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65화 (65/223)

※ 065화

“…동정 안 하는데요.”

진심이었다. 시체가 꺼려질 뿐, 개개인에게 불쌍한 마음이 드는 건 결단코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들을 왜 추모한단 말인가?

하지만 권도언은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사람 죽은 거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아, 혹시 사람을 죽인 길드장은 더 이상 길드장으로 인정해 주기 싫고 그런 건가? 나가면 신고할 거예요?”

그가 빈정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권도언의 태도는… 조금 이상했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권도언의 주변을 쓸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의 선을 침범하면 그대로 베어버릴 것 같다.

“사람이 왜 이렇게 삐딱해졌지.”

“다 들린다니까요.”

“그나저나 물어볼 게 많은데, 저 그 뉴스 봤어요. 횡령, 그거 뭐예요?”

“아… 지금 얘기할 만한 주제가 아닌데. 일단 말도 안 되는 지라시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진짜요?”

“네. 돈 많은데 내가 횡령을 왜 해요.”

“…….”

뭐지? 이 근거도 뭣도 없지만 묘하게 믿음직한 말은?

“…뭐, 네.”

“진짜라니까요. 왜 못 믿어요. 이제 길드장 못 믿겠어요? 신뢰감이 엄청 떨어지고, 탈출하고 싶고 그러나?”

“또 왜 저래…….”

“그럼 뭔데요. 거기는 왜 가요. 죽은 사람들이 불쌍해서 시신을 수습해 주려고 그런 거라면…….”

불쑥 남자들이 있던 쪽으로 갔던 데아가 다시 돌아와 권도언의 손에 쥐여 준 건 붕대였다. 권도언의 입이 일순간에 다물렸다.

“…….”

권도언이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훑었다. 피가 묻어 나왔다. 한참 동안 붕대를 내려다보던 권도언이 데아를 한 번, 그리고 피 묻은 제 손을 한 번 보고는 의중을 파악하고야 말겠다는 듯이 집요하게 데아를 응시했다.

“치료해 주려는 건 고맙지만… 이거 내 피 아닙니다.”

권도언이 순식간에 정중해진 어투로 읊조렸다. 데아가 설핏 웃었다. 권도언의 눈동자에 데아의 미소가 담겼다. 권도언이 낯선 표정을 지었다. 그가 시선을 돌리며 붕대를 만지작거릴 때였다.

“길드장님 말고, 저요.”

“네?”

“저한테 감아 달라고요.”

그리고 데아가 자신의 오른팔을 내밀었다. 확실히 손등에 붉은 자국이 올라와 있었다.

“길드장님의 상도덕 없는 태풍에 넘어져서 손이 쓸렸거든요.”

“…아하.”

방긋 웃은 권도언이 붕대를 펼쳤다.

“그렇군요?”

“네. 사실 저 남자들이 제 상처를 봐주고 있었는데 낌새가 이상해서 도중에 일어났거든요. 연고는… 태풍에 휘말려 날아가 버린 것 같은데 뭐, 상심하진 마세요. 어차피 대부분 바른 상태라서 더 바를 곳은 없으니까.”

“…….”

“표정이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요.”

데아의 오른쪽 손이 붕대에 칭칭 감겼다. 과도하게 감아 퉁퉁 불어터진 모양새가 됐지만 권도언은 뭐가 잘못됐냐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28일 만이에요.”

그러던 권도언이 가볍게 툭 뱉었다.

“네?”

“이데아 씨 실종으로부터 28일째라고요.”

“…….”

데아의 입이 허망하게 벌어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미리 못 찾아서 미안해요. 여기은 그 새끼가 말도 안 되는 장소에 지하실을 만들어 둔 것까지는 알아내서 근접 지역까지는 접근했지만…….”

“어, 어디 지하실이요?”

“알고 탈출한 거 아니에요? 바다 밑이죠.”

“……?”

“여기은도 제정신이 아닌 게, 바다 밑에 지하실을 만들어 뒀더라고요. 그러니까 터져서 길드원들이 다 죽어 나가지. 등신 새끼가…….”

데아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할 때였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

“……!!”

기척은 확실했고, 행동은 재빨랐다. 권도언이 죽은 남자들의 시체를 들어 올리자 데아가 재빠르게 길을 안내했다.

핏자국은 작고 강한 규모의 바람으로 없애고 때마침 발견한 큰 바위 뒤로 몸을 숨긴 직후였다.

일곱, 여덟… 아니, 열하나? 열 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쉿.”

고개를 돌리자 권도언의 눈과 맞닥뜨렸다. 생각보다 가까운 위치에 그의 회색 눈이 있었다. 짙고 곧은 눈썹 아래 길게 그어진 수려한 눈매가 상대를 담고 살짝 휘었다.

“우리 들키면 안 돼요. 알죠?”

“…알아요.”

“그런데 시체는 왜 들고 왔어요?”

“저치들에게 시체를 들켜 봤자 좋은 건 없잖아요?”

“아하… 일단 저리 떨어뜨려 놓으세요.”

“뭐어, 분부대로.”

그때 거친 고성이 들려왔다.

