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7화
“이게 무슨 소리야?”
―뭐? 무슨 말이야.
“무슨……. 이게 무슨 소리냐고!”
데아가 소리치자 인어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저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죽을 때가 되니까 헛소리를 하는가 보지.
―뭐 해? 어서 공격해!
아무도 이 소리를 못 듣는 건가?
데아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현장을 목격했다.
두렵게만 느껴졌던 보스 인어. 반드시 죽여야만 했던 모래섬이, 끔찍한 괴물과도 같았던 인어가… 2세대 인어들 사이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안 돼애, 아안 대애―!
붉게 충혈된 눈으로 긴 팔과 꼬리를 버둥거리며 마구잡이로 헤엄쳐 오는 보스 인어의 목적지는 바로 자신이었다.
―죽으면 아안 돼―!
어눌한 발음. 당장 머릿속에 꽂히는 선명한 음성.
순간 데아의 표정이 무너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뇌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았다.
―이건 또 뭐야!
―놀랐잖아! 이런 미친…….
화가 난 2세대 인어들이 자신들의 사이로 끼어든 보스 인어를 향해 창과 칼을 던졌다. 거친 굉음이 먹먹하게 울려 퍼졌다.
푹! 푸욱! 캉!
모래섬이 아닌 몸에 직격으로 꽂히는 창들이 분명 고통스러울 텐데도 아랑곳하지 않은 보스 인어가 순식간에 다가와 데아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으악!!”
―뭐, 뭐야, 저건?!
“조심해!”
훅, 뒤로 쏠리는 무게감에 당황하기도 잠시.
“잡아, 자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데아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자잔의 손을 끌어당겼다.
―어? 인간, 이건 뭐야!
“나도 몰라!”
―어, 어어?
얼떨결에 데아의 손을 잡은 자잔이 제정신을 찾기도 전에 둘을 낚아챈 보스 인어는 푸른 피를 질질 흘리며 바닷속을 날아올랐다.
―도망친다!
―쫓아라!!
뒤를 쫓는 인어들이 있었지만 자잔이 광범위 충격파를 사용하자 그마저도 사라졌다. 데아는 기절하듯 축 처진 자잔을 부축하며 모래섬 위로 올라가 바위를 꽉 붙잡았다. 해류가 빠르게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피부가 찢어지는 것 같은 압력과 추위가 닥쳐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빛줄기가 하나둘 들더니 이내.
첨벙!
수면 밖의 공기를 가득 맡을 수 있었다.
“하아, 허…….”
흠뻑 젖어 물을 뚝뚝 흘리는 데아가 자잔을 움켜잡고 스르륵 모래섬 위로 몸을 뉘었다. 급격하게 떨어지는 체온이 충격적이었다. 데아는 엄습하는 추위에 이를 딱딱 부딪치며 덜덜 떨었다.
‘따돌렸나? 그 인어들은 이제 안 오나?’
―죽었어? 죽지 마.
서투른 말투로 그 보스 인어가 데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마치 어린아이가 칭얼거리는 목소리 같아 데아는 이마를 땅에 찧으면서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자잔은 쓰러져서 미동이 없었다.
“…자잔?”
대답이 없었다.
“죽었나? 설마? 야!”
데아는 조심스럽게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다행히 숨은 쉬었다.
“뭐야, 살았네…….”
다행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노을이 바다에 번졌다.
―주욱지 마아.
대양의 한가운데. 불길과도 같은 바다 위에 떠있는 이질적인 모래섬.
“하아…….”
데아는 상체를 기울여 붉게 물든 수면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힘을 빼었다.
첨벙!
그리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차가운 바다가 온몸을 감쌌다. 바다 아래에는 보스 인어의 본체가 있겠지만, 자신을 공격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근거도, 확신도 없는 예감이었지만, 그래도.
―왔어? 왜 왔어?
끔찍하게 뒤틀린 인간의 거대한 얼굴. 검게 물들어 붕 떠있는 꼬리.
―나를 보러 왔어?
가느다란 실처럼 엉켜 수면 위로 솟은 머리카락…….
“…….”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얕은 물속에서 괴물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왜 나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야 당연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죽이기 위해 악착같이 공격했던 상대라는 게 믿기 힘들 정도로.
―기뻐어―!
괴물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었으니.
“왜 갑자기 나를 도와준 거야……?”
데아는 느리게 보스 인어와 눈을 맞췄다. 인어의 눈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인어의 시선은 아주 먼 곳에 가있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또 비춰 보는 눈. 애정과 그리움이 담긴.
―내가…….
“뭐?”
인어의 높게 널뛴 시선이 방황하다가 데아의 무릎에 안착했다. 데아는 불현듯, 인어가 가장 그리워하던 때를 알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냥 알 것 같았다.
―내가 먼저어 봤어.
하급 인어의 말은 같은 인어라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자잔의 말이 무색하게도, 데아는 보스 인어의 말을 그 누구보다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데아는 새로운 스킬의 기능을 정확히 깨달았다.
―내애가 제일 먼저…….
“…….”
―찾았어. 그렇지이? 그래서 구했어! 나 잘했어?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S) : 이건 유폐된 자들의 목소리이다.]
