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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59화 (59/223)

※ 059화

여파 길드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아무도 몰랐다고요?”

“…예.”

“기척에 예민한 상급 각성자가 우글우글한 길드 건물 바로 옆에서 벌어진 납치를 아무도 몰랐다고요?”

“…….”

지도 몰랐으면서.

52층 여파 길드의 길드장실, 마침 길드 주변을 순찰 중이었던 상급 헌터를 소집한 권도언이 내뱉은 싸늘한 말에 옹기종기 모인 10여 명의 헌터들은 서로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허탈하게 빈정거리는 권도언은 차라리 나았다. 소집된 인원 중 하나, 첫 번째로 불려 나온 가비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우측에서 느껴지는 써늘한 기운에 눈을 돌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추위의 원인은… 백리서다.

“목격자가 있다면서요.”

그때 권도언이 이마를 꾹꾹 누르며 씨근거렸다. 그러자 헌터들이 뒤를 바라보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 뒤에는 예언자 연옥과 그의 손녀인 유라, 그리고 연옥의 지인이라는 거대한 미형의 남자가 산처럼 우뚝 서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헤타입니다.”

“아하, 헌터명인가요?”

“비슷…합니다.”

백리서의 눈매가 설핏 좁아졌다. 예언자 연옥의 눈에 언뜻 망했다는 낭패감이 스쳐 지나갔다.

“헌터명이면 헌터명인 거지, 비슷한 건 또 무슨 소린지…….”

“…….”

“자, 아무튼 이렇게 목격자분을 모셔 온 건 이유가 있어섭니다. 우선 앉으시겠어요? 나머지는 나가 보고.”

권도언과 백리서, 그리고 인간으로 둔갑 중인 인어 세 명이 마주 보고 소파에 앉자 헌터들이 차와 커피를 내어오고는 도망치듯 우르르 길드장실을 빠져나갔다.

문 밖으로 나서기 전, 가비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길드장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물어보세요.”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는 겁니까?”

권도언이 비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가 부지런한 청년의 얼굴을 흉내 내며 미소 지었다.

“해야죠. 범인을 우선 조지고 나서.”

“아…….”

“남의 인재를 뺏어간 절도범한테 한국의 법은 너무 약해서요.”

그리고 그가 상쾌하게 웃었다. 가비는 떨떠름하게 밖으로 나갔다.

침묵만 감도는 길드장실 안, 권도언이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그의 시선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메마른 눈동자에 세 명의 얼굴이 비춰졌다.

“통성명이 늦었네요. 저는 여파 길드의 길드장, 권도언이라고 합니다. 옆의 이 친구는 공격대장 백리서, 헌터명 릴림이고요. 성함이 헤타라고 하셨죠? 반가워요.”

“네.”

“혹시 각성자이신가요?”

지목당한 헤타가 주먹을 쥐었다 펴며 긴장을 풀었다.

‘나는 각성자인가?’

인간으로서 낼 수 없는 힘을 낸다는 것에서 일반인보다는 각성자에 더 가까울 순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1세대 인어가 전력을 다해 싸운다면 S급 각성자는 우습게 능가하지 않던가.

헤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속 길드는 있고요?”

“아니요.”

“아, 프리 헌터시구나. 헌터증은 있으세요?”

“…아니요.”

“뭐, 그럴 수 있죠. 헌터증 발급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출생 신고는 되어 있죠?”

“…….”

연옥의 눈에 진짜 망했다, 라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으흠…….”

권도언이 손가락 사이에 낀 펜을 까닥이며 숨을 뱉었다.

“정말 그쪽 조직 출신인가…….”

“그런가 봐.”

‘조직?’

움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무슨 오해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눈앞의 이들은 헤타가 평범한 삶을 살아오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사실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태도는 마치… 어느 범죄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을 보는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인어라는 오해를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소독을 할까요? 잠시 실례.”

그때 권도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길드장실의 창문을 활짝 열더니 물뿌리개를 칙, 칙, 헤타를 향해 뿌렸다. 악취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 죄송해요. 소독제를 착각했네요.”

“괜찮습니다.”

실수가 아닌 것 같았지만 헤타는 넘어가 주었다.

‘왜… 나에게 구정물을 뿌린 거지?’

맨살에 닿은 물을 쓱 닦아 내는 헤타를 바라보던 권도언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방긋 웃었다.

“이걸로 닦으세요.”

“네.”

“자아,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부른 건 이데아 헌터의 납치로 인해 저희도 꽤나 당황한 상태라서요. 목격자의 진술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나요?”

