망치던 인어들의 뒤, 광활하게 펼쳐진 수평선의 중앙.
물길이 치솟으며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과과과…….
바닷속에 웅크리고 있던 재앙과도 같은 생명체가 몸을 일으켰다. 추락하는 물줄기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바다를 난자했다. 산산이 부서지는 하얀 파도의 부스러기가 그렇게 짙은 위험의 징조를 품을 수 있다는 걸 데아는 처음 알았다.
“무슨…….”
머리를 짓누르는 침묵이 헌터들을 덮쳤다.
“저, 저게 뭐……!”
“보, 보스 인어입니다! 틀림없이 보스 인어입니다!”
하급 인어가 충분히 죽었기에 나오는 보스 인어.
모든 헌터들의 머리 위로 절망이 드리워졌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거대한 존재감이 전신을 압박했다.
‘이게 무슨 느낌이지?’
그때 무언가 깨달은 여기은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던전 측정은 던전 내부에서만 가능하다.
“지금 당장 던전 측정해!”
동시간대에 나타난 다른 다섯 개의 던전 난이도가 모두 낮아 방심했다. 서둘러 던전 측정기를 꺼낸 헌터 한 명이 해변에 푹 박고 기기를 돌렸다.
띠, 띠, 띠…….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흘렀다. 헌터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에, 에…….”
“뭐?! 제대로 말해!”
“에, 에스…….”
헌터들의 표정이 일시에 굳었다. 그건 최악의 상황을 예견한 공포에 가까웠다.
“S등급…입니다!”
전 세계에 나타난 던전 중, 가장 높은 등급은 A급이었다. 그러나 지금, 최초의 S급 던전이 나타났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들어온 헌터들은 해당 던전에 대한 어떤 사전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지니던 대부분의 무기는 헤타가 묻어버린 후였다.
“젠장!”
여례아의 임원진이 재빠르게 인벤토리 안에서 이동 스크롤을 꺼냈다. 그건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동 스크롤이 없는 헌터들은 가진 헌터들 옆에 빌붙어 그들이 스크롤을 찢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지 마!!”
여기은이 소리쳤다.
“어차피 여기서 클리어 못 하면 던전은 포화된다! 그렇게 나가도 소용없는 짓이야!”
“길드장님도 나가셔야 합니다!”
“무기도 없는데 S급 던전을 어떻게 깨요. 전례가 없다고요!”
하지만 공포로 이성이 마비된 헌터들은 여기은의 말을 듣지 못했다.
찌이익! 찌익!
헌터들이 이동 스크롤을 찢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
“게, 게이트가 왜…….”
생기지 않지?
모든 헌터들의 등에 소름이 올라왔다. 어깨를 곤두서게 하는 최악의 가정이 저 멀리 손짓하고 있었다. 헌터들은 반사적으로 보스 인어를 바라보았다.
세계 최초 S급 던전.
삐이이이…….
그곳의 보스 몬스터는 거대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섬과 같은 몸집.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성체를 한 보스 인어의 입이 딱 다물렸다.
삐이이.
고막을 후비던 소음이 딱 그쳤다.
보스 인어가 이동 스크롤을 통제할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던전 안에 고립된 모든 헌터들이 공포 섞인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못, 못 나가!!”
“당장 전투 준비해!”
빼앗긴 주 무기 대신, 인벤토리 안에 숨겨 두었던 보조 무기를 꺼내 든 헌터들이 숨 막히는 대치 상태를 이어 가고 있을 때였다. 문득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인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아니, 이건 심상치 않다기보다는…….
거대한 섬 같은 보스 인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단 한 톨의 적의심도, 악의도 없는 얼굴로, 나긋나긋한 손길로 파도를 막은 보스 인어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민 상대는 바로 헌터들이 그토록 쫓던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였다.
샤샤.
미풍이 불었다. 여기은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말도 안 되는 가정 하나가 방금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거기 너, 와봐.”
“길, 길드장님?”
“이 던전을 나가면 당장…….”
여기은의 얼굴에 낯선 경악이 가득 찼다.
