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4화
데아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시야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길 반복했다. 듬성듬성 박혀 있는 기둥에 기대 잠시 쉬기도 하며 인어들의 손을 잡고 끌려가듯 헤엄치길 오래.
―…우리는 더 못 가.
―미안해. 우리는 더 못 버텨.
수로가 급격하게 꺾이는 코너 길에서 세 인어가 헤엄을 멈췄다.
확실히 악취까지 물씬 풍기는 더러운 물에 데아도 본능적인 거부감이 앞섰지만 애써 떠나가는 인어들의 뒤를 배웅해 주었다.
“잘 가.”
―바다님. 다음에 또 봐!
“응, 고마워.”
―또 봐!
―또 봐아!
저들은 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뿐이야.
던전을 클리어하면 밖으로 나온 인어들 또한 같이 사라진다. 아마 그건 밖에 있던 모든 인어가 회수되는 거겠지.
하지만 던전은 30일이 지나면 포화되고,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도 비극이 찾아온다. 그전에 빠르게 게이트를 찾아 클리어해야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어야 할 텐데.
데아는 오염된 수로 밖으로 나가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다.
“인어들은 수로를 따라 쭉 올라가면 인간들이 나온다고 했으니까…….”
더러운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보다는 밖에서 수로를 따라 걷는 편이 자신에게 더 이로우리라.
지나가던 헌터가 자신을 발견해도 같이 있던 인어들도 없으니 모두가 안전했다.
“에취!”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지만 지금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시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늦가을이라 날씨가 금세 추워졌다. 이러다 저체온증으로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그냥 무리해서라도 빨리 가는 편이 나을까?
―바다님, 안 추워?
“……!!”
그때 돌아간 줄 알았던 인어 하나가 불쑥 뒤에서 말을 걸었다. 데아가 놀라 돌아보자 인어가 고개를 기울여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수로의 아스팔트 위쪽으로 나뭇가지를 올려 두었다.
―여기 더 모아 뒀어!
다른 인어들도 품 안에 한가득 나뭇가지를 들고 나타났다.
“너희들…….”
―바다님이 추울 것 같아서!
―사실 우리도 조금 추워!
―맞아!
물고기는 변온 동물인데 추울 리가.
데아가 자상하게 웃었다. 그때 한 인어가 인간들에게서 빼돌렸다며 자랑스럽게 작은 성냥갑을 꺼내 들었다. 당연하게도 물에 젖어 있었다.
―어, 어? 이걸 여기다 이렇게 하면 불이 생겼는데?
―야, 네가 못 하는 거 아니야? 이리 줘봐!
―이 바보들아!
칙, 칙, 칙…….
―아! 나 이런 것도 있어!
또 다른 인어가 꺼내 든 건 라이터였다. 물에 젖은 라이터의 사용은 폭발의 위험성이 있고…….
하지만 인어들은 울상이 된 채로 역시나 불발된 라이터를 집어 던지고선 데아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날이 저물었다. 저도 모르게 인어 사이에 낑겨 절반쯤 기댄 데아가 눈을 끔뻑거렸다.
‘권도언이 이걸 보면 기뻐하며 날 연구실에 처넣겠군…….’
물고기 특유의 비릿한 향이 스멀스멀 느껴졌지만 온기에 온몸이 늘어지는 것이 먼저였다. 분명 물고기는… 변온 동물일 텐데.
아.
데아는 나무에 기댄 인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깨달았다. 인어의 절반은 인간이라는 것을.
“…….”
데아의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인어의 절반은 인간이었다…….
수일 동안 잠만 잤다지만 지금 느껴지는 피로감은 별개였다. 하급 인어인 이것들이 왜… 이렇게 나를…….
잘 대해 주는 걸까.
데아는 생소하고도 불편한 동시에 안락한 양가적인 감정 속에서 가까스로 마음을 정리하고는 눈을 감았다.
오늘은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건물 하나 없는 숲이라서, 물가가 가까워서 더 그렇게 느꼈던 걸 수도 있었다.
저벅, 저벅.
아득한 꿈과 현실의 가장자리 사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추위에 덜덜 떨던 데아의 의식 끝,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바람이 한 번 더 불었다. 척추에 찬물이 부어지는 것 같았다. 옹기종기 모인 인어들도 추웠는지 서로 오들오들 떨기 바쁘던 그때.
