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1화
“……!”
말도 안 되는 충격파가 비산하듯 데아의 시야를 찔렀다.
“아, 눈!”
데아가 눈부심에 찡그리자 자잔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는 손으로 데아의 눈을 가려 주었다. 갑작스럽게 시야가 일부 암전됐다.
“한쪽 눈만 가려 줄 거면 그냥 가리지 마!”
―뭐! 내 손이 작은 걸 어떡하라고! 이 인간이 은혜도 모르고!
손이 거둬졌다. 처참하게 얼굴을 공격당한 인어가 끔찍한 푸른 피를 흩뿌리며 바들바들 경련하고 있었다.
‘대단한데.’
혀를 내두르길 잠시, 입을 방어하던 단단한 무쇠가 사라졌음을 눈치챈 데아는 자잔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말을 하지 않아도 이다음에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두 명 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기이한 교감이 이루어졌다. 두 얼굴이 마주했다. 자잔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러나 데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았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잔은 작게 대답했다.
자잔은 아주 작은 충격파를 또 생성해 내었다. 데아가 그 위를 밟고 올라가고, 자잔이 때에 맞춰 충격파를 터뜨린다. 데아의 몸이 맹수처럼 뛰어올랐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손안의 창이 기쁘게 회전했다. 입 부분이 완전히 사라져 다물어지지 않는 괴물의 입천장을 노리는 것은 정말 쉬웠다.
하늘로 치솟는 낙뢰. 대륙을 찢는 바다의 칼날.
데아가 몸을 유연하게 휘며 창을 투척했다.
끼이이익!!
고통스러워하는 인어의 단말마로 인해 온몸을 압도하는 진동이 바닷속을 스쳐 지나갔다. 인어가 헐떡거리며 몸부림을 치더니 머지않아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
“물러나!”
퍽!
반동으로 밀려 나가 추락하는 데아의 몸을 뒤에서 자잔이 잡아 주었다. 엉망진창이 된 꼬리가 픽 꺾이더니 이내 같이 바닥을 굴렀지만 다행히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하, 하아…….
“됐나?”
정신을 차리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건 괴물의 생존 유무였다. 자잔이 비척거리며 일어나든 말든 허겁지겁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괴물에게 다가간 데아는 확실한 죽음을 확인하고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죽었다.’
해냈다.
큰 산을 넘은 기분에 데아는 무너지듯 시체에 온몸을 기댔다.
그때 둥실, 눈앞에 작은 덩어리가 생성되었다. 부피를 키워가듯 점점 부푼 덩어리는 곧이어 완벽한 구형이 되었다.
‘마석.’
데아는 바지 주머니 안에 그것을 쑤셔 넣었다.
“잡아.”
―뭐?
“죽었으니까 곧 물 위로 뜰 거야. …후우, 잡고 있어야 쉽게 위로 올라가지.”
―…왜 위로 올라가는데?
“여기 미로라며. 여기서 헤매는 것보다는 위로 올라가서 보는 게 더 편하지 않겠어? 어느 세월에 올라갈지도 모르니까 편하게 시체 잡고 가자.”
일리 있는 말이었다. 자잔은 얼떨결에 죽은 괴물의 지느러미를 잡았다.
그리고 이내 시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데아는 아프게 얼굴을 때려 오는 해류를 피해 인어의 비늘에 얼굴을 묻으며 생각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정말 수월하고 쉽게 사냥감을 처리했다고.
순간적으로 맞아떨어진 호흡, 눈치챈 서로의 전략을 실행으로 옮기던 믿음, 전투 중에 통했던 생각 속에서 짧지만 서로는 완벽하게 눈앞의 인어를 이해했던가,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 자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인어일 뿐이다. 잔인하고 포악하며 인간을 먹기도 하는 인어.
아무래도 지상에 올라간 뒤에 바로 처리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더 이상의 교류는 안 된다.
인어를 사냥하는 헌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때 자잔이 잡고 있던 인어의 지느러미가 투둑, 끊어지자 데아는 빠르게 손을 내밀었다.
“잘 잡아. 괜히 미끄러져서 또 다치지 말고.”
자잔이 묘한 얼굴로 데아를 보았다.
“위로가 무사해야 할 텐데…….”
떠오르는 괴물의 시체에 매달려 거친 바다의 물살을 고스란히 느끼며 데아는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맡는 지상의 공기는 조금 습했고, 조금 시원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이게 누구야?
누군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이게 누구야? 반가워라!
“……?”
눈부신 태양이 죽은 인어의 비늘 위에서 아찔하게 빛났다. 바다의 짠 내가 옷에 달라붙어 데아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코를 팽 풀었다. 마력 부족으로 경배는 아직도 잠들어 있는지 허공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때.
―저거 자잔 아니야?
―뭐? 자잔이라고?
―그……. 설마.
누군가의 음성이 또다시 들려왔다. 자잔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이름이 자잔이었구나?”
데아가 별안간 깨달으며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다의 동굴 위에 누군가가 있었다.
옅은 베이지색 머리카락과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수많은 인어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찾았다는 듯 몰려들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
데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모여든 인어들은 가까스로 인어의 시체에 매달려 있는 자잔을 비웃으며 지켜보다가 이내 데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깐, 자잔 옆에 누가 있어! 인간인가?
―인간이 여기까지 왔다고?
―아아, 가끔 해류에 휘말려 오는 인간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잠깐, 저 하급 인어 시체…….
