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61화 (61/223)

※ 061화

‘몸?’

데아는 혼잣말처럼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6년 전의 일을 어디부터 기억해?’

아이가 물었다.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데아는 눈썹을 찡그렸다.

6년 전의 기억, 생애 첫 번째 기억은…….

‘창고.’

낯설고 위협적인 장정들과 붉은 인어. 자신을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투쟁했지만 결국 대신 희생한 혈육…….

그랬다. 그때였다. 죽은 것에만 둥지를 트는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생물이 자신의 손을 타고 기어오르고, 그는 죽음의 끄트머리에서 처음 눈을 떴었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이지.’

아이가 데아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문득 데아는 자신이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아이는 자신을 까마득하게 올려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데아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단순히 키 차이라기에는…….

‘죽어버린 사람이고, 그럼에도 떠나지 못한 기억이야.’

기억.

6년 전, 데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창고 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눈앞의 아이는 자신이 그 기억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내 잃어버린 기억이라면, 몸을 돌려 달라는 그런 건 무슨 이야기야?’

‘기생 생물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

뚝, 데아의 입이 딱 다물렸다. 그의 눈에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감각과 혼란스러움이 깃들었다.

‘…내가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뜻이야?’

‘비슷해.’

‘그래, 알겠다. 이건 내 망상이고, 넌 헛소리를 하고 있구나. 들을 가치가 없…….’

‘그때 그 고기를 먹는 게 나았을까?’

아이가 뜬금없이 다른 말을 꺼냈다. 데아가 한숨을 뱉었다.

‘말 돌리지 마.’

‘하지만 먹었어도, 먹지 않았어도 난 죽었을 거야…….’

‘무슨 소리를…….’

‘인어의 뇌.’

데아와 마주한 아이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데아는 저도 모르게 자신을 꿰뚫는 시선을 감내했다.

‘나는 그걸 먹었어. 정영철 의원의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그걸. 먹으니까 발악을 하길래 그 사람의 턱에 칼을 박아버렸지만.’

정영철.

데아는 기억의 끄트머리, 자신을 숱하게 괴롭혔던 기사 제목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강원도에서 해일이 일어난 지역, 자신이 발견된 장소.

그래, 그 별장을 소유하고 있던 의원이 분명…….

‘…정영철을 네가 죽였다고?’

‘응.’

청렴하고 서민적으로 유명했던 국회의원 정영철. 그의 별장 안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증언 한마디로 자신이 얼마나 물어뜯겼던가. 그런데 그를 죽였던 게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이었다니. 온갖 악의적인 지라시를 쓰던 기자들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지, 이걸 믿을 수가 있나?

데아가 이마를 팍팍 치든 말든 아이는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까만 눈이 올곧게 데아를 비췄다. 아이는 한참 동안 주변을 배회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난 안 나빠. 왜냐하면 정영철은 우리 부모님을 죽였는걸.’

‘오, 그건 꽤나…….’

자극적인 과거사인데.

‘난 그냥 휘둘렸을 뿐이야. 그러다가 먹은 게 하필 인어 뇌였고. 더불어 나는 그때 죽어버렸고…….’

‘왜 죽었어?’

‘국회 의원을 대놓고 죽였는데, 그 부하들이 날 가만뒀을까?’

‘아…….’

아이가 이 이야기는 더 하기 싫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미간에 잔뜩 힘이 들어간 게 꽤나 꺼리는 주제인 듯했다.

그래, 이 아이는, 6년 전의 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데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야 한다.

‘죽었다면, 왜 지금 나는 살아 있는데?’

모든 궁금증의 축약. 먹어버렸다는 인어 뇌도, 기생 생물도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아이의 외모는 데아와 같았다.

너와 나는 같은 존재. 마치 거울에 투영된 데스티니……. 그만하자.

어쨌거나 지금이 현실이 아닌 무의식의 세계라면 이런 이상한 조우도 납득할 만했다.

그런데 단 하나, 과거의 이데아가 죽었다면 지금의 이데아는 뭐란 말인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인어 뇌에 대해서는 안 궁금해?’

‘응.’

인어 고기 안에 기생충이라도 들어있었나 보지.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큰코다친다며 혀를 찼다. 참으로 중학생다운 태도였다.

‘살아 있지 않아.’

‘뭐?’

‘학교에서 배웠어. 기생 생물이 숙주의 몸을 조종하는 건 생명을 얻은 게 아니야.’

이게…….

데아는 아랫입술을 잘근 물었다.

‘그 기생 생물, 기생 생물……. 나도 검정고시 보면서 배웠어. 기생충은 숙주가 죽으면 활동할 수 없어. 밖으로 나와서 다른 숙주를 찾아다니거나 같이 죽지.’

‘나도 그건 배웠어.’

‘그런데 왜…….’

‘넌 평범한 기생 생물이 아니니까.’