유폐된 아이들의 목소리라…….
“음, 그래. 잘했어. 잘했는데…….”
상급 인어조차도 들을 수 없는 하급 인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그렇다면 설마 모든 하급 인어가 전부 자신에게 호의적인 건가? 에이, 그건 아니겠지만 설마. 아니, 그래도…….’
데아는 느리게 다리를 움직여 보스 인어의 옆으로 다가갔다. 깊게 찔린 창대 사이로 푸른 액체가 연기처럼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살짝 창끝을 만져 보았지만 보스 인어는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 있어.’
보스 인어가 죽으면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게이트가 생성된다. 먼저 밖에 나가서 지원을 요청하고 위로와 리서 언니, 그리고 아리아 길드장의 행방을 수색하면…….
그러기 위해선.
데아는 어렵게 입술을 달싹였다.
“…약점 파훼.”
[심해의 눈(A)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데아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가득 찼다.
“가깝네.”
인어의 복부 쪽에서 붉은 점이 이글거리며 끓고 있었다. 마침 그곳에 창대가 꽂혀 있으니 자신은 그저 꾹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보스 인어는 반항도 못 하고 죽겠지.
―헤, 내가 제에일 먼저…….
하지만 그전에 먼저 물어볼 것이 있었다.
“뭘… 찾았다는 거야?”
보스 인어의 큰 눈이 데아를 향했다. 잠깐의 침묵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그야 당연히이 바다님이요!
‘바다님…….’
후, 데아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통제가 안 된다는 말이 뭐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사소통이 느리고 대화 방식도 산만하다. 혼자만의 세상이 좀 큰 모양인데…….
그때 인어가 한쪽 손을 하늘하늘 흔들었다.
―그거, 그으거 뭐야아?
“어? 뭐가…….”
인어가 가리킨 쪽은 자신의 발목 쪽이었다. 잘 보니 주황색과 붉은색, 그리고 초록색이 뒤섞인 알록달록한 해초가 휘감겨 있었다.
“뭐야, 이거?”
빠르게 해초를 풀자 인어가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어. 색이 아아주 예뻐!
“어… 그래? 너 가질…래?”
―나 주는 거야?
“…응.”
이까짓 해초가 뭐라고.
데아가 훌쩍, 해초를 물 위에 띄워 주자 인어가 그것을 잡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러자 창대가 꽂힌 부분에서 푸른 피가 더 많이 새어 나왔다.
“아니, 아니, 가만히 있어.”
데아는 해초를 다시 가져다가 인어의 얇은 지느러미 하나에 휙휙 감아 주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은 꼬마처럼 인어는 자신의 지느러미를 신나게 휙휙 돌려가며 기뻐했다.
몸만 성했다면 온몸을 흔들며 춤이라도 췄을 기세라 데아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었다.
―기뻐? 나도 기뻐어. 바다님을 아~주 오랜만에 만날 수 있어서…….
피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어차피 이 인어는 곧 죽을 것이다. 데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
전신을 감도는 창백하고도 황량한 감정은 그저 이곳의 온도가 낮기 때문이리라.
―그러면은 나도 선물을 줘야지.
그때였다.
―찾았다! 여기야!
―인간과 자잔이 여기에 있어!
“……!!”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란 데아는 허읍,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까지… 쫓아왔어! 위, 위로 올라가아!
그때 보스 인어가 큰 지느러미를 훌쩍 들어 데아를 모래섬 쪽으로 던졌다. 데아는 구르듯 모래섬 위로 착지했다.
“허억, 하.”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 넘기며 데아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자잔을 서둘러 깨웠다.
“야, 야. 일어나, 어서!”
―어, 음…….
“버리고 간다?!”
또 바닷속으로 떨어지면 낭패다. 바다 괴물처럼 옅은 갈색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어들이 수면 위로 동그란 머리를 불쑥불쑥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살기 어린 시선들을 피하며 데아가 자잔을 들쳐 메고 뛰었다.
‘어디로 가지?’
마침 저 멀리 암벽이 있었다. 옅고 작은 암벽 동굴이었지만 언제 다시 끌어내려져 입수할지 모르는 모래섬 위보다는 컸고, 안정적이었다.
[타고난 몰이꾼(A)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가공할 만한 속도로 모래섬의 끝까지 달려간 데아는 그대로 훌쩍 땅을 박차고 뛰었다. 믿을 수 없이 먼 거리가 단숨에 단축되었다.
―야, 무슨 인간이 저 거리를……!
당황스러워하는 인어들의 음성이 뒤통수에 달라붙었지만 무시했다.
―인간? 허. 뭐, 뭐야!
“조용히 해. 정신 사나워.”
―잠시만, 저것들이 또 따라왔어?
자잔이 후, 길게 한숨을 뱉었다.
―너도 당해 봐서 알겠지만 물속에서는 저들을 이길 수 없어.
“나도 알아!”
―그러니까 너라도 여길 나가. 어차피 여긴 인간들의 세계가 아니잖아. 들어오는 방법도 있으니 나가는 방법도 있지 않아?
데아가 미간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