치익―
데아는 그것을 꿈과 구별하지 못했다.
눈을 떴다.
밤의 어둠을 수놓은 숲의 장막이 머리 위에 나부꼈다. 비정상적인 추위에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하급 인어가 모아 놓은 나뭇가지에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꽤나 아늑하고 인상적인 화염을 데아는 잠시 멍하니 응시했다.
인어 중 하나가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나 보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제 더는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불은 꺼져 있었다. 데아는 재밖에 남지 않은 잔해를 다시 수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정말 갈게.”
아껴 두었던 초콜릿 바를 하나 더 입에 문 데아가 떠나가는 인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잘 가!
―바다님, 다치지 말고!
인어들도 수로 속으로 몸을 담그며 휘휘, 길고 괴이하게 생긴 손을 휘둘렀다. 정말이지 주변에 이 모습을 목격할 다른 헌터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 ◈ ◈
“아직인가?”
인어들이 말한 ‘날이 밝아지다가 어두워질’ 정도의 거리라는 건 과장이 아니었다. 데아는 물에 젖은 옷이 마르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질 때까지 걸어야 했다.
그리고 울창했던 숲이 어느덧 한산해질 때, 저 멀리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구나.”
아침이었던 하늘은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부상당한 몸으로 비척이며 걸어왔기에 남아 있는 체력 또한 없었다.
“그래도 찾아와서 다행이지…….”
데아는 나무기둥에 이마를 대며 숨을 골랐다. 말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사람이다.
살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저, 저기요.”
크흠,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잠긴 목을 풀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저벅.
“누, 누구냐!”
“뭐야?”
건장한 남성 둘.
데아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하얀 원형의 거대한 게이트가 그들 주변에 있었다. 역시 게이트가 터진 장소에 헌터가 파견되었던 것이다.
“저, 저는 여파 소속 B급 헌터 이데아입니다.”
이렇게나 인적 드문 구석에 게이트라니……. 게이트가 열려 있는 걸 봐서 공략 중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헌터가 더 있겠지.
데아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었다.
“괴한의 습격을 받고 조난당했는데, 혹시 아무나 휴대폰을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쿨럭, 한 통, 한 통만 쓰고 돌려드리겠습니다.”
헌터는 얕보이는 순간 끝난다. 데아는 이제 열마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 몸 상태를 억지로 내리누르며 태연을 가장했다.
또박또박한 음성에 게이트 앞을 지키던 헌터 두 명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데아는 모르는, 자기들만의 신호가 오갔다.
서늘한 감각에 데아가 표정을 일순 굳혔다. 하지만 착각이었던 듯 남자들은 데아의 몰골을 보고 붕대와 연고를 챙겨 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 상처 좀 봐. 많이 아프셨겠어요.”
“그런데 지금 힐러가 안 와서……. 일단 이거라도 하고 계실래요? 어디 붕대가…….”
“저, 저는 괜찮습니다. 그것보다는.”
휴대폰을 한 번만…….
데아의 말은 또 묻혔다. 그들이 데아의 왼쪽 팔의 상처를 발견하고 소리 높여 안타까운 탄식을 흘렸기 때문이었다.
“맙소사. 이렇게 깊은 상처를 입고 숲속을 헤매신 거예요? 어디쯤에서 오신 거예요?”
“일단 앉으세요. 소독약이 이것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뿌려드릴게요.”
“저, 휴대폰 한 번만 빌려주시면…….”
“아, 맞다! 저희가 지금 게이트 공략 인원이 부족한데, B급 헌터시면 많이 강하시네요. 혹시 지원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맞아요! 던전 등급은 별로 안 높아요. B급 헌터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난이도가 아닐 거예요. 물론 지금 몸으로는 무리니까 상처를 치료하고 나면 그때 출전 부탁드릴게요.”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불편한 친절함 속에서 데아는 껄끄러움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아니,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제 소속 길드에 연락을 해야 해서요. 휴대폰 한 번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헌터님, 화상 연고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가져올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맞아요. 일단 안정을 취하시고…….”
“소속이 어디신가요?”
남자 두 명이 딱 입을 다물었다.
탁!
데아는 그들의 팔을 뿌리치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소속이 어디신가요.”
‘경배야. 경배야. 대답 좀 해줘.’
그때 익숙한 존재감이 살랑이며 주변을 감돌았다.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몸 안의 근육이 이완되었다.
