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2화
‘움’은 최약체 인어였다.
1세대 인어치고는 약한 몸을 가진 그를 인어들은 많이 안타깝게 여기곤 했다. 마법도, 신체 강화도, 하다못해 헤엄도 빠르지 못해, 그래서 어떻게든 몸을 혹독하게 단련하는 그를 모두가 동정했다. 그러나 태초는 달랐다.
―넌 그 누구보다 강력한 무기를 지녔어.
트리야와 싸우고 토라져 있는 어린 움을 향해 장막과도 같은 지느러미를 드리우며 태초는 말했다.
―나조차도 너의 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
태초가 탄생시킨 여덟 명의 1세대 인어 중 가장 작고 왜소한 아이.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움’을 무시하는 인어는 줄어 갔다. 그의 왜소함을 가장 많이 깔보았던 트리야와 도라안 또한 어느 순간부터 태양처럼 빛나는 움의 적발만 보면 입을 다물었다.
가장 고요한 재앙. 가장 약한 몸을 가진 정신계 능력자.
―어렵지 않았어요.
인간들의 세상을 7일 만에 멸망시키고 돌아온 움이 말했다.
―의심의 씨앗을 심어 줬더니, 그다음은 쉽던데요.
지성을 가진 생명체라면 움을 피할 수 없었다. 누구나 감정과 내면의 불안이 있었고, 미래를 두려워했으므로. 그리고 움은 그 씨앗에 물을 주는 역할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움은 단편적인 미래를 보고 확실한 앞날을 예언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에겐 신체 나이를 조절할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도 있었다.
움이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 하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에게 이건 하나의 전술이었고, 거대한 판 위에서 수를 놓는 게임이었으므로.
움은 예언자를 가장해 국가의 가장 깊은 곳에 침투해 완벽한 예언을 하다가 차차 서로를 공격하는 거짓 예언을 했다.
그렇게 수뇌부부터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충신은 죽인다. 적의 침공을 막지 못하게 했다. 힘을 분산시켜 그 누구도 뭉치지 못하게 흩뜨린 다음 권력자를 완전히 고립시켜 판단력을 잃게 하고, 스스로를 파국으로 이끌 무기를 사용하게 만들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낳았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죄악감을 갖지도 않았다.
태초에게 피해를 끼친 인간들은 죽어 마땅했다. 그래서 움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태초가 마주 웃는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어요.
움의 붉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태초의 손이 우뚝 굳었다. 어린 움은 눈치채지 못했다.
‘태초가 기뻐하고 있어. 역시 나는 잘했던 거야.’
움의 세상에 꽃이 가득 폈다. 태초와 닮은 따뜻함이었다.
‘당신이 기쁘다면 나도 기뻐요.’
아마 첫째와 둘째만큼, 아니 그들보다 내가 더 당신을 좋아하겠지.
‘움’은 그렇게 자라났다.
◈ ◈ ◈
“여기가 휴게실이고 저쪽이 훈련장입니다. 길드 사내 식당은 이미 가보셨고, 내부인들만 이용 가능한 카페 디저트가 정말 맛있는데요, 거긴 더 올라가야…….”
“이름이 이데아라고요?”
설명을 멈춘 데아가 고개를 돌렸다. 연옥의 주름진 얼굴에 흐뭇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젊은이가 어쩜 이리 싹싹하고 똑 부러질까. 설명 고마워요. 다 들은 것 같아.”
“아… 네. 그럼 다행이네요. 그럼 길드장실로 올라가실까요? 아니면 카페에서 커피 한잔이라도.”
“좀 앉아 있고 싶으니까 카페에 가죠. 그리고…….”
연옥은 말을 쉬었다가 다시 입술을 열었다.
“헌터님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는 것 같은데.”
데아가 크게 움찔거렸다.
유우리는 속으로 감탄했다.
‘움 님은 어떻게 아셨대. 난 몰랐는데.’
그렇게 카페 안에 각자 따뜻한 잔을 잡고 앉았을 때 데아는 답지 않게 눈치를 봤다.
‘이 할머니 용한 것 같다…….’
잠자코 데아의 말을 기다리던 연옥은 머그 컵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여쭤보고 싶은 말이 있어요.”
침묵 후, 데아가 말을 건넸다.
“예언자님은 인어에 대해 잘 아시나요?”
유우라가 코코아를 홀짝이던 걸 멈추고 눈치를 봤다. 연옥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인어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자가 있다면 아마 눈앞의 이분이 아닐까?’
문득 유우라는 눈앞의 어린 헌터가 다가오기 전, 자신의 귀에 대고 속삭였던 움의 말을 상기했다.
“너 속으로도 입 다물고 있어라. 다 들려.”
뭐가 들린다는 건지, 움 님도 참…….
하지만 유우라는 소심인이었기 때문에 혼자 조잘거리지도 못하고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잘 알지는 못해도, 저에겐 꽤나 신기한 것이 보이니 헌터님의 질문엔 답해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아, 그렇네요. 사실 저는 한 인어를 쫓고 있는데…….”
직접적인 사항을 얘기할 필요는 없다. 이 정도라면 충분했다. 데아는 파문이 일렁이는 잔을 노려보았다.
“머리카락과 비늘이 온통 붉은 인어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유우라는 결국 삼키던 코코아를 그대로 주르륵 잔에 뱉고 말았다. 머리카락과 비늘이 붉은 인어. 아마 움의 머리카락과 비늘은…….
“오, 붉은색 인어를 보셨나 봐요?”
붉은색이었다.