베이지색 단발을 한 인어가 미끄러지듯 동굴의 가장자리로 내려왔다. 그는 데아와 자잔을 차례대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안녕하세요, 인간. 놀랐죠? 저는 올리아라고 합니다.
올리아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데아의 시선은 그의 어깨 너머 붉은 머리카락의 인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비늘. 데아의 기억 속에서 오랜 공포감이 다시 두각을 드러냈다. 심장이 크게 부풀었다 꺼진다. 그 어떤 공격 기미도 보이지 않는 평온한 얼굴이다.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안 돼.
혼잡해진 정신을 깨운 건 경배의 목소리였다.
―잘 봐. 자기야. 머리카락이랑 비늘 색만 같지, 그 인어가 아니야.
네가 6년 전의 붉은 인어를 어떻게 아냐고 묻고 싶었지만 경배의 말이 더 빨랐다.
―살기를 들키지 마. 너는 한 명이고 저 인어들은 수십 명이야. 지금의 너는 저 인어들 절대 못 이겨.
뼈아픈 현실이었다. 데아는 어렵게 수긍했다.
―‘지금’의 너라면 말이지…….
“알고 있어.”
데아는 흥미롭게 자신을 쳐다보는 붉은 머리카락의 인어로부터 시선을 떼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부드러운 인상의 단발머리 인어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 하급 인어, 사실 저희가 사냥 놀이 중에 잡으려고 하던 사냥감이었거든요. 도망가길래 어디에 가나 싶었는데, 그쪽으로 갔을 줄은 몰랐어요. 인간이 잡기에는 힘들었을 텐데, 다치진 않았나요? 그 사냥감 안에서 작은 구슬 같은 게 나왔을 텐데, 혹시 발견했다면…….
―아아, 잠깐. 올리아.
그때 데아의 시선을 피하지 않던 붉은 머리카락의 인어가 삐뚜름하게 미소 지었다. 데아는 자신의 뒤편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자잔의 몸이 일순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저 인간이 아까 날 계속 쳐다봤었는데.
―괜한 시비 걸지 마시죠. 당신이 인간에게 관심을 보이면 난 불안하다고요.
―왜 불안해?
―그야 저는 그런 취미가 없으니까요.
‘무슨 취미?’
데아가 눈썹을 찡그리자 첨벙, 수면 밖으로 상체를 완전히 일으킨 자잔이 데아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식인.
“뭐?”
그때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어가 데아에게로 돌진했다.
턱!
그러곤 미처 피하지 못한 데아의 팔을 잡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입을 벌렸다.
“……!!”
―저거 미친 새끼 아냐?
그때 경배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리고.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데아의 의지와 별개로 자동으로 손안에 바다의 창이 생성되었다.
‘어?’
저 혼자서 떠올라 반짝이는 상태 창과 스킬에 당황하기도 잠깐, 창을 본 붉은 머리카락의 인어가 행동을 멈추고는 입꼬리를 길게 늘이며 웃었다.
―오! 좋아 보이는 창이네. 이런 무기를 인간들도 다룰 수 있어? 요즘 인간계에 잘 나가지 않다 보니까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 지 알 수가 없네.
“닥쳐.”
―그래도 여전히 겁은 많다. 그치? 겁만 준 거에 화들짝 놀라기는.
―인간 좀 놀리지 마세요, 다샤. 설마 아직도 인간 먹어요?
―요즘은 안 먹어. 그냥 취미로 사…….
잠시 말을 멈춘 붉은 머리카락의 인어, 다샤가 데아의 적의 어린 눈길에 가볍게 웃어 주었다.
―…사냥만 해. 난 그래도 ‘우리’ 중에서는 양호한 편인 거 알지?
구불구불하게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며 데아의 전신을 쭉 훑어보던 다샤가 흐느적거리며 파도 속으로 몸을 담갔다.
―너희들 칼리안 알지? 한창 때의 칼리안에 비하면 난 새 발의 피지. 걔는 심심하면 인간을 죽였거든.
다샤가 데아와 자잔이 있는 인어의 시체 쪽으로 느리게 다가갔다. 그를 따라 원형으로 퍼지는 수면의 파문이 낯설었다.
―6년 전쯤인가? 칼리안이 인간 세상에 가서 평소처럼 학살하다가 해일에 휘말려서 죽기 전까지 간 거 알아? 피파 님과 움 님이 어떻게든 살려 놨었지……. 그때 일로 철이 든 건가, 그 후론 조용히 지내더라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도 한 인간 여자를 만났다는 거 외에는 대답도 안 하고 말이야.
“…….”
―그래서 우리끼리 추측을 했지. 그 인간 여자한테 된통 당한 게 아닌가 하고. 지금은 움 님이 자숙하라고 방에 가둬 놨다지만, 칼리안도 벙어리가 아니고, 아주 단서가 없는 건 아니었거든.
다샤가 유유히 인어의 시체 쪽으로 다가와 그 위로 팔을 얹었다. 그러고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데아의 손안의 창을 보며 턱을 괴었다.
―어느 날 칼리안이 물었어. 보통 인간이 우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냐고.
데아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한순간에 부풀어 올랐다가 썰물처럼 꺼졌다. 손안에 든 창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럴 일이 있겠어? 1세대 인어님들은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있다지만 2세대 인어부터는 인간의 말을 할 수 없는걸? 그래서 나는 없다고 대답했어. 그때는 칼리안이 왜 그런 걸 묻는지 몰랐는데…….
“…….”
―너구나, 6년 전의 칼리안을 만난 인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