이게 무슨 대화지?

데아가 얼빠진 얼굴로 저를 노려보든 말든 아이는 제 할 말만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기생충이라고 낮게 부르지 마. 물론 나도 처음엔 널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의 기시감이 또 한 번 찾아왔다. 이건 단순한 키 차이가 아니다. 데아는 흠칫 밑을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하게 먼 거리감이 느껴졌다.

자신은… 아이에 비해 지나치게 컸다.

‘넌… 기생충치고는 거대하고, 또 신비로워.’

가파른 산 정상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을 목격한 조난자처럼 아이의 눈이 고통과 희망을 품고 깜빡였다.

‘너는 모르겠지만 6년 전에, 네가 내 뇌를 잠식하기 전, 그리고 내가 죽기 전이 맞아떨어지면서 잠시 우리의 의식이 충돌했었어. 그래서 나는 너의 과거를 조금 볼 수 있었어.’

아이가 자조하듯 웃었다. 비참하면서도 후련한, 동정과 부러움이 섞인 미소가 아이의 입가에 그려졌다.

‘인어 뇌라니, 세상에 인어가 어디 있어. 그래서 드디어 저 의원이 미쳤구나 싶었는데…….’

아이의 말이 흐려졌다.

‘그걸 삼키면서도 돼지고기나 소고기의 이상한 부위를 속아서 산 거구나,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때 세상에 어둠과 적막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디선가 어둡고 얕은 물결이 밀려들어 왔다. 아이의 발목이 출렁이는 남색의 파도 속에 잠겼다.

‘나는 네 기억 속에서 눈부신 바다를 봤어.’

‘나는…….’

한참을 침묵하던 데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기억 같은 거 없어.’

‘알아. 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아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아무것도…….’

데아는 더 물어볼 수 없었다. 이제 물은 아이의 무릎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 빛이 파도에 부딪쳐 비산했다.

‘내 몸을 잘 부탁해.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살 것 같아.’

어깨까지 차오른 물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며 아이가 속삭였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놓치면 안 돼.

데아가 다급하게 아이를 돌아보았다.

‘넌… 뭐야?’

목까지 물에 잠긴 아이가 가늘게 웃었다.

‘나는 없어질 의식이야. ‘그것’이 장악하면 원래의 자아는 사라지거든.’

‘…….’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뇌에 각인된 마지막 흔적이지. 아까 말했잖아. 서로의 의식이 충돌했다고. 그때 나는 널 엿봤고…….’

이제 보이는 건 아이의 눈과 둥근 이마,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뿐이었다. 물에 잠겨 가는 사람답지 않은 평온한 목소리가 세상에 울렸다.

‘너는 지금 의식뿐인 날 볼 수 있는 것뿐이야.’

아이가 안락한 악몽처럼 읊조렸다.

‘이제 더는 없어. 그런데도… 이게 무작정 나쁜 거라는 생각은 안 드네.’

아이는 평화 속에 체념했고, 데아는 알 수 없는 초조함에 손아귀를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뭔가를 내가 놓치고 있나? 뭐지?

그때 물이 한가득 차올랐다. 검게 흔들리는 대양. 완벽한 수평을 간직한 바다의 끄트머리가 옅은 빛을 받아 한 움큼 빛났다.

‘그런데 하나만 부탁할게. 우리 가족 장례 좀 대신 치러 줘……. 부탁이야.’

자취도 없이 사라진 아이의 목소리만 무의식처럼 울렸다. 끝의 끝에서 들린 아이의 음성은 너무 작고 얇아서 데아는 못 들은 척도 하지 못했다.

그때 물이 더 높게 차올랐다. 데아는 그럼에도 자신의 무릎조차 적시지 못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흔들리는 수면 위로 자신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어.’

머리에 열이 올랐다. 등줄기에 창백한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데아는 곧장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웅크린 바다가 그곳에 있었다.

“하아…….”

그리고 데아는 눈을 떴다. 거대한 물체도, 밀려오던 바다도, 아이도 없었다. 머리 위를 비추는 눈부신 조명과 흰 옷을 입은 사람들과 정장을 입은 사람. 그 사이에 누워 있는 자신과 코를 찌르는 후덥지근한 냄새만 사방에 가득 차있었다.

“깼습니다!”

“뭐야, 아직 날짜 안 됐어. 더 재워!”

“약 더 쓴 거 아니야? 왜 벌써 깨? 에토미데이트 60mg 더 써!”

“예? 세 앰플이나요? 하지만 그러다가는 죽습니다!”

“헌터니까 괜찮아! 쉽게 안 죽으니까!”

화학약품이 들어간 습한 냄새가 창이 되어 머리를 후벼 파는 고통도 잠시, 데아는 갑작스럽게 차오르는 구역감에 온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여기, 여기가 어디지? 몇 시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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