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0화
거대한 수조 속에 갇혀 있는 정체불명의 물체들이 흐릿하게 찍힌 사진이라지만, 괴이한 연구를 취미로 가졌다고 하기엔 충분했으리라.
“요즘 사람들이 심심한가?”
그리고 이내 권도언의 눈이 느물거리며 빛났다.
“진짜 기가 차서…….”
우우웅, 우우웅.
권도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길드장실에 연결된 전화기도 울음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조해하는 헌터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가든 말든 권도언은 패드를 넘겨주며 가볍게 비웃었다. 백리서의 표정도 여유로운 짜증으로 변했다.
공허하게 빛나던 길드장실의 중앙, 권도언이 기이한 확신을 품고 고개를 들었다.
대번에 물고기의 아가리를 바늘로 꿰어 낸 낚시꾼의 얼굴을 하고선 두 명의 S급 헌터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여기은이구만?”
“여기은이지.”
그리고 권도언이 고개를 휙 돌렸다. 연옥, 움은 새삼 다시 봤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온 세상이 자신에게 의심과 적대심을 품을지도 모를 상황임에도 지나치게 여유롭다. 적을 알고 있는 표정. 적을 알고, 자신도 알며, 더불어 이 싸움의 패까지 쥐고 있는 강자의 느긋함이었다.
단순히 아귀의 눈을 따라 할 줄 아는 쭉정이인 줄만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못 보일 모습을 보여 드려서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권도언이 대외적인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유우라가 눈치를 보며 움의 등 너머로 몸을 숨겼다.
“헤타라고 하셨죠? 목격자로서의 도움을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무슨 도움 말씀이십니까.”
“간단합니다. 저와 함께 이데아 헌터의 안전한 귀환과 절도범의 곱지 않은 최후를 위해 노력하는 작업이지요.
헤타가 침묵을 지키자 권도언이 두 손을 맞잡았다.
“물론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쉬운 길을 돌아가는 꼴이 되겠지만… 당신의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렵진 않을 겁니다.”
그가 간절하게, 그러나 무게 있게 속삭였다.
“프리 헌터인 당신을 고용하고 싶군요.”
◈ ◈ ◈
“실수? 누가 그딴 실수를 하래! 목격자가 있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그때밖에…….”
“닥쳐!”
우당탕!
데아는 시끄러운 음성에 눈을 떴다. 누군가가 싸우고 있었다. 아니, 이게 싸우는 건가? 이건 일방적인 욕설이었다. 차마 입에도 담기 힘든 인신공격이 허공을 잔인하게 훑고 지나갔다. 데아는 불안한 호흡을 하며 신음했다.
“이런, 깼어?”
냉소적인 여자의 얼굴이 불쑥 데아의 시야 안에 침범했다. 데아는 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여례아의 길드장, 여기은이다. 전에 몇 번 길드 안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이 여기……?’
상황 파악을 위해 잠시 멍하니 있는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여기은이 데아가 누워 있던 침대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머리 아프지?”
데아와 여기은의 눈이 마주쳤다. 여기은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데아를 서늘하게 바라보았다.
“나, 나가 보겠습니다.”
그때 방금 전까지 폭언을 듣고 있던 헌터가 빠르게 밀실을 빠져나갔다.
그래, 밀실. 이곳은 밀실이었다. 낡은 전등과 협탁과 침대. 철창이 달린 창문과 나무 의자만 덩그러니 존재하는 이곳은 과거에 그가 살았던 정신 병동과 지나치게 흡사했다.
“…날 납치한 게 당신이에요?”
머리에 느리게, 그러나 뜨겁게 피가 돌기 시작했다.
‘경배야, 경배야.’
데아가 속으로 외쳤지만 평소 요란하던 스킬들은 잠잠했다.
왜지? 마력이 부족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힘이 안 들어가지? 당연해. 마취제를 써서 정신이 몽롱할 거야.”
