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5화
코와 입술 아래에 찍혀 있는 점 때문인가, 독특한 인상을 주는 아이가 데아의 어깨에 턱을 올린 채 말을 이었다. 턱이 움직임에 따라 어깨가 웅웅 울렸다.
“나도 한국 사람이야. 반가워! 난 프리 헌터고, 무기로는 활을 써. 그리고 JJ 길드가 임시적으로 날 고용했고, 헌터명은 위로. 본명은 이위로야. 이름은 들었는데… 데, 데아? 그럼 데아 언니라고 불러도 돼? 그런데 나랑 구면이지 않아?”
우다다 쏟아지는 자기소개에 데아는 할 말을 잃었다.
청바지 위에 검은 티셔츠, 그리고 하얀 야구점퍼를 걸친 이위로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경계심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아는 아이 같았다. 많아 봤자 고등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나이에 과도한 친밀감, 거기에 영어가 가득한 이 낯선 타지에서의 정겨운 한국어다.
데아의 낯가림이 흐물흐물 무너졌다. 그때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왜 너랑 내가 구면이야?”
상대도 먼저 반말을 했고, 나이도 어려 보이니까 반말 써도 괜찮겠지?
“헌팅에서 봤잖아. 커뮤니티. 기억 안 나?”
예상대로 이위로는 반말을 개의치 않아 했다.
그리고 데아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데아의 인상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위로 : 거기서 게이트 터지면 꿀잼이겠다.
└ㅁㅊ 이위로다
└헉 위로야
└위로 님 한국에 언제 들어오세요?
└월드 스타가 지켜보는 현피라니
“위로가 누구예요?”
“전 세계 돌아다니는 A급 헌터 있습니다요. 사건사고 좋아하는 애. 아직 고딩이던가.”
“…….”
“나중에 진짜 언니가 던전에 휘말려서 깜짝 놀랐어. 설마 정말 현피 뜨던 장소에서 그렇게 된 건 아니지?”
“…….”
“그런데 누가 진짜 언니였어? 사실 나는 ‘샤샤’보다는 ‘진짜샤샤’ 쪽이 더 샤샤 같았는데, 그 계정이 언니였지?”
“…….”
“역시!”
해맑게 웃는 이위로의 앞에서 차마 험한 말을 할 수는 없어서 데아는 혀를 봉인시켰다.
참아라. 이위로는 나보다 어리다!
―어휴, 이 애 너무 시끄럽다. 자기야, 창 만들어 줄까? 찌를래?
‘안 돼.’
허공에서 경배도 볼멘소리를 냈다. 그 도중에 이위로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번 던전 환경 들었어?”
“알아. 들었어.”
던전의 환경은 모래섬이었다. 그런데 아주 작았다. 가로 세로 10미터가 겨우 넘는 섬. 그래서 많은 헌터를 데려갈 수 없었다고 했다. 각자의 공격 범위를 생각해서 겨우 다섯 명이 최대라나 뭐라나.
그 작은 모래섬을 중심으로 달려드는 인어와 파도를 피해 버티는 건 잘 할 수 있었지만 도무지 클리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게 JJ 길드의 입장이었다.
“그래도 나름 그 던전 환경에 최적화된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공략을 가는 거야. 뭐, JJ 길드는 릴림 헌터까지 와줄진 몰랐던 것 같지만, 릴림의 능력이라면 더 좋겠지!”
“샤샤, 출발할 시간이야.”
그때 백리서가 다가왔다. 게이트의 하얀 빛이 더 아스라이 빛나고 있었다.
뉴욕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길드 JJ. 그 길드장 아리아와 다른 길드원, 그리고 프리 헌터 이위로와 여파 지원 헌터 백리서와 샤샤. 다섯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공략 팀이 모든 준비를 마쳤다.
“가죠.”
“네에!”
아리아 길드장이 든 깃발이 크게 펄럭였다. JJ라는 길드명이 커다랗게 적혀 있는 가벼운 깃발이었다.
“가자!!”
그때 이위로가 외치며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긴장감이라곤 조금도 없는 모습이었다. 데아도 백리서의 뒤를 쫓아 성큼 게이트에 발을 디뎠다.
터미널의 모습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더니 사각이는 모래의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여긴…….”
먼저 전해 들은 상황과 동일했다. 나무 하나 없는 작은 모래섬을 중심으로 어두운 물빛의 파도가 넘실거리고, 창백하고 평범한 크기의 손이 해변으로 덥석 올라온다.
인어의 퀭한 눈과 마른 허리, 그리고 눅눅한 비늘이 연달아 철썩이는 작은 지옥 안에서 데아는 해가 지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와, 바다!
확실히 던전 안이라 다른 걸까, 활기찬 목소리의 경배가 데아의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때, 데아를 제외한 네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그를 응시했다.
순식간에 사위가 고요해졌다. 데아가 활약할 시간이었다.
“샤샤.”
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아의 상태 창이 켜지고 그 위의 스킬이 붉게 달아올랐다. 스킬이 발동된다.
그 어느 인어도 피해갈 수 없는 포획 망.
[심해의 눈(A) : 당신은 승리할 것입니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 데아의 앞에 보이는 건.
“……!”
전체가 붉게 달아오른 모래섬이었다.
“…이, 이 섬이 다 보스 인어야!”
머뭇거림은 길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모든 헌터가 일시에 모래 바닥을 향해 무기를 찔러 넣었다.
