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3화
‘…방 안의 사람들은?’
그런 인간들을 새삼스럽게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뒤탈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데아는 깊게 파인 수로의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마주한 건…….
―일어났다!
―일어났다! 일어났다!
―일어났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하급 인어들이었다.
“……!”
데아의 시선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하나, 둘… 아니, 셋.’
―내가 깨웠다! 내가 깨웠어!
―바보야? 바다님은 스스로 일어났어!
―하지만 여기까지 우리가 데려다줬어!
데아가 소스라치게 놀라 굳든 말든 그들은 하급 인어 특유의 괴이한 생김새를 한 채 수로 밖으로 얼굴만 비죽 내밀어 데아를 향해 해맑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박수는 끝나지 않았다.
“박수를 도대체 왜… 치는 거지?”
―기쁘니까요!
―좋으니까요!
말을 말자.
데아는 바로 자신의 목적을 상기해 냈다. 이곳을 나가서 길드로 돌아가야 한다.
데아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엉망진창으로 멍이 들고 피범벅이 된 몸과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 약기운이 아직 유지되는지 몽롱한 머리를 깨닫자 데아는 자신의 손목이 지나치게 말라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미약하지만 머리카락도 조금 길어졌다.
“시간이…….”
소매를 걷으니 주사 자국이 빽빽이 찍혀 있었다. 데아는 참담함을 느끼며 하급 인어를 돌아보았다.
―우리가 잘한 거지?
―우리가 잘한 거야!
―그럼!
…공격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 너희들이……. 크흠.”
새되게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오랫동안 방치된 성대가 녹슨 고물처럼 삐꺽거렸다.
“너희들이 나를 여기에 데려다준 거야?”
―응!
―저어기서 갑자기 크게 물이 확! 몰려들었어! 우리는 너무… 너무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는데 마침 바다님이 둥둥 떠다니던 걸 발견한 거야!
―여기 주변엔 인간들이 없어! 여긴 안전해!
물이 거대하게 몰려들었다라…….
데아의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이 뿌연 안개에 휩싸여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분명 여례아 길드장의 납치에 말려 이상한 주사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가 깼다가, 다른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또 뭐였지?’
데아의 눈이 불분명하게 깜빡였다. 기억이 나질 않았다. 큰 파도가 갑자기 자신을 덮쳤던 것 같은데 그 이전에 누군가… 오지 않았던가?
각진 발걸음 소리, 끼이익, 하고 열리던 낡은 철문. 경계하던 밀실 안의 사람들과 강력하게 휘몰아치던 마력…….
“누가 있지 않았어?”
―몰라! 다른 인간들의 시체도 몇 있었는데 그건 우리가 먹었어!
―먹었어!
―배가 고팠거든!
“…어어.”
‘이 하급 인어는 식인을 하는구나.’
거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데아는 무심코 웅크려서 방어 태세를 취했다.
‘나는 안 먹겠지? 하지만…….’
데아는 해맑게 웃으며 배를 팡팡 두드리는 인어들을 훑어보았다. 이건 기회였다. 하급 인어들은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 모래섬 인어와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줄……. 아니지. 이거 말고, 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 장소를 알아?”
데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세 하급 인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난처해하는 것 같기도,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세 하급 인어는 동시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에 강한 인간들이 모여 있어.
―큰 울타리를 두르고 정말 많이 소리를 질러. 무서워. 우리 동족들이 많이 죽었어.
그리고 인어들은 서로를 감싸 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우리는 도망쳤어.
―인간들이 막았어.
―맞서 싸웠는데 졌어. 인간들이 더 강했어.
그리고 그들은 작게 흐느꼈다. 여기에 있으면 몸이 너무 아프다는 말도 들렸다. 그러나 데아의 눈은 희망을 찾고 순간 번뜩였다.
헌터들이다.
이 주변에는 물이 많았다. 멀지 않은 곳에 큰물이 몰려들 만한 계곡이나 강이 있을 확률이 높았고,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인어들이 쉽게 몸을 숨기기도 가능했을 터였다. 울타리는 아마 위험 지역을 막은 펜스겠지.
“그곳으로 가야겠어.”
―어?
―안 돼!
―위험해!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다. 이 근방에 게이트가 터졌고, 헌터들은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왔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여파의 길드원이 아니라는 점은 실망스러웠지만… 아직 모르는 거니까.
“부탁해. 길만 알려 줘. 나 혼자 걸어갈게.”
―걸어가? 우린 육지의 길은 잘 몰라.
“아, 아니. 헤엄쳐 갈게.”
―으응…….
하급 인어들의 눈동자에 망설임이 스쳤다. 그들이 돌아서서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데아는 시선을 거두고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인적 드문 숲에서 게이트라니. 여례아 길드장이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다섯 개의 던전 중 하나인 걸까?
“던전은 포화되어야 하거든.”
빠드득, 데아의 어금니가 거칠게 다물렸다. 여파 길드장 권도언의 횡령 소식을 기사로 봤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도 모르겠으니 원. 빨리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나가야 했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지 몰랐다.
―결정했어!
그때 세 인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도와줄게.
―바다님이니까!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데 바다 위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어. 엄청 멀어.
“하루나 걸려? 그렇게나 멀다고?”
―으응.
여기은 이 미친놈이 얼마나 외진 곳에 날 가둬 둔 거야?
―그리고 여기는 그나마 괜찮은데에… 가다 보면 꼬리가 아플 거야. 특히 안쪽으로 갈수록 더 아파……. 물이 더러워서. 그래서 아마 우리는 중간까지밖에 못 데려다줄 거야. 바다님도 아프면 바로 돌아와……?
