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7화
“어! 누나, 정신이 들어요?”
“데아야, 도대체 뭘 한 거야? 아무리 길드장님이 꼴 보기 싫었어도 그렇지!”
데아는 사색이 된 얼굴로 자신을 다그치는 하영주와 묘하게 존경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가윗의 잔소리를 들으며 엉거주춤 상체를 일으켰다. 몸이 과하게 찝찝하고 더러운 게… 아까 맞았던 오염된 물이 덜 마른 모양이었다.
“권, 아니 길드장님은?”
“널 기숙사까지 업고 오신 걸 우리가 발견해서 여기까지 데려왔어. 길드장님은 다시 올라가셨고.”
“네, 맞아요! 카페 신메뉴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길드장님이 누나 부탁한다고 하셔서요. 그런데 냄새 봐요! 누나, 하수구에 빠진 게 정말이에요? 아, 그리고 누나가 길드장님 습격한 것도요! 사실 전 예상하고 있었어요. 누나가 일을 칠 줄 알았다고요. 정말 멋…….”
“잠깐, 잠깐.”
데아가 손을 들어 가윗의 입을 막았다. 그의 미간이 슬며시 좁아졌다.
“권도언… 길드장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길드장님이 장난을 쳤는데 화가 나서 얼굴을 갈겼다고요.”
“뭐?”
“그리고 분이 안 풀려 혼자 씩씩거리다가 주변 하수구에 빠졌다고요! 그리고 그걸 길드장님이 구해 줬다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데아의 말이 뚝 멈췄다.
“길드장님의 몰골은 어땠어? 나처럼 더럽고 막 냄새나고, 이러지 않았어?”
“네? 아니요. 평소처럼 매끈하셨는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잘 생각해 봐, 가윗. 나처럼 막 악취가 나고 얼굴은 죽상이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하수구에 천 번은 빠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냐는 말이야.”
“길드장님 말씀하시는 거 맞아요? 길드장님은 평소처럼 근사하셨어요.”
데아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권도언 이 새끼는 지 혼자만 꽃단장을 하고서 물에 빠진 생쥐인 꼴인 자신은 기숙사 앞에 버리듯 두었고, 자신은 한순간에 장난도 구별 못 하고 감히 길드장의 얼굴을 후려치고 혼자 하수구에 빠진 멍청한 길드원이 되었으며, 자기는 그 멍청한 길드원을 차별 없이 구해 준 멋진 길드장처럼 입을 털었다… 이 말이었다.
“누나, 제정신 맞죠? 조금 냄새가…….”
“그래, 데아야. 좀 씻어, 먼저.”
이 모든 현상을 다시 설명하기 위해선 서로의 머리 위에 사이좋게 구정물을 끼얹은 일부터 말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실의 존재의 언급은 피할 수 없었다.
데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되면 계약 위반이었다.
권도언 X새끼.
“데아야. 우리는 기다려 줄 수 있어.”
하영주와 가윗이 멀찍이 떨어져 벽에 붙었다. 하영주가 친절하게 화장실 문을 열어 주었다.
“생각 가라앉히고 잘 씻고 와. 오늘 네가 길드장님한테 그런 건…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꾸는 그런 꿈 아니겠니. 나는 이해할 수 있단다.”
“저도요, 누나!”
하영주는 웃음을 참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행동을 취했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꼭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서 데아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
데아는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 알아챈 거지만, 자신이 누워 있던 곳은 기숙사 침대도 아닌 바닥이었다.
“몸이 너무 더러워서 침대에 눕힐 수가 없었어!”
“…알아.”
데아는 바닥으로부터 일으킨 몸을 벅벅 긁으며 신경질적으로 화장실 문을 마저 발로 밀어 열었다.
◈ ◈ ◈
“저 사람 아니야?”
“뭐?”
“이것 봐. 닮았잖아. 머리 길고 퀭하고.”
“그거 6년 전 사진이잖아. 그런데 조금 닮긴 했네.”
사람들의 숙덕거림 속에서 뒤돌아 앉아 있던 여자가 싸늘한 얼굴을 휙 돌렸다.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일시에 침묵하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 제 얘기하시는 거예요?”
“아, 아니, 네에.”
“상관없는 사람을 두고 왜 뒤에서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이러는 거 정말 무례하고 몰상식한 거 아시죠?”
“야, 거봐. 아니랬잖아.”
“아, 그런가……. 죄송합니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거칠게 가방을 어깨에 걸친 여자가 경멸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카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사람들이 서로 웅성거리고, 먼저 말을 걸었던 남자가 지탄받았다. 그러나 남자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귀를 후비다가 천연덕스럽게 목을 까딱였다.
“아 씨, 걸리면 완전 미튭 각인데…….”
뉴욕 던전에서 튀어나온 희귀한 인어가 6년 전 생존자를 언급한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인어로 인해 직장을 잃은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생계와 안전을 위협받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울분을 퍼부을 샌드백을 찾았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6년 전 생존자가 강원도 해일에서 살아남은 사람임을 알게 된 사람들은 디지털의 뒤안길로 흐려져 있던 사진이며 동영상을 끌어내었고, 정의 구현을 한답시고 온갖 SNS, 커뮤니티와 사이트에 사진을 배포했다.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관련 주제를 가지고 영상을 찍었으며, 간혹 닮은 사람이라도 발견했을 때는 무작정 어깨를 잡고 돌려세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나마 이런 행태는 약과였다.
사람들의 손은 재빨랐다. 데아는 전날, 권도언과 백리서를 통해 사람들이 이전까지 자신이 머물고 있던 병동의 이름마저 알아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물론 여파 길드의 통제하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많은 진실이 감춰지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여파 길드도 그럼 위험한 거 아녜요?”