“잠깐, 그렇게는……!”
하지만 때는 늦었다. 데아의 비명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내핵을 공격당한 모래섬이 울부짖었다. 모래섬이 갑자기 출렁이더니 거센 파도처럼 벌떡 일어섰다. 발이 미끄러지고 거칠게 굴러떨어졌다.
“데아야!”
가까스로 모래섬에 칼을 찔러 넣고 버틴 헌터도 있었지만 데아는 그렇지 못했다. 수직으로 꼿꼿하게 선 모래섬의 아래로 데아는 굴러떨어졌다.
아래로. 성난 파도가 용솟음치는 바다 아래로.
턱!
낙하하던 데아의 팔을 잡은 건 이위로였다. 얇은 활촉을 모래섬 깊숙이 찔러 넣고 덜덜 떠는 손으로 데아를 낚아챈 고등학생 A급 헌터. 높게 틀어 묶은 긴 머리가 말꼬리처럼 휘날렸다. 그 앳된 얼굴에서 땀이 뚝 떨어졌다.
“내, 내가 잡았어! 언니, 내가 잡았어!”
“아, 안 돼.”
더해진 무게에 얇은 활촉이 급격하게 휘는 걸 본 데아가 급하게 외쳤다. 그것도 모르는 이위로는 희망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나는 물속에 들어가도 숨을 쉴 수 있는데 너는 아니잖아!
“놔! 위로야! 이위로! 놓으라고!”
“어, 어떻게 그래……!”
투둑,
활대에 결국 금이 갔다. 순간 모든 시간이 정지했다. 두 눈을 크게 뜬 이위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위를 봤다가 다시 아래를 보았다.
“…놔!”
마지막까지 외쳤지만 이위로는 혼란스러운 표정 그대로 데아를 바라보기만 할 뿐, 손을 놓지 않았다. 손바닥 안쪽에 땀이 가득 고였다. 활대를 잡은 손이 사정없이 벌벌 떨렸다. 점점 겁에 질리면서도 절대 저를 놓지 않겠다는 의지 서린 표정이 데아의 망막에 겹쳤다.
‘나랑 만난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툭!
결국 활대가 부러졌다. 저 멀리서 작은 대지를 생성해 밟으며 달려오는 백리서가 보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위로, 샤샤!!”
“으아악!”
추락하는 순간, 데아는 이위로를 끌어안고 스킬을 발동했다.
[물속의 발자취(A) : 물속에서 제약 없이 빠른 행동력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경배야!!”
―뭐? 뭘 하라고?
모든 세상이 느리게 회전하고, 존재하는 모든 중력이 전신에 가해진다.
“전에 스킬들끼리는 소통할 수 있다고 했지?”
―어? 어.
“스킬, 물속의 발자취에게 연락을 넣어 줘. 혹시 나와 닿은 사람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거냐고!”
[물속의 발자취(A)가 음성을 스킬 [바다의 경배]를 통해 전송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세상에 공유되는 스킬이 어디 있어?’]
‘역시 그런가.’
그때 물속의 발자취로부터 또 한 번의 음성이 왔다.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도 두 눈 크게 뜨고 보고 있어. 이 주변에서 인어의 마력 냄새가 나. 아마 인어가 지어 둔 보금자리가 있는 것 같으니까 잘 찾아. 그 결계 안으로 들어가면 인간도 숨을 쉴 수 있어!’]
‘뭐? 그런 곳이 도대체 어디에…….’
하지만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파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데아는 가슴 벅차게 차오르는 거대한 부유감을 느끼며 아가리를 벌린 파도의 구덩이 속으로 온몸을 내던졌다. 거친 해류와 차가운 손바닥이 그들을 맞이했다.
“으으…….”
낙하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건지, 축 처진 이위로의 무거운 몸을 있는 힘껏 끌어안은 데아는 물속에서 크게 호흡하며 몸을 빙글 돌렸다. 보글보글 차오르는 공기 방울 사이에서 유일한 공격 스킬이 빛을 발했다.
[바다의 경배(S) : 머리끝까지 물에 젖은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강력한 죽음입니다.]
시리도록 창백한 창이 나타나자 송곳니를 드러내며 데아에게 달려들던 인어들이 몸을 웅크리며 자리를 피했다. 그래도 공격하는 인어들은 창을 던져 막았다. S급 스킬답게 엄청난 위력을 발산하는 창은 달려드는 모든 인어의 살점을 찢어버렸다.
끼아악!!
끼아아아아아악!
그때를 놓치지 않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데아는 때마침 홀로 튀어나와 있는 암석을 발견했다.
보통 저런 지형 안에는…….
[스킬 [물속의 발자취]가 [바다의 경배]에게 음성을 보냈습니다.]
[‘저기, 저기로 들어가, 샤샤. 저기가 동굴이야.’]
―나는 그냥 통로야?
경배의 투덜거림은 가볍게 무시하고 데아는 재빠르게 다리를 놀렸다. 평범한 사람이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는 시간은 길어 봤자 3분. 그전에 저 동굴까지 도착해야만 했다.
그런데… 도착했는데 원하는 동굴이 아니면 어떡하지?
물속의 발자취의 말을 들어도 되는 걸까? 인어의 보금자리가 왜 인간들이 숨을 쉴 수 있게 만들어져 있겠어?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두 개가 아니었지만 이 시간에도 이위로의 숨은 조금씩 닳고 있었다.
‘어서,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