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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44화 (44/223)

※ 044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더운 날의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공기가 바로 인어들의 지원 요청이라는 걸 빠르게 눈치챈 데아가 창을 거칠게 쏘아 올려 그들을 위협했지만, 인어들은 가소롭다는 듯이 바다를 유영하며 공격지대를 빠져나갔다.

“하아…….”

―가장 가까이 있는 인어들이 올 거야. 오기 전에 빨리…….

자잔은 데아의 팔을 움켜잡고 바닷속으로 뛰어내리려다가 멈칫했다. 저 멀리 갈라진 입술을 비죽 올린 다샤가 보인다.

인간들이 더 온다고 해도 그들은 바닷속으로 잘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고 해도 수중전은 불리하다. 더군다나 상대는 하나가 아니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건…….

“인어들이 오히려 더 바라는 거겠지.”

자잔은 잠시 침음하다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어쩌지? 이 일을… 트리야, 트리야가 좋아할까?’

인간과 역모 죄인의 권속들. 왕이 누구를 더 증오하지?

자잔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인간을 싫어하지만 역모 죄인의 권속들만큼 증오할까? 그래, 인간을 섣불리 죽이면 오해를 사고, 제국과 왕이 그동안 쌓아 올린 권위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

인간을 죽이는 것보다는 적대하는 진영의 인어를 죽이는 게 낫지. 그러니 자신은 그저 위험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저는 그저 위험 부담을 줄이는 것뿐이다…….

더군다나 인간은 왕을 닮았다.

그러니 혼란스러운 건 당연한 거라고, 자잔은 애써 자기합리화를 했다.

―부를 세력이 있었다니.

생각은 끝났다. 자잔이 다샤를 노려보며 비웃었다.

―제국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머저리들이 괴물들의 부지에 기생충처럼 끼어 세력을 늘리는구나.

자잔의 말에 인어들의 표정이 일순 험악하게 굳었다. 미간에 짙은 주름을 만들고 성난 울음소리를 뱉던 그들은 휙 몸을 틀어 도로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 자취를 감췄다.

―사냥감을 정한 인어는 사냥에 성공하기 전까지 결코 몸을 물리지 않아.

빈정거리던 표정을 싹 지운 자잔이 데아의 어깨를 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어디든지 따라올 거야. 이제 안전한 곳은… 저들이 활개치고 다니지 못하는 제국의 안이거나 인간들의 세…….

그 순간 세상이 진동했다.

쿠구구구구…….

말하다 혀를 씹은 자잔이 미끄러져 바닷속으로 추락하려 하자 데아가 빠르게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쿠구구구구…….

자잔과 데아의 시선이 가까이 맞부딪쳤다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데아는 자신의 밑에서부터 떠오르는 모래섬을 발견했다.

아.

데아와 자잔이 딛고 서있던 인어의 시체 밑으로 익숙한 모래섬이 솟아올랐다.

“보스 인어?”

―뭐?

“지금 여기서 갑자기……?”

―사냥감을 정한 인어는 사냥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결코 몸을 물리지 않아.

기어코 데아를 따라온 보스 인어는 멈추지 않았다. 정도를 모르고 끝도 없이 솟아오른 흔들리는 모래섬 아래, 당황해하는 인어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당황만 할 뿐,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끼어든 하급 인어 훼방꾼이 누군지 보기나 하자는 태도에 데아가 입술을 물었다.

“저들한테는 보스 인어가 별것도 아니구나.”

그리고 자잔에게로 고개를 휙 돌렸다.

너는?!

―내가 뭘?

자잔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무결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네가 뭘 하겠니.”

하지만 데아의 말은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보스 인어가 몸을 둥글게 말더니 크게 펄떡이며 편 것이다.

―미친!

반동에 튕겨 나간 몸이 공중으로 빙 솟았다. 그러나 데아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추락은 익숙했다. 데아는 눈을 꼭 감고 자신의 옷을 무의식적으로 꽉 붙잡은 자잔을 한 손으로 감싸 안았다. 뺨에 와 닿는 자잔의 시선이 간질거린다.

나는 파도 속으로 또 추락하겠지.

하지만 파도 속에는 저 인어들이 있는데!

하늘과 대지가, 끓어오른 인어들의 손아귀와 파도가 시야 안에서 어지럽게 회전했다. 높게 치켜 올라간 모래성 아래에 끔찍한 몰골의 거대한 보스 인어의 얼굴이 보였다.

인어라더니, 인간의 형체가 있긴 있구나.

―물속으로 빠질 거야. 조심해!

자잔이 외쳤다. 포션으로 인해 꼬리가 어느 정도 나은 자신은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약하지만 빠르기는 그 누구보다 자신 있으니까. 그러나 인간은.

자잔이 돌아본 인간은 담담해 보였다. 역시 강한 인간이다. 뭔가 강구해 둔 수가 있나?

아니었다. 데아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느라 표정을 굳힌 것뿐이었다.

‘저 안에 들어가면 이길 수 있을까? 저렇게 많은 인어들을 상대로? 아냐, 불가능해.’

그러나 해결책은 없었다. 믿을 건 경배밖에 없었다. 내 유일한, 말하는 스킬.

―최, 최선을 다해 보겠는데, 지금 상태의 나로서는 장담 못 해!