헌터들에게만 듣는 마취제가 있다며 여기은이 조소했다. 스킬들까지 막아 주는 효과가 있나 보다.
그래서 경배가 조용한가…….
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를 왜 납치한 거예요?”
“네가 여기 온 지 이틀이 지났어.”
“…뭐?”
“이틀 지났다고.”
여기은이 가늘게 미소했다. 그리고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핸드폰을 들어 뉴스를 틀어 보여 주었다. 다섯 개의 던전이 생성되었다는 걸 전해 주는 속보 화면이었다.
“경기도와 충청남도에 던전이 총 다섯 개 생겼어. 클리어에 성공한 건 아직 평택에 있는 던전 하나뿐이고. 남은 던전은… 성공한다고 확신을 못 주겠네.”
여기은이 혼자 말을 시작했다. 데아는 퍼석퍼석 마른 입술을 느끼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런 말을 하는 저의가 궁금했다.
“작은 사건으로 인해 여파 길드장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어. 걱정 마. 넌 아직 아니니까. 헌터 샤샤는 아직까지는 실종 상태거든. 대외적으로는 긴급 출장이라고 발표했지만.”
“이게 뭐…….”
“이번 게이트는 아마 포화될 거야.”
여기은이 여상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방해할 거거든. 때마침 게이트가 터져 준 건 신의 한 수였지만. 뭐, 하늘도 내 편이라는 게시가 아니겠어? 이번 던전은…….”
여기은이 핸드폰을 쇠 트레이 위에 툭 던졌다.
챙캉!
듣기 싫은 높은 소리가 났다.
“포화되어야만 해.”
“잠, 잠깐만. 지금 이해가 잘 안되는데…….”
철컹!
데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양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이거 안 풀어?”
“시민들에겐 영웅이 필요하지. 언제나 빠르게 던전을 클리어해 냈던 샤샤 헌터를 모두가 바라고 있어. 저번에 분명 JJ길드의 지원을 거절한 것 같은데, 결국 갔더라고? 숨기려고 한 것 같았지만 다 퍼졌고. 뭐, 덕분에 이번에 JJ 길드의 던전을 해결한 걸로 샤샤의 인망은 더 높아졌지. 그럴 만해.”
“…….”
“하지만 괴짜 같은 연구에 미쳐서 길드 비용을 횡령한 길드장으로 인해 해당 헌터가 사망했다면 어떨까?”
“뭐라는 거야…….”
데아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여기은이 인심 쓴다는 듯이 또 핸드폰을 들어 올려 기사를 보여 주었다. 여파 길드장에 대한 것이었다.
“…….”
“잘 들어 봐, 샤샤. 이게 내 시나리오야. 유능한 헌터 샤샤는 비밀 임무로 출장을 떠났지만 상황이 어려워졌고, 지원을 요청했지만 금전을 횡령한 길드장에 의해 지원금이 부족하다며 묵살당하고 말지. 결국 싸움에서 패배, 인근 바다에 빠지고 말아. 그렇게 인어의 공격을 받고, 비참하게 사망하고 말지.”
“지금 날 죽이겠다는…….”
“그 시체는 포화가 일어나기 직전인 서해안 던전 쪽에서 발견되지. 사람들은 너의 신원을 확인하고, 큰 충격에 빠져. 그때 던전이 포화되는 거야. 촉망받는 젊은 인재는 죽고, 던전은 터져서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내지. 그리고 그 모든 분노가 향할 곳은 단 한 군데야.”
“여파…….”
“맞아.”
여기은이 칭찬하듯 데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름 끼치는 감각에 데아가 필을 휘둘렀지만 철컹, 수갑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
“뭘?”
“내가 샤샤라는 걸.”
여기은이 눈이 크게 떠졌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거 알아내는 게 뭐 어렵다고.”
그걸 왜 이제 물어보냐는 듯한 가벼운 어투였다.
샤샤는 침대 헤드에 뒷머리를 기대었다. 머리가 지글지글 끓었다.
