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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53화 (53/223)

※ 053화

다음 날 아침, 데아는 백리서와 함께 곧장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부러 비행기의 정보도, 도착 시간도 알리지 않았다. 출국 때처럼 은밀하게 귀국한 백리서는 데아와 같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공항 뒤로 빠져나와 주차되어 있던 밴에 탑승했다.

“어서 오세요, 헌터님들~!”

“고마워요, 차하늘 씨.”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파 길드의 의료진 차하늘이 싱긋 웃고는 곧바로 데아와 백리서의 기본적인 상태 확인을 시작했다. 이상은 없었다.

“다행이에요. 크게 다치시진 않았네요. 저주 같은 것도 없어 보이고. JJ 길드 쪽에서는 뭐래요?”

“저희가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까 아쉬워하셨는데, 지원에 대한 보답은 바로 여파 측으로 보낼 예정이라네요. 아마 포션이겠죠?”

“아! 그거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샤샤 헌터는…….”

차하늘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데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공항에서 나온 직후부터 내내 한마디도 없던 피곤한 기색의 어린 헌터는 더욱 그늘진 눈을 하고 상념에 잠겨 있었다.

“피곤해서 그래요.”

“아, 그렇지. 참! 헌터님들에게 전달해 줘야 할 게 있어요.”

차하늘이 꺼낸 것은 금색으로 코팅된 카드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교하게 S라는 등급과 헌터명이 새겨진 고급스러운 헌터증이었다. 햇빛에 반사되는 단면이 지나치게 매끄럽고 귀중해 보였다. 데아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헌터증을 받았다.

“헌터증이 드디어 나왔거든요. 등급에 따라 헌터증의 색도 달라요. S급은 금색, A급은 은색, B급은 붉은색, C급은 푸른색, E급은 노란색이고 D급은 흰색, F급은 갈색이죠. 저는 B급 헌터니까 붉은색!”

“제, 제 헌터증이 금색인데, 그럼 저도 S급 헌터라고 인정된 거예요?”

눈앞의 차하늘은 이데아와 샤샤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몇몇 중 하나였다. 데아의 물음에 차하늘이 안심하라는 듯 또 품을 뒤적여 새로운 헌터증을 꺼내 들었다.

“샤샤 헌터님의 헌터증은 두 개예요. 일단 공개적으로 S급 스킬이 있음을 밝히셔서… 샤샤 헌터의 등급은 S급이으로 확정되었어요. 또, 이번 던전 공략 때도 보스 인어를 혼자 잡았다면서요? 그러면 더욱 설득력이 있죠. 대단해요.”

“아…….”

“그래도 이데아 씨 이름으로 발급된 B급 헌터증이 또 있으니까 대외적으로는 이걸 쓰세요! 금색 헌터증은 가지고만 계시고요. 등급에 따라 나오는 혜택이나 특혜도 많으니 S급 헌터증을 가지고 계셔도 나쁜 점은 절대! 절대 없을 거예요.”

데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사람 좋게 웃는 이 사람은 내가 6년 전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지금과 같이 날 대우해 줄 수 있을까?

헛된 피해망상이라는 생각이 뇌를 찔렀지만 다 덮어 두고 같이 웃기가 어려웠다. 밴이 출발했다.

“리서 언니 것도 금색이네요.”

“나도 S급 헌터니까. 그나저나 데아야.”

백리서와 눈이 마주쳤다. 이상하게 피할 수 없었다. 끼익, 신호등에 걸려 차가 멈췄다.

“당분간은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왜요?”

“왜겠어.”

조수석에 앉아있는 차하늘에게는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였다. 백리서가 한숨처럼 읊조렸다.

“네가 걱정되어서?”

그러고 보니 커뮤니티에서 백리서, 릴림의 빛나는 외모와 큰 키, 시원한 인상, 그리고 누구나 잘 챙겨 주는 다정한 이미지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언니, 언니, 부르짖으며 당신이란 인생에 나라는 오점을 남겨 주고 싶다는 광신도들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득 데아는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백리서는 자신이 6년 전 생존자라는 사실을 안다. 애초에 첫 만남이 병동의 면회실 안이었으니 당연하다. 아무것도 없던 자신을 길드로 스카우트해 일인분을 해내는 헌터로 키웠고, 사회에서 격리되었던 자신에게 문물을 알려 주었고, 많은 것을 먹여 주고, 체험시켜 주고, 지금처럼 위로해 주고, 도닥여 주고…….

왜.

“…알았어요. 당분간 던전에 가지 않을게요.”

“그래. 인어들이 너를 노리는 것 같으니까.”

“언니는, 정말로.”

데아의 얼굴이 미약하게 일그러졌다.

“나를 던전에 안 넘길 거죠……?”

백리서의 손이 데아의 어깨를 감고 그대로 토닥였다. 그의 표정이 언뜻 웃는 것 같아 보였지만, 데아는 착각이라 치부했다. 신호에 걸렸던 밴이 출발했다.

“당연하지. 네가 버티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뭐라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네.”

“…….”

“뭐, 당분간 던전도 못 가는데, 여기서 하고 싶은 다른 일 더 있어? 이 기회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해도 돼. 길드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지원이 다 나가니까…….”

할 일은 너무 많았다. 인어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기상천외한 현상들도 풀어야 하고, 붉은 인어를 다시 만나기 위한 방법도 찾아야 했으며, 스킬들하고 이야기를 나눠야 했고, 강해지기 위해 훈련도 해야 했다. 자잔은 잘 돌아갔나 걱정도 해야 하고, 거기에 또…….