“이놈들이, 지키고 있으라 했더니 어디 갔어?!”

“뭐, 진정하세요. 화장실에 갔거나 그랬겠죠.”

“분명 또 어디로 튀었거나 했을 겁니다. 그놈들은 원래 그래요! 참… 길드장님이 길드원에게 너무 물러서 문제라니까요.”

“하하.”

여기은이었다. 데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를 중심으로 나이도, 성별도 제각기 다른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같은 원형의 흰색 브로치가 달려 있었는데, 그건 분명…….

“여례아 임원진이네요.”

권도언이 낮게 웃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엎어 놓고는 바위 밑쪽으로 쭉 밀었다. 영상 촬영이다.

데아는 숨을 죽였다.

“이데아는?”

흠칫.

처음부터 본론이었다. 데아는 권도언이 밀어 넣은 휴대폰을 한 번, 그리고 그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걱정 말아요. 이름은 편집해 줄게.’

권도언이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데아는 다시 여례아의 임원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죽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지하의 상태를 보셨습니까?”

“아직.”

“완전히 침수되었어요. 분명 설계상에 문제가 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바다 아래에 기지를 짓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걱정들이 많았는데요. 부품 하나하나, 설계, 골격 구조까지 검수해 가면서 건설했단 말입니다!”

“하지만 벽이 가루가 되지 않았습니까. 분명 수압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인어 때문일 겁니다.”

머리를 하나로 묶은 임원 한 명이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는 게이트를 가리켰다.

“지금은 그쳤지만, 저 게이트에서 다량의 인어가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인어들은 본능적으로 물을 찾아가죠. 마침 이 근처에는 작은 수로와 저수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인어는 물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속도를 가집니다. 게이트가 생성된 건 오늘로 거의 28일… 아니지, 이제 29일째. 물길과 육지를 넘어 서해안에 다량의 인어가 침범해서 인위적인 강한 해류가 생겼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혹은 인어가 직접 벽을 부쉈을 수도 있고요.”

“흐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니 넘어가도록 하는 게…….”

“추정되는 사상자만 열 명이 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라뇨!”

“그럼 누구를 탓해 볼까요?”

“…….”

“누구를 탓할 수 있죠?”

그들의 위로 침묵이 끼얹어졌다. 중앙에 마련되어 있던 의자에 털썩 앉은 여기은이 손을 휘 흔들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지금 심각한 사항은…….”

여기은의 긴 다리가 까딱였다. 서늘한 인상의 미인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다.

“샤샤 헌터가 사라졌다는 거야.”

“분명 같이 파도에 휘말려 죽었을 겁니다.”

“시체가 없잖아, 시체가.”

“바다에 휘말린 이상…….”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기 전까지는 정확한 게 아니지. 상대는 그 샤샤야.”

여기은은 짜증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 여파 상황을 알지? 길드장이 도망간 거. 아주 미친놈이야.”

흘끔, 데아와 권도언의 눈이 마주쳤다.

“도망쳤어요?”

“아뇨. 그럴 리가.”

“그럼 뭔데요.”

“그냥 짧은 나들이죠.”

“도망친 거 맞네.”

그때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여기은이 발꿈치로 나무를 차는 소리였다.

“그러니 지금! 그놈의 명성이 땅에 떨어졌을 때 치명타를 입혀야 해.”

여기은이 한숨처럼, 그러나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저 게이트는 아직 노출 안 됐지?”

“네.”

“그래. 잘 지켜. 아직까지 순조로운 걸 보니까 차현이 입을 잘 다물어 주고 있는 모양이야.”

차현. 023의 길드장. 조금 말을 이상하게 해도 털털하고 쾌활하던 그까지 이 일에 연루되어 있던가?

데아가 예상치 못한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때 여기은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사람들은 아직이야?”

“아니요, 곧 올 겁니……. 아, 왔군요.”

수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데아와 권도언의 고개도 절로 돌아갔다. 단순한 방송 장비를 든 사람 한 명과 헌터복으로 무장한 사람 두어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뭐지?”

“스트리머.”

“네?”

권도언이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낮게 웃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역시였네.”

“…뭔데요? 저도 알아듣게 말해 주세요.”

“더 보면 데아 씨도 알 거예요. 아, 뉴스는 봤어요? 전국에 게이트 다섯 개가 터졌다는 거.”

“아… 네, 기억나요.”

“여기은이 안일했네. 납치 피해자한테 뉴스 같은 걸 보여 주고.”

데아가 눈을 가늘게 뜨자 권도언이 입꼬리를 비죽 올렸다.

“수원에 하나, 평택 미군기지에 하나, 아산에 하나, 충남 태안에 두 개. 그중에 하나는 태안 서해안 해변 쪽. 던전 난이도는 다 비슷하게 낮아서 걱정할 필요 없이 잘 공략된 상태예요.”

“잘됐네요. 잠깐, 그러면 지금 저 게이트는 뭐예요?”

“운이 좋았던 건지, 의도였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뉴스에 보도되지 않은 여섯 번째 게이트가 지금 눈앞에 있는 거죠.”

