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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39화 (39/223)

※ 039화

“뭐?”

벌떡!

움이 담요를 걷어차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유우라가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누가 그래?”

―책, 교육 책에서…….

“이게 무슨……? 교육 담당하는 애새끼가 어떤 놈이었지? 칸나니아 그 새끼인가? 아니면 도라안인가? 그거 또라이네! 책을 그따위로 바꿔버려? 식인을 누가 즐겨, 즐기긴! 그 야만스러운 풍습을 누가 아직도 한다고!”

―아직도…라고 하시는 걸 보니 하신 적은…….

“조용히 해! 수백 년 전 이야기를 지금 꺼낼 필요는 없어. 그리고 난 아냐. 가끔 내 권속 중에 그런 일탈하는 새끼들이 있는데, 그런 새끼는 내가 친히 방에 구금한 지 오래야. 와, 트리야, 이 돌아버린 새끼가! 미치겠네. 자기는 자기 방 수조 안에 시체를 두고 살면서 그런 헛소문을 퍼뜨려?”

‘시체…….’

들으면 안 될 것을 들어버린 예감에 유우라는 가만히 숨을 죽였다.

―그, 그렇군요. 인간들을 사실 증오하지 않았네요. 오해해서 죄송…….

“아니? 그건 맞는데.”

―…네?

후우, 숨을 크게 내쉰 움이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팔걸이에 팔을 대고 이마를 짚는 노인의 모습이 제법 비통해 보였다. 방금 전까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식인이랑 분란 부분 빼고는 다 맞는 얘기긴 하네.”

―…그러니까 인간들을 증오해서 그 세계조차 멸망시키려 하는 폭력 집단이라는 부분이랑, 영원한 안식에 들어야 할 태초를 앞장세워 역모를 저지르는 부분이 참이라는…….

“어.”

―아하, 네엡…….

“참.”

그때 움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짓더니 포근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의 커튼을 닫았다.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유우라. 인간 세상에 적응은 잘 했니?”

움이 대뜸 부드럽게 물었다. 유우라가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강한 인간들의 공대인 길드라는 곳에 오고 객실을 안내받아 살게 된 지 겨우 이틀 차였다. 처음 보는 인간 세상, 하늘 위에 떠다니는 희뿌연 해파리 같은 구름, 혼자서도 움직이는 기이한 철제 마차들과 자루 없는 돌도끼 같은 휴대폰까지.

인간들의 세상은 마력이 오랫동안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인어 제국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을 했다고.

그런 곳에서 자신은 잘 적응하고 있는가? 그리고 유우라는 자신 있게 고개를 들었다.

―네.

솔직히 그랬다. 그래서 유우라는 스스로가 뿌듯했다. 유우라의 단언에 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혼자 놔둬도 되겠네.”

―네?

“잠깐 어디를 다녀오마.”

―잠깐, 움 님! 저를 두고 어디에…….

그러나 움은 유우라의 당황한 음성을 무시하고는 끼고 있던 반지의 안쪽을 꾹 눌렀다. 그러자 갑자기 허공에서 작은 틈이 열리고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물에 흠뻑 젖은 누군가가 움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갑자기 불러서 놀랐네. 오랜만이야!”

그리고 코를 긁으며 유우라를 바라보았다. 크고 동그란 두 눈이 의아함을 담는다.

“누구야? 2세대? 아니, 3세대네. 어머, 세상에. 완전 애기네, 애기. 언니가 아는 애야? 제국을 나온 뒤로는 하급 인어 말고 제대로 된 다른 상급 인어는 완전 오랜만에 보잖아. 완전 파릇파릇하네. 언제 태어났니? 네 주군은 누구야?”

―네? 네……?

“3세대부터는 머리색이 주군과 미묘하게 다르니까 알아보기 어렵단 말이야. 으음, 흑갈색에 흰색이 섞인 머리색이라……. 칸나니아의 권속인가? 너 첩자는 아니지? 하하, 농담이야. 이름이 뭐니?”

―저, 저는…….

끝없이 나오는 말에 정신이 혼미해진 유우라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상대는 1세대 인어다. 그것도 움과 같이 100년 전에 제국을 나간 세 명의 1세대 인어 중 한 명.

제국을 나간 둘째 ‘므아나’와 함께 나간 1세대 인어는 셋째 ‘움’과 일곱째인…….

“넌 말이 너무 많아.”

“히잉.”

“네 능력 좀 써봐. 급해.”

“무슨 일인데? 나도 시간 없어. 빨리 돌아가야 해.”

그때 움이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뭐라 속삭였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인어가 놀란 얼굴로 움을 바라본다.

“타이밍 봐.”

그리고 즐겁게 웃는다. 그러곤 한 손가락을 세워 허공을 찢었다.

순간 이동이었다.