“네.”

헤타는 침착하길 노력하며 말을 이었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 여파 길드로 향하다 길을 잃었고, 이데아라는 헌터를 만났으며, 도움을 받았고, 헤어지기 직전에 검은 차량이 들이닥쳤다…….

권도언과 백리서가 헤타의 느린 음성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와중이었다.

쾅쾅쾅!!

“길드장님!!”

벌컥, 문이 거칠게 열렸다. 나갔던 헌터들이 다급하게 도로 들어왔다. 파랗게 질린 그들의 얼굴을 본 권도언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사라진 이데아 헌터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면…….”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대한 소식이어서요!”

소파에 등을 붙이고 앉아있던 백리서가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렸다. 태블릿 패드를 들어 올린 헌터가 한 뉴스를 틀었다. 아나운서가 또렷한 목소리로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위급한 내용이 길드장실에 가득 찼다.

―경기도 평택, 경기도 수원, 충청남도 아산과 태안 지역에 대규모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동시에 게이트가 다섯 개 터졌습니다! 경기도 수원에 하나, 평택 팽성 미군기지에 하나, 충청남도 아산에 하나, 태안에 두 개입니다!”

권도언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 태블릿을 덥석 집어 갔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던전 측정기로 측정된 등급은 대략 C~A급입니다. 주변에 중소 길드가 다수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지만, 게이트에서 배출되는 인어의 수가 많은 점과 몇 지역은 바닷가와 가깝다는 점에서 인어가 은신하기에 더 편한 환경이 아니냐 하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권도언이 스크롤을 옮겨 다른 뉴스를 틀었다. 다른 아나운서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찼다.

―이미 몇몇 헌터들이 공략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더불어 생존자들의 증언이 하나같이 ‘공략법이 기상천외하다’이기에, 공략 성공 가능성 또한 예측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요. 그에 시민들은 여파 소속 헌터 ‘샤샤’의 지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장 상황을 보시겠습니다. 김다은 기자.

―네! HAN 뉴스 김다은 기자입니다. 현재 저는 충청남도 태안에 나와 있습니다. 제 뒤에 있는 원형의 흰 고리가 보이십니까? 지금은 얌전하지만 아까 전만 해도 기이한 형태의 인어가 기어 나와서 바닷속으로 사라졌기에 이미 주변은 주민 대피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때 버퍼링이 걸리며 영상이 중간에 멈춰버렸다. 실시간 시청자 수가 급상승하고 댓글이 미친 듯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길드장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샤샤 헌터의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샤샤 헌터의 지원을 허락만 해주신다면……!”

권도언은 눈앞의 헌터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데아가 샤샤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엔 모두가 잘될 거라는 근본 없는 희망마저 맴돌고 있었다.

권도언의 한쪽 뺨이 씰룩였다.

납치당한 것은 B급 헌터 이데아이지, S급 헌터 샤샤가 아니다.

“샤샤는 현재 출장 나갔습니다.”

“예? 출장이요?”

“당장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더불어 기사 내보내세요. 샤샤는 더 시급한 던전 포화를 막으러 갔다고. 게이트 근방에 다른 길드 많다면서요? 왜 자꾸 우리 헌터만 찾는 건지 모르겠네.”

“아… 네!”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헌터를 지나칠 때였다.

백리서는 목격자들을 향해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증언은 다 얻었으니 돌려보내면 그만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할 일은…….

“길드장님!”

그때 또 문이 벌컥 열렸다. 권도언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또 왜요.”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헌터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숨기지 못하며 난처하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권도언이 재촉하자 그가 우물쭈물 다가왔다.

“저, 저, 그게, 이 기사를 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뭔데요.”

패드를 건네받은 권도언은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다가온 백리서가 패드를 낚아채 기사를 넘겼다. 그의 표정이 당혹감에서 놀라움으로, 그리고 이내 미묘한 의아함으로 변했다.

거대 플랫폼 상단 배너에 떡하니 노출된 기사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속보]여파 길드장의 횡령. 개인의 취미를 길드원의 목숨보다 우선시한 위선자?

취미 활동을 위해 길드 비용으로 측정된 예산 상당수를 권도언이 횡령했고, 그에 지원을 받지 못한 길드원들이 허무하게 죽어 나갔다는 기사였다.

증거로는 내부 고발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더불어 여파 길드 내부의 지출서와 출처 모를 사진 또한 게재되어 있었다. 연구소로 나간 금액의 일정 부분이 크롭되어 올라와 있었고, 블러 처리된 연구소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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