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6화
“크윽!!”
데아는 갑작스럽게 멱살을 잡혔다. 발돋움 한 번에 바닷속을 크게 구르고, 저와 자잔에게 달려들던 하급 인어 떼를 가까스로 무찌른 직후였다.
―인간!
계속해서 몸을 혹사하던 사이 시간은 많이 지나버렸고, 자신이 있는 곳이 빛이 드는 옅은 바다가 아닌 빛이 차단된 깊은 바위틈이라는 걸 뒤늦게야 알아버린 데아는 자잔의 도움을 받아 허우적거리며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다샤가 나타나 데아의 멱살을 잡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헤엄쳤다.
“이게……!”
―설마설마했는데 물속에서 숨도 쉴 수 있었을 줄이야. 정말 여러모로 대단한 인간이었구나?
그런 인간은 무슨 맛일까?
다샤의 붉은 눈이 구부러진 살기를 품고 번뜩였다.
―버려진 권속인 저놈을 감싸 주는 걸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인정해야 할 건 인정해야겠어. 넌 보기 드문 인간이야. 하지만.
다샤의 손톱이 날카롭게 변모했다.
―여기서 죽을 운명인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니. 누가 널 지켜 주겠어? 올리아는 이제 여기 없어!
손톱이 크게 휘둘러지더니 순식간에 팔과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삽시간에 머릿속이 진탕이 되었다. 바다의 추위가 성큼 다가왔다.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추워서 데아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나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
다샤의 어깨 너머로, 빠르게 헤엄치며 데아를 구하러 오는 흰 인영이 보였지만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서는 그마저의 기척도 금방 사라졌다. 팔을 허우적거려도 잡히는 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짠 물뿐이었다.
―먹, …야!
옆에서 경배가 뭐라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다급한 목소리였으나 마력이 부족한 탓인지 손바닥 안에 바다의 창이 생성되었다가도, 금세 힘을 잃고 푸시시 풀리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 …석! 먹……!
뭐?
―그 마석 먹어!!
그래, 마석을 먹으면 마력이 늘어난다고 했었지!
“으, 흐으.”
데아는 마석을 넣어 두었던 주머니 속을 더듬었다. 주머니는 단단한 구슬의 모양대로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한 손에 꽉 잡히는 마석을 어떤 수로 지금 먹는단 말인가?
“이걸?”
―그래. 쪼개, 자기야. 그거 부숴! 그 안에 핵이 있어. 그거라도 삼켜!
“정말? 이, 이걸 삼키라고? 먹으라고?”
―어, 빨리, 지금 당장!
[물속의 발자취(A)가 음성을 스킬 [바다의 경배]를 통해 전송했습니다.]
[‘손톱으로 눌러라. 약한 인어의 마석일수록 쉽게 부서지니까 빨리! 지금 당장!’]
파삭!
마석의 표면은 허무하리만큼이나 약했다. 데아는 과자가 부서지듯 으깨진 마석의 까끌거리는 촉감을 느끼며 눈을 부릅떴다.
이렇게 쉽게 부서진다고? 이제까지 안 깨진 게 용하다!
그때 아주 작은 하얀빛이 부서진 잔해 사이를 뚫고 둥둥 떠올랐다. 마석의 핵이었다.
―그래, 저거야. 저거라도 삼켜! 괜찮으니까!
―무슨 수상한 짓거리를……!
다샤가 곧장 손을 뻗었지만 데아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턱, 목에 다리를 걸어 그의 시야를 가렸다.
―이게!
붉은 피가 주변에 번진 와중에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지끈!
상처 부위에 말도 할 수 없는 통증이 올라왔지만 데아는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쥐며 고통을 감내했다.
탁, 터억!
그리고 그대로 한 바퀴를 붕 돌아 입을 벌리고선.
하압.
한 번에 핵을 삼켜버렸다. 몸의 변화는… 없었다. 기적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라도 생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데아는 난감함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그때였다.
번쩍!
상태 창을 중심으로 작은 빛이 불쑥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멈췄다.
‘방금 뭐, 뭐였지?’
띠링, 띠링.
그때 상태 창에 글씨가 동시다발적으로 생성되었다. 얼떨한 마음으로 데아는 상태 창을 지켜보았다.
[축하합니다!]
[마석의 섭취량이 증가했습니다.]
[당신의 ○○가 중간 이상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평소에도 하급 인어들이 당신을 알아봅니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뿐이었다.
‘하급 인어가 날 알아본다고? 왜? 뭘로 알아본다는 거지? 먹잇감으로?’
“이게 뭐야…….”
―인간! 지금 뭐 해?
데아의 상태 창을 보지 못하는 자잔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재촉했다.
―멍때릴 때야? 지금 당장, 윽!
―여기까지 오다니.
그때 다샤가 나타났다. 그러나 자잔이 충격파로 그를 밀쳐버렸다.
―인간, 여기로 와!
