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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48화 (48/223)

※ 048화

“나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게이트의 생성.

“어렵기도 하지만 인간인 나만 넘어갈 수 있지, 인어인 너는 못 넘어가! 밖에 나가자마자 헌터들한테 죽을걸!”

―그럼 너 혼자라도 넘어가든가! 그래서 방법이 뭔데?

“게이트가 열리면……!”

―게이트? 그거 ‘창’이지? 어떻게 생기는 건데!

“조, 조용히 해봐! 저기 보스 인어가 죽으면 게이트가 생겨서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보스 인어가 뭔데!

“이 모래섬 인어……!”

헙, 데아는 입을 다물었다. 보스 인어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데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말실수를…….

―어어, 바다니임.

저 멀리 빼꼼 고개를 든 보스 인어가 가냘프게 속삭였다. 데아의 아랫입술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냐, 나는 그럴 의도가…….

―그으… 보스 인어가 뭐예요?

저예요?

하급 인어의 지능은 낮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은 눈치가 빨랐고, 영민했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방당하고 천대받아 구석을 구르기엔 상대적으로 뛰어난 상황 판단력을 가진 하급 인어는.

―아아……. 어어…….

이번에도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야 말았다.

―내가 죽으면 바다님이 안전해져?

“아니야!!”

아니기는 뭘. 사실이었다. 인어를 죽여 탈출할 생각을 했던 사람답지 않게 데아는 드물게 당황해서 소리쳤다. 자신도 스스로가 왜 그러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해초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웃던 얼굴과, 그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지켜 주려 애썼던 모습이 어른거려서… 그저 찜찜한 기분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원군이 왔다!!

―인간 쪽 지원군은 아직 안 온 모양인데?!

―서둘러!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어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광경에 자잔이 강력한 충격파의 막을 세웠지만 잠시 주춤했을 뿐, 암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붉은 인어의 무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설마… 움의 권속이 모두 온 건 아니겠지?

자잔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던 때.

―칼리안이 왔다!!

우뚝, 데아의 몸이 굳었다. 딱딱한 동굴 바닥을 느끼며 떨던 온 신경이 마비되었다.

―자기야!

머리보다 몸이 더 빠르게 반응했다. 데아의 손에 바다의 창이 생성되어 자동으로 쏘아졌다.

“악!!”

한 인어 무리가 그 창을 피해 우르르 흩어졌다.

―조심해!! 저 인간이 가진 무기가 강력해!!

누군가가 소리쳤지만 데아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시선의 중앙에,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바다 위에.

―어우, 이 하급 인어는 뭐야. 걸리적거리게.

보스 인어를 거칠게 밀치는 붉은 인어가 있었다.

6년 전의 악몽. 사람의 면상을 뒤집어쓴 바다의 괴물.

저자의 손톱에 꿰뚫려 힘없이 절벽 밑으로 추락하던 유일한 혈육…….

데아의 적의를 읽었는지 6년 전의 붉은 인어, 칼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이상했다. 알아보지는 못해도 의아해할 줄은 알았는데, 데아를 마주한 칼리안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탐색하더니 이내 흡, 숨을 멈추며 새하얗게 굳어버렸다. 난처해하며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데아는 자신의 내면에서 마력이 빠르게 닳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닥을 드러낸 마력을 안고, 몸 안의 모든 힘을 끌어모아 창을 생성했다. 창을 쥔 손이 크게 떨렸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하는 거대한 푸른 창은 모든 인어의 이목을 잡아끌었다.

―그…….

칼리안이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것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타고난 몰이꾼(A)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충동적으로, 혹은 폭발적으로 데아는 도약했다. 암벽 동굴이 한차례 크게 울리고, 허공 위를 구른 데아는 창공에서 창을 당겨 붉은 인어를 조준했다.

거칠게 부는 바람에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휘날렸다. 모든 이의 시력을 앗아가는 거대한 빛의 줄기. 자연을 본 따 만든 가장 강력한 재앙.

이 공격의 실패 확률은 계산하지 않았다. 데아의 세상에는 자신과 붉은 인어, 이 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건 이 창을 저 인어의 아가리에 찔러 넣음으로써 과거의 혈육과 자신의 지난 6년간의 공포를 위로하는 일뿐이었으므로.

그러나 그때.

챙캉!!

누가 창을 막아 냈다.

―인간!

강한 압력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헉, 짧은 호흡과 함께 뒤로 튕겨 나간 데아는 가까스로 높은 암벽을 붙잡고 섰다. 손바닥에서 피가 났지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한 번에 튕겨버리다니.’

비산하던 물방울과 파도가 가라앉자 보이는 건 한 인영이었다. 칼리안의 앞을 지키고 선 붉은 머리의 인어. 젊고 건장한 몸집에 삐딱한 미소를 올린 그는…….

―움 님!

이름까지 초면이었다.

퉤, 데아는 헐떡이던 숨을 가라앉히고 피 섞인 침을 바닥에 뱉었다.

“안녕.”

경쾌한 인사에 데아는 미간을 좁혔다.

“인간의 말을…….”

“할 줄 알지? 그야 당연하지. 나는…….”

예언자 ‘연옥’으로 위장했던 1세대 인어 움. 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까닥이며 데아를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사자의 갈기처럼 흔들리는 붉은 머리카락과 온몸에 잡히는 수련의 흔적까지. 데아는 암벽에 몸을 기대어 숨을 고르며 눈을 가늘게 떴다.