유우라는 입을 벌렸다. 먼저 움이 틈에 몸을 비집고 들어가고 이어서 건너온 인어가 밝은 얼굴로 유우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갑자기 온 바람에 인사도 잘 못 했네. 안녕! 아마 우리는 또 만날 거야.”

―네, 네.

그리고 마저 틈 사이에 몸을 집어넣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잘 가세요…….

젖은 카펫만이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증명해 주는 객실 안에서 유우라는 힘없이 움이 앉았던 소파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백성에 불과했던 자신에게 요즘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제국을 나간 인어들은 모두 무섭고 흉악한 인어들이라고 배웠는데.

귀찮음에 몸부림치던 움 님이나 개구지게 웃으며 나간 일곱 번째 1세대 인어님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          ◈          ◈

‘이렇게까지 냉정하고 깔끔하게 버려진 권속은 너밖에 없을 거야.’

예전에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어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온 자잔의 멍든 어깨에 약초와 포션을 얹어 주던 흑갈색 머리카락의 칸나니아의 권속은 그가 불쌍하다는 듯 눈을 내리떴다.

뒤에서는 흉을 봐도 앞에서는 예의를 지키던 공대의 수많은 3세대 인어들과 다르게, 높은 간부직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거나 자기들끼리 무리를 만들어 생활하는 같은 2세대 인어는 제왕에게 닿을 수 없는 분노나 그에게 비롯된 열등감을 모두 자잔에게 여과 없이 풀었다.

‘네가 험한 짓을 당해도 제왕은 널 봐주지 않잖아. 그래도 네가 멍청이처럼 제왕만 졸졸 쫓아다니까 더 비웃는 거야.’

맞는 말이었기에 자잔은 부정하지 않았다.

‘상처는 이걸로 나을 거야. 그리고 더 이상 찾아오지 마. 우리 주군은 왕의 충실한 가신이지만… 널 껄끄러워하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잔은 유일하게 알고 지냈던 인어의 집을 나왔다. 바다는 모든 생을 품을 수 있을 만큼 광활하지만 그 넓음이 너무 춥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가.

그리고 오랜만의 악몽을 꾼 자잔은 눈을 떴다.

―하, 흑…….

꼬리에서 느껴지는 충격적인 고통에 순식간에 소름이 돋았다.

비명을 지르면 안 돼. 그들이 더 좋아할 거야.

으, 어금니를 깨무는 저력으로 간신히 비명을 참은 자잔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없었다.

‘여긴 어디지?’

기억이 떠올랐다.

심부름을 받아 간 제왕의 동굴 별장, 그곳에서 만난 인간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수중으로 뛰어들어 전투를 했고, 바다의 재앙에 휘말려 어디인가로 떠밀렸지.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꼬리뼈가 으깨지는 듯한 격통이 또다시 엄습했다.

―뭐, 뭐야.

그제야 고개를 들어 밑을 보니 육중한 크기의 바위에 꼬리가 깔려 있었다. 푸른 피가 주변을 뿌옇게 물들였다.

떨리는 손으로 바위를 가까스로 밀쳤지만 바위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전히 바닷속이라는 게 다행일까, 자잔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 으, 하아…….

충격파. 이 보잘것없는 몸에 깃든 유일한 인어의 능력. 자잔은 바닥난 마력을 가까스로 모아 손바닥을 폈다. 바위 하나를 겨우 밀칠 수 있을 법한 충격파가 생성되었다.

쾅!

반동으로 밀려난 자잔이 비척거리며 몸을 뒤집었다. 그러자 가까이 정신을 잃은 인간이 보였다.

―왜, 아직도, 아니, 하아…….

인간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해초에 다리가 엉켜 이상한 모양새로 떠있었지만 살아는 있었다.

인간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고 한 공문은 다 찢어버려야 한다.

작고 하얀 자잔의 콧등에 주름이 갔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였다. 저 인간을 죽여야 한다. 그런데.

자잔은 바닥을 기어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공대 소속 간부임을 뜻하는 검은 망토가 너덜거렸지만 자잔은 계속 기어 인간에게 다가갔다.

창백한 눈가가 인간을 향했다. 정신을 잃기 직전 마주한 건 환상이었나? 트리야 왕과 닮은 눈은.

외모가 특출하게 닮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눈이, 언젠가는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봐 주길 기대하던 눈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닮아있었다.

그러나…….

―착각이야.

눈앞의 인간은 그냥 인간이었다. 인어의 그 어떤 마력도, 비슷한 힘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인간.

그렇게 생각함에도 자잔은 인간의 숨통을 끊기가 어려웠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인간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슬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과 눈이 마주쳤다.

자잔의 손이 우뚝 멈췄다. 예고 없이 번쩍 눈을 뜬 인간은 두 눈을 깜빡일 새도 없이 창을 손에 잡아 자신을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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