“저희만 있을 것 같나요. 이데아 씨의 존재를 숨기려는 던전 투자자들은 세상에 정말 많답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지금 제 사진을 들고…….”
“아, 지금 유포되고 있는 사진 몇 장은 저희가 조작한 거예요.”
“뭐라고요? 그럼 진작 말을 해주시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 한편이 사무치게 답답했다. 데아는 씩씩거리며 나간 여자의 뒤를 바라보며 마스크와 모자를 고쳐 썼다. 말은 그렇게 해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가늘게 떨리는 동공을 눈꺼풀 밑으로 숨겼다.
“이데아 씨가 명심해야 할 건 하나예요. 제 발 저려하는 도둑이 되지 말 것.”
카페에 들어와 6년 전 생존자에 대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었을 때부터 심장이 불안하게 뛰고 있었다. 그러나 데아는 애써 평온을 가장했다. 손끝이 차게 식었다. 하지만 카페 안에서 데아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어! 안녕!”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 등을 돌리니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조금 됐는데, 언니를 보려고 해도 안 보이더라?”
이위로였다.
“뭐야, 뉴욕에 있지 않았어?”
“프리 헌터한테 정착지가 어디 있어.”
그때 위로가 하영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 나도 이거 시켜야지. 이거 메뉴 이름이 뭐예요?”
“딸기콕콕크림라테.”
“진짜 맛있어 보인다. 그런데 언니, 언니는 이름이 뭐예요? 나는 이위로인데…….”
하영주도, 이위로도 놀라운 사교 능력의 소유자였다.
인사를 나눈 둘은 바로 친해졌다. 졸지에 쩌리 신세가 된 데아와 가윗은 창문 밖으로 시선을 쭉 돌리며 음료를 마셨다.
“와, 이거 진짜 달다.”
하영주가 딸기와 크림이 잔뜩 올라가 있는 음료를 빨대로 콕콕 찌르며 탄성을 뱉었다. 가윗이 입가를 닦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니까요. 아, 맞아. 데아 누나, 사줘서 고마워요!”
“…나는 계산만 했고, 카드는…….”
“내가 사준 거야.”
“어, 그래요? 영주 누나, 잘 먹을게요!”
데아의 무사 귀환 기념으로 하영주가 카드를 빼어 들었다. 마침 성과급이 나온 날이라 여유가 있다나. 그건 데아도 마찬가지였지만 하영주는 손을 휘두르며 넣어 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데 좀 그렇지 않아요?”
“뭐가?”
“6년 전 생존자 말이에요.”
우뚝, 음료를 휘젓던 데아의 빨대가 멈췄다. 위로의 표정에 흥미가 스쳐 지나갔다.
“아, 맞아! 무슨 물건을 가져갔다면서.”
“그러니까. 그렇게 따지면 이 모든 사단은 다 그 사람 때문에 일어난 건데, 지금 코빼기도 안 비치고 있잖아요. 한 명만 희생하면 모두가 안전해지는 건데…….”
“그건 그렇지. 그런데 대의를 위해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영웅이 아닌 이상.”
“그런가? 그래도 그 사람이 안 나서면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솔직히 조금… 비겁해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요. 참, 그 소식 들었어요?”
데아는 아직 절반쯤 남은 음료를 들여다보았다. 입맛이 싹 달아났다. 가윗의 말 중에 틀린 말이 없어서 더더욱.
“요즘 헌터 납치 사건이 많이 일어난대요. 높은 등급의 헌터가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몇몇 신생 길드에서는 가족을 인질로 헌터를 잡아 두기도 하고, 무연고자면 그냥 납치하기도 하고…….”
데아는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데아는 뇌를 침투해 가득 차오르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간신히 정리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래서.
“어, 데아야, 어디 가게?”
“언니, 그렇게 있으면 안 답답해?”
위로가 푹 눌러쓴 모자와 후드, 그리고 마스크를 보고 혀를 찼다.
“뭐야, 감기 걸린 것도 아니고 보는 사람 답답하게. 그냥 풀어!”
이위로의 손은 재빨랐다. 자신이 막기도 전에 후드를 넘겨버린 손길에 데아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놔!”
타악!!
이위로의 손등이 붉어졌다. 데아의 몸이 순간 멈칫했다. 일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미안해.”
먼저 사과한 건 이위로였다.
“그냥, 난 친구들끼리 이러고 종종 놀아서. 난 그냥…….”
“만지지 마.”
데아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썼다. 이위로의 표정이 묘했다. 조금 충격 받은 것 같기도 했다. 단순히 손을 뿌리쳐서 그랬기보다는 다른 본질적인 요소 때문에…….
“아, 언니가…….”
이위로의 음성이 끝없이 작아졌다.
“언니가 그렇게… 할 줄은 몰랐는데.”
“뭐?”
“잘 몰랐어. 큰 실수를 했나 봐.”
그리고 아주 작게 읊조렸다.
“미안해.”
그렇게 사과하면 할 말이 없었다. 데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가려던 참이었다.
“…아니야. 나는 매일 이러고 다녀서 이게 더 익숙해.”
“뉴욕에 있을 땐 안 그랬잖아.”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됐어. 그만 물어.”
“응…….”
드르륵, 의자가 끌렸다. 이위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들른 것뿐이었어. 영주 언니,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봐요!”
“어어, 그래. 잘 가.”
딸랑.
이위로가 나갔다. 데아도 하영주에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리서 언니가 부른 게 생각나서. 나도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아. 먼저 갈게. 천천히 있다가 와.”
“공격대장님이요? 헉, 잘 다녀오세요!”
“응. 미안해, 가윗.”
그리고 데아는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