흔치 않은 붉은 머리카락과 눈, 그리고 비늘을 가진 인어가 바로 움이었다. 그러나 태초가 탄생시킨 여덟 명의 1세대 인어는 각자의 특징과 색이 달랐고, 그들이 각각 또 탄생시킨 2세대 인어는 그들만의 특징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므로 움이 유일한 붉은 인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의 움은 노인의 모습으로 위장 중이라 백발이지만.
움 또한 오래전에 자신의 권속을 탄생시켰고, 그 권속들도 하나같이 붉은 머리와 비늘을 가졌다. 하지만 어쨌거나 인어들의 ‘붉음’의 시초는 움이었다.
“언제 보셨나요?”
아마 눈앞의 어린 헌터가 말하는 ‘붉은 인어’도 자신의 수많은 권속 중 한 명일 테지.
움의 입매가 슬며시 올라갔다. 유우라는 긴장한 눈으로 데아를 응시했다.
“최근에… 소중한 사람이 그 때문에 죽었거든요.”
6년 전을 최근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거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데아는 한숨을 뱉었다.
“꼭 만나고 싶어요.”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요?”
“죽일 거예요. 어차피 헌터는 인어를 죽여야 하잖아요. 하지만 제가 모은 단서는 그 인어가 붉었다는 거랑 좀 위험한 정보뿐이라서요. 혹시 예언자님이 더한 것을 알고 계실까 해서 여쭤봤어요.”
데아는 피파가 말해 준 인어들의 제국을 떠올렸다. 던전 안의 바다로 깊이 입수해야만 갈 수 있는 미지의 나라. 그러나 그 생각은 곧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너무 어려운 길이었다.
데아는 가만히 입을 다무는 연옥을 바라보다가 긴 숨을 뱉었다. 그럼 그렇지, 예언만 하는 사람한테 뭘 물어본 거람…….
연옥의 능력은 예언이지, 그는 정보원이 아니다. 그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성급했음을 알아챈 데아가 감사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옥의 시선이 따라 올라갔다.
“잠시만요, 헌터님.”
연옥이 데아를 불러 세운 건 그때였다. 연옥의 흐린 눈동자가 순식간에 또렷해지더니 시선이 허공을 맴돌았다. 손을 잡힌 데아의 눈이 커졌다.
연옥의 시야에 무언가 비치고 있었다.
연옥이 보는 데아는 그냥 조금 건방지고 당돌한 꼬맹이였다. 한참 어린 인간. 붉은 인어라면 분명 자신의 권속일 텐데 맹랑하게도 잡아서 죽일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 고작 스무 살을 조금 넘기고 산 헌터.
동시에 모두의 주목을 받는 ‘그’.
“그 붉은 인어가 혹시 손톱을 무기로 사용했나요?”
이데아, 이 아이가 일을 재미있게 만들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든다.
“……!”
데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맞아요!”
“말은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고?”
곧장 ‘네!’라고 대답할 것 같았지만 데아는 의외로 길게 뜸을 들였다. 그리고 눈동자를 굴리며 확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네…….”
그런 데아의 중심으로 화면이 점멸하더니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환상이 들이닥쳤다. 사람을 지켜보면 그 사람에 대한 단편적인 미래가 보인다.
워낙 불규칙적이고 다 들어맞지도 않아 사용을 지양하던 능력이기도 했는데, 지금의 연옥, 움은 묘한 확신을 느꼈다. 어두운 동굴 아래 지친 얼굴의 데아와 절박한 표정의 누군가의 형체가 아른거렸다.
아, 연옥은 입을 벌렸다.
‘저 얼굴은 분명…….’
꽤나 잘나고 화려한 얼굴에 호전적인 성격. 그 성격 죽이고 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던 버르장머리 없는 권속 중 하나. 움의 한쪽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쭉 솟았다.
‘나의 첫 번째 권속, 칼리안.’
환상 속의 붉은 인어는 데아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데아에게 지원군이 도착하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노란 낙뢰가 떨어졌다. 그러자 결집하고 있던 수많은 인어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고…….
“아.”
연옥은 눈을 떴다. 환상이 중간에 끊겼다. 볼 수 있는 미래는 여기까지였다.
‘아주 재밌어지겠군.’
“붉은 인어를 곧 만나겠군요.”
속삭이듯 읊조리는 연옥의 말에 데아가 우뚝 굳었다. 옆의 유우라도 입을 벌렸다.
“던전. 장소를 보아하니 던전 안이겠네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깊은 검은색 암벽이… 덕지덕지 달려 있는 동굴 밑이고요.”
“…아, 네.”
“눅눅하고 반쯤 바다가 찰랑이는 어두운 공간 안에서 당신과 붉은 인어가 싸우고 있어요. 더군다나 서로에겐 지원군이 있네요.”
“지원군이요?”
“네. 아마 같은 헌터일 거예요. 깃발을 들고 있었는데, 그 깃발 안에 써져 있는 글자는 분명…….”
데아와 연옥의 시선이 정확히 일치했다.
“JJ?”
데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니까 지금…….
“JJ 길드의 던전 안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그 던전은 한 군데뿐이었다. 포션병을 다 깨버리고 무례하게 회의를 진행해서 샤샤한테 까인 비운의 길드 JJ. 그 길드가 전임하는 뉴욕의 던전. 던전 포화까지 불과 5일도 남지 않은 그 안에 가면 붉은 인어를 만날 수 있다니.
“맙소사.”
그 새끼를 또 만나야 한다니. 아, 진짜 싫은데…….
하지만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길드장님과 상의할 시간이 필요해.’
“감, 감사합니다!”
데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