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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66화 (66/223)

※ 066화

목소리가 까끌까끌했다. 목구멍 속에 걸려서 덜그럭거리던 말을 겨우 뱉은 음성 같았다.

“…괜찮아요.”

“많이 말랐네.”

“그건 맞아요.”

“…….”

데아는 조금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배고파요.”

“저런.”

권도언이 인벤토리에서 초콜릿 바를 꺼내 건넸다.

“혹시… 초콜릿 말고 다른 건 없어요?”

우물거리며 묻자 권도언이 고개를 저었다.

길드장의 인벤토리도 똑같구나.

데아는 음울한 눈으로 조심스럽게 네 번째 초콜릿 바를 뜯었다.

그때 권도언이 뺨을 긁으며 키득거렸다.

뭐가 웃기지.

하지만 데아의 표정도 금세 풀렸다.

“길드장님, 평소와 다르게 꼴이 말이 아닌 거 아세요?”

“그거 알아요? 이데아 씨 지금 냄새나요.”

데아의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어, 그러고 보니… 냄새를 생각 못 했었다. 자기 냄새는 자기가 못 맡는다고. 세상에, 29일 동안 씻지도 않았다니!

“…이, 이건 물에 빠졌다 나와, 나와서…….”

“28일 동안 밥도 안 주고 씻기지도 않고. 여기은은 납치범의 자세가 안 되어 있어요. 그렇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신경 안 쓰…….”

“젠장.”

갑작스러운 욕설에 권도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죄송해요.”

“뭐가요.”

“냄새난다고 놀린 거…….”

“저 화 안 났는데요? 그런데 저한테 그러실 때가 아닌 건 아세요? 지금 길드장님 꼴은 보셨어요? 저는 납치라도 당했지, 길드장님은 제 발로 나와 놓고 거지꼴이잖아요. 슈트만 입으면 다인 것 같아요? 아니면 혹시 29일 동안 이 숲에서 조난당하셨어요? 그러면 인정하고.”

“…….”

권도언은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에 대화가 멈췄다. 권도언이 자신의 소매를 끌어 올려 냄새를 맡았다.

그때였다.

“하지만 샤샤 헌터가 실종됐잖아요!”

임원 한 명이 소리쳤다. 데아와 권도언은 바로 바위에 다닥다닥 몸을 붙였다.

“하다못해 시체라도 찾았어도…….”

“그건 어쩔 수 없지. 일단 진행해. 나중에 시체라도 떠오르면 그때 찾았다고 해도 될 일이야.”

“네.”

그리고 임원 한 명이 벌떡 일어서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손짓했다. 간단한 방송 장비를 든 스트리머가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껄렁하게 걸어갔다.

“안전 보장해 주시는 거 맞죠?”

“네, 당연하죠.”

“하아… 진짜 던전 포화 세계 최초 생방송 찍을 수 있다고 해서 따라온 건데, 정말로 안전 보장해 주셔야 해요. 헌터 고용 안 해줬으면 애초에 따라오지도 않았어요. 혹시나 잘못되면 다 폭로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저 구독자 수 몇 명인 줄 아세요? 30만 넘어요. 당신네들 길드 폭로당하기 싫으면 딱 붙어서 지키세요.”

“네, 당연하죠.”

선량한 인상의 임원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스트리머를 안내했다. 스트리머는 말을 거칠게 했음에도 연신 주변을 살펴보며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서로 입 닫아야 하는 거 알죠?”

“당연히 알죠.”

그 모습을 데아와 권도언이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설마…….”

“그 설마겠죠.”

우연히 주변을 지나다 발견되지 않은 게이트의 포화를 발견하는 대본.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린 스트리머가 혼잣말을 시작했다. 허공에 대고 리허설하는 모습이 익숙했다.

개인 방송인 만큼 규제 없이 날개 돋친 듯 퍼져 나갈 영상이 눈에 훤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모두 권도언에게 돌아올 테고.

“짜잔~ 제가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바로 저번에 공지했던! 태안 서해안 던전이 생겼던 장소입니다! 공략은 완료됐지만 혹시! 인어의 흔적이 있을까 궁금해서 와보았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꾸욱 부탁드려요! 그런데 제가 길을 잃었나 봐요. 나무는 많은데… 여기가 어디지? 어, 저기 무슨 빛이 보여요. 뭐지? 딱 게이트처럼 생긴 게……. 어! 게이트? 세상에!”

표정 연기까지 실감나게 하던 스트리머가 우뚝 멈춰 서더니 정색했다.

“아니야. 여기서는 더 놀란 듯이, 생동감 있게.”

“저걸 속아?”

데아가 중얼거리자 권도언의 뺨에 얕은 보조개가 파였다. 그때 스트리머가 휙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같이 온 헌터들인 것 같았다.

“여례아 길드 헌터들이시라면서요. 제가 방송 찍을 때는 절대 카메라에 찍히면 안 되니까 멀리 숨어 있는 거 잊으시면 안 돼요.”

그의 말에 헌터 한 명이 난처하게 눈썹을 내렸다.

“하지만 그럼 만일의 상황이 닥쳤을 때 지켜드리기 어렵습니다…….”

“아, 어쩌라고요! 그러면 카메라에 나오시게요? 주작이다, 아예 광고를 하지, 왜?”

“하지만…….”

“아, 짜증 나! 한 번 말하면 알아들어요, 좀! 여례아 길드장도 지금 이러는 거 알아요? 그냥 가서 말해도 돼요? 토 달지 마세요!”

“…….”

스트리머는 등을 돌려 방송 장비를 점검하겠다고 가버렸다. 그러자 헌터가 욕설을 뱉었다.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그가 옆의 또 다른 헌터에게 자신의 무기를 턱 넘기며 턱짓했다.

