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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51화 (51/223)

※ 051화

게이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움 혼자뿐이었다. 그것도 완전히 튀어나온 것이 아닌, 어설프게 반을 게이트 밖에 두고 있는 모양새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모든 이목을 잡아끌기엔 충분했다.

<으아악!!>

<인어, 인어야!>

<도망쳐!!>

폭력적일 만큼 강렬한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번잡하게 사람들이 동요했다.

“데아야, 물러서.”

“저 인어, 분명…….”

도망치는 자와 한 장이라도 더 찍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이 부딪치자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문득 귀가 머는 것 같았다.

“흐음…….”

그러나 이 모든 소란의 주범인 움은 심드렁하게 좌중을 훑었다. 카메라가 얼마나 있나 세어 보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이내 그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를 찍는 수십 대의 카메라도 동시에 올라갔다.

“나는 1세대 인어 움. 너희 인간들의 세계에 침범한 인어들의 주군이지. 그리고 나는…….”

움이 삐딱하게 웃었다. 그의 눈이 차게 빛났다. 기자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인간의 말을 하는 인어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친히 인어들의 목적에 대해 알려 주러 왔다. 이 싸움을 가장 빠르게 멈출 수 있는 길이지. 나는 죽음에 슬퍼할 줄 알거든.”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켰다.

갑작스럽게 게이트를 뚫고 나온 인어. 인간을 닮고,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는 인어의 첫인상은 매우 무거웠다. 그의 표정은 가벼웠지만 눈빛은 사나웠고, 기운은 흉포했다.

“사실 간단해.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그것만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이 게이트도, 사냥도 불필요해. 우리는 우리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즉시 이 세계에서 손을 떼고 물러날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절대적인 포식자를 마주한 생쥐처럼 카메라를 든 기자들의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인가? 그나저나… 방금 전에 1세대 인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2세대도, 3세대도 존재한다는 말이 아닌가?>

<세상에, 그들에게 목적도 있었다니.>

<인어들이 군집 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그것참…….>

좌중이 공포와 기대감을 품고 술렁였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공존했다. 데아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죽 흘렀다.

<그, 그 목적이 뭡니까!>

특종을 바라는 한 기자가 용감하게 마이크를 치켜들었다. 움과 눈이 마주치자 곧 히익, 소리를 내며 물러섰지만 움은 눈꼬리를 빙글 휘며 입을 열었다.

“6년 전… 한 나라에서 우리는 어느 여자아이를 놓치고 말았지.”

모든 생각이 정지했다. 데아는 멍하게 움을 올려다보았다.

“그 여자아이가 인어들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을 가져갔어. 그때는 갑자기 해일이 일어나서 목적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지. 이 모든 사태는 그 아이 때문이야. 그 아이를 찾아내서 게이트 안으로 던져!”

어스름한 한밤의 우울이 데아를 덮쳤다. 사람을 태우는 카메라의 빛이 시력을 빼앗아갈 것처럼 강렬했다. 데아는 눈을 감았다. 6년 전의 기억이 머리를 데웠다.

“그 아이를 받으면 우리는 당장이라도 이 세계에서 물러날 수 있어. 기한은 빠를수록 좋아.”

말을 마친 움은 게이트 안으로 도로 들어가 버렸다. 화려하게 게이트가 빛나고, 이내.

팟!

핸드폰 전원이 꺼지는 것처럼 게이트가 닫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환호하지 않았다. 숨 막히는 정적이 정수리를 짓눌렀다.

“…….”

낯선 곳을 향한 고요한 일탈. 그 일탈에 전부를 바친 과거의 꿈은 떠오르는 해처럼 데아의 눈에 범람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손이, 몸이 굳어서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괜찮아…….”

백리서의 다정한 목소리마저 위선처럼 들렸다. 한순간에 평범한 세상이 절벽으로 변해버렸다. 백리서가 당장 저를 게이트 안으로 던져도 할 말이 없었다.

“나, 나는 그…….”

메마른 성대가 떨렸다. 누군가의 옷자락을 잡고 빌고 싶었다. 누군가가 당장 자신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환상이 드리워졌다.

‘저 애야! 저 애가 6년 전의 생존자라고! 저 애가……!’

환청이었지만 데아는 필사적으로 점퍼를 끌어당겨 얼굴을 가렸다.

아니라고,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6년 전의 생존자는 제가 맞는데, 제발 배신하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예상대로 기자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대부분 영어라서 못 알아듣는 게 그나마 다행인가 싶었다.

<무슨 사건이래, 와아.>

<6년 전? 어… 잠깐, 나 들어본 것 같은데.>

이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탓할 것이다. 그 애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고 다쳤다고. 그 애를 바치면, 그 애 하나만 죽으면 모든 이가 무사할 수 있다고.