―어, 자기야.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도 걸어오는 동안 마력이 상당수 회복된 것 같았다. 다행이다. 데아는 힘이 풀릴 뻔한 다리에 가까스로 힘을 주었다.
“에이, 씨.”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까까지 미련스러울 정도로 실실 웃던 남자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여례아…….”
데아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자신을 납치한 여기은의, 여례아의 길드원들이다.
그때 남자 두 명이 순식간에 인벤토리 안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데아를 겨냥하기 시작했다. 둘 다 활이다.
―자기야, 저 뒤로 숨어!
팍, 파악!!
데아는 자신의 발 부근에 꽂히는 여러 대의 화살을 피해 몸을 옆으로 굴렀다.
“이!”
―이런. 주변에 물이 없네.
이 주변에는 물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스킬, 바다의 경배를 사용할 수 없었다. 데아도 빠르게 인벤토리 안에서 단검을 꺼내 쥐었다.
다행히 높은 등급의 헌터는 아닌지 명중률은 떨어졌지만, 활대에 화살을 얹어 당기기만 하면 어느 정도의 힘이 충당되는 스킬을 가진 헌터 두 명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름 위협적이었다.
“윽!”
데아가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파악!
숙인 고개 위로 화살이 하나 더 날아와 꽂혔다. 식은땀이 뒷목을 타고 흘렀다. 헌터로서 인어를 사냥하는 법을 배웠지, 인간을 공격하는 법은 배우지 않았는데…….
단검 가지고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샤샤 헌터가 그렇게 강하다고 하더니, 그것도 아닌데?”
“뭐, 부상 상태니까. 우리 입장에선 더 좋지, 뭐.”
심지어 저들은 자신이 샤샤인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데아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흠뻑 젖었다. 남자들이 얄밉게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실종이라더니, 죽지도 않았네. 자, 자. 이제 그만 끝내고 원래의 계획대로…….”
‘계획?’
데아는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나무를 박차고 몸을 비켜 뛰었다. 그때 오랜 시간 통증을 호소했던 발목이 꺾이고, 중심을 잃은 데아가 앞으로 고개를 처박으려 할 때 휘익, 화살 하나가 더 공중을 날았다.
“……!”
각막에 날카로운 화살촉이 비춰졌다. 죽을지도 모른다. 상태 창이 경고하며 반짝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스킬이 없었다. 무엇보다 인어가 아닌 인간을 상대로는……!
그리고 그 순간, 데아는 자신을 감싸는 안락한 폭풍을 느꼈다. 심상치 않은 바람의 흐름. 남자들과 데아의 주위에만 위협적으로 몰아치는 작은 세상의 날씨. 세상에서 가장 작은 태풍.
권도언의 스킬이었다.
깨달음은 순식간이었다. 아군이 올 시간이었다. 태풍은 주인을 닮아 뭐가 아군이고 적군인지도 구별 못 하고 멍청하게 다 쓸어버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은 등급이 높은 편이었으므로 저들보다는 맷집이 좋았다.
데아는 ‘으아아아…….’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답삭 엎드렸다.
퍽! 퍼억!!
“으아악!!”
“누, 누구, 으아악!! 크학!!”
남자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바람이 멈추고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보이는 건 길게 뻗은 한 쌍의 다리였다. 권도언이다.
“왜 이제야……!”
오냐고 화를 내려던 목소리가 쑥 들어갔다. 얼굴에 피 칠갑을 한 권도언이 흉흉한 사신처럼 데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모처럼 재밌는 걸 봐서 기분이 좋다는 듯.
“오냐고요?”
“…….”
“왜요. 더 해줘요.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투정부리니까 보는 맛도 있고 재밌네.”
“…….”
“안 본 사이 많이 순해지셨네요. 욕도 안 하고. 반가워요. 우리 며칠 만인지는 알아요?”
돌풍에 찢긴 사체가 풀숲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처참한 모습에 데아가 눈썹을 일그러뜨리자 권도언이 어깨를 으쓱였다.
“알면 그런 표정 못 지어요. 저치들은 사람을 납치해 놓고 밥도 안 줬나. 비쩍 말랐네.”
“…제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데요?”
“쫄딱 젖은 생쥐가 고양이 시체를 보고 동정하는, 그런 주제도 모르는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