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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식인인어는 죽어야 한다-36화 (36/223)

※ 036화

유일한 도박인 동굴로 헤엄친 지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데아는 투명한 막에 한 꺼풀 둘러싸인, 거대한 입과 닮은 동굴의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막……? 설마 이게 그 결계인가?’

비눗방울처럼 투명한 무언가가 한 겹 둘러져 있는 커다란 동굴 입구의 안쪽에는 버석하게 마른 옷가지들이 있었다. 물이 닿지 않는 곳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들어가, 들어가야만…….’

이위로의 안색이 더더욱 창백해지고 있었다. 데아는 결계 근처를 더듬거렸다. 평범한 힘으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할 것 같았다. 다급한 뇌가 사고를 거부했다. 힘으로 뚫고 가야 한다.

‘바다의 경배.’

손아귀에서 생성된 강한 바다의 창이 또다시 앞을 향해 쏘아졌다. 막강한 소용돌이가 주변을 휩쓸고 암석을 깨뜨렸다.

다른 사람이 봤으면 거대한 힘에 놀라 소리를 질렀을 광경이었지만 1분 1초가 급한 데아는 그 힘으로 결계 안에 들어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반동을 이용해 온몸으로 결계에 부딪친 데아는.

우당탕탕!!

“헉, 헉, 하.”

딱딱한 동굴 바닥에 이위로와 함께 나뒹굴었다. 서늘한 동굴 안에 메아리가 울렸다. 동굴을 감싼 막은 두 사람을 통과시켰을 뿐 여전히 건재했다.

“위로야, 이위로.”

숨을 쉴 수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즉시 데아는 이위로를 바닥 위에 곧게 눕혔다. 넘어진 여파로 무릎과 팔에 타박상이 생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이위로의 뺨을 쳤다. 그러나 이위로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 안 돼, 제발.

“이위로, 야!”

“쿨럭!”

“……!”

거칠게 얼굴을 흔들길 오래, 이위로가 마른기침을 했다. 그 순간 놀란 표정 그대로 굳어버린 데아는 곧이어 무너지듯 돌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콜록, 콜록, 켁, 큭.”

“…….”

이위로가 몇 차례 더 바닷물을 뱉어냈다. 그러나 몇 번 몸을 들썩이기만 할 뿐 눈을 뜨지 못했다. 기절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데아는 이제까지 제대로 쉬지 못했던 숨을 몰아쉬며 곁에 같이 엎드렸다.

‘내 눈앞에서 죽는 줄 알았어…….’

손을 놓으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놓지 않던 이위로의 다급한 얼굴과 고요하게 잠든 지금의 얼굴이 겹쳐졌다. 데아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이번엔 살았다. 이번엔 살렸다.

“…….”

내가 살렸어.

데아의 표정이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인어에게 죽을 뻔한 사람을 내가 살렸…….

창백하리만치 하얀 이위로의 얼굴이 너무 추워 보여서 데아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 그래도 부족해 보였다.

‘담요가, 여기에 담요가 있나?’

그제야 아까는 들어오지 않던 동굴 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고개를 흔들어 머리카락의 물기를 떨쳐 낸 데아가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굴 안에는 따뜻한 색의 나무 원형 탁자와 안락한 의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잘 개어진 면 옷가지들과 담요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어디선가는 약한 바람도 들어오고 있었다. 데아는 담요를 슬그머니 꺼내 팔에 감으며 탁자 위에 놓인 액자를 들여다보았다.

‘지도……?’

아니, 누군가가 누군가를 껴안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림이다. 너무 오래되어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삐뚤삐뚤한 그림이 작은 액자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불이 꺼진 양초도 놓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있던 것 같다.

방금 전까지.

“인어…….”

이 동굴 안쪽에 인어가 있다.

데아의 전신이 곧바로 경직됐다. 근육이 수축하고 촉각은 예민해진다.

같은 장소에 인어가 있다니.

따지고 보면 침입자는 자신임에도 요동치는 맥박은 어쩔 수 없었다. 어금니가 강하게 다물어졌다.

심지어 이위로는 부상자다.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바다의 경배.”

―으응… 잠깐, 지금 형상화 못 해.

“왜?”

경배의 힘없는 목소리가 작게 신음했다.

―자기 마력이 전보다 는 건 맞는데, 그래도 부족해. 인어의 마석을 더 먹어야 할 거야.

“뭐? 인어의 마석을 먹으면 마력이 늘어?

―무슨 소리야. 알고 먹은 거 아니야?

“인어의 마석이라니, 잠깐, 나 마력이 늘었어?”

데아는 서둘러 상태 창을 켰다. 오랜만에 보는 상태 창의 상세한 글자가 빛을 뿜었다.

