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6화
“이 또라이 같은 개……. 이…….”
“네?”
“…설명하세요.”
“네에.”
권도언의 눈썹이 축 처졌다. 피해자는 자신인데 애먼 놈이 슬퍼하고 앉아있다. 데아의 내면에서 권도언의 이미지가 최하위권으로 추락했다. 데아는 화를 내는 대신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데아 씨가 화를 낼 것 같아서 우선 해명을 조금 해보자면, 데아 씨한테 확인할 뭔가가 있어서 제 연구실로 모셔 왔어요. 연구실로 오는 길을 들키면 안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강제적인 방법을 쓴 점은 죄송해요.”
“아니, 해명이라면서 해명이 안 되잖아요. 절 왜 이런…….”
음습하고 축축한 공기가 사방에 가득한 지하실 같은 곳에…….
“감이 좋네요. 여긴 제 연구실이에요.”
“…길드 지하고요?”
“오…….”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권도언이 눈썹을 좁혔다. 그 천연덕스러운 면상을 보자 데아의 두 눈이 질끈 감겼다.
설마설마했던 것이 맞아떨어졌다. 몇 달 전, 1세대 인어 피파글랜이 말해 준, ‘네 길드 건물 지하에 잔인한 인어 생체 실험을 하는 이상한 놈의 연구소가 있다.’가 사실로 밝혀진 순간이었다.
“이상한 놈, 아니 그래요, 연구실. 무슨 실험을 하고, 왜 저를 여기로 데려왔는지 싹 부세요.”
“뭐, 그래요, 이제부터 뭐 하나 하려면 어차피 말을 해야 하니까. 그러기 전에 여기에 사인부터 하시고요.”
이상한 놈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항목은 단순했다. 무엇을 보든, 연구실의 존재와 이 안에서 본 모든 것을 함구할 것.
데아가 얼빠진 표정으로 권도언을 노려보았다.
“제가 이걸 왜 하겠어요? 협박이에요?”
“그럴 리가요? 저는 이데아 씨를 믿어서 계약을 하자는 거예요. 밑 항목을 더 읽어 보세요.”
밑에는 데아가 비밀을 함구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이 써져 있었다. 대충 요약하자면.
1. 연구실에서 밝혀 낸 독보적인 연구 결과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공유받을 수 있게 된다.
2. 여파 길드의 주요 인사 반열에 끼게 된다.
3. 그로 인한 복지와 혜택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을 본 데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4. 권도언(을)은 이데아(샤샤)(갑)이 연구실의 존재를 함구한 기간과 동일하게, 갑이 6년 전 강원도 해일의 생존자임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
“내가 갑 맞아요?”
“당연하죠. 이건 샤샤 헌터가 거절하면 그만인 계약인걸요.”
느물거리는 권도언의 눈매가 휘었다.
“거절, 거절이라…….”
어쩌면 다행이라고 봐도 될까. 언제 먼저 찾아가야 할지 몰라 피하고 있던 주제를 권도언이 먼저 꺼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 주제는 계약이란 형태로 변해서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데아는 차가운 연구소의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권도언에게로 다가가 그대로 허리를 숙여 앉아 있던 그의 정면과 마주했다. 등불에 비춰진 그의 얼굴 위로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권도언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럴 리가요.”
권도언의 셔츠에 걸려 있던 볼펜을 빼내며 데아가 웃었다.
“빨리빨리 가죠.”
빠르게 서명을 마친 데아가 계약서 두 장 중 한 장을 건네며 고개를 까닥였다. 권도언이 뒤늦게 허탈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겁 좀 줘보려고 했는데.”
“취미가 나쁘네. 저 겁먹었어요. 지금도 막 손이 떨리고 다리도 떨리고…….”
“그게 겁먹은 표정이에요?”
“당연히 아니죠. 그런데 제 표정 잘 읽으면서 눈치가 왜 그래요? 아, 맞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만약에 제가 말 안 했는데 연구실의 존재가 까발려지면 어떡해요?”
“그런 경우에는 데아 씨가 계약을 어긴 게 아니니 계약 위반이 아니랍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자, 이제 설명을 좀 해볼까요? 제가 이데아 씨를 여기로 모셔온 이유는…….”
그때 권도언이 사방을 가리던 커튼을 걷고 침대가 있던 방의 문을 열었다. 예상은 했지만, 문 너머로 보이는 건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이의 연구실이었다.
여파 길드의 한 층을 다 끌어다 쓴 것 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간과 그 안을 가득 채운 거대한 수조. 회색 콘크리트 벽에 마감이 잘 되지 않은 천장, 딱딱한 돌바닥과 이상하게 나뒹굴고 있는 기기들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인어. 넓은 수조 안에 갇혀 있는 수십, 수백 종의 하급 인어들이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물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배고, 배, 배가 고파, 배가.
―나가고 싶어 나, 나가고, 으허, 으으, 나가고 싶어.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데아는 귀를 틀어막았다. 그때 무단으로 상태 창이 켜지더니 한 스킬이 응답하듯 불타올랐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S) : 이건 유폐된 자들의 목소리이다.]
“…….”
하급 인어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스킬이 여기서도 발동되는 건가? 스킬을 끌 수는 없는 건가?
데아가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스킬의 빛이 뚝 끊겼다. 하급 인어의 처절한 비명도 뚝 멈췄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S)가 음성을 스킬, [바다의 경배]를 통해 전송했습니다.]
[‘날 당황스러워하는군요. 그대가 원한다면 나는 입을 다물 수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말해 주세요……. 나는 늘 당신의 곁에 있으니까…….’]