하지만 자신의 뒷목에 닿는 백리서의 체온을 느끼자마자 모든 할 일들이 물에 잠긴 종이처럼 구겨졌다.

전부 인어에 관련된 일뿐이다. 데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붉은 인어를 하루빨리 잡아서 지난 6년간의 세월을 보상받고 죽은 혈육에 대한 추모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

데아는 힘없이 호흡했다. 다른 걸 하고 싶다. 잠시 쉴 틈을 주고 싶다. 그러자 아이러니하게도 기묘한 해방감이 차올랐다. 수북이 쌓여 있는 잿더미 너머로 새로운 길이 열린 기분이었다.

‘잠시만, 잠시만 쉬어도 될까……. 아.’

그때 데아는 깨달았다.

나는 인어에게서 그저 도망치고 싶은 거야. 도망치고 싶어서 싸웠던 거야. 완벽히 훌훌 털어내고 후련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도 처절하게 도전했던 거야. 편안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악착같이 인어를 사냥했던 거야…….

목구멍 너머로 자작자작 마른 덩어리들을 삼키며 데아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 때가 아니었지만 비슷한 기회가 지금 찾아왔다. 아직 자신이 죽여야 할 인어는 건재했지만 저에게도 숨을 돌릴 때가 찾아왔다.

최종적으로 얻을 안온한 시간을 흉내 낼 수 있는 때였다.

“…그냥 살아 보고 싶어요.”

“그냥?”

“제가 스물한 살이에요. 요즘 20대 초반 애들은 뭐 하면서 지내요? 인어를 사냥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냥 일반인이요.”

정신 병동에 갇히지도, 생과 사 사이에서 외발로 서있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스물한 살처럼 살아 보고 싶어요.”

유년 시절의 기억은 없었다. 인생 최초의 기억은 피와 폭력이 낭자한 낡은 창고 안이었으므로. 고등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병동 안에서 10대의 마지막을 바쳤으므로. 또래 친구도 만나 본 적이 없다. 자신은 사회에서 철저하게 격리되었으므로.

“그럼 대학에 가볼래?”

백리서가 여상스럽게 물었다. 오전의 햇살이 창가를 뚫고 데아의 머리를 뒤덮었다. 눈앞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스물한 살이라고 해서 전부 다 대학에 가는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에는 잘 가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너한테 다른 일을 하라고 할 순 없고.”

“대학이라면… 아, 영주 언니도 다니던.”

“맞아. 영영 헌터가 다니는 그 대학도 괜찮지. 길드 헌터 전용 특혜도 있으니. 그런데 괜찮겠어?”

밖에 얼굴을 내보이고 돌아다닐 수 있겠어?

데아는 흔들리는 시선을 피했다. 그건 그랬다. 6년 전 생존자의 사진이 여기저기 뿌려지고 있는 상황인데, 제가 무슨…….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아. 이미 길드 차원에서 영상이며 사진을 다 내렸거든. 기사, 커뮤니티, 블로그, 미튜브, 인력을 풀어서 족족 내리고 있어.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을 규제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양지에서 그 사진을 볼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그 사진, 나도 봤는데…….”

백리서가 그제야 보조개를 보이며 웃었다.

“그 사진으로 지금의 널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네?”

“지금의 너는 그때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반짝반짝하니까?”

“…….”

데아는 무의식적으로 두 뺨을 비볐다.

말, 말하는 게.

“언니는 말을 왜 그렇게 해요?”

“…뭐가?”

“아, 아니…….”

“싫어?”

“아니요!”

“무슨 일 있어요?”

데아의 고함에 차하늘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백리서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데아는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빌딩 사이로 비치는 오전의 태양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데아는 품 안에 S급 헌터증과 B급 헌터증을 쑤셔 넣으며 간질거리는 내면을 억눌렀다.

저의 주변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이제 자신이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자신의 휴식에 충실하되, 6년 전의 생존자임을 절대 들키지 않을 것. 하지만 이것은 백리서와 권도언이 도와주니 괜찮을 것이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의 해결책이 있는가?

밴이 멈췄다. 데아는 백리서와 함께 여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공략 1팀이 반갑게 그들을 맞았다.

“데아야! 네 앞으로 뭐가 왔는데?”

“네?”

“To. 샤샤. 공략 성공했다는 선물이네. 두 개나 왔어! 팬인가? 한번 열어 봐!”

“뭐? 누가 벌써 팬이 생겨!!”

하영주가 벌떡 일어났다. 데아는 괜히 말랑한 기분으로 선물 꾸러미를 받았다. 하나는 갈색 종이로 포장된 소포였고, 하나는 각진 박스에 들어있는 검은색 함이었다.

“뭐야, 이 비싸 보이는 함은…….”

가윗이 호기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데아는 우선 갈색 종이 포장지를 먼저 뜯었다. 끈을 풀자 스르륵 열리는 소포의 안에 든 것은 하얀 카드와 말린 하얀 장미였다.

PP

카드 위에 갈색 잉크로 유려하게 쓰인 두 글자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데아는 카드를 집어 들었다.

“PP가 누구야?”

“나도 몰라…….”

데아가 무심코 카드를 뒤집었다.

내 아이들이 행한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시길.

데아는 빠르게 카드를 주머니 안으로 쑤셔 넣었다. 다행히 길드원들은 말린 하얀 장미에 시선을 빼앗겨 카드 안의 내용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PP. 피파글렌.

베이지색 머리카락을 가진 동그란 안경을 쓴 1세대 인어. 분명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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