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2화
“에이 씨, 프로포폴 최대치로 달아! 속도도 올려!”
“교수님! 하지만…….”
“너네 다 길드장한테 깨지고 싶어? 잔말 말고 하라는 대로 해!”
“…네!”
“걱정 마. 어차피 약 써서 여기 있는 일 기억도 못 할 거야. 하면 또 어떻고? 어차피 때 되면 죽일 텐데!”
자신을 괴물 보듯 바라보는 사람들이 잔상처럼 데아의 각막에 비춰졌다. 성큼 다가오는 주삿바늘, 웃음소리.
‘웃음소리?’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귀에는 이명이 번뜩이고 몸에는 한기가 끼쳤다. 저 멀리 해일이 아가리를 벌리고 다가오는 환상이 보였다.
‘아, 안 돼.’
데아가 발버둥 치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어 사지를 제압했다.
“윽! 으악!!”
“아, 아니, 무슨 힘이!”
“방심하지 마! 어려도 헌터다!!”
‘이럴 때 말을 걸어 주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누구였지?’
경배, 경배였다.
‘경배야, 말 좀 해봐.’
주삿바늘이 팔에 꽂혔다. 쭈우욱, 피스톤이 밀려 내려온다. 약물이 다시 자신의 몸에 퍼지고 있었다. 심장이 거칠게 열을 올렸다.
“경, 경배야, 경배야.”
“대상이 헛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며칠 안 남았어! 30일 버텨야 해! 재워!”
30일을 버텨야 한다면서 며칠 안 남았다니,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데아는 사람들의 음성에 거부감을 느끼고 더 거칠게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경배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때 주먹 끝에 무엇인가 닿았다.
퍼억!
“으악!!”
“이게……!”
데아는 처참한 기분으로 사람들을 뿌리치고 몸을 뒤집었다.
와장창!
챙그랑!!
자신의 몸에 줄줄이 연결되어 있던 수많은 선들에 걸려 높다란 의료 기계들이 소음을 내며 무너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교수라고 불렸던 나이 든 여성이 순식간에 얼굴을 붉히더니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총구의 끝이 데아를 향했다.
“당장 자리로 돌아가, 샤샤 헌터.”
총구가 하나였다가 두 개로 나뉘어졌다. 그러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아아아…….”
피가 혈관을 역류하고 뇌로 향한다. 데아는 차오르는 두통에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팔에 꽂혀 있던 선들이 뽑혀 나가면서 팔뚝이 피로 젖었다. 중심을 잃은 건 순식간이었다.
우당탕탕!
“으아악!!”
“이런!”
데아는 병실 침대 밑으로 고꾸라졌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온몸을 부딪쳤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다.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지하실인가?’
“이데아 헌터!!”
판단은 빨랐다. 데아는 앞으로 구르듯 달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몸은 예전처럼 건강하지 않았다. 전보다 확연하게 마른 손가락과 손목에 데아는 묘한 좌절감을 느끼며 다리를 움직였다.
힘이 없으니 급소를 가격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자신을 막으려고 손을 뻗는 사람들의 발목과 무릎, 그리고 안면을 치고 얼기설기 놓여 있는 구조물들을 피하며 하나뿐인 문을 찾아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를 한참.
타앙!
생살을 찢는 고통이 엄습해 왔다.
“아!”
와당탕! 챙캉!
데아는 넘어지며 구조물에 코를 박았다. 데아의 왼쪽 팔이 붉게 물들었다. 얼굴에도 피가 번졌다. 전신을 뚫는 통증에 손이 벌벌 떨렸다.
왜, 왜 아무도 안 와.
왜 아무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는 거야…….
문을 발견했지만 닫혀 있었다. 아무도 와주지 않았다.
내가 직접 빠져나가야 해.
내가, 내 힘으로 나가야 해.
데아의 전신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약효가 도는 것 같았다.
이렇게 또 정신을 잃는 걸까?
능력을 쓰려고 해도 흔한 상태 창 하나 켜지지 않았다.
혼자서 잘 켜지더니 이럴 때만 안 켜져…….
“휴, 난리 났네.”
“거봐. 오래 못 간다니까.”
데아의 움직임이 잦아들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데아는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다가오는 검은 신발들을 보았다. 뚜벅이는 경박한 발소리. 이제야 잡았다는 말소리. 얼른 일으켜서 약을 더 넣으라는 목소리…….
그리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정확히는 파도가 아닌, 단순한 물소리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지하실에 파도라니,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량하게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의 소리는 마치 몸을 낮춘 심해어처럼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소리 안 나요?”
주사기를 들어 올리던 누군가가 불쑥 말했다.
“뭐? 무슨 소리야?”
“무슨… 솨아아, 하는 소리가…….”
데아의 몸을 침대 위로 올린 사람들이 웃었다. 그런 이상한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며 비웃었지만 그때 누군가의 얼굴에서 차차 미소가 사라졌다.