뭐,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 좀 살 만했으므로 데아는 떨떠름하게 귀를 막던 손을 내렸다.
“…여기 연구실 맞아요? 왜 이렇게 난잡하고 어지러워요?”
“보기는 조금 그렇죠? 정밀한 샘플이 들어 있는 방은 또 따로 있어요. 여긴 그냥 보관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권도언이 뒤를 돌았다. 그의 손에는 양동이가 들려 있었다.
“때려도 맞을게요. 미안해요.”
그리고 그다음 순간.
촤아악!!
“……!!”
데아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을 속절없이 전부 받아 냈다. 순식간에 온몸에서 악취가 올라왔다.
이 미친…….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카락 너머로 비치는, 형형한 살의어린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몰라도, 권도언은 단 하나도 겁먹지 않은 눈으로 데아를 위아래로 샅샅이 살펴보았다.
“어때요?”
“…….”
“흐음… 고통스러워 보이진 않네요.”
“고통을 하아… 알고… 싶으세요……?”
“실험이었어요. 인어는 오염된 물에 닿으면 심하게 고통스러워하는 거 아세요? 뭐, 데아 씨만 당하는 게 좀 그러면…….”
권도언이 근처 수조에서 오염된 물을 한 바가지 더 뜨더니 자신의 머리 위로 또 쏟아부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물에 젖어 반들거렸다. 그는 그 얼굴과 몸을 하고는 상쾌하게 웃었다.
“공평하죠?”
“제정신이 아닌 새...인가?”
“한 번 더 할까요?”
“한 번 더는 무슨…….”
데아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양동이를 뺏었다. 그리고 오염된 물을 도로 채운 다음에 권도언의 얼굴 위로 촤아악, 쏟아부었다.
“이래야 공평하죠.”
“하하, 한 번을 안 져.”
“그나저나 지금 저를 인어로 의심한 거예요?”
“네에. 뭐,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요. 그리고 남들이 저를 의심하는 것 또한 이해하죠.”
“아니, 그래도 전, 저는 인어로 인해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인데 왜…….”
그때 데아가 말을 뚝 멈췄다.
그래, 인어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으니 됐다. 이런 미친놈은 그냥 지나가야 한다.
“…자, 전 악취 말고는 고통스러운 게 없었으니 됐죠?”
“네, 일단은요. 아, 인어가 어떻게 고통스러워하는지 보여 줄까요?”
말릴 틈도 없이 권도언이 움직였다. 그는 한 수조에서 대충 뜰채로 작은 인어를 건지더니 양동이에 고인 오염된 물속에 담갔다. 그러자 인어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더니 이내 온몸을 긁으며 허리를 뒤틀기 시작했다.
끼아악!! 끼, 까악!!
데아는 문득 스킬을 꺼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선을 떨궜다.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싸는 척하면서 시야 또한 차단했다. 다른 수조의 인어를 둘러보는 권도언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저 작은 인어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을 향해 있었다.
저 작은 인어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인어는 왜 이렇게 연구하는 거예요?”
“그야 흥미롭잖아요.”
권도언이 당연한 말을 한다는 듯이 웃었다.
“비천하고, 위험하고, 돈이 되죠. 설마 인어가 불쌍해요?”
“…….”
이 인어는 그저 집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럴 리가요……?”
인어는 모두 죽어 마땅한 존재일 뿐인데…….
데아의 안쪽에서 무언가가 충돌했다. 거친 싸움을 일으키며 흙바람을 냈다. 그 여파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 어딘가에 금이 갔다. 데아는 손바닥을 더 내려 얼굴을 가렸다. 표정 관리를 할 자신이 없었다.
자잔은 집에 잘 들어갔을까.
“…….”
데아는 애써 태연하게 흐음, 숨을 뱉었다.
“이런 거… 안 궁금해요. 이런 인어 하나 잡아 봤자 뭐 한다고. 그냥 풀어 주고 저는 기숙사에나 보내 주세요. 피곤하고 거슬려서 더 못 보겠네. 참고로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은 톡톡히 받아 낼 거예요. 최상급 아이템으로 준비해 두세요. 각 스크롤도 열 장씩 준비해 두고. 앞으로 제가 필요하다고 하면 즉각 대령하세요.”
“알았어요. 하긴, 보기 좋은 꼴은 아니죠?”
권도언이 다시 인어를 들어서 맑은 물이 있는 수조로 던졌다. 수조 속에 있던 다른 하급 인어가 기다렸다는 듯이 인어를 감싸 안았다.
“자, 그럼 다시 길드장실로 갑시다.”
“아, 잠깐. 설마 왔던 방법하고 똑같은 방법을 쓰려는 건…….”
권도언이 과장된 슬픈 표정을 지으며 방독면을 뒤집어썼다.
“좀 봐줘요. 앞으로 특혜는 톡톡히 줄게.”
이 X쌔끼이가…….
데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 스프레이 안에서 분사된 하얀 안개가 또 얼굴을 덮쳤다. 반사적으로 피하기 위해 휘두른 손이 퍼억, 어딘가에 부딪친 것 같았지만 권도언의 얼굴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 맞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S급이 겨우 자신의 손 하나 피하지 못해서야 면이 살겠는가.
데아는 ‘아야야…….’ 하는 누군가의 얼빠진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정신을 잃었다. 이번에는 꿈은 꾸지 않았다.
◈ ◈ ◈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데아는 익숙한 자신의 기숙사 천장을 볼 수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하영주와 가윗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