“…여례아에서 고의적으로 여섯 번째 게이트의 존재를 숨겼군요. 더불어 오늘이 28일, 아니 29일째라면 던전 포화까지는 하루도 남지 않은 거잖아요?”

게이트가 나타나고 30일 동안 공략되지 않는다면 던전이 포화된다.

“이번 게이트는 아마 포화될 거야. 포화되어야만 해.”

밀실에서 정신을 잃기 직전, 여기은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었나? 그런데 왜?

“왜 던전을 포화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전 세계를 뒤져 봐도 던전이 포화된 사례는 없었다.

여태까지 B등급 이상의 게이트가 나오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지만, 많은 헌터들이 죽기 살기로 전투에 임한 덕분이기도 했다.

더불어 아직까지 포화된 던전이 없다는 건, 예상조차 어려운 ‘던전 포화’라는 단어에 전 세계 인구가 막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지표이기도 했다.

데아가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안다는 듯 권도언이 조금 난처하게, 그러나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지금 저 던전의 공략 우선권이 여파한테 있거든요.”

“…네?”

“이해해요. 저도 몰랐어요. 그런데 서류가 그러더군요.”

공략 우선권. 공략을 우선할 권리.

지금처럼 여러 개의 던전이 동시에 출몰하는 경우, 상부의 논의에 따라 해당 던전의 공략 우선권은 대형 길드가 먼저 받게 되는데, 한국의 대형 길드라 하면 여파, 023, 그리고 여례아가 다였다.

공략 우선권을 받은 길드는 해당 던전을 먼저 공략할 권리를 가지게 되고, 덩달아 그 안에서 나온 희귀한 아이템과 자원, 인어의 사체와 마석에 대한 독점권도 가지게 된다. 더불어 인벤토리라는 훌륭한 화물 이동 수단도 존재했으니 얻을 수 있는 이득에 한계란 없었다.

여기서 얻게 되는 이익이 어마어마한 것은 당연지사였고, 그렇기에 모두가 공략 우선권을 탐내는 것 또한 순리였다.

하지만 공략 우선권이 다음 길드에게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건 바로 길드의 공략 팀이 전멸하거나, 처참하게 다치거나, 포기하는 경우였다. 예외는 없었다.

“하하.”

권도언이 짜증스럽게 미간을 좁혔다.

지금 그 공략 우선권이 여파의 목덜미를 틀어막으려 하고 있었다.

“조작이죠. 참, 제 횡령 소식 들으셨다고 했죠? 그거 여기은 저 위아래 모르는 놈이 퍼트린 지라시예요. 뭐… 덕분에 지금 세간에서는 절 괴이한 취미에 헌터 자금을 빼돌린 위선자로 평가하고 있고…….”

“…….”

“덩달아 길드 헌터들에게 응당 돌아가야 할 지원마저 빼버린 악덕 길드장이 되었죠. 거기에 여파의 가장 유명하고 신비롭고 인기 높은 샤샤는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소식이 없네요. 자, 그럼 여기서 가장 치명적인 시나리오는 뭘까요?”

“문제 내지 마세요.”

“네에. 정답은 저 던전이 포화되는 거예요. 무려 세계 최초의 던전 포화죠. 모든 야유와 악평이 저 던전의 공략 우선권을 가진 길드에게 쏟아지겠군요. 끔찍해라.”

여례아가 원하는 건 여파의 몰락이었다. 그는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완벽하게 매장되어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의 파국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데아 씨까지 납치한 걸 봐서는 여기은은 더 강력한 한 방을 원했던 것 같죠.”

“강력한 한 방이라면…….”

데아는 문득 모든 걸 알아차렸다. 이제까지 들었던 모든 말들이 순식간에 이해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아주 강력한 한 방.

그건……

“포화된 던전 옆에서 내 시체가 발견되는 거네요.”

헌터의 지원 자금을 횡령한 권도언은 고립된 샤샤 헌터에게 그 어떤 지원도 해주지 않았고, 결국 그 결과는 던전 포화와 유능한 헌터의 사망으로까지 이어졌다.

몰락하기 딱 좋은 시나리오 아닌가.

“왜 그런 짓을…….”

“여기은이 음습하다니까요. 첫 만남 때부터 그랬어요.”

데아는 문득 한 달 만에 만난 이 남자가 무척이나 피로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분명 유난스러운 능청스러움도, 가벼운 말투도 그대로인데 왜 그렇게 보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28일 동안 수고 많으셨겠어요. 던전도 공략해야 하고, 저도 찾아야 하고, 지라시 해명도 해야 하고, 여례아 뒤도 쫓아야 하고…….”

“아뇨… 사실 이건 초반에 다 예상한 건데, 역시 가장 완벽한 추락은 정상 직전에서 떨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

“일부러 기다렸어요. 첩자를 심어 두고, 도망가지도 못 할 덜미와 증거를 다 잡기 위해.”

그리고 권도언은 바위 위에 상체를 스르륵 기댔다. 그러자 데아와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졸린 듯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그가 데아를 마주했다. 순식간에 사위가 조용해졌다. 권도언은 웃지 않았다.

“일찍 못 찾아줘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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