“6년 전 생존자와 이데아, 이 둘의 일치성을 조사해.”
그리고 지금 데아는 조금 체념한 상태였다. 자신의 옆에는 권도언, 헤타, 그리고 무수한 여례아의 길드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보스 인어를 외면하지 못한 데아가 어렵게 인어를 마주하고 있을 때였다.
―아하…….
보스 인어가 뭔가를 깨달은 듯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보스 인어가 뭘 하는 거지?”
그리고 토악질을 하듯이 몸을 꿈틀꿈틀 비틀더니 이내 무언가를 뱉어 냈다. 거대한 몸에서 나온 것치곤 아주 작은 크기. 주먹만 한 마석이 인어의 손바닥 위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인어의 전신에서 빛이 잔잔하게 일어나더니 이내 거대한 섬광이 되어 흩어진 것이다.
첨벙!
무언가 바닷속으로 강하게 입수했다.
“뭐야?!”
“보스 인어가 사라졌다!”
“뭐지?”
“…아니야.”
권도언이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사라진 게 아니군.”
“그게 무슨 소리……. 아!”
보스 인어가 있던 자리에서 다른 하급 인어보다 더 작은 크기의 인어가 불쑥 머리를 들어 올렸다. 마석을 뱉고 다른 하급 인어보다 작아진 보스 인어가 느릿하게 헤엄쳐 데아의 발치에 이르러 환하게 미소하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바다님, 이걸 원했죠?
“마석…….”
그건 자신이 뱉은 마석이었다. 데아가 멍하니 받아 들자 인어는 더 환하게 웃으며 근처를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몰려든 다른 하급 인어와 함께 멀리 헤엄쳐 가버렸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보스 인어를 죽이지 않고 이런 방법으로도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구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데아가 마석을 집어 들자마자 모든 하급 인어가 물러났고, 그와 동시에 찬란하게 빛나는 출구 게이트가 생성된 것이다.
“설마 던전 클리어라고?”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야?”
아무도 죽지 않고, 아무도 싸우지 않았다.
“어떻게 던전 클리어가 되냐고! S급 던전인데!!”
“저, 저 여자애가 뭘 한 거야?”
“이것도 샤샤의 특수 스킬인가?”
“특수 스킬이 또 있다고?”
데아는 손에 든 마석을 가만히 쥐었다. 사방이 충격으로 소란스러운 데 비해 데아의 내면은 더욱더 침잠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이, 이것도 제 특수 스킬…….”
그렇게 변명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권도언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데아는 입을 딱 다물고 두려운 눈으로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중에서 누군가의 눈빛이 이상했다.
헤타.
그의 시선이 묘했다. 예상했던 기적을 보는 표정.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비를 기다려 온 사제가 폭풍우를 목도한 표정. 이상하게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데아는 불현듯 깨달았다.
자신이 어느 시험에 통과했다는 걸.
“게이트가 열렸으니 나갈 일만 남았네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권도언이 데아의 옆에 바싹 다가와 있었다.
그나저나 언제 여기까지 왔지……?
“그거 알아요, 데아 씨? 지금 게이트 밖에는 여파 길드원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요.”
“…네?”
“제가 불렀거든요.”
데아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헤타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당장 그 손 놓지 않으면.”
“데아 씨, 그러니까 이제 데아 씨는 안전해요. 여례아 길드원들도 전부 잡히겠죠. 증거도 있으니까 모든 상황이 정리될 거예요. 그러니까…….”
권도언이 차가운 눈을 숨기지 않으며 미소했다.
“조금 주무세요.”
“권도언!”
데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 헤타를 멀리 내쳐버리는 권도언을 보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기 전에…….
“이게, 몇 번째예요…….”
퍼억!
권도언의 어깨를 단도로 가격해 찢었다. 붉고 뜨거운 피가 쏟아졌다. 권도언이 허를 찔린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진짜…….”
그리고 데아는 거대한 졸음 속에 빠져들었다.
이건 경고야.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다음 찢기는 건 네 목이라는 경고.
어둠은 안락과도 같아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