“자, 잠깐, 선배! 저도 들려요.”
“뭐? 무슨 헛소리를…….”
“잠시만요! 저, 저도…….”
“뭐?”
이변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반문만을 일삼던 누군가의 얼굴에서 점차 핏기가 사라졌다.
솨아아아아…….
바다가 소용돌이치는 소리. 사냥감을 탐색하는 소리. 데아는 문득 누군가의 각진 발걸음을 들은 것 같다고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끼이이이…….
문이 열렸다. 밀실 안에 모여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키가 큰 누군가가 사라질 꿈결처럼, 사막의 나무처럼 우뚝 서있었다.
“누, 누구…….”
사람들이 겁을 먹고 뒷걸음했다.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건 오래된 유물의 냄새였고, 낯선 심해의 체취였다.
데아는 어렵게 눈을 떴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의 얼굴이 흐릿했다. 처음부터 자신만을 보고 있던 것처럼 그의 눈과 마주쳤다. 사람을 끝없이 끌어당기는 늪 같은 눈동자가 설풋 휘었다.
아니, 휘었나? 그건 과연 미소였나?
‘누구지?’
낯선 누군가가 웃었다. 얼어붙은 연못 같은 인상이었다. 아주 설게 얼어서 방심하고 다가온 사람을 빠뜨려 익사하게 만들 재앙의 얼굴을 한 여자. 긴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넘겨 이마를 전부 드러낸 얼굴. 모두의 이목을 끄는 존재감. 그러나 데아는 여자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피가 가물가물 흘러 눈가를 적시고 있었다.
“누구, 누구…….”
데아가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건 사나운 뱀의 눈을 하고 제왕의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구냐!!”
짙은 녹색 머리카락뿐이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정확하지 않았다. 실험대의 녹색 천에 비춰진 조명 탓일 수도 있었으니까. 데아는 확정짓지 않기로 했다.
뚜벅.
여자가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말은 필요 없었다. 지하실의 벽이 깨졌고, 절망의 향취가 어른거리는 파도가 세차게 밀려들어 왔다.
그게 끝이었다. 데아를 기다리는 건 암전이었다.
◈ ◈ ◈
이번엔 금발을 가진 작은 여자아이였다. 아이는 금색 인어 꼬리를 휘적휘적 끌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건넸다.
그건 알이었다. 작은 손으로는 최대 세 개밖에 잡을 수 없어 총 여섯 개만 무사히 데려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옅은 슬픔과 나를 향한 맹목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저도 사실 이 아이들을 살리고 싶지 않았어요.
금발을 가진 아이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하게 보인다면 착각일까?
―하지만 다 죽으면 당신이 슬퍼할 거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이 아이들이라도 살려서 데려왔어요. 트리야는 이걸 몰라요. 안다면 나를 죽이려고 할 거예요.
‘미안해, 므아나.’
‘나’는 내가 말하고도 놀라 입을 턱 다물었다.
므아나? 므아나가 누구지?
그러나 므아나라고 불린 금발의 어린 인어는 작게 웃고는 나에게 안겨 왔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당신은 애칭으로 불러줘도 돼요. 아니, 애칭으로 불러 주세요.
‘그래……..’
애칭은 잘 들리지 않았다.
―첫째인 트리야는 질투가 많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알들을 모조리 부순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둘째인 저도 질투가 많아요. 저도 많이 봐주세요. 저는 그걸로도 충분해요. 트리야만큼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나’는 나에게 안겨온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옅은 빛이 들어오는 해수면 속에서 옅은 비극의 냄새가 맡아졌다.
K22
―하지만 주군은 알고 있었군요. 트리야가 알을 다 부수러 갈 거라는 걸.
아이는 냉담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이의 얼굴에 읽힌 감정은 분명한 비참함이었다.
―‘태초’가 가장 사랑하고, 행동거지를 묵인하는 건 트리야뿐인데 왜 트리야는 그걸 모르는 걸까요. 나만 알아, 나만. 짜증 나, 정말.
그리고 아이는 뜸을 들이다가 이어 말했다. 아이의 눈이 섬뜩하게 가라앉았다.
―트리야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어.
데아는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 ◈ ◈
그리고 데아는 질퍽한 진흙 냄새만 물씬 풍기는 외진 수로 위에 종아리를 걸친 채 홀로 눈을 떴다.
졸졸졸…….
전신을 두들겼던 파도가 환상이었다는 양 평화롭게 흐르는 수로 속의 물이 오히려 더 현실감 없이 다가왔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었다.
사방이 숲이었다.
“하아, 하…….”
데아는 수로의 벽을 잡고 느릿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녹슨 파이프의 비린내, 오래된 이끼의 꿉꿉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뭐야……. 윽!”
총상을 입은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참아야 했다. 다행인 것은 그저 스친 것뿐이었는지 지금은 피가 멈춘 상태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