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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67화 (67/223)

※ 067화

무기를 한가득 든 헤타가 성큼성큼 스트리머에게로 다가갔다.

“주십시오.”

“네?”

“무기.”

헤타가 스트리머의 손에 들려 있는 소형 카메라와 거치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스트리머가 헛웃음을 뱉었다.

“이 사람은 또 뭐야. 진짜 이상한 새끼들 여기 많…….”

노골적으로 짜증 내는 기색을 감추지 않던 스트리머가 모자를 휙 벗었을 때였다. 가라앉는 붉은 하늘 아래, 헤타의 은색 눈동자가 떨어지는 햇빛을 받고 반짝였다. 스트리머의 손이 우뚝 굳었다.

“어, 어 어, 형. 눈이……. 와, 진짜 잘생겼다. 렌, 렌즈 뭐 껴요?”

“네?”

헤타가 되물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스트리머의 얼굴은 환희와 놀라움으로 순식간에 물들었다.

“형, 그 눈썹 다듬은 거죠? 문신한 거예요? 아닌가? 염색은 무슨 색이에요? 애쉬는 빨리 빠지는데. 최근에 했나? 와, 와……. 미친, 이 얼굴을 왜 아까 못 봤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와 씨. 피부 봐. 관리 어디서 받아요? 아, 나도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또 먹어서……. 아 씨, 형. 여례아 헌터죠? 제 방송 게스트 나오실래요?”

1세대 인어 헤타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뿐이었다.

헤타가 고개를 기울이는 사이, 여례아 임원진 가운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헤타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완벽한 이목구비에 스트리머가 짜증도 잊고 또 탄성을 질렀다.

임원진이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시선 끝에 있는 건 낮은 속도로 기어오는 불씨였다.

“뭐야?”

“뭐 저런…….”

혼란스러운 사람들의 소음 속에서 편한 간이 의자에 앉아있던 여기은의 눈이 가늘어졌다. 권도언도 당황하지 않았다. 헤타도 마찬가지였다.

데아는 문득 저 낮은 불씨에 기시감을 느꼈다. 폭발하는 심지의 끝. 서서히 다가오는 뱀과 같은 예고는 분명…….

“신호탄?”

펑! 퍼엉!!

심지가 끝나던 부분을 기점으로 불꽃이 발작적으로 솟구쳐 올랐다. 완벽한 수직을 그리며 모두의 시선 속에서 위로, 더 위로 빠르게 쏘아지던 신호탄은 이내 타닥이며 노을 진 하늘에 강렬한 불빛의 숫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 숫자는…….

“023?”

“뭐? 무슨……!”

“하.”

숲을 뚫고 올라가 그려진 숫자가 사라지자마자 여기은이 미소를 지우고 하늘을 노려보았다.

“길, 길드장님! 설마 023이 전부 폭로한 건……!”

“이럴 줄 알았지. 걱정하지 마세요. 저건 그냥 겁주기용이니까.”

“네?”

“차현이 저희를 폭로한다고요? 그러면 차현의 살인죄도 동시에 밝혀질 텐데, 그런 위험한 도박을 할까요? 차현이?”

“하지만 신호탄이…….”

여기은이 길고 얇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감은 눈을 내리누르며 한숨을 뱉었다.

“뭐, 그래도 이쪽 편은 안 들겠다는 의사 표현은 확실하네요. 차현도 언젠가 밟아 줘야 할 텐데. 기자 연결해서 차현 기사 풀라고 하세요. 살인죄까지는 말고 그냥 겁만 줄 정도로만. 대충 가정불화쯤이면 괜찮겠네.”

“네!”

여기은의 말이 끝나자마자 데아는 깨달았다.

‘저게 신호인가?’

“아니요.”

권도언이 몸을 들썩거리는 데아를 멈춰 세웠다.

“신호는 아직.”

권도언이 안심시키듯 눈을 마주했다. 큰 소리가 난 건 그때였다.

멍하니 하늘로 사라진 023이라는 글자와, 당황해서 혼잡해진 여례아 헌터들을 쓱 둘러보던 헤타가 곧장 손을 까닥였다.

“아악!”

“뭐야!!”

그리고 이윽고 땅이, 정확히는 굴러다니던 돌멩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처음 보는 기현상에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데아의 시선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 사람 능력이…….’

“놀랍죠? 저도 보고 놀랐어요.”

낙오된 지역에 널려 있는 각양각색의 돌멩이들. 그 모든 무생물체가 한 사람의 의지에 따르며 파헤쳐지고, 흩어지고 있었다.

“저, 저 새끼다!”

헌터 한 명이 헤타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헤타의 눈이 본래보다 더욱 밝은 은빛으로 빛났다. 그런 그의 눈에서 시선도 못 떼고 바닥에 못 박힌 듯 바라만 보고 있는 스트리머나, 소리는 지르지만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는 헌터들이나, 아수라장이었다.

그때 헤타가 한 아름 껴안고 있던 무기를 일시에 툭, 놓아버렸다. 곧장 수많은 무기들이 아래로 추락했다.

“다음부터 무기는 스스로가 챙기십시오.”

그러고는 한순간이었다.

넓고 깊은 범위의 완벽한 바위와 돌들이 모여 순식간에 무기를 매장했다. 동시에 흙먼지가 풀썩 피어오르며 주변을 맴돌았다.

