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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55화 (55/223)

※ 055화

“그런데 새로운 스킬도 S급인데 왜 말을 안 해?”

―자기야,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야. 잠깐 자고 온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선물? 드디어 너무 사랑스럽고 강하고 매력적인 야성의 맹수라는 걸 모두가 알아준 건가?

“…경배야.”

―응. 자기야, 농담이야. 그리고 S급도 다 같은 S급인 게 아니고, S급 스킬이라고 해서 다 스킬 시전자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것도 아니란다. 그리고 이렇게 또렷한 존재감을 가진 건 내가 유일할걸? 내가 지금은 목소리도 예전만큼 안 곱고 강인한 힘도 못 보여 주는데, 내가 사실 예전에는 아주…….

“어어. 그래, 잘 알았어.”

―자기, 내 말 안 들었지!

데아는 코를 긁으며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눈을 흘겼다. 허공에서 ‘큼큼, 큼!’ 하는 헛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으음… 알았어. 상태 창 켜봐. 설명해 줄게.

데아는 상태 창을 켰다. 꽤나 오랜만에…는 아니지만 그간 천천히 살펴볼 기회가 없던 하얀 상태 창이 쭉 펼쳐졌다.

[상태 창]

[등급 : N]

이데아―헌터명 : 샤샤

마력 : 21(+30)

체력 : 20(+4)

생명력 : 30(+4)

속도 : 21(+4)

―획득한 스킬―

[물속의 발자취(A)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타고난 사냥꾼(A) : 이미 인어에게서 살아남은 적이 있군요? 인어의 독성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심해의 눈(A)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타고난 몰이꾼(A)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S) : 이건 유폐된 자들의 목소리이다.]

―미획득 스킬―

[○○○](??)

[우리의 ○○○ ○○○](?)

[○○○ ○○○ ○○](??)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 얘가 지인짜 내성적이야. 말도 없고 의사 표현을 안 해. 어느 순간부터 항상 그러더라고.

암막 커튼이 쳐진 어두컴컴한 길드 기숙사 안, 데아는 레모네이드를 쪽 빨며 침대 위에 엎어져 있었다. 참견하기 좋아하고, 가끔은 자기들끼리 이모티콘이며 음성을 보내며 떠들기에 바쁜, 형체 없는 목소리에 익숙해진 지도 오래였다.

[물속의 발자취(A)가 음성을 스킬, [바다의 경배]를 통해 전송했습니다.]

[‘잃어버린 아이 얘, 주눅 들어 있어. 말 함 걸어 볼까?’]

주눅이라니.

“말을 걸 수도 있어?”

[‘당연하지. 얘도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스킬인데 귀가 먹지 않고서야.’]

그리고 물속의 발자취의 음성이 뚝 끊겼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에게 말을 걸러 간 것 같았다.

―나는 쟤가 대답을 듣는 것에 실패한다에 3셀을 걸 수도 있어.

“3셀?”

―아, 응. 옛날 화폐.

“…….”

데아는 빈 레모네이드 캔을 구기고 다시 상태 창을 꼼꼼하게 훑었다.

“잠깐, 마력이 또 늘었어.”

분명 전에는 ‘마력 : 21(+24)’였는데 +30으로 늘었다.

―마력뿐만이 아닐걸? 그리고 인어의 마석을 먹었으니 당연한 결과야. 스무 개 먹은 것치고는 많이 안 올랐네? 아닌가, 이게 보통인 건가.

“그래. 바로 이게 궁금했었다고. 마석 스무 알! 난 그걸 먹은 기억이 없어. 저번 던전 속에서 한입에 삼킨 마석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었는데!”

―어? 그럴 리가? 그렇지 않고서야 상태 창이 그렇게 반응할 리가 없지……. 자기야, 잘 기억해 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워 먹지 않았을까? 우리 자기 먹는 거 좋아하잖아.

“무슨 헛소리를…….”

말을 잇던 데아의 입이 딱 멈췄다. 그러더니 그는 허겁지겁 침대 위에서 일어나 어두운 방 안을 뚫고 장롱 쪽으로 가서 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자기… 뭐 해?

“마석이 없어.”

―뭐?

“저번 JJ 길드의 뉴욕 던전에 가서 잡은 보스 인어의 마석. 분명 그때 입고 있던 헌터복 주머니 안에 넣었는데…….”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이 너무 강렬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JJ 길드 쪽이 몰래 가져갔나? 그럴 수가 있나?’

달라고 했어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치고 마석을 품에 넣어 한국으로 가져올 작정이긴 했다. 그런데 왜.

“없어. 어디에다 뒀지? 게이트 밖으로 나올 때 떨어뜨렸나? 아니면 비행기 안에서 떨궜나?”