“인어는 오염된 물에 닿으면 심하게 고통스러워하는 거 아세요?”
권도언의 실험실에서 들은 내용과 일치했다. 데아는 내심 픽 웃었다.
‘얘들은 내가 같은 인어인 줄 아나 봐.’
물론 착각할 만했다. 물속에서 숨을 쉬고, 말도 통하니. 아마 인간들의 ‘헌터 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거겠지.
“중간이라도 괜찮아. 안내해 줘.”
얼른, 얼른. 시간이 없다. 한시가 급했다. 가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리라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우웅, 꾸르륵…….
그건… 아주 큰 이변이었다. 진동 벨처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
―방금 뭐야?
―야! 모른 척해!
―맞아, 바보야!! 모른 척해!
그러고 보니… 입에 뭘 넣은 기억이 까마득했다. 그동안 빌어먹을 밀실에서 링거와 영양제로 생을 버티고 있어서 그나마 움직일 수 있던 거지,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아사해야 맞았다.
데아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인벤토리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간신히 초콜릿 바 하나를 꺼내 우적거리는 데아의 앞에 잠시 눈치를 보던 인어들이 꾸물거리며 뭔가를 올려 두었다. 그것의 정체는…….
“큽, 크흡, 으, 야!!”
정체 모를 살덩이였다.
‘이거, 인간 아니야?’
“저, 저리 치워!”
식도로 홀랑 넘어가 버린 초콜릿에 켁켁거리던 데아가 후다닥 일어나 뒤로 물러서자 고깃덩이를 올려 두었던 인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풀 죽은 모습으로 고기를 회수했다.
―내, 내가 힘들게 잡은 건데…….
다른 두 인어 또한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문득 데아는 자신이 뭔가를 아주 크게 잘못한 것 같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아, 바다님은 쥐를 안 좋아하시는 거 아닐까?
‘아, 쥐, 쥐였어?’
하지만 쥐도 별로였다. 데아가 남은 초콜릿을 꼭꼭 씹어 넘기는 사이 한 인어가 기운을 되찾고는 잠시만 기다리라 소리치고 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어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길 잠깐, 양손에 뭔가를 꽉 잡고 다시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육지 고기를 싫어하시면 이 고기는 좋아하시겠지!
그건 물고기였다. 황망한 표정으로 펄떡이는 생생한 붕어와.
“비단잉어……?”
그게 왜 거기서 나와?
하얗고 붉은 얼룩이 아름다운 비단잉어가 마찬가지로 황망한 표정을 지은 채 인어의 손아귀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어떤 갑부의 연못이라도 털었니?”
―몰라! 있던데?
―대단하다!
―대단하다!
데아의 어이없는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들은 이번엔 데아가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며 두 마리의 물고기를 발치에 밀어 넣었다.
―역시 바다님은 물속의 고기를 더 좋아하시는구나.
―좋았어!
―이건 잘 드시겠지!
“…….”
어…….
데아는 물고기를 내려다보았다. 멍청한 표정의 물고기가 펄떡펄떡 튀어 오르고 있었다.
데아가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고 있는 그때, 갑자기 붕어가 결의에 찬 듯 몸을 크게 철퍽거렸다.
퍼덕퍼덕. 퍼덕……!
그리고 이내 홀로 슝 올라가서 수로 속으로 빠져 빠르게 달아났다.
―어!
그건 비단잉어도 마찬가지였다. 물이 튀기자 진동기처럼 부르르 떨며 솟아오르더니 이내 첨벙첨벙, 탈출에 성공했다. 인어들이 놀라 다시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데아가 행동을 막았다.
“고마워.”
세 쌍의 눈이 데아를 향했다.
“보기만 해도 배불러. 와, 감동이야.”
―거짓말 같은데!
―하지만 안… 안 먹었잖아?
“나 딴 거 먹었어. 더 먹으면 배 터져.”
헛소리였다. 초콜릿 바 하나로 배부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물고기 더 먹으면 배가 너무 불러서 수영을 못 할 거야.”
하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를 그냥 뜯어먹을 수 있는 사람도 몇 없을 터였다.
데아의 횡설수설을 납득했는지 하급 인어들이 잠시 서로를 쳐다보더니 이내 뿌듯한 표정으로 데아를 바라보았다. 물론 흉측하게 갈라진 얼굴이 조금 발그레하게 변한 것뿐이었지만.
―응, 알겠어!
―다행이야. 히히.
―다른 친구들한테도 말해 둘게. 바다님은 물속의 고기를 좋아한다고! 그러면 바다님은 좋아하는 선물을 가득 받을 수 있을 거야!
마지막 말이 꽤나 불안하게 들렸지만 지금은 되물을 만한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길을 떠날 시간이었다.
“이제 가자.”
―응!
―이리 와!
그때 한 인어가 데아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데아는 속수무책으로 훅 당겨졌고 곧장 첨벙, 수로 속으로 입수했다. 전체적으로 미약하게 오염된 물이 시야를 가렸다.
[물속의 발자취(A)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물속의 발자취(A)가 음성을 스킬, [바다의 경배]를 통해 전송했습니다.]
[‘인간은 준비 운동 없이 막 뛰어들면 심장이 멈춘다! 나 없었으면 어떡했으려고 그렇게 겁도 없이 막 뛰어드냐? 어?’]
“…….”
한참 동안 말도 없던 주제에 처음으로 하는 말이…….
데아가 불만스럽게 얼굴을 찡그리자 물속의 발자취가 후다닥 숨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느낌뿐이었지만. 아무렴.
수면 속의 호흡이 빛을 발했다. 물이 흐르게 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뚫은 길, 수로. 얕지도, 바다만큼 깊지도 않은 물의 복도가 쭉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