“나는…….”

데아는 가까스로 손을 움직였다. 뚝뚝 떨어지는 물을 손으로 받아 내며 길게도 침묵했다. 제가 6년 전의 생존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몇 없었다. 백리서와 권도언, 그리고 정신 병동의 선생님 몇 분.

이 중에서 누군가는 언론에 자신을 폭로하고 인어들에게 넘겨버리진 않을까? 자신이 들어도 움의 제안은 혹할 만했다. 그러니 안 넘길 리가 있나.

“…데아야, 괜찮아. 진정하고, 일단 가자.”

세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서 어색한 티를 내면 안 되었다. 어렵게 걸음을 옮기자 JJ 길드원에게 기대어 있던 이위로가 데아를 발견하고 방방 뛰어왔다.

“샤샤, 샤샤~! 너무 반갑다!! 물에 빠지고 정신이 없었는데, 보스 인어는 샤샤가 처리했다며! 대단하다. 나는 이번 던전에서 한 게 없는데……. 그래도 네가 날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았다며?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이위로의 무사를 확인해서 그나마 안심인데, 평소였다면 두 손을 꼭 잡고 다행이라는 덕담 하나쯤은 건넸을 텐데…….

“안색이 왜 그래? 아, 피곤한가? 그렇지. 피곤할 만하지. 그나저나 아까 인어가 나와서 한 말 들었어?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인어라니. 와, 세상에. 나는 인터넷에 돌던 썰들은 당연히 구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 어…….”

“6년 전에 어떤 애를 놓쳤다는 거지? 어느 나라에서 놓친 거야? 와, 단서도 쥐꼬리만큼 주고 찾으라니, 진짜 너무하지 않아? 그래도 그 애만 넘기면 되니까. 그 애도 좀 불쌍하긴 한데, 물건을 먼저 가져갔으면 뭐…….”

“위로 헌터. 샤샤는 현재 휴식이 필요합니다.”

“앗, 네넵.”

이위로는 아쉽다는 듯이 데아의 핸드폰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주고 이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데아는 많은 사람들이 철수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실내에서 벗어나 세단을 타고 JJ 길드가 마련해 준 호텔로 올라갔다.

“데아야, 혹시 생각이 좀 정리되면…….”

카메라도, 사람들도 없는 호텔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데아는 무심코 백리서의 손을 놓았다.

“…진정되면 객실 밖으로 나와. 옆방이 내 방이니까 그곳으로 와도 좋고. 우선 이 일은 권도언과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상의요? 무슨 상의요? 저에게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정하는, 뭐 그런 상의요?”

“아니야. 진정해.”

백리서가 두 손을 들어 보여 주며 이어 말했다. 데아는 자신의 숨이 가쁘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그런 거 아니야. 절대 안 넘겨. 방금 권도언하고 짧게 통화했어. 우리는 너 안 넘겨. 그러니까.”

“왜 안 넘겨요? 저 하나 넘기면 게이트가 다 사라지고, 인어도 다 사라지고, 다 안전해진다는데!”

“이데아.”

“제가 생각해도 납득이 가는데요? 지금 벌써 한국에서는 난리가 났을 거예요. 6년 전의 생존자 그 애 정신 병동에 갇혔던데, 그 병동이 어디냐, 끌어내라. 난리가 났겠죠!”

“너는 인어의 말을 믿어?”

“…….”

백리서는 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그의 옅은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인어가 그런 종족이었던가? 자신의 동족을 대신 넘기고 인간을 능숙하게 속이며, 가끔은 동족 포식까지 하는 게 던전에서 숱하게 봐온 인어야.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이해해. 아주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랑 권도언은 인어의 습성과 성질을 알아. 우리는 너를 안 넘겨.”

“…….”

“하지만 대중은 아니야. 알지? 그래서 우리가 상의할 건 어떻게 대중들에게서 널 숨기느냐야. 너를 지킬지, 넘길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저는…….”

우물쭈물하는 데아를 내려다보며 백리서가 후우, 숨을 뱉었다.

“조금 더 믿음을 줄 수 있게 사회의 이야기를 꺼내 보자면, 권도언은……. 아, 아니다.”

백리서는 말을 멈추곤 데아의 객실을 열어주었다.

“쉬어. 걱정되겠지만… 우리는 너 안 넘기니까 그렇게 알고.”

데아는 얼떨결에 안락한 호텔의 침대 위로 무너지듯 쓰러졌다.

‘뭐지? 납득이 잘 안 가는데…….’

그러나 생각도 잠깐이었다. 혼란스러운 정신과 달리 몸은 정직했다. 데아는 느릿느릿하게 씻고는 바로 수마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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