가능성 있는 소리였다. 게이트 밖으로 나올 때는 상황이 매우 긴박했었고, 비행기로 향할 때에는 전 세계 뉴스와 한국 커뮤니티와 실시간 검색어를 도배한 6년 전 생존자라는 단어에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

잠시 숨을 고르던 데아는 허무하게 침대 위로 주저앉았다.

“아, 이 똘빡이…….”

무엇보다 잃어버린 마석이 보스 인어의 것이라는 점에서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들어 왔다. 알록달록하기만 한 해초를 지느러미에 감고 파닥거리던 괴이한 생김새의 보스 인어…….

마른세수를 하는데, 분명 형체가 없을 텐데도 경배가 곁으로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럴 때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혹시 자기가 자면서 먹은 거 아닐까?

“장난하냐?”

데아가 사납게 허공을 향해 노려보려는 찰나였다.

똑똑, 똑.

기숙사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데아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데아 누나, 안에 있어요?”

“…경배야,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힝, 너무해.

가윗이었다. 데아는 최근에 사서 매일 입고 다니는 털 달린 검은 후드 집업을 걸치고는 문을 열었다.

“어, 안에 있었네요!”

“무슨 일 있어?”

데아의 물음에 가윗이 눈동자를 굴렸다.

“무슨 일이라면 일인데……. 그, 길드장님이 찾으세요!”

“나를?”

“네. 데아 누나를요.”

“허…….”

데아는 곧장 혼자 길드장실로 올라갔다.

52층의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데아가 목격한 건 방독면을 쓴 사람과 자신의 얼굴 쪽으로 들이밀어지는 스프레이, 그리고 눈앞을 뿌옇게 가리는 안개였다. 그리고 그의 의식이 끊겼다.

◈          ◈          ◈

데아는 잠에서 깨기 전, 아주 짧게 꿈을 꾸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은 여자아이가 수면 속에서 부유하는 짙은 녹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키득거렸다.

―아하, 다음 정착지를 고심하고 있었군요. 사실 나도요. 이곳은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조금 덥네요. 이 날씨라면 물 밖으로 나가자마자 꼬리가 쩌적 갈라질 거예요. 나와 주군, 둘만의 보금자리를 정하는 데 있어서 단 하나의 단점도 용납할 수 없어요. 나는 더 장소를 물색할 수 있으니까 우리 더 알아보면 안 돼요?

아이의 녹색 눈이 총명함을 품고 자신을 거짓 없이 응시했다. 그리고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아이의 하체는 바위 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얕은 물속으로 들어오는 찬란한 태양의 발걸음과 그에 맞춰 은은한 온기를 머금는 하얀 산호 머리 장식이 익숙하다. 아이가 자신의 주변을 돌아다니는 다채로운 색의 열대어를 톡 건드리며 웃었다.

―아, 그런데 오래 돌아다녀서 그런가……. 아주 조금 피곤하네요. 이만 쉬어야겠어요. 물론 주군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멋지지만요……. 주군, 저를 위해서 자장가를 불러주세요.

또?

데아는 당황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또’라고, 방금 내가 말을 한 건가……?

몸이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그때 아이가 자신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수면 밑으로 일렁이며 들어오던 햇빛이 아이의 머리카락 위에서 미끄러졌다. 가장 따스한 폭풍우가 그 아이의 이끼 색 눈에 있었다.

―네. 또요. 내가 얼마나 주군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아, 내가 나의 목표를 말했던가요? 언젠가 주군의 노래를 평생 담을 상자를 만드는 거예요. 당신이 자고 있을 때조차도 난 당신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

◈          ◈          ◈

그리고 데아는 눈을 떴다. 두통이 일었다. 날카로운 쇠붙이로 뇌를 헤집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 밀려들어 왔다.

‘꿈, 꿈을 꿨는데, 무슨 꿈이었지?’

“이런. 아픈 것도, 몸에 해가 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신은 누워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장소, 이상한 약품 냄새. 썩은 물 냄새, 처음 접하는 상황에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데아는 고개를 흔들며 상체를 일으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하얀 침대 위에 있었다.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렸다.

“여긴, 뭐, 어디…….”

“정신이 좀 들어요?”

그리고 자신의 옆에 권도언이 서있었다. 그는 난처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데아는 그 순간, 모든 꿈의 내용을 잊었다.

권도언이 머리를 기울였다.

“나한테 당한 게 그렇게 억울했어요?”

“네?”

“울잖아요.”

데아는 자신의 뺨을 만졌다.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데아가 불신과 혼란이 섞인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자 권도언이 두 팔을 들어 올려 보이더니 주변의 의자를 드르륵 끌어와 앉았다.

“갑작스럽게 기절시킨 건 미안해요. 하지만 연구실 위치를 노출시킬 순 없어서.”

데아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러고 보니 그 방독면을 쓴 사람이 나에게 스프레이를 뿌렸지.

그 범인이 바로 이 새끼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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