[상태 창]

[등급 : N]

이데아―헌터명 : 샤샤

마력 : 21(+24)

체력 : 20(+2)

생명력 : 30(+2)

속도 : 21(+2)

―획득한 스킬―

[물속의 발자취(A)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타고난 사냥꾼(A) : 이미 인어에게서 살아남은 적이 있군요? 인어의 독성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심해의 눈(A)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타고난 몰이꾼(A) : 인어의 주목을 받는 동안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미획득 스킬―

[○○버린 ○○를 ○○○](??)

[○○○](??)

[우리의 ○○○ ○○○](?)

[○○○ ○○○ ○○](??)

마력뿐이 아니라 체력, 생명력, 속도도 조금씩 늘어나 있었다.

뭔 일이지? 왜 늘었지? 나도 모르게 마석을 먹었나?

생각해 보니 전에 A급 던전에서 실수로 작은 마석 하나를 삼켰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고작 그거로? 정말?’

“예상 가는 마석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A급 던전의 보스 인어를 죽이고 나온 주먹만 한 인어의 마석. 그건…….

“잃어버렸는데.”

―마력을 늘리는 방법은 인어의 마석을 먹는 방법 하나뿐이야. 자기가 먹고 까먹은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마력이 이 정도나 늘었을 리가……. 아무튼 나 너무 졸리니까 좀 잘게.

“안 돼! 작은 창이라도 만들어 주고 가!”

경배는 투덜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창을 만들어 냈다. 평소보다 크기는 작지만 형형한 빛이 서린 창이 손아귀에 잡혔다. 그때 동굴 안쪽에서 작은 소음이 들렸다.

“……!”

스스슥.

뱀이 느리게 기어오는 듯 차가운 비늘과 땅이 마찰하는 소리였다. 데아는 창을 더 강하게 잡았다.

인어다. 인어가 확실했다. 심장이 사정없이 박동했다. 마른 침이 입안에 고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천에 청록빛 수를 놓은 망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을 안겨 주는 검은 가면, 초록빛이 도는 어두운 비늘,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달린 물갈퀴와 신기한 걸 봤다는 듯이 기이하게 휘어지는 입꼬리, 작은 몸집.

‘작은 몸집?’

데아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린애……?”

저런 차림새를 한 인어는, 특히 어린 인어는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데아를 마주한 인어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인간?

데아와 쓰러진 이위로를 죽 훑어본 자잔이 미간을 찡그렸다.

◈          ◈          ◈

권속.

모든 인어는 권속을 만들 수 있다. 자신의 마력을 나누고 나누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해 내는 기적. 그 행위의 끝에는 언제나 권속이 존재했다. 물론 여성체 인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인어 사회는 철저한 모계였다.

권속을 탄생시키는 이유는 다양했다. 자신과 닮은 인어를 보고 싶어서, 자신만의 무리가 필요해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기 위해, 심심해서, 또는 외로워서.

그렇게 선대 인어의 마력을 받아 태어난 새로운 아이에겐 특징이 있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인어를 ‘주군’이라고 부른다.

둘째, 그들의 머리색과 비늘 색은 주로 주군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하지만 3세대 인어는 무조건적으로 이어받지 않았다.

셋째,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주군에게 충성한다.

그들은 헤엄조차 잘 못할 때부터 본능적으로 주군을 찾았고, 의존했으며, 깊은 유대를 맺길 원했다.

1세대 인어가 탄생시킨 모든 권속은 2세대 인어가 되었고, 2세대 인어가 탄생시킨 권속은 3세대 인어가 되었다.

그리고 3세대 인어가 탄생시킨 권속은 4세대 인어가 되었지만 그것부터는 ‘하급 인어’로 분류되었다.

2, 3세대 인어는 1세대 인어와 동일하게 높은 지능과 원할 때 변모할 수 있는 인간의 다리를 가졌지만 소리를 낼 수 있는 목소리는 갖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오직 인어만 알아들을 수 있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했다.

인어는 한 번에 수백 개의 알을 낳았지만 몸이 약한 개체는 태어나지 못하므로 결국 태어나는 권속은 몇 명뿐이었다.

그러나 간혹, 단 한 명만이 알을 깨고 나오는 때도 있었다. 같이 태어난 자매나 형제도 없이 오롯이 혼자 탄생한 외로운 권속. 자잔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자잔은 자신이 눈을 떴던 첫 순간, 첫 번째로 마주한 주군의 옆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황홀할 정도로 눈길이 가던, 숨이 막힐 정도로 고귀했던…….

“안녕.”

주군, 트리야는 힘없는 목소리로 자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딱딱한 손길이었다. 트리야는 뭔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자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하면 뭔가를 느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트리야는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는 냉랭하게 손을 떼어 냈다.

“잘 살아가도록 해.”

자잔은 영문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트리야는 자리를 떠났다. 트리야의 유일한 권속은 이름조차 받지 못한 채 덩그러니 버려졌다. 그래서 자잔은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 지금은 사라진 어느 종족의 오래된 서적 속에서 발견한, 마음에 드는 모양의 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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