“1세대 인어, 움이라고 해.”

피파와 같은 1세대 인어…….

―저자가!

고함은 데아의 뒤쪽에서 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자잔이 이빨을 보이며 움을 노려보고 있었다.

“누군지 알아?”

―역모 죄인 움. 역시나 인간계와 제국을 오가고 있었군!

“그래……. 너는 트리야의 권속이로군? 네가 인간과 협동해서 스스로의 안위를 지키고 있다니……. 반항기니? 뭐, 놀라운 일이지만 지금은 너한테 관심을 줄 때가 아니라서 말이야. 아가야, 나중에 다시 오려무나. 그땐 예뻐해 줄게.”

―닥쳐!

움은 자잔을 가볍게 무시하곤 다시 데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서쪽의 주군으로 불리기도 하지.”

움은 느릿하게 헤엄치며 데아가 올라간 암벽 아래에 첨벙, 상체를 빼내 걸터앉았다. 나긋하게, 하지만 집요하게 관찰하는 시선이 데아의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 눈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네 눈에서 선명한 적의를 읽을 수 있어. 그래. 하하, 넌 인어를 싫어하다 못해 끔찍하게 경멸하는구나.”

“…….”

“너의 목표는 우리들 중 한 명인가? 누구지? 역시 6년 전에 마주했던…….”

움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근처를 서성이던 칼리안의 팔을 훅 잡아당겼다. 데아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얘?”

“……!”

“칼리안은 내 소중한 첫 번째 권속이지만…….”

움이 보란 듯이 픽 웃으며 칼리안을 놓아주었다.

―주, 주군…….

칼리안이 데아를 노려보며 첨벙, 다시 물속으로 입수했다.

“제안을 하나 할까. 인간들을 배신하고 우리에게 와, 인간 헌터. 그러면 친히 칼리안을 넘겨줄게. 죽이든 살리든 자유야.”

칼리안의 표정이 싹 굳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듯 상처받은 표정이 얼굴에 역력했다. 그러나 데아는 단호했다.

“그딴 수작질에 누가 넘어간다고!”

“싫어? 하지만 잘 생각해 봐. 너와 네 주변에 있는 인간들 중…….”

네가 찾는 인어에 대해 확실한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니?

일그러진 데아의 표정이 혼란으로 뒤덮였다.

“인간들의 정보력은 거기까지야. 신생아 수준이지. 그런 인간들을 믿을 수 있겠어? 결국 넌 네 두 발로 직접 정보를 얻기 위해 뛰어다닐 거야. 그럴 바에는 인간을 배신하고 우리에게 오는 게 좋지 않겠어? 우리는 추방당해서 제국 안에도 들어가지 못해. 네가 안전하게 있기에는 딱 좋지. 동료를 대하듯 대우해 준다고 약속해.”

―헛소리다. 저들의 목표는 인간의 몰살이야. 믿지 마!

그때 자잔이 크게 외쳤다. 자잔은 데아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인간인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현재 제국은 안정된 상태가 아니야. 역모 죄인들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고, 저기 있는 움은 앞장서서 반역을 꾀하는 죄인들 중 한 명이지.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버려진 권속이 꼭 이렇게 초를 치지.”

―인간들의 몰살.

데아는 자잔을 내려다보았다. 자잔의 흰 이마 위로 어두운 물빛의 머리카락이 흔들리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반듯한 콧대에 똑 떨어졌다.

―저들은 전대 왕의 복수를 하려고 하고 있어.

“이걸 다 말해버리네.”

―전대 왕 ‘태초’가 인간들의 손에 죽었어.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게이트를 만들어 내서 인간들의 세상에 침범하고 인어를 풀어놓음으로써 인간계를 멸망으로 이끌려 하는 거야. 그러니 속지 마! 저들은 이용만 하다가 쓸모를 다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널 버릴 거야.

움이 한숨을 내쉬며 눈동자를 굴렸다. 데아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지만 이내 굳건하게 굳은 얼굴로 움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말 안 해도 넘어갈 일 없어. 저딴 제안에 누가…….”

“하지만 혹했지?”

움이 여상스럽게 물었다. 그는 짜증이 조금 난 것 같기도, 데아의 선택에 수긍한 것 같기도 했다.

“내 제안이 그럴듯했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냐는 말이야.”

데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움의 눈동자가 빨아들일 듯이 데아를 휘감았다. 저도 모르는 기분에 휩싸여 데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하지만, 저 눈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잠시 제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물렁해서야 우리 중에 한 명을 죽일 수야 있겠나?”

찬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움은 이제 노골적으로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기회를 줬는데 또 이렇게 인간 편을 들지.

마지막에 중얼거린 말은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움은 이내 첨벙, 하고 물속에 뛰어들어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어들에게 손을 크게 휘저으며 명령했다.

“트리야의 권속은 죽이고 인간은 생포해! 필요에 따라선 치명상을 입히는 것도 괜찮으니까!”

그의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데아와 자잔이 있는 암벽동굴 주위를 둥글게 포진하고 있던 인어들이 동시에 환호성을 지르며 앞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데아는 곧장 자잔의 옆으로 구르듯 뛰어내려 전투태세를 취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눈앞에 튀어 오른 것은 그것과 동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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