돌.

자연계 능력이다. 저 사람도 S급인가?

그는 바람을 다루는 권도언과 모래, 흙을 다루는 백리서와 같은… 강한 각성자였다.

“이런!”

“아니, 저게 무슨……!”

헤타에게 무기를 맡겼던 수십 명의 헌터가 고함을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지만 이미 부서지고 망가진 낮은 등급의 무기들은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때를 권도언은 놓치지 않았다. 그가 어딘가로 문자를 보냄과 동시에 띵, 영상 녹화가 종료됐다.

“지금이에요.”

“네?”

팔목이 잡혀 도약하듯 끌려간 건 한순간이었다. 느닷없는 권도언과 데아의 등장에 모여 있던 헌터들이 그보다 더 놀랄 순 없다는 표정으로 경악해 소리쳤다.

“권, 권도언이다!”

“저, 저 애는 분명!”

“뭐 하고 있어! 당장 잡으세요!!”

들이닥치는 공격은 빠르게 쌓여 올라간 돌무덤에 가로막혔다. 헤타의 능력이었다.

“세상에.”

한편, 스트리머는 대박의 냄새를 맡고 카메라를 켰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뛰어와 달리던 데아와 권도언의 옆에 호위하듯 선 헤타가 이어진 헌터들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 내자 헌터들이 악에 받친 고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큰 소리는 당연히 여기은의 분노 어린 고함이었다.

“내가 가겠어!!”

“길드장님! 안 됩니다!”

권도언이 향하는 곳은 닫히지 않은 하얀 게이트였다.

아, 클리어를 하려는 거구나.

데아의 검은 눈동자 사이에 원형의 고리가 비춰졌다. 문득 기묘한 충동이 데아의 전신을 장악했다. 데아는 이 충동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건 말도 하지 못할 만큼 지독한 이끌림이었다.

“빨리 달려요!”

“저 새끼들을 잡아!!”

“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위험하다 싶으면 이동 스크롤로 꺼내 줄 테니까!”

수십 일 동안 영양제로만 연명했던 몸에 어떤 힘이 솟은 건지 알 수 없었다. 폭발적인 힘으로 순식간에 권도언과 헤타를 추월한 데아가 앞장서서 하얀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 찰나에 뒤를 돌아보자 권도언과 헤타의 뒤를 쫓는 수십 명의 여례아 길드원이 보였다.

‘게이트에 다 침입해 오겠지.’

아군은 고작 세 명이다. 그에 비해 수십 명의 여례아 헌터들은 팔팔한 몸으로 자신들을 죽이려고 할 텐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심지어 자신은 과연 능력을 쓸 수 있을지나 불분명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는 상태인데…….

데아의 눈이 질끈 감겼다. 게이트는 훌륭한 자원 공간이자 사냥의 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완벽한 시체 처리 장소이기도 했다. 여기서 지면 모두가 시체도 못 찾고 죽는다.

신호탄으로, 헤타의 능력으로 모두의 이목을 돌려 시간을 벌었지만 그뿐, 이제 남은 건 오로지 세 명만의 힘뿐이었다.

솨아아아…….

게이트의 하얀 빛이 몸을 감쌌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일어나는 흔한 현상이었음에도 데아는 기묘한 힘을 느꼈다.

던전.

샤샤는 인어에게 강하지만 인간에겐 약하다. 그리고 육지에서는 힘을 못 쓴다. 등급이 낮은 활을 든 헌터에게도 손쉽게 당해버린다. 그런 샤샤가 유리한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수중.

데아는 두 눈을 떴다. 눈앞에 던전 내부의 공간이 환하게 펼쳐졌다. 이가 시릴 만큼 차가운 바다의 향취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이번 던전은 화창한 날씨의, 바위가 많은 해안가였다.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이 데아를 반겼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면 위로 상체를 내밀고 있는 수많은 인어들 또한.

데아는 해변을 밟고 곧장 뛰어올랐다.

첨벙!!

“어!”

“이데아 씨!”

헌터가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 하나.

절대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말 것.

던전 안의 바다는 인간에게 몹시 위험하므로.

그러나 데아는 기쁘게 바닷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위험이 나를 지켜 줄 것이니.

―바다님……!

―바다님이야!

인어들이 환호하듯 손을 뻗었다. 이빨이 사납게 벌어진다. 인어들은 곧장 데아의 손을 잡고 자신들이 있는 바다 쪽으로 훅 끌어당겼다. 권도언의 창백한 얼굴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지만 데아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바다님을 지켜!

무수한 인어들이 데아의 뒤를 향해 돌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으악! 이거 뭐야!!”

눈앞에 떨어진 식량을 발견한 이리 떼처럼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인어들을 보며 헌터들이 비명을 질렀다.

인어들의 목표는 게이트에 침입한 여례아 길드의 헌터들.

―그를 지켜라!

―보호해라!

데아는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붉은 피가 튀는 아수라장 속에서 식인인어들이 무자비하게 헌터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아.”

데아는 문득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자각했다. 실수했다. 유일하게 그 살육의 현장에서 제외된 누군가.

“아.”

권도언이 소름 끼치는 무표정으로 데아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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