“언제는 숨겨 준다더니…….”
다 들켰잖아. 이게 뭐야.
물론 권도언과 백리서가 약속한 ‘숨김’은 자신이 6년 전 생존자라는 사실뿐이었다. 눈앞의 저 X새끼도 그건 모르는 눈치였지만…….
“무서워?”
여기은이 물었다.
“어…….”
데아가 대답했다. 여기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가 인어가 아닌 사람을 죽이게 될까 무섭다, 등신아.”
여기은의 미소가 딱 멈췄다. 표정의 온도가 순식간에 뚝뚝 떨어졌다.
“…그딴 말버릇은 길드장이나 길드원이나 쌍으로 닮는 건가?”
여기은이 차갑게 휙 돌아서더니 근처에 있던 트레이를 드르륵 끌고 왔다. 그리고 그 위에 올려져 있던 막대기를 들어 올렸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건 주사기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동안 네가 할 일은 없어. 그냥 얌전하게 잠들어 있기만 하면 돼.”
주사기가 다가왔다. 그 날카로운 침을 보자 이내 머리가 날카롭게 깨어났다. 온몸의 마력이 다시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취제의 약효가 떨어졌다.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퍼억!
“악!”
약한 마력을 두르고 발을 차올려 반항하자 주사기를 들고 등을 돌리던 참인 여기은이 팔을 맞고 주사기를 떨궜다. 그의 표정이 야차처럼 변하는가 싶더니 한순간 그의 중심으로 옅은 보라색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이내 데아의 숨이 턱, 막혀 오기 시작했다.
‘상, 상태 창!’
[상태 창]
[등급 : N]
이데아―헌터명 : 샤샤
마력 : 21(+30)(-10)
체력 : 20(+4)(-10)
생명력 : 30(+4)(-10)
속도 : 21(+4)(-10)
마이너스 10이라니, 무슨……!
하지만 디버프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여기은의 주변을 두르는 보라색 아지랑이가 더 짙어졌다.
마력: 21(+30)(-24)
체력 : 20(+4)(-24)
생명력 : 30(+4)(-24)
속도 :21(+4)(-24)
바닥을 모르고 스킬 지수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데아는 아찔하게 눈앞을 가리는 현기증에 중심을 잃고 뒤로 다시 쓰러졌다. 끝없는 나락에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따끔, 피부에 바늘이 꽂혀 들었다.
“어린애라고 우습게 본 건 인정하지.”
여기은이 데아의 몸을 제압한 채 잇몸을 보이며 웃었다. 그의 눈은 형형한 살기로 빛나고 있었다.
“자둬. 일어나면 다 끝나 있을 거니.”
완벽한 차가움을 거느린, 거대하고도 고요한 점멸. 데아는 저항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까부터 골이 웅웅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귀에 벌을 집어넣은 것 같았다. 물론 아니겠지만.
“이…….”
“잘 지키고 있어.”
“네! 길드장님!”
머리가 아득해졌다. 수면 속으로 가라앉는 달처럼, 정수리까지 차오르는 수증기에 질식하는 것처럼 데아는 아가미로 호흡하듯 잠에 들었다.
◈ ◈ ◈
아득한 수면 아래에서 데아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밟고 서있는 한 소녀를 보았다. 헝클어져 있는 검은 머리카락, 깊게 팬 뺨, 퀭한 눈, 탁한 눈동자와 상처투성이인 발, 너덜거리는 옷.
‘너를 만나면.’
아이가 고개를 들어 데아와 눈을 마주했다. 흠칫, 데아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을 떼었고, 자신에게 발이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잘 생각이 안 나네.’
데아는 스스로의 몸을 더 살펴보고자 했지만 아이의 음성이 더 빨랐다. 데아는 아이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불가항력이었다.
‘그냥, 내 몸을 돌려 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
아이가 울 듯이 웃었다. 앳된 얼굴이 익숙했다.
그건 6년 전의 이데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