그 틈을 타서 데아는 자신을 낚아채는 자잔의 팔에 매달렸다. 물론 얇은 어린아이의 팔에는 한계는 있었고, 둘은 물속에서 부유하며 나동그라졌다.
―인간, 무겁게 정말. 저리 비켜!
“이게, 네가 먼저 날 잡았으면서!”
둘이 티격태격하며 투닥거리는 동안 다샤의 손톱이 한 번 더 날아왔다. 데아는 가까스로 피했다.
―이게! 폭군의 권속 따위가!!
짧은 비명을 지른 다샤가 잠시 휘청였지만 다시 살기등등한 눈으로 데아와 자잔을 노려보았다.
―인간도 적이야.
―인간을 먼저 죽여야 하나?
―아니야, 그래도 뒤탈이 없으려면 자잔을 먼저 죽여야…….
그때 다샤의 뒤로 수많은 인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바다를 유영하는 수많은 꼬리, 옅은 갈색 머리카락의 인어들. 그들은 하나같이 차가운 눈으로 데아와 자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파글렌 님에게는 이번 일을 함구해야 한다.
―알았어.
―우리가 인간을 공격했다는 걸 주군이 알게 해선 안 돼.
―들키면 어떡하지……. 주군은 인간을 아낀단 말이야.
―모두가 입을 다물면 안 들켜. 나라고 좋은 줄 알아?
‘우리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어.’
승산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때 다샤를 포함한 모든 인어들이 자신의 무기를 빼 들었다.
―우리들을 공격한 인간은 죽여도 돼.
그리고 동시에 데아를 겨냥했다. 언뜻 빛에 반사되는 날붙이가 사무치게 날카로웠다.
잠깐의 정적 후, 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자잔이 연속적으로 충격파를 쏴서 방어했지만 그것도 초반뿐, 그들의 합동공격에 못 이긴 자잔의 몸에 가느다란 푸른 실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데아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여기서 죽을 순 없는데. 특히 붉은 머리카락을 한 저 인어에게는 더욱……!
스륵.
그때 데아는 소리 없이 다가오는 거대한 기척을 느꼈다. 인어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 겁 없이 발걸음을 내딛는 거대한 그림자.
‘누구지?’
사방이 조용해졌다. 고요한 존재감이 정수리를 들이밀었다. 그 기척에 모든 인어들이 고개를 들었다. 괴이하게 생긴 거대한 사람의 머리. 역광 너머 살짝 비치는…….
모래섬.
대지를 등에 이고 가장 낮은 곳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인어, 이 던전의 보스.
그가 고고하게 그들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데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반짝!
환한 빛을 뿜어내는 상태 창이 무단으로 켜졌다. 네모난 반투명한 창. 언제나 어려운 순간에 최적의 길을 안내해 주었던 상태 창이 지금.
[새로운 스킬 습득 조건이 달성되었습니다.]
[인어의 뇌(마석) 흡수 완료(20/20)]
[○까워졌습○다.]
[축○○○니○. ○초.]
[위○○ ○초○ 위하여.]
…뭐?
알 수 없는 말이 적힌 창이 연속으로 생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아는 상태 창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미획득 스킬―
[○○버린 ○○를 ○○○](??)
[○○○](??)
[우리의 ○○○ ○○○](?)
[○○○ ○○○ ○○](??)
미획득 스킬의 제일 상단. ‘○○버린 ○○를 ○○○(??)’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제자리를 찾아서 즐겁다는 듯이 마구잡이로 깜빡이는 스킬이 낯설었다. 그때 물음표가 흐려지더니 이내 새로운 등급이 새겨졌다.
(S)
‘뭐?’
쿵쿵.
쿵.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에 데아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잡았다. 예민하게 청력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어? 뭐야.
경배의 당황스러운 음성이 들렸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약하고 얇은 살가죽을 가진 사람처럼, 태어나 처음으로 광활한 바다의 소리를 귀에 담은 사람처럼 데아는 좀처럼 자신의 호흡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새로운 스킬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저 스킬이 왜 벌써……. 쟤 뭐야? 왜 와? 벌써 때가 됐나?
[물속의 발자취(A)가 음성을 스킬 [바다의 경배]를 통해 전송했습니다.]
[‘뭐야, 뭔데에? 뭐야? 벌써 저 스킬이 풀린다고? 데아야, 이데아, 너.]
[‘벌써 마석을 스무 알이나 처먹었니?’]
‘그럴 리가!’
그러나 상태 창의 글자는 현실이었다. 데아는 신탁을 기다리는 독실한 신도의 심정으로 상태 창을 올려다보았다. 강하고 차가운 물살 속에 방치된 팔다리의 상처가 쓰라렸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거야…….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S)]
두 번째 S급 스킬.
데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완벽한 기적이 찾아왔다.
‘아이?’
―안 돼애―!
그때 우렁찬 음성이 뇌리를 강타했다.
악!
큰 소리에 머리를 손으로 감쌌지만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은 데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