“너는 길드 헌터가 아니고 프리 헌터지? 이번에 잠깐 고용되었다던.”

“네.”

“……?”

익숙한 음성에 반사적으로 데아가 고개를 들었다.

“야, 내 무기 점검 좀 해줄래? 이 형님은 좀 힘들다. 저런 새끼도 협력인이라고 비위를 맞춰 줘야 한다는 게.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다 이런 거 아니겠냐. 넌 아직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이런 사람도 정말 많고…….”

“각자의 주머니가 있지 않습니까?”

“뭐?”

“당신은 인벤토리가 없습니까?”

“아, 아니, 있는데.”

“그렇다면 무기는 스스로가 관리하십시오. 왜 저에게 무기를 주시는 겁니까?”

말대답하는 헌터를 황당하게 쳐다보던 헌터가 하, 크게 비웃더니 이내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너 이 새끼야. 지금 선배가 우스워 보이냐? 잠깐 무기 좀 들고 있으라는데…….”

“저는 길드 소속 헌터가 아닌 용병이기 때문에 선후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용병… 뭐?”

“아, 실수했군요. 용병이 아니라 프리 헌터.”

데아의 눈이 커졌다. 익숙한 음성에 누군가 했더니. 2미터에 육박하는 키, 거대하고 단단한 근육질의 날렵한 몸. 어두운 피부색에 회색의 짧은 머리카락. 짙은 이목구비의 금욕적인 미남.

헤타였다.

그의 도톰한 입술이 잠시 다물리더니 이내 다시 열렸다.

“아니면 보통 길드에서는 권… 아니, 후임을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겁니까? 잘 알겠습니다.”

인간들의 세계에 대해 좋은 정보를 얻었다.

1세대 인어 헤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상대 헌터는 아닌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우락부락해진 그가 이내 헤타의 손에서 자신의 장창을 빼앗았다.

“하! 이 새끼가 지금 비꼬는 거냐? 능력치 하나 보고 뽑았다고는 들었는데, 행동거지가 영……!”

그러자 헤타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언제 위험이 닥쳐올지 모르는 전시에 자신의 무기를 지니는 건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상대방에게 무기를 맡겨 놓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자만적인 행위이지요. 아, 설마 스스로의 무기를 잘 다루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물론 신입의 경우 상급자에게 자신의 무기 관리를 맡기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 새끼가! 그만해!!”

“잘 해주고 계시네.”

데아의 위쪽에서 권도언이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아까 말한 첩자라는 게…….”

“네에.”

데아의 눈썹이 조금 구겨졌다. 권도언이 다시 편하게 바위에 몸을 기댔다.

“이제 조금밖에 안 남았어요. 엉성해 보이지만 역할은 확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저 첩자가 보낼 신호를 기다려야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타에게서 신호가 왔다.

“길드를 나올 때 아무도 제 위치를 모르게 하는 게 중요했어요.”

헤타의 신호가 오기 전, 권도언이 자신의 턱을 느릿하게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저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 눈에 띄어도 여파 길드 소속임을 모르는 헌터. 동시에 이데아 씨가 사라진 사건에 대한 부채감도 나름 가지고 있고… 그럼에도 강한 헌터. 저분은 모든 조건에 부합했죠.”

“제가 사라지고 나서 저 사람을 조사했군요.”

“조사까지야. 그냥 포섭이었죠.”

권도언이 바위에 손을 올려 턱을 괴었다.

“그리고 뭐… 나름대로 숨기는 것도 있는 것 같고. 곁에 두고 관찰하면 재밌는 게 나올 것 같아서…….”

권도언이 입만 올려 웃었다.

그때 여전히 여례아 길드에 고용된 프리 헌터 행세를 하고 있던 헤타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권도언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사각지대에서 은밀하게 두 눈이 마주치고, 권도언이 낮게 손짓했다. 헤타가 잠시 침묵하더니 느리게 걸음을 옮겨 아까 전의 다른 헌터에게로 다가갔다.

“조금 전에는 말을 심하게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 어어… 아니, 뭔…….”

“무기는 제가 들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편하게 앉으십시오.”

“아니, 괜찮…….”

“앉으십시오.”

딱딱하기 그지없는 미남의 낮은 음성은 효과가 굉장했다. 데아는 헌터들의 무기 셔틀을 자처하며 주변을 휩쓸고 다니는 헤타를 의아하게 지켜보았다.

둘이 뭘 짠 거지?

“자아, 이제 곧 신호가 오려나 봐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다리가 아플 만큼 대기했던 수 시간, 던전 포화가 불과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권도언은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그리고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자, 자! 대기하세요! 던전 포화되기까지 최소 다섯 시간 남았으니까!”

“뭐?”

“어?”

나무 의자에 앉아 앞머리를 정돈하던 스트리머가 벌떡 일어섰다.

“하루 남았다면서요?!”

“네, 하루.”

“다섯, 다섯 시간은 뭐예요?”

떨리는 목소리를 듣던 임원이 차분하게 수첩과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해당 던전은 으슥한 곳에 있는 만큼 발견이 늦어서요. 보도된 적 없는 여섯 번째 게이트잖아요? 게이트 첫 발생 추정 시간이 광범위한 만큼 던전 포화 추정 시간도 정확하지 않을 뿐입니다. 빠르면 다섯 시간 후에, 늦으면 스물두 시간 뒤에 포화가 진행되겠네요.”

“범위가 너무 넓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협력자분의 안전은 반드시 책임집니다.”

“아니, 그래도…….”

스트리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홀로 구시렁거리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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