데아의 생각에 회신하듯 경배가 답한다.

“더 최선을 다해 봐!”

데아는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그때, 그는 자신을 부르는 미약한 반짝임을 느꼈다.

반짝임? 그래. 그건 반짝임이었다. 잘게 으깨진 보석과도 같은 가루가 데아의 팔에 달라붙었다. 들여다보자 그건 가루가 아니라 마력이었다. 응고되어 눈 결정처럼 허공을 떠다니는 반투명한 노란빛 가루.

백리서의 눈 색과 같은…….

“날 찾았어.”

―뭐?

깨달음의 시간은 짧았다. 데아는 기묘한 희망을 삼키며 출렁이는 바닷속으로 입수했다.

풍덩!!

폐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물살과 차단된 호흡에 허우적거리길 잠시.

[물속의 발자취(A)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데아는 편안하게 호흡했다. 침전되는 기분을 대변하듯이 일렁이는 수면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불규칙했다. 하얀 빛을 덮어쓰며 데아는 입을 벌렸다. 공기 방울이 시야를 덮었다.

“약속해.”

어두운 수면 아래에서 인간의 눈은 빛을 잃고 만다. 그러나 ‘물속의 발자취’ 스킬은 달랐다. 데아는 심해의 아귀처럼 컴컴하게 흐려진 눈을 하고는 주위를 장악했다.

“넌 분명 붉은 인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어.”

예상치 못한 의외의 아군. 너를 내가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손끝에 자잔의 굳은 얼굴이 만져졌다. 스킬 시전자의 시야가 빠르게 물속에 적응한다. 켜진 상태 창 안의 ‘A’가 흐려졌다 또렷해지길 반복했다.

“내가 널 도와줄게. 그러니 훗날, 너도 내가 원할 때…….”

칼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붉은 인어를 사냥할 그때.

“도와줘.”

내부의 누군가가 있으면 성공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설사 그게 약한 개체일지라도.

“단 한 번이어도 돼.”

자잔의 어리숙한 하얀 손이 데아에게 나아갔다가 이내 멈칫했다. 바닷속을 부유하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자잔이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단 한 번만.

자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딱 한 번만.

―움 님?

―움 님이야!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피파글렌과 칸나니아 다음으로 많은 권속을 가진 1세대 인어 움. 제국 밖에 있는 버려진 구역의 서쪽 끝은 그와 그의 권속들의 영역이었다.

세월에 풍화되어 굴러떨어진 암석과 난파선의 을씨년스러운 잔해, 그리고 죽은 인어의 시체가 굴러다니는 서쪽은 제국에서 죄를 짓고 추방당한 인어들도 꺼려하는 지역이었다.

거리를 떠도는 하급 인어는 발견되는 족족 포악하고 호전적인 붉은 머리카락의 인어에게 사냥당해 먹히고, 심심풀이로 잔혹하게 매장당한다. 그런 그들을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그들의 주군 ‘움’은 태초가 죽고 난 직후, 곧장 ‘창’을 넘어 인간계로 넘어간 뒤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는데.

―주군! 무슨 일이세요! 이렇게 갑자기……!

움이 갑자기 본거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하, 그래, 그래. 나도 반가워. 칼리안은 어디 있지?”

물론 그의 구역인 서쪽으로 ‘움’이 아예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종종 움은 제국에 머무는 인어들을 피해 심해로 내려와 이런저런 말을 전하고, 물건을 전달하고 갔으니 말이다. 움은 몹시나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므로.

몇몇의 마음 약한 권속들이 알았다면 ‘그러다 잡히면 어쩌시려고!’라고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을 일들도 그는 콧방귀를 뀌며 수행하고는 했다.

―칼리안이요?

“그래, 칼리안.”

―칼리안이라면…….

“칼리안! 칼리안, 어디 있어!”

오랜만에 노인의 모습이 아닌 젊은 성인의 모습으로 변한 움은 거칠게 벽을 쾅쾅쾅 두드렸다. 붉고 긴 그의 머리칼이 사자의 갈기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으으, 귀를 막고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인어들이 움이 좀 진정한 듯 보이자 짜 맞춘 듯 소리쳤다.

―움 님이 근신시켰잖아요!

“참, 그렇지.”

종마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못해 인간계에 넘어갔다가 6년 전 반송장 상태로 기지에 귀가한 칼리안은 침대에 쓰러졌다. 그 이후로 나오지 않으려는 꼴이 안쓰러워 친히 자물쇠까지 걸어 그의 안락한 방에 구금한 것이 불과 6년 전이었다.

“아니, 내가 가둬 봤자 걔가 6년 동안 얌전하게 있을 애는 아니고, 이 지역은 자유롭게 쏘다녔을 텐데 어디 있는 거야?”

―움 님이 오셨다는 소식에 재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자물쇠를 걸었습니다.

“열쇠는?”

―저에게 있습니다.

움이 참으로 귀여운 짓을 한다는 듯 픽 웃었다.

“걔도 참 웃기네. 가서 구금 끝이라고 전해. 귀여우니까 이번만 봐준다고도 말하고.”

―네, 알겠습니다. 또 무슨 전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그리고 풀려나자마자 나한테 오라고 해. 내 방에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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